2022년 4월호

적막 흐르는 文 사저, 그 많던 달빛기사단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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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2-03-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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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자 한 명 찾기 힘들어

    • “반기긴 한다만…”

    • “여기는 대통령 고향도 아니야”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마친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6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사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평산마을은 45가구가 사는 작은 농촌이다. 양산 도심과는 차로 30분 거리. 꽤나 떨어져 있다. 문 대통령처럼 도시와 떨어진 농촌 에 사저를 마련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뿐. 두 사람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은 서울 자택을 사저로 사용했다.

    과연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20대 대통령선거 하루 뒤인 3월 10일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을 찾았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전경. 마을 가장 위쪽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보인다. 아래쪽에는 마을 사람들의 농지가 있고, 농지 양쪽으로 민가가 늘어서 있다. [지호영 기자]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전경. 마을 가장 위쪽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보인다. 아래쪽에는 마을 사람들의 농지가 있고, 농지 양쪽으로 민가가 늘어서 있다. [지호영 기자]

    지지자 한 명 없는 사저 앞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많았다. 임기 말까지 지지율 40%대를 유지해 지지자들은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 인기도 3월 9일 대선 이후 사그라질 것처럼 보인다. 선거 직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8.1%로 떨어졌다(리얼미터 3월 10~11일 조사).

    사저 주변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3시간가량 마을을 배회하며 지나가는 행인마다 붙잡고 말을 걸었다. 주민과 공사 관계자를 제외하면 이날 만난 사저 방문객은 총 3명. 이들이 문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표를 던졌다고 입을 모았다.

    양산시 중부동에 거주하는 이모(62·여) 씨는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이곳에 사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했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공사 인력과 두꺼비 두 마리가 전부”라고 말했다. 이씨와 동행한 정모(60·여)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는 대통령이 들어오기 전부터 사람이 많았다는데 (평산마을은) 사람이 없다”며 “다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씨의 지적처럼 통상 대통령 사저가 생기면 대통령이 입주하기 전부터 찾아오는 지지자가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는 2월부터 매일 1000여 명(경찰 추산)의 지지자들이 빈 사저를 찾았다.

    “방문객 전혀 늘지 않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 [지호영 기자]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 [지호영 기자]

    마을 주민 박모(72)씨는 “오늘 특별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간혹 보이기도 하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하다”고 밝혔다.

    평산마을은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마을 인근에는 대한민국 3대 사찰인 통도사가 있다. 통도사 주변에는 소나무숲이 조성돼 있는데, 숲이 마을 측면 한편을 완전히 감싸고 있다. 마을 뒤편에는 영남알프스 9봉 중 하나인 영축산이 있다. 영남권 유명 테마파크인 통도판타지아도 마을 인근(4㎞)에 있다. 박씨는 “마을 안까지 관광객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평소에 사람이 이렇게 없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관광객이 드나든 흔적이 보였다.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톨게이트를 지나면 통도판타지아가 보인다. 이 테마파크를 왼편에 끼고 들어오면 통도사 인근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이 보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서리마을. 이곳을 지나 차로 5분가량 더 들어오면 평산마을이다.

    서리마을부터 평산마을로 들어서는 일차선 도로에는 찻집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곳은 개업한 지 20년이 지났을 정도다. 천혜의 관광자원에 문 대통령의 사저까지 들어선 상황.

    문 대통령의 사저는 외관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회색 박공지붕과 상아색과 회색을 조합한 벽면은 한옥을 닮아 있다. 네모반듯하게 정리된 구획에서는 서울 도심 건물의 면모도 보였다. 사저를 설계한 사람은 유명 건축가이자 문 대통령의 친구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자택인 수졸당과 노 전 대통령의 묘역도 승 대표가 설계했다.

    지역 상인들은 사저가 생긴 뒤에도 손님이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을 초입에서 5년여간 식당을 운영 중인 장모(48·여) 씨는 “사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이곳을 찾는 분마다 이제는 장사가 잘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실상은 손님이 전혀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2대에 걸쳐 찻집을 운영하는 윤모(45) 씨는 “손님 중에 대다수는 등산객이나 통도사를 찾는 분들이다. 문 대통령 사저 때문에 이곳을 방문했다는 분을 본 적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상인 한 명은 “(문 대통령) 지지자가 그렇게 많다던데 여기까지 찾아올 만큼 마음 깊이 지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사저 특수’는 전혀 없다”고 했다.

    “대통령 오신다면 반기긴 한다만…”

    경남 양산시 통도사와 문재인 대통령 사저를 잇는 둘레길 조성 공사 현장. [지호영 기자]

    경남 양산시 통도사와 문재인 대통령 사저를 잇는 둘레길 조성 공사 현장. [지호영 기자]

    대통령 사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다. 이날 만난 주민은 10여 명. 이 중 3~4명은 기자를 피했다. 사저가 생긴 뒤로 취재진의 잦은 방문이 부담스럽다는 것. 그나마 말문을 열어도 “대통령님 오시면 환영이죠”라고 답한 뒤 입을 닫고 돌아서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대선 결과였다. 대화를 나눈 주민 중에서는 정권교체를 반기는 사람이 많았다. 은퇴 후 고향인 평산마을에 돌아와 10년째 거주 중인 박모(75) 씨는 “원래 양산은 보수 지지세가 강한 곳 아닌가. 마을 주민들이 자주 만나서 정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대부분 2번(윤석열 당선인)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김모(71) 씨는 “대통령이 양산에 거주했지만 양산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번(19대 대선)에 문 대통령에 표를 줬던 사람들도 실망이 크다. 좋은 나라 만든다더니 외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양산은 보수세력 지지세가 강하다. 문 대통령이 살던 곳이지만 19대 대선에서도 양산시민의 41.94%만 문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20대 대선에서는 과반(53.52%)이 윤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특히 평산마을이 있는 하북면은 보수 지지세가 더 두드러진다.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29.32%)보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이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에게 투표(47.22%)한 사람이 더 많았다. 문 대통령이 살던 덕계·매곡동에서는 19대 대선에 투표한 사람 중 39.78%가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물론 평산마을에도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모(76) 씨는 “그래도 양산이 문 대통령께는 의미가 있는 지역 아닌가. 이번에는 나라 상황이 많이 나빠졌지만 민주당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대 대선 양산시에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중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투표한 비율은 42.18%. 지난 대선 문 대통령의 득표율에 비해 0.24%포인트 올랐다.

    “고향도 아닌데 뭐 하러 오는지…”

    문 대통령이 왜 평산마을로 오는지 모르겠다는 주민도 많았다. 유모(73·여) 씨는 “이곳이 문 대통령의 고향도 아니고 평산마을에 거주한 것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들어와서 산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산마을에서 만난 양산시민들은 모두 유씨와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다.

    평산마을은 문 대통령에게도 낯선 곳이다. 문 대통령이 원래 살던 곳은 양산시 외곽의 매곡동, 덕계동 사저가 경호에 어려움이 있어 35㎞ 떨어진 평산마을에 부지를 사들여 사저를 마련했다.

    갑작스럽게 문 대통령이 이웃이 될 상황이 되자 일부 주민은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하북면 일대에 사저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주민 김씨는 “(찬성한 주민들이) 문 대통령을 좋아해 사저 건립에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사저가 들어오면 마을 내 도시가스 설비도 생기고, 둘레길도 조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시는 지난해 11월 통도사와 사저를 잇는 둘레길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공사가 끝나면 통도사 산문부터 평산마을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이 생긴다. 사저에 도시가스 설비가 들어오면 마을 주민들도 일정 비용을 내고 도시가스를 쓸 수 있다. 주민 박씨는 “가구당 150만 원을 내면 도시가스 설비를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주민 동의를 얻어 지난해 5월 공사가 재개됐다. 익명을 요구한 주민 A씨는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소음과 취재진의 잦은 방문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지금이야 공사가 막바지 단계라 불만이 잦아든 것”이라고 밝혔다. 경남도와 양산시 등에 따르면 현재 사저는 공사가 거의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 4월 말 준공 예정으로 현재 공정률은 80% 정도다.

    “대통령도 쓸쓸하겠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임기를 마친 후 사저에 입주한다. 마을 주민들과 사저를 찾은 이들은 문 대통령이 사저에 거주해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산시 중부동에 사는 양모(59·여) 씨는 “선거 결과가 나온 오늘 같은 날에도 사저를 찾아온 사람이 없는데 대통령이 들어와 산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마을 주민 임모(70) 씨도 “대선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지지자들이 이곳을 찾아온 적이 없다. 김해(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는 사저 공사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이 찾아갔다던데 영 딴판이다”라고 말했다.

    사저를 찾아왔다는 3명의 외지인은 30분 만에 자리를 떴다. 마을은 고즈넉했다. 공사 현장에서 열 걸음만 멀어져도 사람 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주민들은 고령자가 많아 마을이 조용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젊을 때 대처에서 일하다가 은퇴 후 고향을 찾아 내려온 사람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 후배들이 자주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막상 은퇴하니 잊힌 사람이 됐다. 여기까지 찾아온 직장 동료는 두어 명뿐이다. 그나마 나는 고향이 여기라 정 붙이고 사는데 (문 대통령은) 오시더라도 쓸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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