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은 소금이나 양념에 절여 장아찌나 김치로 만들면 감칠맛이 난다. [GettyImage]
순대를 소금이 아닌 막장에 찍어 먹는 맛, 아기자기한 난전에 쪼그려 앉아 먹는 비빔당면의 재미, 국수집에서 국수는 안 먹고 유부주머니만 시켜 먹는 반전, 하얀 어묵인 줄 알았는데 치즈처럼 쫀쫀하게 익은 물떡꼬치, 그리고 어묵국물 내는 식재료로 게를 쓰는 바닷가 사람들의 대범함까지. 그중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맛은 수영복을 입고 패스트푸드 매장에 앉아 먹은 햄버거였다. 요즘 부산 해수욕장의 풍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바닷물과 모래, 어마어마한 사람들로 여름 해안가 식당은 매일 저벅저벅 붐볐다.
음식이라는 게 ‘당연함’이라는 면모는 본래 없는데, 익숙한 게 당연해지곤 한다. 재료나 조리법이 한 뼘만 벗어나도 낯설고 놀랍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콩잎 귀신’이었다. 콩잎은 여물고 질겨 깻잎처럼 날 것 그대로는 잘 먹지 않는다. 소금이나 양념에 절여 장아찌나 김치로 만든다. 내가 귀신처럼 좋아하는 건 삭힌 콩잎이다. 밭에서 누르스름하게 익은 콩잎을 따서 소금물에 담가 삭힌다. 절여지는 시간을 거쳐 콤콤하게 삭는다. 콩잎은 두꺼운 비닐처럼 미끄덩거리고, 색은 더 누래진다. 여기에 깻잎처럼 매콤짭짤한 양념을 묻혀 재워두고 먹는다. 여름 오이지가 울고 갈 만큼 무시무시한 밥도둑이다.
바싹 말린 대구머리의 변신
대구머리찜. [대구시청]
상상 넘어선 별미 ‘닭 회’
해남에는 닭 한 마리로 코스 요리를 만들어 주는 식당촌이 있다. 토종닭 한 마리로 주물럭, 구이, 백숙, 죽 등을 만들어 줄줄이 먹을 수 있다. 그중에 으뜸은 회다. 닭 회라고 하면 흠칫 겁먹는 이들이 있겠지만 막상 닭 회 접시가 상에 오르면 윤기 좋은 생선회 못지않게 먹음직스러운 모양에 한 번 놀라고, 이취가 없음에 또 한 번 놀란다. 얇게 저민 모래집 회는 소금과 후춧가루 살짝, 통깨 조금 뿌려 한입에 넣고 씹는다.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난다. 참기름에 살짝 적셔 먹어도 좋다. 닭발을 아주 곱게 다져 주는 곳도 있다. 생선 뼈다짐과 비슷한데 양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입안에서 부드러움을 선사할 만큼 기름지면서 고소한 맛이 아주 진하다. 기름기 없는 가슴살이나 안심을 회로 내는 곳도 있다. 무척 말랑하고 부드러워 ‘닭’이라는 사실만 숨기면 누구라도 즐겁게 먹을 맛이 분명하다. 간혹 불쾌하게 여겨지는 고기 비린내는 대체로 살과 뼈에 배어 있는 피, 지방질에서 많이 생겨난다. 티 없이 잘 손질한 닭고기는 육회, 생선회와 다름없이 신선하고, 산뜻하며, 정갈한 맛이 좋은 음식이다.삶은 소면에 설탕 솔솔 뿌려 차고 달게 먹는 한여름의 설탕국수, 얼음처럼 차갑게 준비해 꼬들꼬들 기름지게 먹는 차돌박이 육회, 생선 못 먹는 이들도 넙죽 좋아할 달고 짭조름한 장어육포 등도 맛의 범주를 딱 한 뼘 정도만 넓힌 음식이다. 약간의 융통성이 맛있고 즐거운 것을 만들어 냈다.
장어육포는 술안주나 간식으로 인기가 있다. [웰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