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고질적 문제는 대통령 권력 독점
감사원 국회 이전 통해 ‘셀프 감사’ 극복해야
청와대 수석 아닌 장관 중심 국정 운영 필요
대통령 개방적 국정 운영 정치개혁 첫 단추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새 정부에 부여된 정치개혁 과제의 주된 내용을 보면 대통령 4년 중임제, 책임총리제, 중대선거구제 도입, 연동형비례제 정착 등의 제도개선책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정치개혁 방향에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현재 논의되는 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가 대통령의 권력 독점이다. 이로 인해 정치 발전이 저해됐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 정치개혁의 첫 단추가 된다. 우선적이고 실현 가능한 처방이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 강화다. 현행 헌법 97조에 근거해 감사원은 행정부에 속해 있다. 예산 집행을 포함한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것이 감사원의 기본 임무인데, 감사원 조직이 행정부에 편제돼 있기에 행정부 자체의 셀프 감사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감사원이 제 기능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와 여당의 공세에 시달리는 희한한 일이 발생한다.
정치권 대세는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
감사원의 국회 이전은 오랫동안 제기된 사안이다. 현재 국회의 행정부 감시 역량과 인적 전문성은 비대한 행정부 조직과 비교하면 극심한 불균형을 보인다. 따라서 감사원의 국회 이전은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을 강화시킬 것이며, 행정부의 부당한 권한 행사를 밝혀내거나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정치권에서는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의 4년 중임제가 대세다. 5년 단임제는 여러 단점을 가지고 있다. 취임 첫해에 대통령은 이전 정부가 결정한 예산 내역에 따라 국가 운영을 해야 하고, 마지막 1년은 레임덕이 나타난다. 3년 남짓한 시간에 장기적 국정과제를 추진하기는 어렵다. 또한 단임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현직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직접 물을 수도 없다. 재선이라는 동기부여가 없는 대통령은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 다른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대선과 총선의 선거주기를 맞춰 두 선거를 동시에 치를 목적으로 4년 임기의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면 제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시 선거를 채택하면 유권자의 관심이 대선에 쏠리고 총선은 주목받지 못한다. 즉 대선 승자 정당이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 유리하게 마련이다. 이를 후광(後光)효과라고 한다.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대선후보가 속한 정당의 총선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동시선거는 대통령의 권한 분배라는 목표와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함으로써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문제가 바로 대통령 권력 집중의 핵심 포인트다. 그런데 총선 결과가 대선에 종속된다면 즉 후광효과가 상당하다면 대통령은 소속 정당 의원들을 자신이 당선시킨 것이라는 우월감에 빠지고 대통령의 정당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제의 기본 운영 원리인 삼권분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선과 총선을 서로 다른 시기에 치르면 총선이 집권 세력을 중간 평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하원 선거가 2년마다 치러지기에 4년 임기의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가능하다.
대통령 권한 분산을 위한 방안으로 책임총리제도 거론된다. 총리 임명권을 국회가 갖는다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총리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임총리제는 권한 분산을 제도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문제다. 프랑스의 이원정부제는 일상적인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산이 아니라 여대야소에서는 대통령제이고 여소야대에서는 의원내각제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총리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해 대통령 권한 분산을 기대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의해 총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개혁의 두 번째 방향은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다. 실천적 방안으로 비례대표제의 강화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제시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당제를 촉진하려면 비례대표 수가 상당해야 한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것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심지어 비례대표 폐지론까지 제기된 적도 있다. 또한 의원정수를 현행과 같이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려면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하는데 이러한 내용의 선거법 개정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85%에 달하는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는 제도의 조응성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당 신뢰도나 정당 일체감을 볼 때 과연 정당 중심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민 정서에 맞는지 의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 결정이 정당 선호 때문이라는 응답은 단 2%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정당이 제도화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정당 기준 국회 의석 배분은 타당하지 않다.
중대선거구제로 제도를 바꾸어도 다양한 문제가 우려된다. 다당제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3인 이상 선출하는 방식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는데 농촌과 도시가 혼합한 선거구를 비롯해 이질적 요소가 혼재된 선거구가 다수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다양한 지역구 의견이 의원들을 통해 제대도 반영되기 어렵다. 또한 1, 2위가 득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면 10%도 득표하지 못한 3등 당선자의 정통성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권위주의적 태도 버리라
이처럼 제도개선을 통한 정치개혁에 많은 잠재적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치개혁이 필요할까.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먼저 청와대 수석 중심의 정치를 지양하고 장관 중심으로 업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와대만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의사결정 과정으로는 최선의 정책 구현에 실패한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다음으로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대통령제 원리에 맞지 않는 관행이며 의원 겸직 장관으로 인해 사실상 국회의원 정수가 줄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돼버린다. 또한 여당 의원들이 장관으로 발탁되기 위해 대통령에게 충성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관행이다.다음으로 대통령의 국민 소통 강화의 의지다. 국민은 대통령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 국민과 공감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국민은 부동산 폭등을 실감하는데 왜곡된 통계를 들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인식에 정치를 외면한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권위적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일상적으로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제도 변경이 자칫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을 볼 때 현재 정치권에서 제안하는 정치개혁 내용은 실현되지 못하거나 신중치 못한 개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가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려면 제도개혁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통령부터 솔선해 관습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방적 국정 운영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