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뉴스1]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을 잇달아 맡아 국가 안보사령탑 구실을 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2012년 대선 때 군(軍) 사이버사령부에 ‘댓글공작’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5년 내내 피고로 재판을 받아왔다. 2019년 1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 2020년 10월 항소심에서도 2년4개월 형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함으로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피고’로 지내야 했던 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 용산 이전’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윤 당선인과 가까운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김 전 실장을 만나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한 그의 견해를 청취했고, 그 내용을 윤 당선인 측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것.
정 부의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군통수권자라는 점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은 ‘군 지휘체계’라는 점 ▲정부종합청사나 외교부 청사로 이전하면 지하 벙커가 없어 대통령의 전시 지휘 및 긴급대피가 문제될 수 있지만 용산의 국방부 청사에는 건물마다 지하 벙커가 있어 그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김 전 실장이 청와대를 광화문이 아닌 용산으로 이전해야 할 현실적 근거와 이유를 제공한 셈이다.
김 전 실장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과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한 이후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질타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장관에 취임했다. 중장 시절 합참 작전본부장, 대장 땐 제3야전사령관, 합참의장을 지내는 등 군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육사 29기로 한해 후배인 김태영 합참의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08년 대장 예편했다. 그러나 국방장관은 김태영 장관의 뒤를 이어 2010년 12월 취임했다. 당초 김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3순위 장관 후보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가 장관으로 발탁된 이유로 ‘강인한 인상’이 꼽힌다. 당시 사정을 아는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강한 군대를 이끌려면 강한 풍모를 갖춘 장관이 좋겠다’는 게 그가 낙점된 이유였다.
그는 장관 취임 직후 전군에 ‘북 도발 시 강력히 대응할 것’을 주문하는 한편, ‘先대응 後보고’ 원칙을 제시하며 야전 지휘관들에게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임호영 전 대장은 “김관진 장관 취임 이후 군의 패러다임이 전투적으로 바뀌었다”며 “김 장관은 ‘훈련과 작전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강한 군대로 변모할 것을 주문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김 전 장관은 ‘개념’과 ‘지침’을 명확히 하달해 부하들의 임무 수행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선이 굵은 분”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이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던 때 북한군은 김 전 장관의 얼굴 하단에 ‘김관진놈’이라 쓰인 표지물을 사격에 사용하는 등 김 전 장관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했다.
서울고 졸업 후 육사 28기로 진학한 그는 육사 1학년을 마치고 1969년 ‘독일 육사 유학생’으로 선발돼 독일 육사를 졸업했다. 독일 육사 유학생 제도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국빈 방문 직후인 1965년 처음 도입됐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당시는 미 육사나 일본 유학 제도가 없던 시절로, 육사 수석 입학 또는 1학년 생도 중 전체 수석이 독일 육사 유학생으로 선발됐다”고 설명했다. 육사37기로 독일 육사를 졸업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김 전 실장은 독일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그 이름이 독일군 내에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며 독일 육사 유학 시절 “‘고안~진!’ 하면 대부분 독일장교들이 누군지 알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만 김 전 실장이 국방부장관과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독일 육사 유학 장교’를 뜻하는 ‘독사파’가 요직을 차지한 것을 두고 군내 일각에서는 ‘편중 인사’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목함 지뢰 사건’으로 남북 충돌 직전까지 갔던 2015년 8월, 판문점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도하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이뤄낸 경험을 갖고 있다. 동시에 1년 뒤인 2016년에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화’와 ‘대결’ 사이에서 대북 대응책을 새롭게 가다듬고 있는 윤석열 당선인에게 ‘청와대 용산 이전’ 외에 그가 국가안보와 관련해 어떤 조언을 할 지 궁금하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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