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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불확실성 시대, 생존·번영 외교 절실

  • 신각수 前 주일대사

초불확실성 시대, 생존·번영 외교 절실

  • ● 세력 전환은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 불러와
    ● 미·중 패권경쟁 소용돌이 한가운데 선 대한민국
    ● 북핵은 동아시아 전략 환경 요동치게 할 게임 체인저
    ● 대북 핵 억지 강화 위한 구체적 방안 찾아야
    ● 동남아·유럽·인도와 연계 강화해 전략 공간 넓히자
1월 17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화염을 내뿜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뉴시스]

1월 17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화염을 내뿜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뉴시스]

5월에 출범해 2027년까지 5년간 집권하게 될 새 정부는 복잡하게 변화하는 대외환경에서 생존과 번영이라는 답을 찾아야 하는 복합방정식과 마주하게 된다. 2020년대 들어 국제질서의 지각판이 흔들린다고 할 만큼 여러 변동이 맞물려 일어나고 있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어려운 전략적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힘의 공백 노린 중국과 러시아의 강대국 정치

역사상 신라의 3국 통일과 당의 고구려·백제 정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명·청 교체, 일본 제국주의와 청·러시아 전쟁의 세력 전환은 모두 한반도에 전쟁의 참화를 불렀다. 이에 비견될 만큼 중국의 부상과 공세적 외교안보 정책으로 동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은 우리를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핵화 교섭이 하노이회담 이후 교착된 가운데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지속 발전시킴으로써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가 될 날이 머지않다.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전략 환경을 크게 요동치게 할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더 넓게 보면 우리가 선진 중견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주된 버팀목이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크게 도전받고 있다. 이 질서를 만들고 유지해 오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대처에서 보듯이 전쟁피로증으로 인해 대외 관여에 소극적이 됐고, 국내 정치의 혼란으로 동맹 경시와 미국우선주의의 트럼프 시대로 되돌아갈 위험이 여전하다. 이런 힘의 공백을 노린 중국과 러시아의 강대국 정치와 지정학적 도전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노골적 사례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변화를 가속하는 요소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년을 넘겨도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폐쇄적이면서도 각자도생으로 점철된 상황을 가져와, 혼란스러우면서도 마치 뼈대가 없는 듯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양적 완화로 풀린 거대한 유동성은 부채위기의 그림자를 낳았고, 높아진 인플레 압력과 함께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마저 커졌다. 또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각국이 2050∼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약속한 결과, 우리에게도 녹색경제로 전환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이로 인해 온실가스의 주범인 석탄과 석유의 사용량을 크게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수소, 암모니아, 원자력 등 녹색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지정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변환이 가져오는 4차 산업혁명은 경제와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기술이 미·중 패권경쟁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고, 경제-안보 연계(nexus)가 깊어지면서 경제안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의 군사력 우위를 지속할 3차 상쇄전략의 수단이 핵심 기술과 신기술이라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 미·중 디커플링이 예상된다. 그리고 이 분야를 뒷받침할 전략물자인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귀금속 등의 공급망도 미국과 동맹국·우호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와 같이 복합적인 요소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초불확실성으로 몰고 갈 것이다.

이런 유동적 대외환경 속에서 새 정부는 안보 위협에 대처하고 경제 번영을 지속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게 됐다. 특히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초래한 사면초가의 외교 상황을 떠안고 출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지난 5년간 정부는 전체 국면과 외교 기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외정책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는 완전 표류상태로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이 거의 닫히고 남북관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미동맹도 북한 문제와 미·중관계에 관한 부적절한 대응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균열이 쌓였다. 한중관계는 국격 희생과 3불(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 방어, 한미일 동맹) 약속에도 불구하고 사드 보복 조치는 그대로 있고 북·중관계만 강화된 형국이다. 한일관계 악화는 잃어버린 10년이 돼 복합다중골절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 역내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파트너가 돼야 할 일본인데 과거사의 늪에 빠져 우리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권교체로 비교적 바꾸기 쉬운 국내 정책과 달리 외교정책의 방향 선회는 상호 연계된 복합 사안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다.



블랙스완·회색코뿔소 대처할 유연성 갖춰야

혼돈의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우리 외교 항로를 제대로 조타하기 위해서는 전체 그림을 보면서 길을 정하는 방향성과 함께 언제든 엄습할 수 있는 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에 대처할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 지난 5년간 우리 정체성과 유리되고 국익과도 괴리돼 흐트러져 버린 외교 축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한국은 지난 70년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대외개방 정책을 통해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진 선진 중견국가로 성장했다.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안보를 확보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한미동맹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힘입은 바 크다. 앞으로도 우리가 불확실한 국제환경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은 한미동맹이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동맹의 회복과 발전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지만 구체적 행동과 성과로 실현돼야 한다.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강화해 나가면서도, 군사력의 해외 투사 능력 제약으로 인해 동아시아-유럽-중동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마저 불확실하게 만든 가운데, 우리로서는 미국의 관여를 계속 유지하도록 동맹의 일원으로 적절한 책무와 기여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교란 상대방을 움직일 지렛대를 만드는 일이므로 능동적으로 한미동맹을 관리·발전시켜 동맹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퍼즐은 최악의 상태인 한일관계의 조기 복원이다. 양국은 가치를 공유하고 북핵, 중국의 공세 외교, 동아시아 질서 등에서 유사한 이해를 가진다. 과거사 현안의 조기 해결과 함께 한일관계를 동아시아의 미래 건설에 초점을 두도록 전략적 전환을 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우리의 인도태평양정책, 대북정책, 대중정책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면서 동결을 위한 단계적 접근이 사실상 불완전 비핵화로 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확장 억지 구체화, 전술핵 재배치 등 대북 핵 억지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북정책도 북한 사회의 변화와 북한 주민의 복지에 기여하도록 의연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인접국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미·중 격돌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중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이런 큰 틀 속에서 미·중 대립 사안별로 국익, 가치,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처해야 한다. 전략적 자율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되, 동맹의 본질 훼손으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작업이 인태 지역에서 다양한 소다자·다자체제 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의 중간적 위치라는 자산을 활용해 새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일이다. 동시에 동남아·유럽·인도와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독자적 전략 공간을 넓혀야 한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 제고, 기술 우위 확보, 공급망 안전에 필요한 경제안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기술외교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기술 전환 시대에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고 외교 자산을 축적하는 필수요소다. 또한 능동적 외교를 위해서는 외교 인적·물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능력에 걸맞은 기여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따라주어야 한다. 안보처럼 외교에도 공짜가 없으므로 정부 예산 1%는 외교에 투입해야 한다.

미국의 혼란스러운 아프간 철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포스트 탈냉전시대의 격변, 혼돈 그리고 초불확실성을 상징한다. 국력과 지정학적 여건으로 전략적 능력에 제약이 있는 우리로서는 전체 그림을 보면서 현실에서는 복잡계 상황에 정치(精緻)하게 대처하는, 신중하면서도 기민한 대외정책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경구처럼 국제 정세 동향에 관한 정보력을 강화해 정확한 판단을 하고, 초연결사회에 맞는 강한 네트워크 능력과 민관협력으로 실효적 행동을 추구해 간다면 복합대전환의 시대를 잘 넘기고 명실상부한 G10의 위상을 굳힐 기회를 얻을 것이다.



신동아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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