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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맛 가득, 이제 ‘잡초’라는 이름표 떼주세요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봄맛 가득, 이제 ‘잡초’라는 이름표 떼주세요

나는 열 살 때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에 다닌 세대다. 그때는 친구들뿐 아니라 선생님도 교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요즘 열 살 아이들을 보면 참으로 똘똘한데, 그때 우리는 어리고 어설펐기에 밥 먹는 것도 선생님이 일일이 봐주신 것 같다. 나의 삐뚤빼뚤 젓가락질도 정년을 앞둔 다정한 선생님과 도시락을 먹으면서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상한 젓가락질 이상으로 선생님의 관심을 끈 건 내 도시락 반찬이다. 엄마는 도시락에 갖은 나물을 자주 싸주셨다.

씀바귀는 겨울부터 봄까지 구할 수 있는 채소다. [사진=gettyimage]

씀바귀는 겨울부터 봄까지 구할 수 있는 채소다. [사진=gettyimage]

맵싸하고 풋풋한 씀바귀무침

그중에 옆 반 선생님들까지 불러들이는 인기 반찬이 있었다. 씀바귀무침이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의 어묵볶음, 감자볶음, 장조림 따위를 내 그릇에 채울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서 씀바귀무침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어깨가 으쓱하고, 내가 먹을 씀바귀무침은 집에 얼마든지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씀바귀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에서 많이 비껴 있는 채소다. 겨울부터 봄까지 구할 수 있으며 가느다랗게 갈래갈래 뻗쳐 있는 뿌리를 손질해 먹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쓴맛이 강렬하다. 구석구석 흙도 붙어 있어 손질이 까다롭다. 흙을 털어내려면 물에 담가 흙을 불린 다음 여러 번 헹구고 닦아야 한다. 그다음 살짝 데쳐서 뿌리의 억센 힘을 뺀다. 다시 물에 담가 두어 쓴맛을 희석해야 비로소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손이 많이 가고, 다뤄보지 않으면 너무 써지거나, 맹맹해지고 무를 수 있는 까다로운 재료이다. 그럼에도 이 번거로운 게 매년 먹고 싶어져 엄마를 조른다. 종소리를 들으면 군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저 봄이 되면 마냥 먹고 싶어지는 채소들이 있다.

매운 고추를 다져 넣고 된장 양념에 조물조물 무친 씀바귀에서는 온갖 맛이 다 난다. 쓰고 달고 구수하고 짭짤하며 맵싸하고 풋풋하다. 밥에 올려 비벼도 맛있고, 밥과 함께 김이나 상추에 싸 먹어도 꿀맛이다. 비린 반찬과도 잘 어울리고, 기름진 고기랑 먹어도 향긋하다. 작게 썬 다음 통통한 새우나 오징어 등과 함께 전을 부쳐도 되고, 반죽을 만들어 튀기면 향과 맛이 기름 맛을 슬쩍 숨겨준다.

달큰하니 보들보들한 비듬

비듬은 고추장, 된장, 간장, 초장 등 다양한 양념과 잘 어울린다. [사진=gettyimage]

비듬은 고추장, 된장, 간장, 초장 등 다양한 양념과 잘 어울린다. [사진=gettyimage]

봄의 숨은 맛으로는 비름도 빼놓을 수 없다. 방언으로는 ‘비듬’이라고도 불리는데 어엿한 채소로 취급되지 못하고 잡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느 텃밭에서 땅에 납작 엎드려 있는 비름을 무던히 밟고 다녔을지 모른다. 채소를 다루는 외국 요리책을 보면 'pigweed(우리네 개비름)'라는 이름으로 맛좋고, 건강에 좋은 재료로 종종 등장한다. 보드라운 잎에 오동통한 줄기를 가진 비름의 맛은 달고 연하다. 맛이 순해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만하다. 봄이 되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재료라 시장에 가서 구하려면 흔치 않고 있더라고 그 값이 꽤 비싸다. 오일장이나 시골 난전에 들러보면 동네 사람들이 밭에서 뜯어 바구니에 소담하게 담아 파는 것을 구하는 편이 오히려 수월하겠다.



부드럽고 어린 비름을 구해 물에 살살 흔들어 여러 번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 넣고 살짝 넣고 파릇하게 데쳐 나물로 무쳐 먹는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고추장, 된장 양념 두 가지로 두루 무쳐 먹었다. 반찬으로 먹을 때는 고추장에, ‘오늘은 밥 비비자’ 하는 날엔 된장에 무쳤다. 기름 둘러 살짝 볶아도 되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간하여 살살 버무려 먹어도 달큰하니 참 좋다. 봄 된장국에 비름을 넣으면 보들보들하여 맛이 좋다. 살짝 데친 비름은 초장에만 콕 찍어 먹어도 달고 맛나다. 탱탱하게 데친 봄 주꾸미나, 가볍게 양념해 구운 차돌박이, 부드럽게 삶은 고기 등과 데친 비름을 곁들여 내면 봄의 특별한 상차림이 완성된다.

봄철마다 각광받는 채소들이 있다. 그 언저리에 씀바귀와 비름처럼 매력 넘치는 봄의 전령사들도 있다는 걸 알아봐 주면 좋겠다. ‘햇빛이 너무 좋아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갑니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글귀를 보고 대뜸 매 봄마나 혼자 나왔다가 돌아가는 씀바귀와 비름이 떠오른다.



신동아 2022년 4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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