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코인 넣는 김남국, 도덕이 굴레라는 김어준 [+영상]

[노정태의 뷰파인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사명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5-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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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도덕주의가 너무 강하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 14일 밤 민주당 쇄신 의원총회에서 한 말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코인 사태’를 두고 민주당이 지나친 도덕주의에 휩싸여 있으며, 그 결과 정치적 불이익을 자초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한 것이다.

    양이원영만의 생각이 아니다. 같은 당 박성준 의원 역시 그 자리에서 “도덕성 따지다가 우리가 만날 당한다”면서 민주당이 도덕성이라는 불필요한 족쇄를 차고 정치 투쟁에 임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관점은 민주당의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민주당 이데올로기’ 중 하나다. 대중은 보수가 딱히 도덕적일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지지를 표하는 반면, 진보는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어 정치적으로 쉽게 궁지에 몰린다는 내용이다.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고 현재는 무소속 신분이다. [뉴시스]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고 현재는 무소속 신분이다. [뉴시스]

    “한동한 장관이 김남국 의원에 대해…”

    이러한 주장을 ‘도덕성 족쇄론’이라고 이름 붙여보자. 그 기원은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겠지만, 2023년 현재 통용되는 ‘도덕성 족쇄론’에서 가장 큰 지분은 방송인 김어준에게 있다고 해야 한다. 그는 ‘딴지일보’ 총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도덕성 족쇄론을 밀어붙이고 있는 장본인이다. 5월 10일 수요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야기한 내용을 편집해 5월 15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김어준이 말한 바, 우리 사회는 진보에게 도덕적 강박이 있다. 조금 길게 인용해 보자.



    “한동훈 장관이 김남국 의원에 대해, 누가 가상화폐에 투자하라고 했냐 다 털려야 마땅하다는 듯이 얘기하더니, 정작 그런 법무부 공직자는 좀 봅시다 하니까, “우리는 안 돼.” 저는 이 사건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도로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에게 도덕적 강박이 있어요.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서사는 이렇다. “아주 오랜 세월, 보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98년이 돼서야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보수가 우리 사회를 완전히 지배했어요. 그러면서 진보를 도덕성이라는 굴레에 가두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위험천만하다. 단지 민주당을 더 위기에 빠뜨릴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수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김남국의 ‘코인 사태’는 단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위법의 소지가 다분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할 때, 그 최소한의 도덕인 법마저 어겼을 가능성이 있어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특히 코인과 관련된 투자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 김남국 본인이 국회의원으로서 그 입법 과정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도덕으로 금지하거나 강제하는 내용은 퍽 많다. 그 중에서도 절대 어기면 안 되는 것,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다. 김남국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입법 과정에 참여하면서 코인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막아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다.

    왜 우리 편만 사소한 도덕적 결함을 지적받느냐는 식의 주장이 위험할 뿐 아니라 상식적인 눈으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다. 도덕이 아니라 법으로 통제돼야 할 사안에서 그 법으로 통제하는 영역마저 축소하려 들었던 것이 김남국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김남국이 거래했던 코인 거래소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검찰이 거래 자료를 확보하면서 향후 수사가 더 진행될 것이다. 법적 판단의 여지가 남아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일단 논의를 보류하고 필자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겠다.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거법 위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방송인 김어준 씨. [뉴스1]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거법 위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방송인 김어준 씨. [뉴스1]

    소크라테스의 반박

    도덕이 돈벌이와 충돌하고 방해가 되는가? 도덕성과 유능함, 도덕성과 경제 활동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인가? 필자는 김어준의 도덕 족쇄론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김남국이라는 한 사람의 일탈을 옹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도덕이 경제, 특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경제 활동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경제의 관계를 상호 대립하는 무언가로 바라보는 것은 중세, 심지어 고대 시대의 철학자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텍스트인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미 등장하는 논의다.

    플라톤의 ‘국가’는 총 10권으로 이뤄져 있으며, 초반부는 정의에 대해 기존에 오간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를 꼽아보자. 초반부의 논적으로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는 주장한다. ‘누구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기존의 도덕과 법률, 기존의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 왜냐하면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반박한다.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보자. 그 범죄자들이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합의한 바를 지키지 않으면 과연 그 범죄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범죄가 됐건 어떠한 종류의 집단적인 활동이 됐건 그것이 성공하려면 관여자들이 서로 믿고 신뢰해야 된다. 합의된 대로 움직여야 한다. 비록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끼리’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더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믿음이 도덕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적 도덕은 그러한 믿음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도덕적이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심지어 의롭지 않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도 도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속담이 보여주고 있다시피, 이는 플라톤과 무관하게 우리 조상님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누군가와 손발이 맞으려면 공통의 상식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약속한 바를 지켜야 한다. 요컨대 도덕이 필요하다. 도둑질을 하려 해도 도덕이 필요하다.

    내부자거래는 처벌된다

    도덕과 돈벌이, 도덕과 유능함을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김어준의 생각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반박한 소피스트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도덕을 지키는 것은 결국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약속을 잘 지키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잘 사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사회가 잘 살아야 그 구성원들이 적은 노력으로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덕이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빼앗는 사람들, 부를 ‘생산’하는 대신 그저 남의 것을 자신에게 ‘이전’하는 일에만 혈안이 된 자들이라면 분명 그렇다. 그런 이들은 부와 도덕을 대립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며, ‘돈을 벌기 위해 도덕을 어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내뱉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는 자본주의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보다 앞서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사회의 형성과 유지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서술했다. 도덕과 돈벌이는 별개가 아니며 대립하는 관계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우리가 흔히 돈 놓고 돈 먹기 판이라고 생각하는 주식 시장, 기타 여러 가지 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투자의 핵심은 자기책임이며, 자기책임이란 몇 개의 도덕적 원리를 전제로 해야만 성립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지니고 있을 것(내부자 거래는 처벌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규칙의 적용을 받을 것. 모든 사람이 규칙을 어기면 같은 처벌을 받을 것. 이런 게임의 규칙, 즉 도덕이 법의 강제력을 통해 적용되고 있어야 투자 시장은 제 기능을 한다.

    김남국이 연루돼 있는 코인 사태가 극히 우려스러운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남국은 국회의원이다. 법을 만들고 개정하며 폐지하는 입법자다. 그런 그가, 출처를 스스로 밝히지 않는 막대한 액수의 돈을 코인 거래소에 넣고 굴리면서 코인과 관련된 법을 만지고 있었다.

    김남국 개인, 더 나아가 그와 관련 있을 몇몇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확실한 돈벌이를 보장받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도덕이 파괴되면서 그들을 제외한 수많은 이들은 손해를 봤다. 코인 거래소에 돈을 넣지 않은 필자 같은 평범한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도덕이 망가지면 사회 전체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도덕성 족쇄론’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평론가 중 한 사람이 사회의 근본을 타락시키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며, 국회의원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퍼뜨리고 있다. 단지 유감스럽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치코인’ 업계의 ‘투자’

    김남국 코인 게이트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사안을 오직 민주당만의 문제로 볼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할 때 일반적인 패턴을 놓고 보자면, 소위 ‘김치코인’ 업계에서 민주당에만 ‘투자’를 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번 사태가 여야를 넘어서는 거대한 정치적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여기서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 선택,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시피 불과 2년 전만 해도 윤석열은 대통령이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전직 검찰총장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그를 국민은 갑자기 대통령의 자리에 앉혀 놨다. 그 선택은 어쩌면 바로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예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남국 코인 게이트에서 우리는 온 국민의 경제, 더 나아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 여야가 따로 없을지 모를 이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코인 게이트는 흐지부지 넘어갈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경제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도덕성을 근본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 사건이 김어준 식의 ‘도덕성 족쇄론’의 궤변을 넘어, 도덕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영상] 동네형에서 코인광으로



    신동아 6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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