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마약은 女性 생식의 최대 毒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3-06-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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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의 일종인 코카인. [Gettyimage]

    마약의 일종인 코카인. [Gettyimage]

    ‘절대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살아가면서 ‘절대로’라는 말은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하지만 결단코, 맹세코,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마약 투약’이다.

    최근 마약 투약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약 청정국이던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면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검찰이 선언했을 정도로 우리나라도 이제 마약 투약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최근 3년간 마약 투약으로 검거된 1만여 명 가운데 70%가 20~30대이며, 여성도 적지 않다고 한다.

    마약의 문제점은 ‘중독 증상’만이 아니다. 중독보다 무서운 건 ‘뇌’를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뇌 신경회로가 영구적으로 망가지고, 마약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심한 우울 증상과 금단현상을 겪게 된다. 특히 천연 마약(양귀비, 아편, 모르핀, 코카인 등)보다 화학적으로 합성된 합성 마약(페티딘, 메타돈, 모르피난, 아미노부텐, 벤조모르핀 등)이 대뇌피질을 강하게 자극해 더 위험하다.

    마약은 무배란, 무월경 야기

    젊을수록 뇌 손상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마약에 장기간 취하면 간이 나빠지고 망상성 정신장애를 겪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영구적 발기부전과 호흡곤란, 심근경색, 부정맥, 심부전, 뇌졸중, 뇌경색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약중독 상태에 이르면 지능지수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담배처럼 연기로 들이마시는 마리화나는 THC라는 물질이 진통, 도취, 환각 작용을 만들어낸다. 코카인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도파민 수용체의 고갈을 불러오고, 각성제로 불리는 필로폰(암페타민류)은 불면, 섬망, 공황 등을 야기한다. 병원에서 수면 마취제로 쓰는 속칭 ‘우유주사’인 프로포폴은 진정 효과가 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고 오용하면 무호흡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돌봄하에 사용해야 한다.



    마약은 여성에게 더더욱 치명적인 독(毒)이다. 실제로 생식기에 주는 피해가 심각하다. 마약중독은 생식호르몬 축을 망가뜨린다.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고갈되거나 불균형적 작동을 하면 GnRH라는 성선자극분비호르몬이 감소하거나 나오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배란이 지연되거나 무배란, 무월경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임신한 여성이 마약을 복용하면 어떻게 될까. 임신 기간에 마약을 복용한 임산부의 몸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태반을 통해 마약이 신생아로 흘러갔기에 그에 따른 금단현상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에서는 한 해 2만여 명의 신생아가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태어난다고 한다.

    엄마와 태아는 태반과 탯줄로 연결된 한 몸이다. 임신하면 자궁내벽에 태반이 생기고 태반은 탯줄로 연결된 태아가 자궁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탯줄은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걸러주는 생명선이다. 모체로부터 좋은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야 할 태아가 마약에 노출돼선 절대 안 될 일이다.

    남성에게도 마약은 독이다. 마약을 복용하는 초기에는 성욕이 증가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발기부전이 올 수 있고 정자 형성 장애, 정자 숫자와 운동성 감소, 비정상적인 정자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다 난임과 불임을 초래하게 된다. 코카인을 복용한 남성의 정자는 활동성이 평균 이하로 떨어진다. 코카인이 정자에 침투하면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 정자를 코카인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는 실험을 해보았더니 정자와 코카인이 결합했다는 것이다. 마약에 노출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배아(수정란)가 건강하지 않아 유산되거나 신경조직 결함으로 기형아가 태어날 수 있다.

    도박, 섹스, 게임, 쇼핑 등 중독거리가 많고 많지만 마약만큼 인체와 인생에 해로운 게 또 있을까 싶다. 최근 중독에 약한 유전자가 있다는 연구결과(워싱턴대 알렉산더 하툼 박사 연구팀)가 나왔다. ‘전장유전체분석(genome-wide association)’으로 100만 명 이상의 게놈(genome) 데이터를 분석해 ‘도파민 신호를 조절하는 유전체 영역에서 물질 사용 장애(Substance use disorder)가 유전될 수 있으며 복잡한 유전자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물질 사용 장애’란 특정 물질을 반복 사용해 인지·행동·신체적 문제가 발생하는 데도 이를 중단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평생 사용할 도파민 한꺼번에 분출

    ‘도파민’이라는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에 문제가 생기면 왜 이토록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할 것이다. 사실 도파민은 인체가 분비하는 천연 마약으로 뇌를 비롯한 우리 몸의 여러 곳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뇌 신경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므로 기쁠 때도 분비가 되지만 힘들고 지칠 때 인간을 위로하듯 분비돼 오뚝이처럼 인간을 달래고 일으켜 세우는 역할까지 한다.

    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부여 과정’에 더 많이 분비된다. 쉽게 말해 인고의 노력을 하도록 만들 때도, 뭔가를 얻거나 이뤄냈을 때도 분비되는 것이 도파민인 것이다. 문제는 마약이 몸으로 투입되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대뇌피질을 직접 자극하고 외세포와 중추신경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평생 사용해야 할 도파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분비되기 때문이다.

    20세기 마약은 인류를 벼랑으로 몰기도 했다.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라는 책에 따르면 1930년대 독일은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장악했을 정도로 마약의 나라였다. 히틀러 역시 마약중독자였다. 독일군은 마약을 일상적으로 복용하며 밤낮없이 진군했다고 한다.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그들에게 마약은 치료와 위로의 약으로 쓰였을 것이다. 매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다리가 잘려나가고 오장육부에 총알이 박힌 채로 버티고 살아내기 위해서는 천연 마약(아편 등) 같은 진통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약은 치료를 목적으로 처방되기도 한다. 진통 효과를 위한 처방은 합법적 테두리에 속한다. 모르핀, 헤로인, 코데인(기침 감기약에 사용)이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진통 효력이 모르핀의 100배에 달하는 펜타닐도 아편류에 속한다.

    마약 오남용의 근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은 청나라 시절 아편전쟁으로 나라를 잃었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도 마약을 거래하거나 사용하면 사형이라는 엄한 벌로 다스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약 문제를 일부 사회 구성원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치료용 이외의 마약 사용을 엄하게 규제해야 한다. 또 사전 예방과 중독자 재활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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