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출마 예정자로 박 터지는 호남
국민의힘 시한폭탄 TK 공천
무소속 출마 후 복당 시나리오
인재 못 키우고 눈치꾼만 양산
4월 9일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왼쪽)가 장인상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배웅하고 있다. [동아DB]
거꾸로 봐도 양쪽은 마찬가지다. 양 진영의 대선 성공 공식은 ‘TK 지지를 받는 비TK후보’ 이거나 ‘호남 지지를 받는 비호남 후보’로 굳어 있다. ‘지지세가 굳어 있는 지역’이라서 정당 간판만 달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총선 때마다 물갈이 바람과 낙하산 투하에 늘 시달린다. 그렇다 보니 공천 경쟁이 치열해 지방선거부터 대선까지 모든 경선에서 온갖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열심히 지지하고 참여할수록 더 많이 욕먹는다. 이렇겐 못살겠다 싶어 독자 목소리를 높이려 하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이러느냐”면서 ‘토호’ ‘분열’ 딱지를 붙여 진압해 버린다. TK나 광주·전남 출신이 지도부에 못 들어가면 못 들어간다고 욕먹고, 많으면 많다고 욕먹는다. 온몸에 피를 뿜어주는 심장이긴 한데, 두뇌는 저 멀리에 따로 있는 형국이다. 생각과 결정은 우리가 할 테니 너희는 잔말 말고 쉼 없이 피나 돌리고 있으라는 식이다.
22대 총선을 앞둔 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전략과 개념 없는 물갈이 때문에 사람을 못 키운다는 여론과 존재감 없는 현역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번에도 물갈이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부딪치는 것은 양 지역이 매한가지다. 수성에 여념 없는 현역의원, 화려한 복귀를 꿈꾸는 올드보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정치 신인의 예선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하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다. 정치 혁신을 외치며 제3지대 깃발을 들고 나선 금태섭 전 의원조차 ‘수도권 30석 정당’을 목표로 내걸 뿐 영호남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TK와 광주·전남은 공천 경쟁만 치열할 뿐 본선에선 결국 조용히 저마다의 지지 정당 후보를 찍어주는 ‘떼놓은 당상’ 구실에 충실할까.
호남부터 살펴보자.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광주와 전남 18석을 석권했다. 전북까지 넓혀보면 무소속이 단 한 곳 당선됐을 뿐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안철수가 이끌던 국민의당 돌풍으로 민주당을 밀어냈을 때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당 후신 민생당 소속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도 추풍낙엽처럼 밀려나갔다. 민생당 간판 대신 무소속으로 전북 남원·임실·순창 지역구에 나선 이용호 의원만 비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금배지를 달았다. 이 의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며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20대 총선에 거셌던 반(反)민주당 바람이 4년 만에 민주당 돌풍으로 바뀐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21대 총선이 실시된 2020년에는 호남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민주당이 초강세였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임기 내내 초강세를 유지했다. 반면 민주당의 대항 세력인 민생당의 경우 그 전신 격인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대표와 내홍이 벌어진 이후 ‘중진 연합체’로 전락했다. 또한 21대 총선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짓 남은 시기에 치러져 중량감 있는 민주당 공천 탈락자들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지 못했다.
21대 총선에 나타난 호남에서의 민주당 초강세 현상은 22대 총선에도 이어질까. 지난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호남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거뒀다. 윤석열 후보 득표율은 두 자리 숫자였고, 지방선거에서도 15% 넘게 득표해 선거비용을 반환받은 후보가 많았다. 이 지지율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선거에 대입하면 당선권과는 거리가 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현재 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형편없다. 과거 국민의당이나 민생당 같은 호남 기반 제3세력도 눈에 띄지 않는다. 냉정하게 볼 때 앞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제2의 명낙대전 예고
지난해 8·30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당대표 후보가 7월 24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인물군을 놓고 보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한마디로 호남은 총선 출마예정자들로 박 터진다. 일단 현역의원 인기가 별로다. 민주당 전당대회 때마다 호남 대표성을 앞세운 주자들이 나왔지만 계속 떨어져 지명직으로 겨우 배려받는 형편이다. 인지도와 지명도 높은 중진이 밀려난 자리를 채운 현역의원들은 지역 주민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지난 총선 공천 때 탈락한 이들은 총선 재수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차관, 검찰 요직을 지낸 인사들도 고향으로 내려와 여의도 입성을 노리고 있다. 계파 상황까지 대입해 보면 더 복잡하다. 공천 희망자에게는 대부분 이재명계니 이낙연계니 하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전초전이었다면 내년 광주·전남 총선 공천은 ‘이재명계 vs 이낙연계’의 이른바 ‘명낙대전’이 재현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내년 총선에 광주·전남에서 무소속 당선자가 나오더라도 총선 후 민주당에 복당할 테니 큰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조직 동원, 선명성 경쟁이 과열된다면 사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전국 민심에 악영향을 끼쳐 전국 총선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전남의 한 시(市)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는 “지난해 지방선거 시장 경쟁률이 두 자리를 넘어섰다. 이번 총선 공천 경쟁도 정말 치열할 것”이라면서 “유권자의 20% 이상이 권리당원이고 숫자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지역구 내 농협, 축협 등 협동조합이 열 몇 개가 되는데 그 조합원 조직이 공천 경쟁 때는 그대로 정치조직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지금도 칼날 위에서 춤추는 느낌이다. 인근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동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수도권으로 지역을 옮겼다”고 전했다.
4월 5일 전북 전주을 재선거에서 승리, 원내에 입성한 진보당이 호남에 당력을 집중한다면, 민주당 공천 경쟁이나 무소속 난립과 겹쳐 지역의 정치 지형 자체를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도 있다. 호남의 경우 이정현, 안철수 등이 등장했을 때는 중도화 경향을 보였지만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의 선거 연대 등이 이뤄졌을 때는 왼쪽으로 치우쳐 전국 정치 지형과 괴리도가 높았다. 이 같은 이념 성향의 변화도 내년 총선 광주·전남 총선 결과를 전망하는 주요 포인트다.
TK의 경우 광주·전남에 비해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에너지는 작은 편이다. 조직화된 당원 비중이나 제1당 득표율은 호남에 버금가지만 정치 문화가 대체로 수직적이다.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사회와 연결된 네크워크도 상대적으로 촘촘하지 않다. 공천 ‘잡음’이 덜하다고 볼 수 있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변화를 위한 목소리’ 자체가 작다.
공천 시한폭탄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참패했지만 TK에서만큼은 선전했다. 전체 24곳 중 23곳을 차지했다. 총선 이후 복당해 대선후보 경선까지 나선 홍준표 대구시장이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였으니 100% 당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에서 당선했고, 무소속 당선자도 세 명이 나왔다. 역설적 결과다.내년 22대 총선에서도 이 지역에서 국민의힘에 조직적으로 맞설 유의미한 정치세력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지방선거 결과 등을 보면 민주당 득표율이 만만찮지만 당선권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김부겸’처럼 축이 될 만한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TK도 내부 분열의 소지는 다분하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에 이어 윤재옥 의원 역시 대구 출신으로 원내대표를 지내고 있지만 전당대회 때마다 TK 출신 의원들은 민주당에서 광주·전남 의원들처럼 찬밥 신세였다. 이른바 ‘친윤 핵심’이라고 불리는 사람 중 TK 출신이 눈에 띄지 않는다. 유승민 전 의원이 ‘비윤’ 간판이지만 TK에서 활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험하게 말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처지인 것이다. TK 출신 의원 상당수는 공천 경쟁에 대비해 일찌감치 지역 활동에 집중하는 ‘참호전’을 펼치고 있다.
밖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에너지는 내부 공천 경쟁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1위로 최고위원에 당선한 김재원 전 의원이 강경우파 전광훈 목사와 스스로를 묶어버린 이유도 결국 공천 고민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흐름대로라면 TK에서 공천 경쟁은 두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전광훈 목사류와 유사한 강경 우파 목소리를 높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 회복을 내세우는 사람이 한쪽에 있을 것이다. 조원진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소수 강성파 보수정당이 이미 존재한다. 출마설이 나도는 최경환 전 부총리,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이 이런 흐름에 합류한다면 존재감이 확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흐름은 ‘용산발 낙하산’과 현역의원 충돌 가능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로 검찰, 대통령실, 내각 출신 ‘젊지 않은 정치 신인’이 대거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유지된다면 이런 갈등은 지역 유권자에 의해 제어될 수 있다. 반대 경우라면 공천 잡음이 커지고 무소속 출마자도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이념적 차별점이 있는 게 아니기에 늘 그랬듯 무소속 출마자들은 개인 경쟁력을 앞세워 당선 후 복당을 주장할 것이다, 이 과정은 언론을 통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20대 총선 때 TK에서 불거진 이른바 ‘진박’ 공천 파동이 수도권에 악영향을 미친 악몽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에는 TK 출신 박근혜 대통령이 진원지였는데도 대구·경북 민심은 싸늘했다.
TK의 유일한 빅 스피커 홍준표 대구시장은 올 초 자신의 SNS를 통해 “TK에서는 인재를 키우지 못하고 눈치만 늘어가는 정치인만 양산하고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며 “다음 총선에서 재선 이상 TK 의원들은 모두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TK는 총선 때마다 절반의 교체율을 기록해 왔다”며 “총선 때마다 전국 교체율 35% 내외를 맞추다 보니 지지세가 강한 TK 지역이 언제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앙 정치에서는 힘도 못 쓰고 동네 국회의원이나 하려면 시의원, 구의원을 할 것이지 뭐 하려고 국회의원 하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의 얘기가 틀린 말은 아닌지만 모순적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 드러낸 이야기다. 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못하니까 싹 바꿔야 한다→ 왜 일을 못하나? 인재를 키우지 못하고 눈치꾼만 양산하니까→ 왜 눈치꾼만 양산되나? 당 지지율이 높다 보니 선거 때마다 교체율이 너무 높아서. 대구·경북이나 광주·전남이나 마찬가지다. 22대 총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볼 때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았다. 텃밭이지만 양당 총선 공천의 잠재한 뇌관 지역이다.
신동아 6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