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국가책임·디지털·대학개혁
지방대, 인재 담는 저수지 돼야
전공 간 벽 허물어야 혁신 이뤄
미래 역량 핵심 ‘3L & 4C’
AI 도입, 교권 강화 계기 될 것
[+영상]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전공 간 벽을 허물지 않으면 교육 혁신은 없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이에게 교육은 위로 오르는 사다리요, 교육 방침은 미래 권력으로 향하는 항로다. 그렇기에 언제나 한국 사회엔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교육 관련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교육부 장관은 이를 총괄·조정하며 청사진을 그려나가야만 한다. 교육부 장관이 고용, 노동, 법무, 환경, 문화 등 비경제 부문 전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이유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천명하며 교육부 장관의 책임은 더 커졌다. 이주호(62) 장관이 오롯이 견뎌야 할 무게다.
이 장관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명박 정부 마지막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해 11월 7일 다시 교육부 장관이 되기까지 글로벌 교육재정위원회 위원,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을 맡는 등 교육계에 머물며 현안을 연구했다. 박순애 전 장관이 개인 신상 문제와 정책 혼선으로 논란을 빚은 끝에 갑작스레 사퇴했음에도 이 장관이 큰 부침 없이 자리를 메울 수 있었던 까닭이다.
4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이 장관은 “지금이 이명박 정부 때보다 여러 사회적 여건이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 중책을 수행하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전 세계가 교육 체질을 바꾸고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 상황에 ‘교육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특히 교육개혁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대학 개혁’을 강조했다. 인재 양성은 물론 나아가 지역 생존 및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이를 위해서 “중앙만 바라보던 과거에서 벗어나 대학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가 과감한 규제 완화로 지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육 문제는 복합적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는 특성이 있다. 민간과 협력·소통을 통해 다각적·창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 난제에 대한 부처·기관의 적극적 협업 체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김 수석은 “2023년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기존 방식으론 지역 소멸 불가피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은 무엇을 목표로 하나.“현재 한국 사회는 디지털 대전환, 불평등 격차 심화, 인구 감소 및 지역소멸 등 다양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또 교육이 이를 해결하는 실마리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에 ‘모두를 위한 맞춤형 교육’이라는 기조 아래 국가책임 교육·돌봄, 디지털 교육 혁신, 대학 개혁 3개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특히 대학 개혁을 통해 대학이 지역을 되살리고,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대학 개혁의 핵심 키워드는 지방대 위기 극복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생기는 정원 미달 사태가 지방대에 집중되면서 벌어지는 문제다. 이에 대해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2021년 3월 대학 신입생 등록률 기준 전체 정원 가운데 6.7%(3만1143명)이 미충원됐다. 그 가운데 비수도권 대학 미충원이 72%(2만2447명)이다. 미충원율 50% 이상 대학은 2020년 12개교에서 2021년 27개교로 1년 사이에만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지방대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방대 입학 유인을 키울 방안은 무엇인가.
“지방대 기피 현상은 지역 소멸로 이어지는 문제다. 정확히 3가지로 나뉜다. 입학 시 수도권 대학으로 향하는 학생이 갈수록 많아진다. 또 지방대에 입학하더라도 편입을 통해 수도권 대학으로 향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수도권에서 직장을 구한다. 결국 지역의 젊은이가 점점 줄어들어 지역 소멸로 이어진다. 지방대가 지역의 젊은 인재를 정주시키고 지역에 묶어두는 저수지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선 인재 양성-취·창업-지역정주로 이어지는 지역혁신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역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체는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역발전을 위한 혁신사업을 주도적으로 기획·설계할 수 있도록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구축하려 한다. 또 2026년까지 글로컬(Glocal) 대학 30개를 지정해 지역 명문대학으로 만들 예정이다. 즉 RISE 생태계 속에서 지자체와 함께 지역발전과 대학 혁신을 이끄는 우수 선도대학이 글로컬 대학이라고 보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 개혁을 해나갈 계획인가.
“지역의 젊은 인재가 지역에서 공부하고 창업·취업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려면 결국은 지역과 지방대가 동반 성장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방대는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었다. 교육부가 중앙집권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서 벌어진 문제다. 지방대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부응해 재정 지원을 받는 데만 힘쓰고, 그러다 보니 지역 수요와는 동떨어진 사업과 교육이 이뤄지곤 했다.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정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학생·학부모·지역 등 수요자 관점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개혁 과정에서 일부 대학은 폐교될 텐데, 출구전략이 있나.
“구조개선 지원사업을 통해 재정위기 예상 대학에 경영진단·컨설팅 등 지원을 하겠지만 회생 불가능 대학 발생이 불가피한 것도 현실이다. 학생 수학(受學)권 침해나 교직원 임금체불이 발생하기 전 선제적 구조개선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태규(국민의힘), 강득구(민주당), 정경희(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사립대학구조개선법에 관심이 간다. 해당 법안은 폐교 시 잔여 재산을 공익법인 혹은 사회복지법인 출연에 사용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정경희 의원의 법안은 폐교 시 잔여 재산의 국고귀속분 30%를 해산장려금으로 지원하도록 했는데, 학교법인 구조개선에 상당한 유인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해산장려금 지급 여부와 범위는 대학 구성원 등 이해관계자 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혁신은 융합에서 나온다
지난해 12월 12일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대전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2023학년도 정시 대전·충청지역 대학입학정보박람회’ 현장이 한산하다. 학령인구 감소 및 지방대 기피 현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뉴스1]
국내 대학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발전이 지지부진하다. 타임스고등교육이 공개한 순위엔 국내 대학 37개교가 자리했다. 이 가운데 전년 대비 순위가 상승한 대학은 연세대, KAIST, 포스텍, UNIST뿐이다. 1000위 이상까지 공개된 2020년 발표 때엔 35개 교가 순위에 올랐다. 이듬해 발표 땐 1200위 이상으로 공개 범위가 확대됐지만 순위권 대학은 36개 교로 한 곳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경우 역시 ‘1500위 이상’으로 넓어졌음에도 1개 교밖에 늘지 않았다. 세계 10위권에 위치한 한국의 국가 위상을 고려하면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대학이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 기준 한국 대학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뭘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벽을 허물자’고 말하고 싶다. 요즘 시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혁신이 일어난다. 대학은 이를 가속화하는 장소가 돼야 하지만 수많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전공 간 벽이다. 혁신은 융합에서 나온다. 전공 간 벽이 있으면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사실 교수 처지에선 벽 속에 갇혀 있으면 경쟁할 필요도 없고 편하다. 그렇다 보니 한국 대학은 너무나 세세히 전공을 갈라놓고 학생은 그에 맞춰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학 졸업자의 선택 직업과 전공 간 불일치 비율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높은 상황이다. 학생이 대학에 입학할 때가 아니라 1~2년간 수업을 들은 후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교수진도 타 전공 교수와 협력해 연구 및 지도를 함으로써 전공 간 벽을 허물면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정부 방침도 중요하다. 대학이 교육·연구를 혁신하는 데 걸림돌이 없도록 과감히 규제를 없애고, 충분한 재정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근래 대학가에선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8일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년간(2019~2021)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과 17곳이 통폐합된 반면 공학 계열 학과는 23곳이 새로 생겼다. 정부의 인재 양성 계획이 반도체 등 공학계열에 집중된 결과로 분석된다.
국가 지원 및 비전이 이공계열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학문의 균형 발전은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인문학이 경시돼서는 결코 안 된다. 인문학 사업에 대한 체계적·지속적 지원으로 인문학 저변 확대 및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인문·사회 분야 기초 학문 지원을 위해 총 4172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연구 분야 예산을 전년 대비 542억 원 늘렸고, 학문 후속 세대가 안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박사과정생 연구장려금을 신설했다. 대학 내 인문학 연구소 집중 육성 및 인문학 성과물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인프라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또 인문·사회와 이공계열 간 융합 교육·연구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인문사회융합인재대학도 새롭게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의 교육 방침은 미래 지식권력·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향후 어떤 지식이 핵심역량으로 여겨지리라 보나.
“‘3L과 4C’다. 3L은 데이터를 읽고 분석해 활용하는 역량(Data Literacy), 컴퓨터 사고력과 공학 원리에 관한 이해력(Technological Literacy), 인문학적 이해와 디자인 역량(Human Literacy)을 말한다. 4C는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을 말한다. 이를 길러내기 위해선 교육 내용·교육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줘야 한다.”
“AI가 교권 강화·교육 격차 완화 불러올 것”
2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골자로 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다. 모두가 똑같이 배우는, 정형화된 교육과정 틀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2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장관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2025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대해 AI 기술을 탑재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러 교육 부문에 AI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AI는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의 열쇠다.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이란 개별 학생의 역량, 학습 속도, 목표를 고려한 교육이다. AI는 데이터 수집·분석에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학생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해 수업에 활용하면 많은 학생을 한꺼번에 교육해야 하는 환경에서도 학생 특성을 고려한 맞춤 수업이 가능하다. 또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학습 상담을 진행할 수 있어 교사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AI 보조교사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학생의 학습 성과를 최대화하는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 학생은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자연스레 소득수준에 따른 교육격차도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낮아진 교권이 문제로 거론되곤 한다. AI가 도입되면 교권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교사의 역할이 달라져 오히려 교권이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AI 보조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교사는 멘토링 수행 등 학습 디자이너로서 더 많은 시간을 학생과의 인간적 교류에 할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교사가 교실 수업 혁신 주체로서 디지털 기술 시대 핵심역량을 갖춘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교육 문제엔 저출생, 지역 소멸 등 사회적 문제가 결부돼 있다. 사회부총리로서 ‘컨트롤타워’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데.
“저출생, 지역 소멸 문제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사항이다. 원인이 복합적이다. 정부 부처끼리는 물론 민간 간 협력과 소통을 통해 다각적으로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부총리는 정책 구심점으로서 사회 난제에 대한 국가 차원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고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처·기관 간 적극적 협업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구성원으로 추가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논의하려 한다. 교육개혁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각적 접근을 통해 진행해 나가겠다.”
교육개혁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각 주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교육개혁 필요성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교육정책 특성상 국민적 관심사가 크고,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장이 만족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관료 중심 상향식 방식에서 벗어나 교사·학생·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이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엔 이들과 함께 과제별 추진 방안을 구체화하고, 시범 운영을 통한 우수 사례를 발굴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장과 수평적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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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열아,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소신껏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