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9년 만의 적자’ 저축은행 정말 괜찮을까

[금융 인사이드] “지급 정지” 허위 문자 하나에 금감원장까지 진화 나서…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5-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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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표 양호하지만 불안감 커져

    • 괜찮다곤 하는데… ‘저축은행 사태’ 기시감

    • 전세 사기 사태에 타격 불가피

    • “규모 작고 리스크에 취약… 긴장감 늦춰선 안 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축은행들은 약 600억 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이후 9년 만의 적자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축은행들은 약 600억 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이후 9년 만의 적자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

    4월 12일 한 허위 문자가 저축은행업계를 놀라게 했다. 문자의 내용은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서 1조 원대 결손이 발생해 지급 정지 예정이니 잔액을 모두 인출하라’였다. 투자정보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급격한 속도로 유포돼 혼선을 초래했다.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은 즉각 경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 조치에 나섰다. 두 곳의 해명에 이어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도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서면서 이 사건은 단순 소동으로 일단락됐다.

    이날 금감원은 설명 자료를 통해 “해당 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건전성 비율은 매우 양호한 수준”이라며 “악성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특정 회사에 대한 허위 사실이 시장을 교란하는 사례가 있다”며 금융권의 악성 루머에 대한 강경 대응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각각 11.40%와 12.51%로 규제비율(자산 1조 원 이상은 8%, 1조 원 미만은 7%)은 물론 권고비율(11%)을 웃돌았다. 유동성 비율도 각각 250.54%와 159.68%로 저축은행 감독 규정에서 정한 규제 비율(100%)을 상회해 튼튼한 재무구조를 입증했다.

    9년 만에 순이익 적자로 돌아서

    다만 주목할 점이 있다. 특정 업체와 관련한 허위 메시지 한 줄에 금감원장까지 나서서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믿지 않을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면 굳이 금융 당국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메시지 자체는 허위였을지 몰라도 최근 시장 흐름에 비춰봤을 때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유럽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으로 금융업계에 불안감이 자라고 있다. 더욱이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연체율 상승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어 저축은행업계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다.

    허위 문자 사건 일주일 후 금감원이 리스크에 취약한 저축은행들에 대한 감사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점도 눈길을 끈다. 금감원은 그간 자산 2조 원 이상 저축은행에 대해서만 2년마다 의무적으로 감사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자산 2조 원 미만인 곳도 리스크 관리가 취약하다고 판단되면 감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는 이유다.

    올해 1분기 저축은행들이 2014년 이후 9년 만에 순이익 적자를 기록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사의 올해 1분기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약 600억 원의 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총자산은 135조1000억 원 수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3조5000억 원(2.5%)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축은행의 실적 악화는 금리인상으로 조달 비용(이자 비용)이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1년 전보다 대손충당금을 700억 원가량을 추가로 쌓으며 비용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은 “저축은행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 강화 등을 위해 상대적으로 고위험 대출을 축소하면서 총자산 등 영업 규모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건전성도 악화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은 모두 5.1%로 잠정 집계됐다. 연체율은 지난해 말(3.41%) 대비 1.69%포인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말(4.04%) 대비 1.06%포인트 올랐다. 저축은행업계 연체율이 5%대로 올라선 건 2016년 말 이후 처음이다.

    12년 전에도 괜찮다고 했지만…

    4월 18일 금융감독원 임원 회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4월 12일 허위문자 사건에 대해 “시장교란 악성 루머는 즉각 조사해 차단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8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뉴스1]

    4월 18일 금융감독원 임원 회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4월 12일 허위문자 사건에 대해 “시장교란 악성 루머는 즉각 조사해 차단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8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뉴스1]

    물론 이만한 정도로 국내 저축은행들이 당장 위기에 빠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과거 연체율 수준을 고려하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과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직후인 2012~2013년에는 20%를 웃돌았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재 저축은행들은 손실 흡수 능력과 유동성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1분기 저축은행업계 BIS비율은 13.6%다. 금융 당국의 권고 비율인 11%보다 높다. 이복현 원장 역시 “일부 지표의 악화에도 저축은행과 관련 특정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시각이 상존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으며 ‘저축은행 사태’로 이어진 사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

    2000년대 후반에도 지금처럼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며 부동산PF 부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2007년 3월 저축은행중앙회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부동산 PF 관련 대손충당금이 현재 5187억 원으로 전년보다 크게 늘었고, 충당금 적립 비율도 45.9%에서 89.1%로 크게 개선돼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이듬해에는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서 저축은행 위기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2008년 9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종창 당시 금감원장은 “저축은행 PF 대출은 주로 사업 초기 토지 매입 자금 대출로 대부분 토지 담보나 시공사 보증이 있고 충당금 적립도 충분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세 사기 사태에 유동성 악화 우려도

    당시 저축은행도, 금감원도 자신만만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된 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터지면서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괜찮을 거라던 저축은행들은 신용등급 줄하향을 당하고 영업정지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저축은행의 경우 취약 차주 비중이 높은 편이라 경기침체로 인한 리스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불거진 전세 사기 사태의 불똥이 저축은행으로 튄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 대책 가운데 하나로 피해 임차인이 직접 경매 유예·정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사기에 연루된 주택 대부분은 빌라다. 이용된 대출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상품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난다. 경매가 유예될 경우 시중은행 등에 비해 자금력이 크지 않은 저축은행의 유동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측은 “전세 사기와 관련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일축하고 있지만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제도적으로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에 그때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저축은행이 금융권 내에서도 규모가 작고 리스크에 취약한 측면도 있는 만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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