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아빠, 민주당은 우리 거예요! 개딸이 개같이 물어뜯을게요”

[강준만의 회색지대]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②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05-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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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딸’에 ‘세계사적 의미’ 부여한 李

    • ‘댓글 정화 작업’ 독려한 李

    • “너 빨갱이지?”와 똑같은 폭력

    • ‘배신자’ 낙인찍힌 채이배

    • ‘영기리보이’ 송영길의 양볼 하트

    • 돈봉투 의혹 이후 이해된 宋의 궤변

    • “혀 짧은 소리 내며 엉겨… 퇴행·미성숙 징표”

    “아 거대 정당이 이렇게 취약한 조직이었단 말인가! 그런 놀라움을 안겨줄 정도로 민주당은 ‘이재명의 정당’이 되기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난 호에서 이런 놀라움을 표하는 말로 글을 끝맺으면서 2022년 4월 들어 민주당에서 벌어질 풍경을 살펴보기로 예고했다. 과연 어떤 풍경이었던가.
    4월 초순 ‘개딸’과 ‘양아들’을 자처하는 이재명 팬덤은 이른바 ‘검찰·언론개혁’에 반대하는 의원 명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에게 항의 전화·팩스와 문자 폭탄을 쏟아붓는 등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팬덤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재명이네 마을’ 등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 올라온 ‘검언(檢言) 정상화 반대 의원 명단’에는 20여 명의 실명이 적시돼 있었다. 이렇게 좌표가 찍힌 의원들은 잇달아 “명백한 오해” “반대는커녕 일관된 찬성이었다”고 공개 입장을 밝히는 등 낯 뜨거운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윤석열 정권 1년을 맞아 "정부의 민생경제대책은 완전히 실패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윤석열 정권 1년을 맞아 "정부의 민생경제대책은 완전히 실패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개딸’ ‘양아들’ 민주당 장악 시도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난센스 같은 일이었다. 민주당 의원 중 ‘검찰·언론개혁’에 반대하는 이가 있다니 말이 되는가.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게 바로 이 명단 공개 캠페인의 ‘강점’이었다. 이른바 ‘반공(反共)의 종교화’가 이뤄졌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너 빨갱이지? 아니라면 증명해봐!”가 가장 무서운 ‘폭력’이었듯, ‘검찰·언론개혁’을 정권의 종교처럼 내세운 문재인 정권에선 “너 ‘검찰·언론개혁’에 반대하지? 아니라면 증명해봐!”가 바로 그런 효과를 내는 ‘폭력’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문재인 정권이 외친 ‘검찰·언론개혁’은 ‘개혁’이라기보다는 ‘검찰·언론의 어용화’였기에 진짜 ‘검찰·언론개혁’을 위해 실천적·합리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배신자로 간주돼 탄압이 가해지지 않았던가.

    이재명의 팬덤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문재인 정권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묘기를 선보인 셈이었다. 민주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모든 의원이 나서서 “‘매카시즘 수법’을 쓰지 말라. 이재명은 즉각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단호히 개딸·양아들과 결별하라!”고 외쳐야 했다. 그러나 나타난 결과는 의원들이 이재명을 두려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인 것처럼 보였다.

    명단에 포함된 우상호는 4월 4일 페이스북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검찰과 언론 개혁에 찬성한다”며 “부정확한 명단으로 의도치 않은 비난을 당하고 있어 우리 당 의원들이 많이 힘들다”고 했다. 김경협은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하는데 오히려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던 이미지 때문에 강경파로 소문이 났다”고 했다. 이광재는 “명백한 오해”라며 “지난 대선 때 검찰공화국으로 회귀할 수 없다고 반복해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문재인의 최측근으로 꼽힌 윤건영도 “검찰개혁에 찬성하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원욱은 다른 의원들 입장 표명이 잇따르자 “내가 알고 있기로는 민주당에 반대하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며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어느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정도의 고민”이라고 했다. 검찰·언론 관련법을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하면 6·1 지방선거 때 역풍이 불 수 있다는 당내 우려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강성 지지자들은 “4월 안에 검·언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보이콧하겠다”며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4월 6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채이배는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논의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민생개혁”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개혁 관련 법안에 대해서도 “2016년 7월 야당이던 민주당이 정부의 방송 장악을 막는 방송개혁법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막아섰다”며 “그런데 2017년 5월 현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당은 이번에 여당이 됐다고 입장을 바꾸어 법안 통과를 막았다”고 했다. 그는 “5년 만에 민주당은 다시 야당이 됐고 다시 (법안을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꿔야 한다”며 “솔직하게 또 내로남불 해야 한다. 언론개혁 바라는 국민에 얼굴 들기 부끄럽다. 반성하고 사죄드린다”라고 했다.

    그러자 ‘재명이네 마을’에는 ‘당의 품위를 훼손하고 당무에 중대한 방해 행위를 했다’는 근거를 들어 “채이배에 대한 징계를 당에 요청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 “민주당에서 나가고 싶은 모양이니 제명시켜야 한다”는 비판 글과 댓글이 수십 개씩 올라왔다. 다른 비상대책위원 이소영도 “우리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명분과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국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일 때에만 실제 사회 변화와 제도 안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반면 이재명 팬덤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는 의원들은 이재명과 개딸이 쓰는 ‘자나체’를 구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청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20~30 개딸들, 냥아들들… 지방선거 출마자들과 다스뵈이다 나갔잔(잖)아. 금요일 본방사수하고 응원하면 좋잔(잖)아” 등의 글을 올리며 그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던 조정식은 트위터에서 개혁 중진을 줄여 스스로를 ‘개중진’ 조정식이라 일컬으면서 “개냥조카들을 환영한다”며 기존 6개월인 권리당원 행사일을 3개월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또 다른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였던 안민석은 페이스북을 통해 “개딸님들과 양아들의 함성과 열정을 보면서 함께 검찰 정상화, 함께 한동훈 지명을 철회시킬 수 있다고 자신을 얻었다. 민주당의 동료 의원들도 그렇다”라면서 “개딸님들 덕분에 민주당은 검찰 정상화를 만장일치 당론으로 정했고 이제는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일깨운 개딸님들 양아들님들 고맙습니다. 윤석열과 싸우려면 저 같은 싸움닭이 필요하다. 저는 투쟁하겠다”고 외쳤다.

    李가 뒤집은 ‘宋 서울시장 후보 공천 배제’

    4월 20일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전 민주당 대표 송영길을 공천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친명계인 그는 4월 9일 ‘재명이네 마을’에 가입해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큰 성원을 받았으며, ‘영길 삼촌’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당시 그는 팬카페 가입 인사 글을 통해 “최고의 지도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국가 지도자”라며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던바, 이재명과 그의 팬덤은 송영길의 탈락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송영길을 지지했던 전 열린민주당 의원 손혜원은 어느 개딸로부터 위로 문자를 받았다며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그는 “개딸님이 보내주신 위로 문자에 눈물이 난다”며 “이렇게 성숙한 마인드를 가진 민주당원이라니.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위로 받아요”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기에 그렇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던 걸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 민형배 의원이 참석해 이재명 대표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민 의원은 1년 전 검찰수사권 축소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4월 26일 복당했다. [뉴시스]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 민형배 의원이 참석해 이재명 대표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민 의원은 1년 전 검찰수사권 축소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4월 26일 복당했다. [뉴시스]

    “손(혜원) 고모.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셨나요. 저는 정치 배운 지 한 달 차밖에 안되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요. 걱정 마세요 의원님. 저희 개딸들 풀네임 이재명의 사냥개딸이에요. 개같이 물어뜯어버릴 겁니다. 민주당 저희 거예요. 절대 못 뺏겨요. 이재명-송영길 저희가 지킵니다. 이재명 고문님이 개딸들한테 손 내밀어줬던 그날부터 평생 충성하기로 약속했어요. 민주당 수박들 몰아내고, 깨끗하게 빨아서 새로 태어나면 돼요. 검·언 정상화 끝내고 이재명 대통령 만들면 됩니다. 저희가 반드시 지켜낼 거예요.”

    같은 날 호남의 제1호 친명계 의원인 민형배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꼼수를 위한 위장 탈당의 냄새가 물씬 풍겼기에 정의당마저 “대국회 민주주의 테러”라고 비판했지만, 이재명 지지자들은 민형배에게 후원금을 보내며 응원의 뜻을 전했다. ‘재명이네 마을’에는 민형배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인증 숏이 속속 올라왔는데, 그를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1004원이나 1만4원을 보냈다. 5만 원, 10만 원을 후원했다는 인증 숏도 게시됐다.

    이들은 후원 인증 숏을 게시한 뒤 “민형배 의원님께 후원했잖아” “민형배 의원님의 용기 있는 선택에 응원을 보냅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신 민형배 의원님” “민형배 의원님 돈쭐 내줍시다” 등의 응원 메시지도 적었다. 민형배 블로그에 응원 댓글을 달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또 일부 회원들은 민형배의 유튜브 채널 구독을 독려하고 나섰다. 팬카페의 한 회원은 “민형배TV 구독자가 이제 1만 명인데, 10만 명까지 가보자. 실버버튼 선물해주자. 우리 민주당원들이 함께한다는 걸 보여주자”고 말했다. 반면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한 무소속 의원 양향자를 향해서는 “후원금 반환을 받아야 한다”고 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18원을 후원하겠다”고 하는 글이 올라왔다.

    4월 21일 민주당은 송영길과 박주민을 서울시장 후보 공천에서 배제(컷오프)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고, 두 사람을 포함한 예비후보 전원이 참여하는 100% 국민경선으로 6·1 지방선거에 나설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는 게 아닐 텐데, 이게 말이 되나?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재명과 이재명 팬덤이 그걸 원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던가 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재명은 공관위가 송영길을 공천에서 배제키로 결정한 직후인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비대위원들에게 장문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재명은 “송 전 대표를 컷오프한 가장 큰 이유가 대선 패배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그 이유가 맞느냐”며 “나는 민주당 누구도 대선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의 주인은 당원이니 당원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며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인 송 전 대표와 박 의원을 배제하면 당원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압박을 가했다나.

    이재명과 팬덤이 만든 ‘계양을 공천’

    송영길의 공천 배제를 결정했던 공관위원장 이원욱은 페이스북에 “(송 전 대표는) 스스로 궁지 모면을 위해 난데없이 이재명 전 후보를 앞세우는 분열과 꼼수의 정치를 즉각 거둬들여라”고 썼다. 하지만 민주당이 ‘분열과 꼼수의 정치’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문제 제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그 어떤 ‘그랜드 플랜’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송영길 공천 배제 번복이 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천 계양을 지역 현역의원인 송영길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사퇴해 공석이 된 계양을 공천을 이재명에게 넘겨줘야 완성되는 그림이었다. 이재명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민주당을 벌벌 떨게 만드는 이재명 팬덤이 나서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5월 1일 민주당 권리당원게시판은 이재명을 인천 계양을 지역 보궐선거에 공천하라는 당원들의 글로 ‘도배’됐다. 당원들은 “이재명을 반드시 공천하기 바란다” “이재명을 계양에 심어야 한다” “당원이 원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귀 기울여 듣는 게 순리”라고 했는데, 이런 글이 1분마다 여러 개씩 올라올 정도였다. 또 당원들은 민주당 지도부가 이재명 공천에 부정적인 것 아니냐며 따지기도 했다. 한 당원은 “이재명이 두려우냐”며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면 그동안 편하게 해먹었던 다선 중진들 자리 위협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냐, 너무 속 보인다”고 했다.

    당원들의 이런 요구에 대해 원내대표 박홍근은 5월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수도권 선거가 어려워지면서, 전체 지방선거 판세나 보궐선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 전 지사가) 직접 뛰면서 견인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분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송영길은 뉴시스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마음대로 지금 내로남불 내각을, 윤로남불 내각을 만들어 밀어붙이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일방 이전하고 후보들 데리고 선거운동 하듯 지방을 돈다”며 “적어도 이런 때 1600만 표를 얻은 이재명을, 0.73%포인트로 진 이재명에게 뒷방에 갇히라는 얘기는 이적행위이고 이적논리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적행위’니 ‘이적논리’니 하는 건 정당한 의견 표명을 사전에 압살하려는 궤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송영길과 이재명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무리한 궤변까지 동원됐던 걸까. 이런 의문은 1년 후 민주당을 강타할 ‘5·2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강하게 되살아난다.(송영길은 2021년 5·2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이후 이재명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결국 민주당이 5월 7일 이재명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전략공천하자 이재명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의 모든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며 이를 수락했다. 이재명은 “당이 불러서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70여 일 후에 “이재명의 셀프 공천”이었음이 드러난다. 당시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지현은 나중에(7월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은) 자신을 공천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며 “이 의원이 본인을 (인천 계양을 지역으로) ‘콜(Call)’해달라고 직접 전화해 압박을 한 부분도 있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행태라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했으나 출입을 거부당해 조사가 무산된 뒤 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했으나 출입을 거부당해 조사가 무산된 뒤 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5월 10일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지만, 이재명 지지자들이 “간발의 차로 패배해서인지 더욱더 분하고 슬픈 마음에 잠들기가 어렵다”며 고통을 토로한 ‘간발 효과’의 위협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였다. 이재명 지지자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식 날 하루에만 페이스북에 윤석열을 비판하는 글을 13개나 써 올리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재명은 5월 13일 밤 공개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검수완박’ 정국 때 문자와 팩스, 후원금을 보낸 ‘개딸’에게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며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되고, 분출된 사례다. 위대한 새로운 정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 14일 이재명은 선거 사무소 개소식과 함께 진행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서포터즈와의 미팅에서 “우리가 큰 대세를 만들고 있다, 얼마나 위대한 일이냐”며 “소위 ‘개딸’ ‘양아들’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긴 한데 저는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행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운동 등으로 전과를 얻은 전력을 거론하며 “거대한 벽들을 넘어왔다”며 “지금은 참 많은 우리 개딸, 양아들,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의 행동·실천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실천하잔 말인가? 이재명의 답은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언론보도를 거론하며 “(전두환 정권 당시 진실을 알리려다) 유인물 50장, 100장을 긁어가지고 감옥에서 1년씩 산 사람도 있었다”며 “평소에 SNS 관리 잘하고 친구하고 사이좋게 관계를 잘 맺어놓으면, 유인물 1장 보내는 건 일도 아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좋은 뉴스(라며) 클릭하면 수백, 수천, 수만 명한테 동시에 가는데 이게 징역 1년을 감수할 그 행동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일”이라며 “사람들이 기사 제목하고 댓글밖에 안 보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지지자들이 포털사이트 댓글 정화 작업을 하지 않느냐”면서 “감동적인 마음으로 보고 있다. 역사는 다수가 만드는 것이 아닌 소수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은 “시간 날 때마다 댓글을 하나씩 달고 그게 귀찮으면 공감 한 번씩만 눌러도 댓글 정화 작업이 된다. 그게 세상을 바꾼다”며 “촛불 혁명에선 단기간, 결정적 시기에 집단행동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재명은 “댓글이라도 우리가 선점해야지”라며 “최근에도 좀 밀리고 있는데 저쪽(국민의힘)도 이제 열심히 조직하는 것 같다. 그걸 우리가 이겨내는 것도 민중의 힘, 집단의 힘일 수 있다”며 댓글 정화 작업을 독려했다.

    황교익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선은 간발의 차로 졌다”며 “민주당은 패배 원인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난 사안을 끌고 와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 자아비판도 정도껏 하고 자학 모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민주당은 개딸들에게서 배우라. 대선에서 지고 단 며칠 만에 다시 승리의 길로 가자며 길거리로 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정치적 주장을 활기차게 외치는 개딸들에게서 배우라.”

    이재명이 본격적인 팬덤정치에 발동을 거는 것에 대해 진중권은 5월 15일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망조가 들었네”라며 “당을 살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려고 하는 듯”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6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선 이재명이 ‘개딸’ ‘양아들’ 현상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한 데 대해 “아직 민주당이 정신 못 차렸다는 얘기”라며 “과대망상도 아니고 거기서 무슨 세계사적 의미까지 보는지, 이게 그 유명한 팬덤정치 아니냐”고 비판했다.

    ‘팬덤정치’는 민주당 사유화 시도?

    지난해 5월 16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상상마당 앞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5월 16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상상마당 앞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진중권은 “개딸이니 양아들이니 강성 지지자들 모아놓고 캠페인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중도층들이 다 등을 돌리게 된다”고 했다. 그는 “왜 민주당이 저렇게 됐나. 20년 집권 뻥뻥 떠들다가 저렇게 된 것은 팬덤정치에 발목이 잡힌 상태이기 때문”이라며 “팬덤정치로 망했는데 거기에서 세계사적 의미까지 부여해가며 팬덤정치를 계속한다는 것은 제가 보기엔 대단히 해괴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재명은 자신의 ‘팬덤 관리술’의 탁월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는 기껏해야 ‘양념’ 운운하던 문재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팬덤정치에 대한 이해와 열정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역대 대선 후보급 정치인들 가운데 지지자들에게 직접 ‘댓글 선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댓글 정화 작업’을 하라고 독려한 이가 이재명 이외에 누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새벽 1시 넘어서 자신의 팬카페에 감사의 글을 올리는 정치인은 얼마나 있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이재명은 5월 16일 새벽 1시 24분 자신의 공식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개가좍들 덕에… 이장’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인천에서 가는 곳마다 함께해 주시는 지지자 동지 개가좍 여러분 덕에, 이 험난한 길이 힘들거나 외롭지 않아요”라고 전했다. 그는 또 “아마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정치인일 것”이라며 “함께해 주시는 덕분에, 인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이 체감된다. 언제나 우리 두 손 꼭 잡고 함께 가요”라고 덧붙였다.

    개가좍? 이재명 지지자들은 서로를 두고 ‘가족’과 같다며 가족을 ‘가좍’으로 바꾼 표현을 활용, ‘개가좍’이라고 지칭한 걸 이재명이 가져다 쓴 것이었다. 이 게시물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지자들은 “나보다 나이 많은 내 새끼. 우리는 덕분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지지자” “아빠 많이 걸으시니까 발 조물조물 지압해주고 자라잔(잖)아” “잼파파 사랑합니다” “나 조회수 5일 때 보고 새로고침 하니까 600” “잼파파 때문에 요새 저희가 너무 살맛나요. 유튜브 라이브 따라다니느라 바쁘잔아. 사랑해요” “잼파파 사랑해요. 끝까지 함께 갈게요. 힘내세요” 등의 열띤 반응을 보였다.

    5월 16일 저녁 민주당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이재명은 서울시장 후보 송영길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일대에서 합동 유세를 했다. 이날 유세에는 개딸들이 몰려들어 두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며 호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재명이 “여러분, 잔인한 현실이 있다. 제가 내년이면 환갑이다”라고 말하자, 개딸들은 “괜찮아” “아기다” “아기 같다”라고 외쳤다.

    이재명이 “여러분, 영기리보이(송영길의 별명) 귀엽지 않습니까”라며 묻자 지지자들은 “귀여워!!”를 연신 외쳤고 송영길은 지지자들을 향해 ‘양볼 하트’를 만드는 등 팬 서비스도 했다. 한 20대 여성 지지자는 “정치는 귀여운 사람이 해야지”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이런 풍경을 전한 어느 기사의 해설이 재미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귀엽다’라는 단어는 용례 상 자기보다 윗사람에게는 쓸 수 없는데, 송 후보는 1963년생이고 이 후보는 1964년생이다.”

    아무리 봐도 이재명과 개딸의 관계는 좀 이상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현 논설실장) 정용관이 잘 지적했듯이, “특정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서로를 아빠와 딸로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누구누구에 대한 ‘사모’ 차원을 넘어 혈연 수준에 버금가는 감정적 유대로 얽히면 이는 무서운 정치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작가 오진영은 이재명이 개딸에게 “울 개딸님들이 외롭지 않게 해줘서 누명 벗겨줘서 너무너무 고맙잔아. 눈물 났잔아…”라고 응수하는 식의 소통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는 “생판 남들끼리 딸이니 아빠니 하는 친족 용어로 부르고 혀 짧은 소리를 내면서 엉기는 건 퇴행과 미성숙의 징표다”라며 “아빠가 하시는 일은 닥치고 따르고, 아빠를 건드리는 자 용서하지 않는다고, 집단의 위세를 부리면 조폭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자기반성 없이 달려가는 민주당

    참으로 놀랍고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팬덤정치’로 망한 민주당이 왜 이전보다 더 공격적인 ‘팬덤정치’에 집착한 걸까. 우문(愚問)이다. 민주당은 민주당이 ‘팬덤정치’ 때문에 망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년, 50년, 100년 집권을 외치며 자신만만했던 민주당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를 그들은 어떻게 설명했던가.

    놀라지 마시라. 이렇다 할 설명 자체가 없었다. 애써 찾자면 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윤석열 악마화’가 설명이라면 설명이었다. 윤석열이 악마였기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 그냥 웃어넘기는 게 좋겠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민주당의 윤석열 비난을 종합해보면, 윤석열은 영악한 악마이기는커녕 무능하고 무식하고 술에 취한 무데뽀 건달 비슷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민주당의 ‘팬덤정치’ 집착은 민주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민주당을 사유화하려는 목적으로 팬덤을 공격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었다.

    * ‘신동아’ 7월호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③으로 이어집니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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