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였던 볼살, 저절로 다이어트
‘나의 아저씨’ 덕에 지안(至安)해졌다
10대부터 쓴 일기가 슬럼프 치료제
가수·배우 이중생활은 삶의 윤활유
하루하루 주어진 일 다 마치는 게 목표
아이유는 “프로 의식도, 직업윤리도 중요하지만 숨이 찰 정도로 자기 스스로를 직업인으로만 몰아붙여선 안 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EDAM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를 스물여덟 살 때부터 3년에 걸쳐 찍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러 번 촬영이 중단됐거든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처음 촬영할 때보다 볼살이 엄청 빠졌더라고요. 어릴 때는 볼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볼을 좀 홀쭉하게 만들려고 다이어트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소용없던 얼굴 살이 서른 살에 가까워지면서 쏙 빠졌어요(웃음).”
아이유는 현재 그야말로 ‘열일’하고 있다. 군에서 막 제대한 박보검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촬영 중이고, 앨범 작업과 영화 홍보를 병행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도 현재진행형이다. 남자친구는 네 살 연상인 모델 출신 배우 이종석. 두 사람은 지난해 말 연인 사이로 발전해 풋풋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어린이날을 맞아 선행도 나란히 했다.
궁금한 게 많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난 ‘드림’ 이야기부터 꺼냈다. ‘드림’은 ‘극한직업’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다. 대한민국이 처음 출전한 2010년 홈리스 월드컵 실화에 유쾌한 스토리텔링과 따뜻한 시선을 더해 만든 영화다. 개념 없는 전직 축구선수 홍대(박서준)와 열정 없는 PD 소민(아이유)이 집 없는 오합지졸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드림’ 찍으며 밝아져
이병헌 감독의 작품은 대사량이 많고 템포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금방 적응했나.“초반에는 힘들었다. 다른 분들은 예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터라 합이 착착 맞았다. 나만 뒤처진 느낌이 들어 부지런히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인데 ‘드림’은 예외다. 최단 기간 선배들과 친해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내 노력과 별개로 선배들이 마음을 열고 대해준 덕분이다. 쉴 때 모여서 게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이가 돈독해졌다.”
게임에 재능이 있던가.
“원래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다. 넘치는 승부욕을 들킨 김에 열심히 임했다. 그 덕에 커피를 한 번도 안 샀다. 벌칙으로 커피를 가장 많이 산 배우는 허준석 선배님이다.”
아이유는 2018년 ‘페르소나’의 주연을 맡으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건 ‘드림’이 두 번째다. 개봉 시기는 ‘브로커’가 2022년으로 더 빠르지만, 촬영은 ‘드림’이 먼저 시작했다. 두 작품은 촬영장 분위기가 극과 극으로 달랐다고 한다.
“‘드림’ 현장은 영화 속 분위기처럼 시끌벅적했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브로커’ 촬영장은 도란도란 차분했다. 감독의 성향도 판이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우가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풀어주는 스타일이다. 이병헌 감독은 머릿속에 청사진이 빽빽하게 있다. 모든 것이 감독의 계획대로 이뤄지는 현장이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오케이가 빨리 난다.”
어쩌다 ‘드림’에 출연하게 됐나.
“4년 전 드라마에서 어둡고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연달아 할 때 ‘드림’ 시나리오를 받았다. 다음엔 사연 없는 역할을 해야지 했는데 딱 그런 작품이더라. ‘드림’의 이소민은 진짜 사연이 없다. 영화에서도 전사가 나오지 않는다. 소민을 연기하면서 내 성격이 단순하고 밝아졌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인 걸 ‘드림’을 촬영하며 깨달았다.”
소민과 닮은 점이 있나.
“내 얼굴에 침 뱉는 걸 수도 있지만 소민이랑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소민이처럼 욱할 때도 있고 10대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밖에서의 얼굴과 집에서의 얼굴이 같지만은 않다. 그런 닮은 점 덕분에 캐릭터에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나와 다른 점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소민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 적이 없다. 나처럼 승부욕도 있고, 열정도 있고, 상처도 받고, 리더십도 있는 사람이다.”
소민처럼 실제로 열정이 수그러든 시기가 있나.
“슬럼프를 겪은 적도 있고, 번아웃(Burn out) 된 적도 간간이 있다. 다만 그 기간이 길어지게 두질 못한다. 일만큼 내 몸에 피가 돌게 하는 게 없어 결국은 다시 일을 찾는다. 일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도 금세 깨닫는다.”
어떤 슬럼프를 겪었나.
“20대 초반에 무대가 갑자기 너무 무섭게 느껴지고 무대에만 오르면 마음이 불안한 시기가 잠깐 있었다. ‘드림’을 찍기 시작한 스물여덟 살 때도 약간의 무력감 같은 걸 느꼈다.”
영화 ‘드림’의 한 장면. 아이유는 자칭 ‘열정리스 PD’ 소민 역으로 열연을 펼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일기 읽기의 힘
최근엔 어떤가.“요새는 슬럼프와 거리가 먼 상황이다. 할 일이 많아 슬럼프에 빠질 겨를이 없고, 세포 하나하나가 일에 맞춰 체계화된 느낌이 든다. 컨디션 관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꽤 잘되고 있다.”
슬럼프를 극복한 당신 나름의 비법은 뭔가.
“일기가 큰 도움이 됐다. 슬럼프에 빠진 것 같으면 과거에 썼던 일기를 들춰보면서 ‘이건 이미 내가 무찔렀던 감정이야’ 하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이봐, 이봐. 이때 더 힘들었네. 이때 더 상황이 안 좋았는데 바로 좋아졌네. 곧 좋아질 거야’ 하고 내가 극복해낸 경험을 부적처럼 믿는다.”
일기를 자주 뒤져보나.
“연습생 시절부터 쓴 일기를 다 모아놔서 습관적으로 자주 뒤져본다. 일기를 보면서 가사로 쓸 만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스스로 마음을 단련해야 할 때도 ‘이땐 이랬었지’ 하면서 도움을 받는다.”
힘들 때 마음을 다잡게 해준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
“20대 때까지는 항상 ‘나는 행운아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뭐가 됐든 다 행운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겼다. 요즘은 특별한 좌우명을 갖기보다 ‘오늘 하루 주어진 일을 다 못 하면 너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일기에 ‘드림’에 대해선 뭐라고 썼나.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날 일기에 ‘내가 걱정한 것보다 스스로 마음에 들게 잘 담긴 것 같다’고 썼다. 감독님의 빼곡한 계획이 다 그대로 담겼더라. 감독님 말대로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 초반에 감독님이 정해준 톤이 있다. 그 기준을 계속 염두에 두다 보니 더 까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진짜 잘 까불고 싶다.”
음악 할 땐 완벽주의
박서준 씨와 연기 호흡은 어땠나.“서준 씨랑은 나중에 또 작업해보고 싶다. 그러면 내 호흡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서준 씨는 센스가 정말 뛰어난 배우다. 나보다 대사 분량이 훨씬 많고 실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소화하더라. 그 센스와 순발력과 재치에 매번 감탄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도 서준 씨가 출연한 작품 중에 내가 참 좋아한 것이 많다. 앞으로 박서준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꼭 찾아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케미가 좋았다.”
두 사람이 붙는 신이 후반부로 갈수록 줄어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이 많더라. 다음에 함께할 기회가 온다면 어떤 관계로 만나고 싶나.
“이번 작품에서 둘이 티격태격하는 티키타카 때 느낌이 정말 재미있었다. 다음에 만나서도 또 싸우고 싶다. 말로 치고받을 때 서로 얄미워하고 분해하는 포인트의 리액션이 특히 잘 맞았다. 이번에는 그런 분량이 많지는 않으니 다음에는 많이 붙고 많이 다투는 역할로 함께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당신의 ‘드림’은 뭔가.
“요즘은 특별한 목표를 두지 않는다. 하루하루 주어진 스케줄을 마치는 데 집중한다. 현재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데 하루에 예정된 신(scene)을 다 끝내기가 쉽지 않다. 이걸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성취가 골(goal)인 것 같다. 영화 개봉을 오래 기다린 만큼 홍보 활동도 잘하고 싶다.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주어진 일과를 또박또박 해내는 게 매일의 목표다.”
아이유는 2008년 가수로 데뷔해 여러 히트곡을 냈고 배우로서도 화려한 이력을 쌓고 있다. 그가 연기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를 첫손에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이 작품을 보며 울었다는 중년 남자가 많다. ‘브로커’ 감독도 이 드라마를 인상 깊게 보고 아이유를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의 아저씨’를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하자 아이유는 “나를 ‘지안’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극 중 이름이 지안이다. 한자로 이를 지(至)에 편안할 안(安) 자를 쓴다. 그 작품을 찍을 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작품 때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고 감정의 요동이 많던 시기였다. 근데 지안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힘들 때 같이 힘들어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과정도 함께 느꼈다. ‘나의 아저씨’를 보내면서 모든 힘듦이 같이 떠나갔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는 생활이 힘들진 않나.
“힘든 점은 별로 없다. 가수 활동을 할 때는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스태프들이 주로 내게 질문을 한다. 연기 현장에 있을 때는 내가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대답을 생각하는 입장과 질문을 하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두 가지 활동을 함께하다 보니 상호작용의 시너지도 있다.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는 게 삶의 윤활유가 되는 느낌이다.”
앨범 프로듀싱을 할 때 이병헌 감독 같은 스타일인가.
“그런 것 같다(웃음). 계획을 많이 세우고 대화를 나누면서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쪼는 편이랄까. 음악을 할 때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진다. 결과물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완벽하고자 끝까지 고민을 많이 한다.”
[EDAM엔터테인먼트]
계획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지난해 오랜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을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완벽을 기하기로 유명하다.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 공연 때마다 부담감이 적지 않을 것 같다.“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크지 않은 부담감은 즐기는 편이다. 어느 정도 부담이 있을 때 능률이 더 오른다. 마음이 마냥 편하고 제약이 없는 상황보다 데드라인이 있을 때 결과물이 빨리 나온다.”
아스트로 멤버 문빈 씨가 세상을 떠나 마음이 편치 않다고 들었다. 10년 넘게 가수 생활을 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동료를 많이 봐왔고, 스스로도 힘든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돌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10대 때부터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들이 어떤 부분에 힘들어하고 마음을 다쳐 움츠러드는지 직접 봐왔다. 나 또한 그런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대중의 눈에 연예인은 항상 무대 위 누구, 작품 속 누구로 비친다. 그래서 일상과 일을 분리하기가 유독 어려운 직업이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가수나 배우로 사는 게 아닌데 남의 시선을 달고 살다 보니 매 순간 일하는 것 같은 감정을 안고 산다. 일과 일상의 분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을 내려놓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공간이 있어야 한다. 특히 10대부터 활동하는 아이돌 친구들에겐 자기만의 공간이 더욱 더 절실하다. 일상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평소 일과 일상을 잘 분리하는 편인가.
“어릴 때부터 분리가 잘되는 편이었다.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게 도움이 됐다. 아프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멘털이 약해진다. 아플 때 아프다고 얘기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얘기하는 걸 다들 잘했으면 좋겠다. 프로 의식도, 직업윤리도 중요하지만 숨이 찰 정도로 자기 스스로를 직업인으로만 몰아붙여선 안 된다. 연예인은 신이 아니다. 사람이기에 그때그때 감정을 느끼면서, 표현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난해 안식년을 보내고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몸 상태는 안녕한가.
“지금은 영화 홍보를 하면서 드라마 촬영과 앨범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서 한순간도 쉴 새가 없다. 그런데도 세포 하나하나가 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바쁠 때 몸이 덜 아프다. 몸이 지금 아프면 안 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 같다(웃음).”
‘브로커’로 칸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연기에 대해 큰 목표를 두기보다 진지하게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물론이다. 30대를 맞아 특별히 계획한 게 없다. 지금처럼 이렇게 만나지는 대로 하루하루 만나면서 얻는 게 정말 많다. 20대 내내 못 보고 지나친 게 많겠구나 싶다. 지금은 내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둔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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