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86세대 선배들 험지 출마하시라… 아니면 ‘선수 교체’ 당한다

[Special Report | 민주당을 난타하라] ‘후배 외면한 선배’ 민주당 586에 드리는 제안

  • 성치훈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입력2023-06-01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초선 5적’ 사건이 黨에 남긴 유산

    • 주류와 다른 생각, 내부총질 규정

    • 메신저로서 ‘신뢰’ 상실한 김의겸

    • 사과 없이 이뤄진 민형배 복당

    • ‘본 헤드 플레이’ 돈 봉투 의혹 대응

    2000년 3월 26일 당시 서울 여의도 새천년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386세대를 위한 후원회’에서 서영훈 당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임종석(왼쪽에서 두 번째), 이인영(오른쪽에서 세 번째), 우상호(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386세대 후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만8600원을 모금함에 넣고 있다. 동아DB]

    2000년 3월 26일 당시 서울 여의도 새천년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386세대를 위한 후원회’에서 서영훈 당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임종석(왼쪽에서 두 번째), 이인영(오른쪽에서 세 번째), 우상호(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386세대 후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만8600원을 모금함에 넣고 있다. 동아DB]

    벚꽃이 필 때쯤 유행이 돌아오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처럼 정치권에도 때 되면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586(50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용퇴론’도 그 흔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 논쟁은 여러 번 등장했지만 늘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되다 사그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586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설 다음 세대의 부재 때문일 테지만 논쟁은 다시 후배 그룹을 키워내지 못한 586세대의 책임론으로 흘러갔다. 586세대에 대해서만 유독 비판이 끊이지 않던 이유는 그만큼 그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성과를 인정받아 정치권에 등장한 그들은 20년 넘는 동안 한국 정치의 주전선수로 뛰어왔다. 586에게는 김대중·김영삼이라는 정치인에게 발탁돼 후보선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주전선수라는 꽃길만 걷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뒤따랐다. 내가 만난 586 선배들은 자신들도 후보선수 생활을 하면서 ‘제3의 길’과 같은 세력화를 위해 노력했고, 제도권에 들어온 이후에도 열린우리당 창당 등의 모험을 감수하는 등 자갈밭을 일궈왔다고 주장하곤 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586이 후배 세대를 키워내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세력화를 하지 못한 후배 세대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해왔다. 세계 역사에서 나타나듯 어떠한 권력도 스스로 자리를 비켜주지는 않았다. 세력화에 실패하고 그들과 경쟁할 힘을 길러내지 못하면서 유권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다음 세대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건으로 인해 생각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21대 국회 초반,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로 정국이 시끄럽던 시기의 일이다. 민주당의 젊은 초선의원 5명이 소신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초선 5적’으로 몰려 온갖 비판을 받았다. 정치 초년생들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비판이 쏟아졌지만 단 한 명의 586도 함께 화살을 맞아주거나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한 마디 건네주지 않았다. 8년 전 자신들의 하방을 주장하는 후배에게 “우리 당을 위한 최선의 길인지 함께 더 생각해보자”고 했던 이인영 의원도 그저 침묵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 이후 586은 ‘후배 세대를 키워내지 못한 선배들’이 아닌 ‘후배 세대를 외면한 선배들’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단순히 정치 신인들의 신고식으로 봐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그 이후로 민주당에선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주류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곧 내부총질로 규정하고 같은 정당 안에서도 다른 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 혐오의 단어를 쏟아내는 등 ‘다채로움’을 허용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사라진 정당이 돼가기 시작했다.



    세 번의 헛스윙

    586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당대표, 대통령비서실장, 장관 등을 경험했고 더 많은 586이 원내에 진입했다. 그들이 늘 이야기하던 ‘우리도 아직 당 기득권 세력과 경쟁 중’이라는 이야기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당의 간판선수가 된 이후 잇달아 헛스윙을 하며 586 정치에 대한 물음표를 좀처럼 느낌표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헛스윙, 김의겸 의원의 ‘반성을 모르는 정치’는 민주당의 신뢰감을 떨어뜨렸다. 물론 김 의원이 추구하는 ‘의혹 제기’ 정치는 국민의 ‘알 권리 해소 차원’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의혹 제기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의혹 제기가 무위로 돌아갔을 때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당의 자존심과 신뢰감을 지킬 수 있다. 김 의원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의혹 제기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을 때 단 한 번도 반성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 당의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메신저로서의 ‘신뢰’를 상실했다. 그가 언론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을 통해 586에게 던졌던 “진보를 외치고 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진정 자신의 문제로 여길 만한 구호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부메랑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고민해 보시길 바란다.

    두 번째 헛스윙은 민형배 의원의 복당 과정에서 나타났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법무부와 검찰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제동을 거는 타당한 판결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이뤄진 민 의원의 탈당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민 의원의 복당 과정에서 필요했던 당 차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유감 표명을 끝내 하지 않았다. 민 의원은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상황이었기에 빨간불이지만 건넌 것이라고 포장했지만, 검수완박 법안 통과가 미뤄지는 것이 대한민국이 교통사고를 당할 상황이라는 주장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586이 검수완박 법안을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에 추돌사고를 낸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세 번째 헛스윙은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대한 대응이다. 물론 이 건은 아직 수사 중이며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다. 하지만 그 대응 과정만으로도 586 정치의 한계가 여실히 보인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그들의 발언은 본질과 동떨어져 있을뿐더러 국민의 눈높이와도 괴리돼 있다. “그 정도 금액은 밥값”이라는 발언은 그들의 상황 인식과 공감 능력이 언제부터 시대와 동떨어져 있던 것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정치라는 과목은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이렇게 본 헤드(bone head) 플레이를 해도 상대팀이 3류, 4류 플레이를 하면 지지율 1등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1등 자리를 놓친 지금, 바로 1등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도 좋으니 1류 정치를 좀 추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인영과 임종석의 ‘별의 순간’

    사실 586이 세 번의 헛스윙으로 삼진 아웃 판정을 당한 뒤 타석에 계속 서 있더라도 그들을 밀어내고 타석에 설 다른 세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한 번 더 타석에 선다 해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지 도무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586 대표 주자인 이인영 의원의 별의 순간은 초선 출신의 원외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2010년 전당대회에 나와 빅3로 불리던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와 맞대결하던 순간이었다. 586 중 가장 먼저 원내에 진입한 임종석 전 의원의 별의 순간은 불출마와 충격적인 경선 패배 이후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활약했을 때다. 586 스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더 많은 타석이 아니라 새로운 포지션임을 증명했을지도 모른다.

    신인 선수로만 이뤄진 팀보다는 ‘신구조화’가 이뤄진 팀이 좋은 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후배가 586 선배들에게 마지막 애정을 담아 말씀드린다. 중심 타선은 후배 세대에게 물려주시고 궂은일을 하는 포지션을 맡아주시길 바란다. 맞다. 지금 나는 8년 전 한 청년 정치인이 말한 험지 출마를 다시 한번 제안드리는 것이다. ‘586 용단론’을 보여주시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선수교체’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 세대는 힘이 부족하지만 어차피 ‘선수교체’ 권한은 선수가 아닌 감독인 국민에게 있는 법이니깐.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