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도움 받아 성공한 수단 교민 구출
한국 안보·경제에 아랍 정세 영향 커
미국, 중국, 러시아도 아랍에 구애 중
利害로 설득하기보다 理解해야 한-중동 협업 문 열린다
마영삼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사무총장. [이세형 기자]
마영삼(66)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사무총장을 만난 건 4월 28일. 수단에서 내전에 휩쓸린 한국 교민 28명을 구출하는 ‘프로미스 작전(Promise·약속)’이 완료된 지 3일 만이었다. 서울 강남구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진행된 마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수단 교민 구출 이야기로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수단 교민 구출 과정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우방국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다양한 도움을 받았다. 현지 정세 정보를 제공받았고, 이동 차량 섭외와 경호 관련 도움도 받았다. UAE는 교전 중인 수단 정부군과 반군(신속지원군·RSF) 측에 모두 “한국 국민의 이동을 막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3일(수단 수도 하르툼 출발)부터 25일(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도착)까지 진행된 프로미스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로 UAE의 도움이 꼽히는 이유다. 한국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칼둔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한국 국민이 우리 국민이다(Your people are our people)”란 메시지도 화제가 됐다.
마 사무총장은 “UAE는 주요 산유국이며 동시에 중동의 금융, 무역, 관광 등의 허브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나라라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UAE와 지금처럼 돈독한 관계가 없었다면 교민들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게 훨씬 어려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전 중인 수단에서 탈출시킨 교민들이 4월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착륙한 공군 수송기 ‘KC-330’에서 내리며 고국 땅에 발을 내딛고 있다. [동아DB]
진보·보수 막론하고 아랍권 중요성 공감
1981년 외무고시 15회로 공직에 진출한 마 사무총장은 초대 주팔레스타인 대표부 대표, 아프리카·중동국장, 주이스라엘 대사, 공공외교대사 등을 지내며 다양한 중동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16년 주덴마크 대사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2021년 3월부터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최근 재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개발사업인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제2, 제3의 ‘중동 붐’이란 말이 나올 만큼 중동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지난해 11월)과 윤석열 대통령의 연초 UAE 방문도 화제가 됐었다. 마 사무총장에게서 최근 한국과 아랍 국가 간 협력 움직임과 중동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랍 관련 단체에서 일하고, 외교관 시절에는 중동 업무도 오랜 기간 담당했기 때문에 이번 수단 사태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을 것 같다.
“한국-아랍 소사이어티는 아랍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정치, 문화, 사회 부문으로 확대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인 단체다. 한국과 아랍 22개 국가가 함께 설립했다. 당연히 이번 수단 교민들의 탈출 작전은 의미가 특별하다. 우선 아랍 국가인 UAE의 도움으로 교민들이 안전하게 수단에서 철수했다.”
한국-아랍 소사이어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국과 아랍 국가(22개국) 정부와 기업들이 총 140억 원을 출자했다. 한국과 아랍 국가의 협력관계는 건설과 에너지(석유, 천연가스) 분야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경제 중심의 협력관계를 정치, 문화, 사회, 예술, 체육 등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게 한국-아랍 소사이어티의 핵심 목표다. 이사진도 총 26명인데 한국 측과 아랍 국가 간 비슷한 숫자로 구성된다. 한국 측 이사들은 정부와 재계 인사들이 주를 이룬다. 아랍 측 이사들은 한국 주재 아랍 국가 대사들이다. 비슷한 성격과 구조를 지닌 단체는 프랑스의 아랍월드인스티튜트(Arab World Institute) 정도다.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설립을 기획한 건 노무현 정부였고, 문을 연 건 이명박 정부 때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점이다. 정확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3월 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를 방문한 뒤 아랍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설립을 구상했다. 그리고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 사업이었지만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설립과 운영을 적극 지원했다. 진보, 보수 정부 모두 아랍권의 중요성과 관련 단체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어떤 활동을 주로 해왔나.
“경제협력은 정부와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잘해오고 있다.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아랍과 중동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집중했다. 매년 아랍 영화와 음식 등을 알려온 ‘아랍문화제’를 열어왔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꽤 관심을 받아온 행사다.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등 대중문화가 발달한 아랍 국가의 영화를 주로 상영했다. 2022년에는 중동 첫 월드컵인 ‘2022 카타르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코엑스에 ‘카타르 월드컵 파빌리온’을 조성. 카타르의 문화와 월드컵 준비 상황을 자세히 알렸다. 한국 문화를 아랍 국가에 가서 알리는 ‘한-아랍 우호친선 카라반’ 행사도 매년 열었다. 정부, 재계, 언론계, 학계 등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인 ‘한-중동 협력 포럼’도 열린다. 경제, 외교,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동 이슈를 다룬다. 올해는 카타르와의 수교 50주년(2024년)을 앞두고 10~11월경 도하(카타르 수도)에서 행사를 열 예정이다.”
중국의 아랍권 영향력 미국 넘긴 어려워
5월에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창립 15주년을 맞이했다.“지난 15년 동안 아랍, 나아가 중동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 기업의 기술과 제품에 대한 선호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 문화 콘텐츠 인기도 높아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크게 개선됐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아랍과 중동에 대한 관심은 과거보다는 커졌어도 전체적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중동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극단적인 이슬람 사상, 테러, 가부장적 문화 등이 주를 이룬다. 다만, 최근 중동 관련 정세나 지식을 전달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있더라. 중동 관련 서적도 늘었고 내용도 좋아졌다. 또 지난해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과 카타르 월드컵, 윤 대통령의 올해 초 UAE 방문 등으로 중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중동은 왜 중요한가.
“막연하게 생각하면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처 정도의 생각만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동은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들이 중동에서도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중동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아랍 산유국들의 과감한 개혁·개방으로 거대한 시장이 조성되고 있다. 중동 정세는 더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다.”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을 성공적으로 중재하는 등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금까지 중국의 대(對)중동 전략은 경제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런 점에서, 올해 3월 7년간 단교 상태였던 사우디와 이란 간 외교 정상화가 중국 중재 아래 베이징에서 이뤄졌다는 건 의미가 크다. 최근에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중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미국이 책임졌던 아랍 산유국들의 안보를 중국이 안정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보장할 의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역량이 갖춰졌는지 역시 검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적극적인 최근 움직임을 보며 미국의 중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과거보다 비중이 줄었다고 해도 중동은 미국이 포기하거나, 관심을 크게 줄일 지역이 아니다.”
사우디가 원유 구매 과정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기로 했고, 중동 많은 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얼핏 보면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 중동 산유국들의 ‘탈(脫)미국’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산유국들이 오일달러로 운용 중인 국부펀드는 여전히 미국 실리콘밸리와 금융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중동 국가들이 과감하게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지는 못할 것이란 얘기다.”
마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의 중동에 대한 관심이 경제 쪽에 너무 국한돼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면 안보, 역사,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중동에 대한 관심이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중동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익으로 설득보다 친분으로 다가가야
아랍, 중동 문화는 한국 문화와 다르다. 특히 일하는 속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도 우리와 차이가 크게 난다.“사실이다. 아랍은 일하는 속도가 일단 한국에 비해 느리다. 친분과 신뢰가 확실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거나, 예측 불가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때는 기대 이상으로 친절, 또 어떤 때는 무뚝뚝하게 나온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이 금방 지치는 경우가 많다. 문이 열릴 때까지 못 기다리는 것이다. 후배 외교관들이나 중동에서 근무하는 기업인들에게 ‘중동에서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참고 기다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관계를 차근차근 쌓아나가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의외로 길이 잘 열리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성공적으로 처리된다. 이해(利害)관계로 설득하기 전에 아랍권을 이해(理解)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6년 3월 14일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의 무장조직에 의해 가자지구 칸 유니스 난민캠프에 잡혀 있는 당시 KBS 용태영 특파원(왼쪽)과 통신사 SIPA의 사진기자 알프레드 야코브자데 씨(가운데), 프랑스 주간지 엘르의 특파원 카롤린 로랑 씨. [gettyimages]
“2006년 3월 한국인 기자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를 취재하다가 현지 강경 성향의 무장단체에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모두 이 무장단체와 접촉하는 것조차 꺼렸다. ‘극단주의 성향 단체와 협상하면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최대한 빨리 이 기자를 구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2004년 이라크에서 극단주의 단체에 붙잡혔다 살해당한 고(故) 김선일 씨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꾸준히 교류해 오며 친분을 쌓은 가자지구 주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교부 관계자에게 매달렸다. 이 관계자가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납치된 한국 기자의 행방을 파악했다. 결국 대화를 통해 기자를 구해낼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대표부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초대 대표로서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절박하게 움직였다.”
팔레스타인 대표부는 언제 생겼나.
“팔레스타인 대표부는 2005년 6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 신분으로 처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동시에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설립됐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외교부 장관이 반 전 총장과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유엔에서 근무하며 가깝게 교류했다. 그러다 보니 대표부 설립도 속도를 냈다. 당시 주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일하던 나에게 ‘초대 팔레스타인 대표부 대표도 맡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몇 달 만에 대표부가 문을 연 건데, 업무 속도가 빠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신속히 외교공관이 설치되기는 쉽지 않다. 반 전 총장과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교부 장관이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이스라엘 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주팔레스타인 대표부 대표를 겸직한 건데, 현대 중동 갈등의 핵심인 두 진영에서 동시에 외교관 활동을 하게 된 게 신기하다.
“일주일에 3, 4일은 텔아비브에 있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에서, 1, 2일은 라말라에 있는 주팔레스타인 대표부에서 근무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외교부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다 보니 처음에는 양쪽 사람들 모두 말을 잘 안 했다. 혹시라도 내가 상대 쪽에 말을 전할까봐 의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 만나다 보면 친해지고, 신뢰도 쌓이지 않나. 나도 혹시라도 물의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항상 조심했다. 다행히 시간이 좀 흐르면서 의심받지 않게 됐고, 자연스럽게 양쪽 진영에서 모두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랍권 개혁·개방 멈출 수 없는 흐름
한국-아랍 소사이어티 회원국들이 많다 보니 나라 간 크고 작은 갈등도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아랍과 적대적 관계인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도 최근에는 나라마다 많이 다른데….“아브라함 협정(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 외교관계 정상화)이 2020년 9월 발표되면서 이제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집트, 요르단은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양국의 한국 주재 외교관들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관계자들과도 교류한다. 하지만 다른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분명한 거리를 둔다.”
아랍에서 가장 큰 나라인 사우디의 변화에 최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네옴 프로젝트, 관광개방, 해외 대중문화 허용 확대 등 과거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젊은 리더(무함마드 왕세자)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니 과감한 조치가 가능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지털 기술로 이제 정보의 유입과 전파도 막을 수 없다. 일각에선 여전히 사우디의 변화가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개혁·개방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더욱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아랍소사이어티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온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퀴즈대회인 ‘퀴즈 온 아랍’을 정기적으로 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아랍 문화제에서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언론, 학계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이 중동 관련 콘텐츠가 생산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