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아이폰 사면 캐시백에 이자까지, 초강력 애플 생태계 ‘록인’

[박원익의 유익한 IT] 애플, 예금 상품으로 월가 상륙

  • 박원익 더밀크뉴욕플래닛장

    wonick@themilk.com

    입력2023-06-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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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드만삭스 협업으로 규제 회피

    • 연이율 4.15%, 10배 경쟁력 상품

    • 중소 은행 위기, 신용도 높은 애플엔 찬스

    • 서비스 매출 확대가 애플의 미래

    [Gettyimage]

    [Gettyimage]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Apple)이 내놓은 새로운 예금 상품(savings, 저축)으로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금융계가 떠들썩하다. “미국 평균의 10배가 넘는 4.15%의 수익률”이라는 파격적 금리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애플이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이 수치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밝힌 자료(3월 20일 기준) 기반으로 작성됐다.

    최소 예치금, 최소 잔액 유지 조건도 없으며 애플 카드 구매 금액의 최대 3%를 돌려주는 리워드(보상) 프로그램 ‘데일리 캐시’도 적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이 기술업계뿐 아니라 금융업계에도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애플이 여느 때보다 공격적 행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금이며, 왜 금융업일까. 애플 예금 상품 출시와 관련된 여섯 가지 주요 시사점을 정리했다.


    1 오랜 기간, 치밀하게 수립된 애플의 금융 전략

    “세이빙(Savings, 저축)은 사용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플 카드 혜택인 ‘데일리 캐시’를 더욱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동시에 매일 간편하게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니퍼 베일리 애플 페이 및 애플 월렛(wallet, 지갑) 담당 부사장의 말이다. 애플의 저축 상품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애플 카드 사용자의 카드 사용 패턴, 요구에 기반한 상품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애플이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카드를 출시한 건 2019년 8월 20일이었다. 4년여 동안 애플 카드를 운영한 결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데일리 캐시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관(자동 입금)할 수 있는 저축 계좌를 출시하면 매출에 도움이 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최대 1000달러에 달하는 구매 금액을 6주에 걸쳐 분산 결제할 수 있는 ‘애플 페이 레이터(Apple Pay Later)’를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월렛 시장 점유율 48%를 차지하는 간편결제서비스 ‘애플 페이’(2014년 출시)에 이어 애플 카드, 애플 페이 레이터, 애플 저축 계좌(Savings account)까지 선보이며 오랜 기간 치밀하게 금융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다.

    핀테크 위험 분석 업체 스위스퀀트(SwissQuant)는 “고객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빅테크의 목표”라며 “빅테크는 비금융 및 금융 서비스를 위한 원스톱 플랫폼이 되길 원한다. 충성도 높은 대규모 고객을 기반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2 더 강력해지는 애플 생태계

    애플 생태계 강화 역시 이번 행보와 관련한 주요 시사점 중 하나다.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 저축 계좌 출시가 높은 확률로 애플 생태계 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애플의 저축 상품 ‘월렛’의 구동 화면. [애플]

    애플의 저축 상품 ‘월렛’의 구동 화면. [애플]

    제니퍼 베일리 부사장은 “애플의 목표는 사용자가 더 건강한 금융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라며 “월렛에 저장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사용자는 한곳에서 데일리 캐시를 직접 사용하고, 송금하고, 저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폰과 애플 월렛만 있으면 신용카드를 꺼낼 필요가 없고, 다른 금융 앱을 켤 필요도 없이 한곳에서 모든 금융 행위를 할 수 있다.

    상품 구조도 여기에 맞춰 설계됐다. 애플 아이폰을 구입하고, 애플 페이와 애플 카드를 사용하면 구매 금액의 3%를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동시에 그 금액이 애플 카드 저축 계좌에 자동으로 입금돼 4.15%의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정도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어렵게 만든 셈이다. 소비자는 아이폰을 구매하는 동시에 모든 애플 생태계에 접속하게 되며, 아이클라우드 등 다양한 애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2022년 기준 애플의 서비스 부문 매출은 781억2800만 달러로 전체 매출(3943억2800만 달러)의 20% 달한다.


    3 돈은 골드만삭스 솔트레이크시티 지점에 예치

    애플은 금융업을 영위하며 사실상 금융업체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법적 지위는 그렇지 않다. ‘골드만삭스와 협업’이라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어서다. 실제 은행을 설립하는 등 직접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보다 파트너십을 활용하는 게 규제, 시장 독점 우려 등 많은 부문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비즈니스 잡지 ‘아이엔시매거진(Inc. Magazine)’에 따르면 애플 저축 계좌를 사용하는 고객의 돈은 골드만삭스 솔트레이크시티 지점에 예치된다. 아이폰이 있는 고객이 신용 조회 기관에 보고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 점수를 요구하는 애플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애플 저축 계좌를 열 수 있게 했다.

    골드만삭스 인터넷 은행 자회사 ‘마커스’의 저축 상품. [마커스]

    골드만삭스 인터넷 은행 자회사 ‘마커스’의 저축 상품. [마커스]

    애플 생태계에 소비자를 가두는 ‘록인 효과’에 더 집중하고, 금융업 직접 진출 등에 따른 리스크는 최소화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골드만삭스가 운영하는 인터넷 은행 자회사 ‘마커스(Marcus)’가 현재 연이율 3.9%의 저축 계좌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플 입장에서는 0.25%포인트의 추가 이율 부담만 지고, 골드만삭스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골드만삭스 역시 이유 없이 애플과 손잡은 게 아니다. 특히 마커스의 실적 부진이 이번 협업의 배경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커스는 지난해부터 적자에 시달리며 매각, 연방준비제도(Fed) 감사 같은 부정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4 연이율 4.15%는 경쟁력 있는 상품

    애플 분기별 서비스 관련 매출 추이. [Statista]

    애플 분기별 서비스 관련 매출 추이. [Statista]

    애플은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 실제 소비자가 사용할 만한, 바로 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파급력을 고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가장 먼저 출시하기보다 시장이 조성된 후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해 단번에 시장을 장악하는 사례가 많았다.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에어팟’이 대표적 사례다. 에어팟 이전에도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소음 제거) 이어폰이 존재했지만, 애플의 에어팟이 시장을 평정했다.

    연이율 4.15% 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을 제시해 충성도 있는 고객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4.15%는 미국 전체 평균 예금 금리(연 0.37%)와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높은 수준이며 저축 계좌와 비교해도 상당히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평가된다.

    금융 정보 제공업체 뱅크레이트(Bankrate)의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3.5%에서 4.75%의 연이율을 제공하는 저축 계좌를 찾을 수 있다. CNN은 애플 저축 계좌 이자율이 미 전역 은행 상품 중 11위에 해당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애플이 언제까지 이 이자율을 유지할지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향후 환경 변화에 따라 이자율이 언제든지 오르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5 미국 중소 은행 위기 심화

    미국 중소 은행 위기 심화도 중요한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이는 ‘왜 애플이 지금 시점에서 저축 계좌를 출시했느냐’란 질문과도 연결된다.

    현재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의 여파로 기존 금융업계, 은행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가 추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애플 측에서는 지금이 애플 브랜드와 제품이 보유한 높은 신뢰도를 활용할 적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애플의 공격적 행보에 미국 중소 은행들은 곤경에 빠진 상황이다. 애플 저축 계좌가 발표된 전날 뉴욕 증시에서 스테이트스트리트 주가는 9.18%, BNY멜런은행 주가는 4.58% 급락했다.

    SVB에 이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도 미 금융 당국의 관리 체제 수순에 들어갔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상황이 더 악화했고, 민간 부문을 통한 구제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 FDIC가 개입한 것이다. 4월 28일(현지 시간) 기준 뉴욕 증시에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주가는 3.51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5일 전 주가 대비 75.39% 급락한 가격이다.

    JP모건 등 미국 11개 대형 은행은 지난 3월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미 300억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SVB, 뉴욕 시그니처 은행에 이어 은행 위기 사태로 미국에서 문을 닫는 세 번째 은행이 됐다.

    아이엔시매거진은 “소비자에게 ‘이미 애플을 믿고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맡겼으니 저희가 현금을 보관해 드리면 어떨까요?’라고 말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라고 평했다.


    6 서비스 매출 확장 전략

    마지막 시사점은 서비스 매출 확장이다. 애플은 최근 서비스 매출로 분류되는 건강관리, 운동, 정신건강 서비스 등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는 한번 구매하면 소비자가 짧게는 1~2년, 길면 3~4년 바꾸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 트렌드, 대외 경제 상황이 빠르게 바뀌는 가운데,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성공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 판매 주기가 역대 최장 수준인 40개월 이상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평균적으로 3년 이상 새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비자가 같은 브랜드를 재구매하리란 보장이 없고, 구매 주기도 일정하지 않다.

    반면 서비스 매출은 한 달, 1년 등 일정한 기간을 거쳐 반복해 발생(recurring revenue)하며 매출 발생 주기도 상대적으로 짧다. 하드웨어 매출 불확실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단인 셈이다.

    애플의 이런 서비스 매출 확대 전략은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2022년 4분기 기준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한 207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6년 같은 기간(약 60억 달러) 대비 6년 만에 3.5배 급증했다. 2022년 연간 기준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맥도날드와 나이키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애플 저축 계좌 역시 큰 그림에서 보면 서비스 매출 확대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6월 5일 예정된 애플의 자체 콘퍼런스 ‘WWDC 2023’에서는 애플이 스마트폰 운영체제 iOS 17을 발표하며 자체 일기 앱(journal app, 코드명 Jurassic)을 새로운 서비스로 추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기적으로 생각, 활동 등을 기록해 정신적·육체적인 건강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2024년 이후 출시를 목표로 AI 기술을 활용한 유료 건강 코칭 서비스(코드명 Quartz)를 선보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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