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에도 민감한 여론… “독과점 불안 방증”
조원태·산업은행 이해관계 일치가 빚어낸 합병
국부 유출·소비자 부담 증가·구조조정 불가피 전망
“당국, 전면 재검토 고려해야”
대한항공 “부담 전가·구조조정 못 한다”
2020년 11월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나섰다. 합병이 성사되면 대한항공은 세계 7위권 ‘메가 캐리어(초거대 항공사)’로 도약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나친 출혈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Gettyimage]
대부분 승객이 마일리지를 장거리 노선 및 좌석 승급에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개악(改惡)’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월 17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으로 “우리나라의 장거리 항공노선을 사실상 독점한 대한항공의 탐욕이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했다. 2월 1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 때 고용 유지 지원금과 국책 금융으로 생존했는데 감사의 프로모션을 못할망정”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합병 이후 대한항공의 독점으로 발생할 폐해의 전조 증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독점 지위를 이용해 합병에 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리라는 것. 결국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대한항공으로서는 억울할 법한 일이다. 마일리지 개편안은 본디 2019년 말 계획돼 2021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시행이 2년 미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광옥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비이락’이라며 “오히려 시국이 안정되면 추진하려고 미뤄둔 건데, 딱 깨지기 좋은 때와 맞물려버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그만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라는 말이 나온다. 항공업계 고위 관계자 A씨는 “근 32년간 사실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거대 항공사가 항공계를 양분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마저 하나로 된다니 민감한 시선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비자뿐 아니라 업계, 당국 모두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소비자는 편익 저하를, 업계는 생태계 변화를, 당국은 국부 유출을 두려워한다. 지금 웃는 자는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다. 업계·학계는 “합병이 되든 안 되든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며 조원태(47) 한진그룹 회장을 지목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착수한 때는 2020년 11월이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수년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하 산은)에 아시아나항공은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다. 3조54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여했지만 회생 기미가 없었다. 2019년 말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계약을 체결하며 구원투수가 되는가 했으나 코로나19로 상황이 악화되며 협상이 깨지고 말았다. 산은의 다음 선택은 대한항공이었고, 대한항공도 이를 받아들였다. 2020년 11월 16일 산은은 한진그룹과 8000억 원 규모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업계·학계에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문제에서 조 회장은 잃을 게 없다”고 말한다. [동아DB]
조원태·산업은행 서로 백기사 되다
조원태 회장으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세계 7위권 항공사로 도약할 기회임과 동시에 경영권을 굳힐 호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승낙했다”고 말한 바 있다.산은의 투자 방식이 근거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산은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8000억 원을 투자한다. 한진칼은 이 가운데 7300억 원으로 대한항공의 2조5000억 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이후 대한항공은 1조5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신주와 3000억 원의 영구채를 인수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0%가량을 가진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조 회장은 1원도 출자하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
당시 조 회장은 KCGI(강성부 펀드)·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른바 ‘3자 연합’에 의해 경영권 상실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산은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 조 회장의 지분율은 41%,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5.24%였다. 산은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0.7%를 보유하며 3자 연합의 지분율이 41.9%로 낮아졌다. 조 회장의 지분율도 약 37%로 낮아졌지만 산은이 조 회장의 우호 세력이 돼 판세가 뒤집혔다. 조 회장은 이어진 주총에서 승리해 경영권을 지켰고, 3자 연합은 이내 와해돼 조 회장에게 더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조 회장이 산은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의도가 어땠든 정부가 조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도와준 꼴”이라며 “산은은 골칫덩이인 아시아나항공을 떼어내야 했고, 조 회장도 3자 연합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도움이 필요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산은이 8000억 원을 투자하기 전에도 대한항공은 정부로부터 1조2000억 원을 지원받은 상태였다. 또 부채가 23조 원에 부채비율이 1100%에 달해 누가 봐도 경영을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타당할 오너의 경영권을 강화한다면 누가 책임경영을 하려 하겠나. 산은이 대한항공 외에 다른 대안을 찾거나,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또다시 혈세로 ‘대마불사’라는 나쁜 전례를 만들고 말았다.”
“안 그런다고 약속하기엔 출혈 너무 커”
모든 것엔 득(得)과 실(失)이 있다.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을 지킴으로써 합병에서 득을 취했다. 세간이 우려하는 지점은 실의 전가다. 대한항공이 합병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국내외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최종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큰 출혈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병을 조건부 승인했다. 조건은 슬롯(시간당 비행기 이·착륙 횟수) 및 운수권 반납, 운임 인상 및 좌석수 축소 금지 등이 골자다. 대한항공은 이를 10년간 지켜야 한다. 올해 3월 1일 영국 경쟁시장청의 조건부 승인에서도 영국 히스로 공항에 보유 중인 슬롯 17개 가운데 7개를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에 이전하기로 했다. 41% 상당 슬롯을 내놓은 셈이다.
슬롯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수익도 감소해 항공사로선 부담이 커지고, 이를 소비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슬롯이 해외 항공사로 넘어가면 ‘국부 유출’이 발생한다. 3월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항공이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며 너무 많은 슬롯을 반환해 국부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하자 원희룡 장관은 “손실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불가피하면 어쩔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아직 미국, EU, 일본의 심사가 남아 있다. 통과가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돼 출혈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반독점 기조가 강화돼 더 까다롭게 심사할 가능성이 크다. 슬롯을 지나치게 내주면 합병 메리트는 빛이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5월 18일 미국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유다.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는 미국 정부가 외국 항공사간 합병을 막기 위해 제기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김광옥 교수는 “슬롯은 한번 뺏기면 찾아오기 어렵다. 그렇기에 외국으로선 더 많이, 뺏을 수 있을 만큼 뺏으려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대한항공 재벌만을 위한 노선권 반납 합병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영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배경과 관련해 아시아나 항공이 보유하던 슬롯 반납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했다. [뉴스1]
2020년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이 취재진에게 “인위적 구조조정과 항공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지만 학계·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출혈이라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의견이 모인다.
김광옥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 합병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초창기엔 소비자는 부담이 늘고, 대한항공으로서도 어려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주근 대표는 “부담을 전가하지 않겠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며 “일자리를 줄이든, 제도를 개편하든 어떤 방법으로라도 비용을 절감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위적 구조조정이 직접적 해고를 의미하는 거라면 근로조건을 악화시켜 자발적으로 나가게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닌가”라며 “대한항공이 고용을 100% 유지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대한항공 “특혜 받은 적 없어”
전문가들은 “합병 전면 재검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병일 교수는 “당장 어떤 부담이 전가되지 않더라도 경쟁이 사라지면 장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코로나19가 종식되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상태도 호전되는 상황에 꼭 대한항공이 인수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항공산업 전반 경쟁력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한국 경제규모 수준에선 국적기가 2개는 있어야 한다”며 “항공물류가 독과점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이 인수한 것처럼, 업종이 겹치지 않는 기업이 인수해 경쟁 구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상인 교수는 “과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합병을 지속하는 게 과연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조원태 회장으로선 잃을 게 없는데, 국가경제 및 소비자 후생에선 잃을 게 많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합병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따로 해명할 것은 없다”며 “소비자 편익 저하 행위,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병을 승인하면서 붙인 조건이기도 하다. 공정위 감독하에 놓일 상황이기에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합병에 대해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이야기다.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고 먼저 나선 것이 아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과거와 현재 대화로 ‘K-아트’ 새로 태어나다
대한항공, ‘복 주는 도시’ 푸저우 가는 길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