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가 세계 속일 수 있나
태평양 해류 시계방향 돈다
오염수 아무리 많아도 희석
삼중수소 악마화 시즌2인가
젊은 의원 김대중은 달랐다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왼쪽부터) [동아DB]
6월 11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쓴 게시물의 한 문장이다. 그의 말을 좀 더 인용해 보자. “이미 오니(汚泥)의 해양투기가 금지된 지금 그보다 훨씬 위해 가능성이 큰 원전 오염수를 해양 투기 하겠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토목용어사전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오니’란 “하수 처리에서 생기는 부패하기 쉬운 유기물을 다량 포함하며 진흙 모양을 하고 있고 진한 회색의 냄새가 강한 침전물”이다.
홍준표의 입장은 분명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되었고 앞으로도 추가 방류될 예정인 오염수는 극히 더럽고 위험한 것이므로 절대 바다에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팩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표 뒤로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한 배너가 보인다. [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이런 관점을 택할 경우, 후쿠시마 사고 현장과 수습 과정에 대해 IAEA에서 어떤 검증 결과가 나오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렇듯 IAEA에 대한 불신을 전제하면 일본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세워진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홍준표나 유승민처럼 강경하지는 않다. 하지만 IAEA의 검증 결과를 믿겠다는 정부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월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그는 ‘정부나 여당 같은 경우, 과학적 접근을 계속 강조하는데 과학적 화법에 100% 안전하다는 말이 성립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100%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이라며, “특히 과학에서는 그렇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소위 ‘여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발언이 모두 같지는 않다. 홍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폐수와 동일시하고 있다. 유승민의 입장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IAEA의 검증마저 불신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띄웠다는 점에서 홍준표의 그것보다 더욱 강경한 태도라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반면 안철수는 과학적으로 볼 때 후쿠시마 오염수가 위험할 것 같지는 않으나, 불안을 느끼는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세 명의 ‘여권 잠룡’은 하나같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빌미로 민주당이 조성중인 비난 여론에 동참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누구 편이냐’고 물을 때 한마디로 딱 잘라서 ‘대통령이 옳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는 소리다.
이는 매우 당황스러울 뿐 아니라 우려스러운 일이다. 과학 뿐 아니라 정치의 눈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적정한 처리 과정을 거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바다에 방류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이것은 과학적 팩트다. 이렇듯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IAEA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을 속일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이 불안을 느낀다. 그렇다면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을 ‘달래는’ 것만이 옳은 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는 민심의 흐름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잠룡’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日은 못 믿어도 중력은 믿어야 하거늘…
올해 2월에 촬영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모습. [후쿠시마=AP 뉴시스]
해류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양(quantity)이다.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방류된 물은 태평양에 섞이는데, 태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다. 아무리 많은 오염수가 배출된다 해도 1조분의 1 이하로 희석된다. 독성학의 기초를 다진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 파르켈수스의 말처럼, ‘독성은 양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독한 물질이어도 기준치 이하면 해롭지 않다. 적정한 양을 맞추면 약으로 쓰일 수도 있다. 1조분의 1 이하로 희석됐을 때 유독할 수 있는 물질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고급 생선인 복어를 떠올려 보자. 복어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품고 있다. 복어는 바다에 산다. 그렇다면 바다가 복어독으로 오염된 독성 바다인가. 그렇지 않다. 일단 복어독은 복어라는 물고기의 몸 안에 있다. 설령 세상의 모든 독어가 일시에 터져 죽는 초자연적 현상이 벌어진다 해도, 온 바다의 물고기가 복어독에 중독돼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막대한 바닷물에 복어독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복어 요리를 먹다 보면 가끔 입과 혀가 찌르르하게 마비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요리사가 제거해도 남아있을 수 있는 극미량의 복어독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그 정도를 먹었다 해도 죽지 않는다. 독성을 결정하는 것은 양, 그것도 상대적인 양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방류했다면, 후쿠시마 오염수는 태평양에 섞여 들어간 후 그 어떤 사람에게도 유의미한 해를 끼칠 수 없는 것이다.
후쿠시마 공포 마케팅에 열중하는 야권과 반대 세력은 지금껏 삼중수소를 악마화했다. 일본이 설치한 다핵종제거설비(ALPS)가 걸러내지 못하는 삼중수소가 바닷물에 쏟아져 들어간다고 대중에게 겁을 줬다. 하지만 중국이 서해안에 쏟아내고 우리 스스로 우리 바다에 투기하는 삼중수소의 양이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이 알려지자 ‘일본이 만든 ALPS를 어떻게 믿냐’는 식으로 방향을 바꾼 듯하다.
이는 후쿠시마 오염수, 원자력, 더 나아가 가장 기초적인 과학 상식마저 모르거나 무시하는 발언이다. 삼중수소와 탄소14를 제외한 오염수내 62종의 방사성 핵종은 모두 금속이다. 금속은 물에 녹지 않는다. 단지 혼합될 뿐이다. 그리고 물보다 무거워서 내버려두면 가라앉는다.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은 탱크에 담아두면 침전물이 된다.
ALPS의 필터 처리 과정은 어떨까. 침전 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가라앉은 물질을 제외한 나머지 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비유하자면 항아리에 술을 담근 후, 아래에 가라앉은 막걸리가 아니라 위에 뜬 맑은 동동주만 퍼서 채에 걸러 약주로 만드는 셈이다. 술을 담글 때 섞여 들어간 모래가 약주에서 나올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한 것은 1687년, 벌써 400년도 더 된 일이다. 일본을 못 믿더라도 중력은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침전 과정을 거친 후 필터로 걸러내는 과정을, 일본 뿐 아니라 다국적 기구인 IAEA에서 검증하는데, 그것마저 못 믿겠다는 건 너무도 반과학적이고 퇴행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누가 미래의 리더가 되는가
문제는 정치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채 지지율만 보고 춤추는 단세포 정치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다. 홍준표는 원전 오염수는 단순 폐수와 전혀 다르다는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유승민은 IAEA라는 국제기구의 신뢰도 자체를 문제 삼음으로써 탈원전 지지 세력과 한 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안철수는 이공계인으로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국민 여론이 워낙 좋지 않으니 일단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듯하다.여권 ‘잠룡’들의 이러한 태도는 대단히 개탄스럽다. 이런 식으로는 후쿠시마 문제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문맹이 없는 나라다.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후쿠시마의 과학적 진실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건 국민의 수준이 낮고 무식해서가 아니다. 불안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는 세력에 맞서야 할 사람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 그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할 당시를 떠올려 보자.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무조건 항복했다. 한국은 북한과 맞서 한국전쟁을 치렀고, 일본보다 앞서 미국의 군사동맹국이 됐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의 여론이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솟아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 됐고, 일본은 이제 한국을 침략할 수 없다는 대다수 국민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몸에 밴 공포와 반감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야당 정치인들은 그런 여론을 따라갔다. 머리로는 한일협정이 옳다는 것을 알더라도 ‘민심은 천심’ 같은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협정 반대의 대열에 속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한 명 있었다. 파릇파릇하게 젊은 재선의원, 목포의 김대중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대중의 반감을 무릅쓰고, 여론을 거슬러가며, 한일협정에 찬성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역사다.
국민 여론을 거스르는 정치는 과연 있을 수 없을까. 대부분의 경우라면 그렇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가끔 ‘결정적 순간’이 도래한다. 국민이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 본능으로는 차마 따라가지 못하는 사안 앞에서, ‘나를 믿어달라’며 옳은 길을 택하는 정치인이 때로는 등장한다. 그런 사람이 결국 미래의 리더가 된다. 마치 바다에 사는 수많은 이무기 중, 천둥치는 날 폭우를 거슬러가며 하늘로 올라가는 단 한 마리의 이무기만 용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이런 기회를 놓친 ‘잠룡’은 ‘잡룡’으로 끝나고 말 뿐이다. 민심의 바다에서 역사의 하늘로 솟구치는 진짜 용의 출현이 절실하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