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은 비슷, 요금은 20~30% 저렴
올해 1분기에만 30만 명 알뜰폰으로 갈아타
록인 효과+데이터 확보 장점… 타 금융사 참전 가능성 有
“메기 아닌 베스”… 알뜰폰 업계 반발 해결은 숙제
2019년 10월 28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열린 KB국민은행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Liiv M)’ 출시 행사에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박수치고 있다. [KB금융그룹]
출시 당시만 해도 리브엠의 성공을 점치는 시각은 적었다. 국민은행은 리브엠을 선보이며 목표 가입자 수를 100만 명으로 제시했다. 터무니없는 목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출시 6개월 이후에도 가입자 수가 6만 명 수준에 그쳤다. 예상보다도 더 미미한 존재감을 보여 업계에서 조용히 잊히는 듯했다.
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월 기준 가입자 수가 40만 명을 돌파했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서고 있다. 특히 가입자 수 확대에 가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소비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서비스 조사 업체 ‘컨슈머인사이트’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 하반기까지 3회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제2의 리브엠이 나올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정부가 통신 업무를 금융사의 부수 업무로 허용하면서다. 알뜰폰 시장을 둘러싼 금융사와 기존 이동통신 3사, 그리고 기존 알뜰폰 사업자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금융·통신 융합, 진정한 혁신금융”
알뜰폰은 과점 상태인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됐다. 알뜰폰 사업자가 SK텔레콤이나 KT, LG유플러스 등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통신망을 임대해 소비자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망 관리나 유지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통화 품질이나 데이터 속도는 이통 3사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20~30% 싸다.KB국민은행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 로고. [동아DB]
KB 관계자는 리브엠을 처음 공개하며 “금융과 통신의 융합으로 진정한 혁신금융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과거 KT에서 사외이사를 지냈는데, 이 시절부터 금융과 통신의 융합을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찌감치 둘을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본 셈이다. 2019년 10월 말 국민은행이 연 리브엠 출시 행사에는 윤종규 회장과 당시 허인 국민은행장뿐만 아니라 KB금융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총출동했다. 그룹 차원의 기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리브엠은 합리적 요금제, 약정 부담 없는 자유로운 이용, 모바일로도 가능한 간편한 가입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여기에 편리하고 안전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는 특징이 더해졌다. 리브엠은 제휴 통신망을 LG유플러스, KT에 이어 SK텔레콤으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출시 당시엔 LG유플러스 망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지난해 7월과 10월 KT와 SK텔레콤 망을 확보하면서 이통 3사 망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국민은행·소비자·정부 모두 반색
사실 국민은행에 리브엠은 수익을 위한 사업은 아니다. 리브엠은 2020년 139억 원, 2021년 194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내부에서도 리브엠을 새로운 사업으로 보기보다는 본업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알뜰폰 시장에서 강자가 되기보다는 다른 금융기관으로의 고객 이탈을 막고 새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이다.리브엠을 통해 ‘록인(Lock-in) 효과’와 금융상품 개발 등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소비자가 국민은행의 금융상품을 이용하면 알뜰폰 통신비를 깎아준다. 국민은행을 이용하도록 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 또 휴대폰을 통해 기존 금융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소비자의 생활 습관이나 소비 행태 등 빅데이터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미래 핵심 고객을 미리 유치하는 효과도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리브엠 가입자 가운데 60%가 2030세대다. 30대가 37.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20대가 23.2%, 40대가 17.7%로 뒤를 이었다. 20~40대가 전체의 약 80%다.
소비자가 알뜰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품질은 비슷한데 통신비는 싸기 때문. 가입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과기정통부 발표에 따르면 알뜰폰 가입자 수는 2018년 799만 명, 2019년 775만 명, 2020년 911만 명, 2021년 1036만 명, 지난해 말 1283만 명으로 증가했다. 현재는 13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가입자 수 증가에 가속이 붙었다. 799만 명에서 1036만 명까지 3년이나 걸렸지만 여기서 다시 1283만 명으로 늘기까진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망도 나쁘지 않다. 물가 상승이나 자산가치 하락 등으로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줄일 수 있는 것부터 줄이자’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금융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을 반기고 있다. 정부는 그간 이통 3사의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 왔다. 네 번째 이통사를 선정하기 위해 무려 7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한 바 있다. 올해 초에도 제4 이통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알뜰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부는 자본력을 갖춘 금융사라면 이통 3사를 견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어느 시장이나 마찬가지이듯 반기지 않는 건 기존 사업자뿐이다. 이통 3사, 그리고 기존 알뜰폰 사업자에겐 달갑지 않다. 과거 이통 3사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다른 금융사의 사업 진출까지 가능해지면서 이젠 긴장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SK텔레콤이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서 엿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투자 위험 요소 가운데 하나로 알뜰폰을 지목했다. 금융기관 계열사를 포함한 기업들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 수익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통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가입자 유출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1분기에만 이통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탄 가입자 수는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한·하나·농협·토스… 제2의 리브엠 나올까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통신비 절약을 위해 알뜰폰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21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알뜰폰 스퀘어 매장 모습. [뉴스1]
주목할 건 다른 금융사들이다. 얼마든지 알뜰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실화된다면 기존 알뜰폰 사업자는 물론 이통 3사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벌써부터 여러 금융사의 시장 진출설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직접 사업 의사를 밝힌 금융사는 없다. 오히려 대부분 손사래를 치는 분위기다.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데다 기존 알뜰폰 사업자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객 록인 효과나 빅데이터 확보 등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점이 분명하기에 각자 나름의 셈법으로 계산기를 분주히 두드리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현재도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 일부 은행은 알뜰폰 제휴 요금제를 출시해 시장에 간접 진출했다.
특히 NH농협은행의 진출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다른 시중은행보다 고령층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노령층 고객은 데이터를 많이 쓰지도 않고 저렴한 요금제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점에서 알뜰폰 시장과 고객층이 겹친다. NH농협은행은 점포 수가 많아 고객 유치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 가운데 가장 많은 1106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지난해 10월 알뜰폰 사업자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해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사명을 토스모바일로 변경했다. 토스모바일은 가격경쟁력보다는 편리한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단순히 다른 알뜰폰 고객을 뺏어오는 게 아니라 기존 이통 3사 고객을 알뜰폰 시장으로 끌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 줄도산 낳을 수도
리브엠을 둘러싼 업계 반발도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를 비롯한 알뜰폰 업계는 리브엠 출시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명을 발표하고 공개서한을 보내며 사업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 리브엠에 더해 다른 금융사의 진출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반발 강도가 한층 세지고 있다.4월 금융위 발표 이후 KMDA는 성명을 내고 “리브엠이 도매대가 이하의 요금제를 만들어 이동통신 유통 시장을 유린했다”며 “메기가 아니라 (알뜰폰 시장) 생태계를 파괴하는 베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엔 알뜰폰 사업에서 철수하라는 내용을 담은 항의 서한을 윤종규 회장에게 보냈다. 당시에도 성명을 통해 금융위가 리브엠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리브엠이 과도한 요금 할인으로 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금융사들은 기존 사업자들처럼 알뜰폰으로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도매대가 이하 요금제를 판매하거나, 과도한 경품 경쟁에 나설 수 있다. 리브엠은 지난해 도매대가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판매해 알뜰폰 업계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요금제 경쟁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 경우 알뜰폰 사업자들의 수익이 악화돼 결국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알뜰폰 업계는 도매대가 이하의 요금제 판매를 금지하고,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등 금융사에 적용되는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중소 사업자를 중심으로 금융위와 여러 회의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 향후 리브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