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MZ는 민주당에 도덕성 기대 접은 지 오래됐다 [+영상]

[이동수의 투시경] 돈 봉투 사건에 청년층이 무관심한 이유는?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3-05-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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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적 권위 잃은 진보가 선택한 최선이 이재명

    • ‘찢항대전’이 상징하는 웃음거리 정치권

    • 진보든 보수든 우스운 정당으로 인식되면 선거는 끝

    [+영상] 동네형에서 코인광으로



    [+영상] "오빠, 몇 개 더 주면 안 돼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5월 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진 출두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5월 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진 출두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은 그들이 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한 이래 가장 큰 위기가 될지 모른다. 이 사건이 벌어진 2021년 5월 전당대회가 어떤 전당대회였나. 당시 민주당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대권을 놓고 격렬하게 맞설 것이 예상되던 시점이다. 대선 경쟁을 앞둔 상황에서 실시된 당권 경쟁은 필연적으로 대리전 양상을 띤다. 당시만 해도 송영길 전 대표는 친이재명계로 분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 대척점에 놓인 친문 세력이 경쟁자인 홍영표 의원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 상황에서 송 전 대표는 자의든 타의든 친명계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3·9 대선 직후 송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6·1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재명 후보가 출마함으로써 그 같은 인식은 더욱 강화됐다.

    돈 봉투 사건이 확산 조짐을 보이자 평소 측근들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회피하던 이재명 대표가 뜻밖에 즉각 사과하며 프랑스에 머물던 송 전 대표의 귀국을 촉구했다. 송 전 대표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회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겠다”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돌파해 나갈 것을 시사했다. 돈 봉투 의혹이 정말 그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강래구·이정근 등 권력 주변을 맴도는 정치꾼들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런데 이 사건이 송 전 대표 혼자서 책임지고 끝내고 싶다고 끝낼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사저널이 ‘이정근 노트’를 보도한 뒤 야권이 떠들썩해진 모습만 봐도 그렇다. 문건의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았지만 누가, 얼마나 엮여 있을지 모르는 까닭에 모두 긴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던져진 셈이다.

    청년들, 돈 봉투 사건에 ‘시큰둥’

    야당의 대형 악재에 신난 국민의힘은 연일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많은 의원이 ‘더불어돈봉투당 쩐당대회 엄정수사’라고 적인 현수막을 지역에 내걸었고, 태영호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Junk(쓰레기)·Money(돈)·Sex(성) 민주당’이라고 비꼬았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문제가 민주당에 치명타가 되길 바라는 눈치다. 총선을 1년도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불거진 대형 부패 의혹이 민주당에 악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내년 총선도 보수·진보가 팽팽하게 맞붙는 양상이 된다면, 그래서 지난 대선처럼 무당층 비율이 높은 청년층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게 된다면, 이 사건은 오히려 국민의힘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사건 자체가 청년층 표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돈 봉투 사건에 대해 국민의 비판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4월 말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74.7%가 이 사건과 연루된 현역의원이 직을 사퇴하거나(49.9%) 당에서 출당·제명해야 한다(24.8%)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전당대회에서 누군가의 당선을 위해 돈 봉투가 살포된 사실이 “바람직하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심각한 사건에도 민주당 지지율은 오히려 올랐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4월 12일 검찰이 윤관석 민주당 의원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본격화했다. 송 전 대표의 파리 기자회견부터 귀국까지 상황은 숨 가쁘게 전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전후로 각종 뉴스는 이 사건이 뒤덮었다. 그런데도 같은 시기 민주당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한국갤럽 기준). 오차범위를 고려했을 땐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보는 게 맞겠다.

    특히 청년층 민심에는 돈 봉투 사건이 생각보다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 2030세대 정당 지지도에 큰 변화가 없을뿐더러, 청년층이 자주 모이는 온라인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서도 이 사건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기사 댓글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뉴스는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성별, 연령별 분포가 표시된다. 대형 이슈인 만큼 관련 기사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떤 기사를 보더라도 전체 댓글 작성자 중 20대 비율은 1~3%로 미미하다. 30대도 좀처럼 한 자릿수를 넘지 않는다. 댓글을 단 사람 대부분이 40대 이상이다. 청년들은 이 사건에 관심이 없거나,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도덕적 인식 무너뜨린 文 정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청년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거나, 부정부패에 무감각하다고 여겨선 곤란하다. 2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대체로 20%대, 30대도 30%대를 넘지 않는다. 반면 무당층 비율은 20대가 절반을 넘고, 30대도 다른 윗세대보다 높다. 남녀로 나눈다면 특히 2030 남성들의 여론은 민주당에 훨씬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들이 돈 봉투 사건에 분노하지 않는 건 애초에 민주당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4월 말 사무처 당직자 월례조회에서 “진보라고 불렸던 진영 사람들은 무능하긴 하지만 도덕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엔 진보는 도덕적이고, 보수는 유능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는 그 도덕성이 진보 진영의 정체성이자 무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상대를 적폐로 몰아붙일 수 있었던 건 도덕성에 대해 내부적 자신감이 있고 외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됐기 때문일 것이다.

    전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대통령마저 탄핵당한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도덕성이라는 자산을 독점하고자 했다. 위장 전입·논문 표절·세금 탈루·병역 면탈·부동산 투기 등에서 하나의 문제라도 발견되면 임명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5대 인사 원칙’은 그 대표적 사례다.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이 약속은 크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 기준은 자신들의 궤적에 비해 너무 엄격했고, 그러한 까닭에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었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은 5개 기준 중 무려 4개를 위반하고서도 임명돼 크게 비판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대국민 약속은 유야무야됐다. 이후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김의겸 의원이 흑석동 투기 의혹에 휘말리면서 여당의 도덕성은 한층 더 타격을 입게 된다.

    민주당을 탈당한 윤미향 의원. [동아DB]

    민주당을 탈당한 윤미향 의원. [동아DB]

    2020년은 문재인 정부를 넘어 진보 진영 전반의 도덕성에 대한 청년층의 기대가 무너진 해다. 박원순 서울시장, 오거돈 부산시장 등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성 비위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의 이중적 태도가 논란이 됐다. 비슷한 시기 터진 정의기억연대 사태는 그들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윤미향 의원은 1심에서 상당 부분 무죄를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받은 ‘50억 클럽’ 곽상도 전 의원의 사례처럼 그가 결백하다고 보는 청년은 별로 없다. 그저 세상이 부조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분노할 뿐이다. 올 초 정부가 시민단체·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을 때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적이 있다. 현 정부가 시민단체·노동조합을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도덕성이라는 자산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선출된 건 필연적 결과였다. 그는 도덕성을 강조해 온 민주당 전통적 정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물이다.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의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그를 괴롭힌 이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깨끗함이나 청렴함보다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 행정 성과를 강조하며 지지세를 확장했다. 대선 기간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그에 대한 지지 이유는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주를 이뤘다.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도덕적이지 않고, 청렴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일을 잘해서 지지하는 것이지 그의 인성이 좋아 보여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에 대장동 사건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졌음에도 낙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그가 결백하다고 믿었다기보다 처음부터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이라는 카드는 문재인 정부 5년간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진보 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던 셈이다.

    도덕적 권위가 실종된 시대

    각 당의 열성 지지층을 제외하면 정치권에서 정의롭고 청렴결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실제로 각종 조사에서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국가기관 중 가장 낮게 나타난다. 2019년 영국의 시장조사기업 입소스(Ipsos)가 세계 23개국 국민을 조사한 자료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22개 나라 국민이 가장 못 믿을 직업으로 정치인을 꼽았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모르는 사람보다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에 대한 존경과 도덕적 권위가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권에 기대하는 도덕 수준 자체가 너무 낮아졌다는 것, 이게 민주당 돈 봉투 사건이 청년층 민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지난 대선을 다시 복기해 보자. 막판에 이대남·이대녀 등으로 표심이 크게 엇갈리긴 했지만, 선거 100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은 상당히 높은 무당층 비율을 보였다. 국민의힘의 경우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거듭 갈등을 빚고 그 와중에 강성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신지예 씨를 영입하면서 청년층 남성들로부터 큰 원성을 샀다. 더불어민주당도 박원순·오거돈 등 소속 단체장들의 성 비위 사건을 비롯해 이재명 대표의 여성 관련 논란이 불거지면서 2030 여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선 이 둘의 대결을 놓고 ‘찢항대전’이라는 표현이 붙기도 했다. ‘찢’은 형수 욕설에서 파생된 이 대표에 대한 멸칭이고, ‘항’은 국민의힘 경선 당시 제기된 항문침 논란에서 비롯된 윤 대통령에 대한 멸칭이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웃음거리가 된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였다.

    2020년 총선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19세 포함)의 47.7%가 민주당, 40.5%가 미래통합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에 돌아섰고, 심지어 총선 직전 조국 사태로 그 난리를 치렀는데도 미래통합당은 민주당보다 20대 남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 그들이 우스운 정당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황교안·나경원 지도부는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극우 유튜버들에게 휘둘렸고, 막판엔 차명진 전 의원의 막말 논란까지 더해졌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문화나 현상)으로 취급되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민주당의 유례없는 압승을 놓고 조국 사태는 영향이 없었다거나 페미니즘 정책이 남성들의 분노를 산 게 아니라는 식의 억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걸 넘어설 정도로 미래통합당이 청년들에게 못나고 한심한 정당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간과하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돈 봉투 사건이 민주당에 큰 위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애초부터 도덕성이 자산이 아닌 정당에 이 문제는 해결하기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에 위기일 수도 있다. 청년들에게는 별로 새롭지도 않은 국회의원의 비리보다 수준 낮은 막말과 한심한 행태가 더 강렬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우스운 정당으로 인식되는 순간 선거는 끝이다.

    신동아 6월호 표지.

    신동아 6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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