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민주당·정의당 ‘반독재 민주화’ 세계관 끝났다” [+영상]

[Special Report | 세습 자본주의 세대, M과 Z의 정치학] 진보에서 중원으로 기치 ‘세 번째 권력’ 조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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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5-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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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 타이틀 굳이 집착할 필요 없어

    • 의견 정당 역할에 젖어버린 진보정당

    • 민주당은 尹 정권 심판 자격 없다

    • ‘금태섭 신당’과 관계 설정은…

    • 韓 진보파, 기업에 대한 이해 부족

    • 복지로 모든 문제 해결할 수는 없어

    • 페미니즘 정치도 반성적 평가 필요

    [+영상] ‘세 번째 권력’ 기치 조성주



    5월 3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조성주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홍태식 객원기자]

    5월 3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조성주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홍태식 객원기자]

    그는 무관의 정객이다. 당대표니 국회의원이니 구청장이니 선출직에 몇 번 도전했지만 다 실패했다. 차세대로 불렸지만 때깔 좋은 직책은 거의 맡은 적이 없다. 37세에 심상정·노회찬과 정의당 전당대회서 맞붙어 유명세를 탔으나 40대 중반인 지금도 유망주다. 어젠다를 던지는 데까지는 나아갔으나, 이를 집행할 자리를 꿰차는 데는 실패했다. 진보정치 한편에 존재감을 아로새기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진보의 수권을 주창해 온 현실주의자이거늘 막상 제 권력 찾기엔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 사람의 이름은 조성주다. 1978년생이다. 연세대 천문학과를 중퇴했다. 청년유니온의 설계자였고 서울시 노동협력관이었다. 책도 몇 권 썼다. 지식인 사이에선 제법 지명도가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정의당 소장파였다. ‘소장파다’(is)가 아니라 ‘소장파였다’(was)고 썼다. 이유는 그가 당의 울타리를 허물자고 말하고 있어서다. 지금 조성주는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이하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이다. 정의당 재창당 대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자는 그룹이다. 1987년생 장혜영, 1992년생 류호정 의원이 그와 함께 공동운영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정당을 떠난 사람은 즐비하다. 대개 ‘민주화’ 동지 격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했다. 일부는 한국 보수의 본산인 국민의힘 계열 정당으로 건너갔다. 이제는 제법 식상해진 레퍼토리다. 조성주도 상투적인 길로 터벅터벅 걸어가려는 심산인가. 그런 흔한 전향이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과감한 노선 투쟁을 꾀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대표되는 강한 국가(제1권력)와 사회경제적 대표성을 잃은 양당 체제(제2권력)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원으로 가자고 한다. 그리하여 세 번째 권력이다. 주체는 제3시민이다. 5월 3일 서울 마포구 정치발전소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도가 아닌 중원인 까닭

    “양당 모두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를 동원한 정치를 하고 있다. 두 정당이 대표하지 못하는 불안한 중산층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있다. 양당에도 제3시민이 있다. 최근 흥미로운 조사를 봤는데, 각 당 지지자들이 자기 정당에 대한 지지도보다 상대 정당에 대한 반대가 더 세다는 거다. 대안이 있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제3시민이다.”



    그는 “진보정치로 대표되던 세계관이 1987년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것이 ‘반독재 민주화’의 세계관이다. 거악 척결을 위해 뭉치자는 단일 대오 담론이다. 그가 보기에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공유하는 세계관이다. 1987년에 형성됐으니 햇수로 36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쉰내가 난다고 힐난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잘 숙성돼 감칠맛 나는 묵은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쉰내와 숙성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뿐이랴. 잘 익은 세계관은 정당 처지에서 보면 조직화의 밑거름이다. 지지층 결집의 연료라 말할 수도 있다. 이 세계관을 배제해 버리면 지지층 상당수를 포기하고 선거에 나서는 꼴이 된다. ‘누구 표를 받으려는 것이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 그러면 돌아오는 결과는 흔히 보아온 신당의 실패다. 짧은 열망과 빠른 소멸의 사이클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현실주의자 조성주에게 현실론에 대한 질문부터 꺼낸 이유다.

    ‘반독재 민주화’는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에게도 드리운 정서다. 한국 진보의 지지기반이다. 벗어나는 게 쉽나.

    “정치에는 오랜 통념 또는 편견이 있다. 유권자의 생각과 의견에 맞춰 정당이 배열된다는 것이다.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유권자가 정당의 세계관에 맞게 배열된다고 본다. 민주당 또는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반독재 민주화’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건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다른 세계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관을 제시하는 정당이 나오면 유권자는 재배열될 것이다.”


    조성주 위원장은 새로 만들어질 정당이 “진보라는 타이틀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조성주 위원장은 새로 만들어질 정당이 “진보라는 타이틀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중도 대신 중원이라는 단어를 쓰더라. 탈진보라고 표현해도 되나.

    “꼭 탈진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정당이) 한국정치에서 전통적으로 얘기되던 진보정당은 아닐 것 같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은 특수한 모델이 있었다. 노동조합과 영남의 공업지대, 시민사회단체를 기반으로 해 (민주당에) 왼쪽으로부터 충격을 가하는 모델이었다. (새로운 정당은) 그런 의미에서의 진보정당은 아니다. 다만 불평등과 산업 전환 등의 문제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표하고 공동체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진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의미의 진보성은 담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라는 타이틀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다.”

    본디 깃발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실험이 성공하면 한국 정치에 지진 같은 충격파를 가할 테다. 세 번째 권력은 출범 선언문에서 정의당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왼쪽을 자처하며 잔여적 권력을 기대하는 사실상의 위성정당”이라 했다. 조성주의 생각이 짙게 밴 문장일 것이다. 그럼에도 덧붙일 수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거다.

    대선주자와 지역 기반 없이 제3당이 성공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제3당 시도가 실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제3당이 만들어지면 기성 정당이 다루지 못한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기보다는 대선이 목적이다. 대선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원래 당으로 흡수되거나 실패했다. 나는 한국 정치의 주류 무대 즉 메인 스테이지가 비어 있다고 본다. 주요 정당이 책임정치의 영역에서 이탈해 장외로 나가 자기 진영 지지자에게 호소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요한 문제가 합리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새로운 정당은 대선후보나 특정 지역보다 새로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요구가 정말 불평등을 완화하나

    탈진보는 아니나 진보라는 단어는 고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중원으로 가려면 이념을 넘어서야 하니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다만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한국에서 진보정당 실험은 거대 노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배타적 지지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얘기를 해볼 때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노동 중심 정당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했다. 진보정당이 이 모델을 지향할 필요도 없나.

    “(노동 중심 정당 모델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민주노동당부터 시작된 20년간의 실험인데,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모두 가능하다. 긍정적 평가를 하자면, 왼쪽으로부터의 충격을 통해 노동과 복지국가 담론이 한국 정치 안에 들어왔다. 부정적 평가도 가능하다. 진보가 정당을 시작한 이유는 권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유권자와 시민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중원으로 가자는 말의 뜻은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사이에 있던 끈끈한 관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미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사이에) 그런 관계가 성립돼 있지 않다. 민주노총에 대한 진보정당의 짝사랑 관계 아닌가.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당의 정책 대안이 되고, 이를 통해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초기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안팎이었다. 지난해 노동조합 조직률은 15%쯤 됐을 거다. 50%가 오른 셈이다. 한국의 진보파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오르면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봤다. 그런데 누가 노조 조합원이냐가 달라졌고 노동자의 개념 역시 산업 변화 등으로 바뀌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상당수가 소득 상위 20%에 속한다.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당의 대안이 됐을 때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로 나아간다는 도식은 지금 한국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대표하지 못하는 노동을 정당이 대표할 때 불평등 완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을 대변해야 한다는 얘기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노동은 만나는 것부터가 어렵다.

    “맞다. 아주 냉정히 얘기하면 그들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당에) 몰표를 주고 조직적으로 정치 후원금을 내는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부유(浮游)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선거와 제도가 중요하다. 선거를 통해 그들에게 유용한 정책이 제시돼야 하고, 제도를 통해 대표돼야 한다.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정당이 정확히 포착하기가 어렵다. 전 세계 정당들이 마주하고 있는 난제다.”

    이정미 대표를 포함한 정의당 지도부는 재창당 전국 대장정에 나섰다. 여기서 다른 진보정당과의 외적 재창당 얘기가 나왔던데.

    “일종의 퇴행이다. 정의당과 진보당, 녹색당이 각자 역할을 하는 것만도 못한 일이다. 정의당이 처한 본질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자면서 비대위와 대의원 대회에서 혁신 재창당을 결의했는데, 시민들은 이걸 하는지도 모른다. 이정미 대표께는 죄송하지만 가장 참담한 상황이다.”

    정의당이 수권 정당보다는 의견 정당으로 전략했다는 표현이 있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 역할에 너무 젖어들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진보정당 찍고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찍는 구도에 젖어들어 버렸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민주당과 너무 날을 세우면 안 되는 거 아냐?’라는 고민이 당내에서 계속 나온 거다.”

    내년 총선에서 정권 심판 바람이 불어 제3지대의 활동 공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권 심판의 자격이 누구한테 있나. 나는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경우 민주당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했고 이쪽(국민의힘)은 ‘와라, 우리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로 나아갔다. 마치 짜인 판처럼 말이다. (정권) 심판의 자격이 민주당에 있다고 유권자들이 인지하겠나. 다수 유권자는 새로운 대안이 없다면 기권을 택할 것이다.”

    ‘세 번째 권력’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계획인가.

    “지금은 관계 설정이라고 얘기할 만한 게 없다. 각자 고민하는 정치의 변화 방향 또는 내용을 일단 꺼내보자는 거다. 금 전 의원의 ‘성찰과 모색’은 불안한 중산층을 대변하는 수도권 30석 규모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정리했고, 세 번째 권력은 새로운 세계관을 갖춘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쯤 돼야 (제3정당에 대한) 구체적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 출신이건 국민의힘 출신이건 공유 지대가 있다면 토론할 수 있나.

    “과거의 이력을 불문하고 한국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있다면 열린 공간에서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다. 같이 모여 정당을 할 수 있을 것이냐는 두 번째 문제겠지만, 공론장을 여는 데는 모든 사람이 뛰어들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권력 창립식 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부른 것도 그런 의미였다.”

    시장과 사회의 조화

    진보의 재구성을 논하려면 기업에 대한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다. 진보는 기업을 착취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놓고 기업을 부정하진 않지만, 기업을 권력집단의 일원이라 여긴다. 협력이나 소통의 상대보다는 견제 혹은 규제의 대상으로 본다.

    민주노동당 출신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친기업 진보주의’를 주장한다.

    “‘친기업 진보주의’의 의미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진보가) 시장과 기업에 대한 입장을 바꿀 필요는 있다. 한국 기업에 여전히 전근대적 방식이 남아 있다는 비판적 문제의식은 있다. (다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적 정책과 사회적 정책을 혼합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 독점과 거대 기업에 대한 견제는 필요한데, 그 방식이 법과 제도여야만 할까. 기업은 기업으로도 견제가 가능하다. 새로운 기업이 출현해 시장을 개척하면서 기존 기업을 견제할 수 있다. 기업과 시장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한국의 진보파가 굉장히 부족했다.”

    세 번째 권력에서 삼성을 비롯한 4대 대기업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거기까지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 권력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한쪽에서 재벌을 견제하면서 각종 규제를 만들었지만 결국 규제를 가장 잘 활용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내는 건 재벌이다. 그 능력이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만들어 소비자와 시민에게 긍정적 후생이 돌아갈 수 있게 (정치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등 산업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진보정당은 경제 문제도 ‘복지로 해결하자’고 답할 것 같은 인상이 든다. 그간 진보에서 회자되던 ‘복지는 공동구매니 함께 잘사는 길’ 유(類)의 담론도 떠오르고.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 전환을 통해 공동체가 유지되고 불평등도 해소되는 거지, 복지를 통해 모든 불평등과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산업 전환이다. 거기서 피해자가 줄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소득을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산업 전환도 늦고 사회안전망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 경제가) 더디게 가는 거다.”

    이 대목에서 그가 말머리를 ‘기본소득’으로 돌렸다. 기본소득이 새로운 복지의 시금석인 양 논의되는 데 대한 비판이다.

    “나는 기본소득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무례하기 때문이다. 그냥 ‘매달 100만~200만 원 줄게’ 이 얘기 아닌가. 노동이 그런 의미만 갖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언제부터인가 한국 진보파가 노동시장 정책은 도외시하고 기본소득 유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에) 기본사회위원회 꾸렸는데, 민주당이 이 정도까지 망가졌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국민의힘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이 있다. 안심소득은 일정 금액에 미달하는 가구에 기준소득(중위소득 85%)과 가구소득을 비교해 ‘부족한 금액의 절반’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조성주의 생각을 들어보자.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비교하면 어떤가.

    “안심소득 모델은 일종의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인데, 긍정적으로 본다. 기본소득보다 효과적이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노동 참여에 대한 욕구를 계속 유지시키면서도 소득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점이 많다.”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구도를 보면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의 논쟁 구도가 떠오른다. 한데 선별이라 해서 보수도 아니고 보편이라 해서 진보도 아닌데, 구도 자체가 허위 아닌가.

    “굉장한 허위다. 반성적으로 평가하면 (진보가) 구도를 짜는 데 아주 결정적으로 실책했다. 어떤 복지는 보편성이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적극적이고 선별적으로 제공되는 게 중요한 복지도 있다. 그런데 보편과 선별로 구도를 나눠버리니 제대로 논의돼야 할 정책이 논의되지 않는다.”

    10년 전 정책과 레토릭

    정의당이 우경화했다기보다는, 민주당이 이미 충분히 왼쪽으로 왔기 때문에 정의당의 차별성이 없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절반 정도는 인정한다. 20여 년간 진보정당이 주장한 사회정책 및 노동 정책 상당수가 한국 정치에 들어왔다. 관료들도 20년 전과 다르다. 정당들이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런 면에서 진보정당이 차지하던 빈자리가 줄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반대로 진보정당으로서는 메인 스테이지로 뛰어들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얘기도 된다. 메인 스테이지는 어떤 곳인가. 시장과 기업에 대해 기존과 다르게 얘기해야 하고 외교안보에서도 원칙적 입장보다는 현실주의적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공간이다. 정작 지금 정의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레토릭을 보면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세 번째 권력의 출범 선언문에는 “‘절제와 공존의 자유주의’ ‘문제 해결의 책임 정치’ ‘기득권에 도전하는 미래 정치’”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 문장을 언급하면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보수 쪽의 유승민·김세연 전 의원 등과도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더라.

    “절제와 공존의 자유주의를 얘기하는 순간 보수는 절멸의 상대가 아니다. 보수도 진보를 절멸의 상대로 보지 말아야 한다. 진보는 노동을 대변하지만 주로 노동을 설득해야 하고, 보수는 기업을 대변하지만 기업을 설득해야 되는 책임이 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조성주 위원장이 지난해 9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후보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장혜영·류호정 의원(왼쪽부터)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성주 위원장이 지난해 9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후보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장혜영·류호정 의원(왼쪽부터)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체성 정치 탓에 정의당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진단이겠으나, 정체성 정치에 너무 몰입했다는 비판은 가능할 것 같다. 정체성 정치 하면 떠오르는 장혜영·류호정 의원과 행보를 함께 하고 있는데.

    “장혜영·류호정 의원 등과 함께 내부 토론을 많이 했다. 진보정당이 정체성 정치를 좋게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정리했다. 정체성 정치에 과몰입하면 자유나 다원성이 억압되기도 한다. 권위주의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체성 정치도 다원성을 억압한다. 다수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갔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정체성 정치 탓에 정의당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핵심 문제는 87년 세계관이다. 문제는 정체성 정치라는 중요한 이슈와 갈등이 등장했는데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성적 평가가 필요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세 번째 권력 출범식 축사에서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모두 혐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했다. 정체성 정치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전 대표를 축사자로 초대했기 때문에 현장에선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전 대표가 명백히 혐오 프레임을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혐오라고 낙인찍지 말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어떤 의견이 나왔을 때 무조건 혐오라고 낙인찍는 것은 공론장의 대화 방식은 아니다.”

    노웅래·정청래 vs 조성주·장혜영

    그는 지난해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마포구청장에 출마했다. 정의당이 유일하게 낸 서울 지역 기초단체장 후보였다. 4.48%를 득표했다. 당시에도 민주당 권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 직후 그와 만났을 때 2024년 총선에서 마포에 출마한다고 했다.

    계획대로 내년에 마포에 출마하나.

    “원래 계획은 그랬다.”

    계획이 바뀌었나.

    “여전히 장혜영 의원이 마포을, 내가 마포갑에 출마할 계획은 잡고 있는데 큰 과제가 하나 생긴 셈이다. 진보정치를 완전히 바꾸는 게 1번 과제다.”

    마포갑과 마포을 현역은 민주당의 노웅래·정청래 의원이다. 노 의원은 뇌물 수수, 알선 수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정 의원은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운동권 출신으로 강성이라고 평가받는다. 조성주·장혜영과의 전선이 또렷해 보인다.

    신동아 6월호 표지.

    신동아 6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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