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학생이 아르바이트 구인 게시판을 보고있다.
◆ “어디 가르치려 드느냐”
나는 베이커리, 카페, 서점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남의 돈 벌어 먹고살기 힘들다”는 엄마의 말을 직접 체험했다. 많은 고객이 내게 이유 없이 화를 냈고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하녀’였다.
베이커리의 카운터에서 일할 때 한 중년 여성분은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자신은 케이크 하나만 사면 되니 빨리 계산해 달라고 했다. 일종의 새치기인 셈인데, 웃으며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분으로부터 “융통성이 없다” “어디 알바생 주제에 가르치려 드느냐” 등 온갖 말을 다 들어야 했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내 손을 꼭 쥐고는 대신 사과했다. 나보다 더 오래 일한 그 친구는 ‘손님이 왕’이라는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다.
나도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그런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했고 몸에 익혔다. 동시에 감정노동자의 고충도 알게 됐다. 특히 알바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적 존엄성을 무시당한다. 많은 사람은 ‘무슨 말을 내뱉든 알바생은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인식은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 약자에 대한 배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등한 인격체로는 대우해줘야 한다. 나는 평생 알바생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전아영 북한학과 4학년
◆ 유령 만드는 영어학원
서울 반포의 작은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 생애 첫 직장인 셈이다. 학원 측은 영어교재를 만드는 게 내 업무라고 했다.
학원엔 내 또래 알바생이 많았다. 첫 출근한 날 우리는 문제집 3권 정도로 추정되는 양을 다 풀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를 풀어야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것 같아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한 달 꼬박 무급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원 측은 “끈기가 없네” “인내심이 없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이 현명했고 나는 멍청했다. 하지만 그때는 친구들이 너무 일찍 관둔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무급 수습기간이 지나 걸러질 친구들은 걸러지고 원장의 말을 잘 듣는 순한 양들만 남았다. 하지만 학원의 착취와 부당한 임금 지급은 계속됐다. 한 알바생이 결국 폭발했다. 그는 원장과 다툰 뒤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청 사람이 학원에 왔을 때 그 알바생은 유령이 돼 있었다. 지문인식 출퇴근입력기에서 그 알바생의 지문이 지워졌고 CC-TV에서도 그 알바생이 나오는 영상이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학원 측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 알바생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알바를 할 땐 당연히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고 여긴다. 지나고 보면 이용당한 내 자신이 안쓰러워진다. 학원은 우리에게 당근을 주는 척 채찍을 휘둘렀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만 언제쯤이면 아프지 않은 시대가 올 수 있을까.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이은수 심리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