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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영화 ‘미스터 존스’ vs 진리를 얻는 영화 ’더 프롬’[황승경의 Into the Arte⑱]

진실은 드러난다, 낯설 뿐이다

  •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진실을 찾는 영화 ‘미스터 존스’ vs 진리를 얻는 영화 ’더 프롬’[황승경의 Into the Arte⑱]

  • ● 개인 농장 집단화가 낳은 참상 ‘홀로도모르’
    ● ‘미스터 존스’는 목숨 걸고 스탈린 폭정을 알리고…
    ● 경쾌하게 나누는 성소수자 이야기 ‘더 프롬’
    ● 남을 위하는 마음이 결국 나를 위한다는 진리
‘미스터 존스’에서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 분) 기자가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을 촬영하고 있다. [(주)제이브로 제공]

‘미스터 존스’에서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 분) 기자가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을 촬영하고 있다. [(주)제이브로 제공]

‘더 프롬’에서 디디(메릴 스트리프 분)와 베리(제임스 코든 분)가 열창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더 프롬’에서 디디(메릴 스트리프 분)와 베리(제임스 코든 분)가 열창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영화계의 풍속도가 바뀌었다. 대형 스크린과 입체음향을 고수하던 ‘극장 충성파’들도 신작을 앞세운 넷플릭스로 이동했다. 올해 한국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TV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시장은 ‘디즈니 플러스’ ‘애플TV플러스’ 두 복병이 상륙하면서 넷플릭스와 3파전을 예고하고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OTT가 2021년 한국 영화팬들에게 어떤 활기를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작이 두 편이나 비슷한 시기에 공개돼 눈길을 끈다. 극장 개봉작(1월 7일) ‘미스터 존스’와 2020년 연말 넷플릭스 개봉작 ‘더 프롬’이 그 주인공이다.

홀로도모르를 세상에 알린 기자 ‘미스터 존스’

‘미스터 존스’ 스틸컷. [(주)제이브로 제공]

‘미스터 존스’ 스틸컷. [(주)제이브로 제공]

영화 ‘미스터 존스’는 정권의 폭압에 속수무책 굶어 죽는 약자들의 ‘홀로도모르’를 세상에 알린 한 기자의 이야기다. 얼핏 ‘홀로도모르’에서 ‘홀로코스트’가 연상된다. 대학살이라는 의미에서는 상통하지만 어원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 

홀로코스트가 그리스어로 ‘전체’(ho´los)와 ‘불에 태우다’(kausto´s)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면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 ‘굶주림’(holodo)과 ‘몰살’(mor)이 결합된 말이다. 즉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이 35개 점령국 전역에 걸쳐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하지만, ‘홀로도+모르’는 유럽 최고 곡창지대 우크라이나에서 1932년부터 2년간 주민들이 굶어 죽은 대참상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서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는 700여 편이 제작됐지만, 홀로도모르 관련 영화는 3편이 전부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탈린의 악행이나 공산주의의 망상, 자본주의 폐해는 더는 신선한 주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거대 권력의 통제와 억압으로 조작·은폐되는 사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용 지식인들의 간계에 정의가 부정당하고, 권력의 음모로 국민이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난다는 굵은 메시지가 울림을 남긴다. 

1930년대 서유럽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신기루에 열광했다. 일부는 스탈린을 마르크스 이론을 실현한 ‘개혁 군주’로 여길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촉’을 통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명석한 기자가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20대 후반 가레스 존스(1905~1935)는 약관의 나이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외교 자문을 맡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3년 1월 독일 의회 원내 1당인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자 그는 독일로 날아간다. 히틀러와 인터뷰하면서 독일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그는 영국 지도층에게 경고하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는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소련의 스탈린을 점찍는다. 스탈린이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체제의 우월성을 부르짖으면서도 무언가를 감추는 게 왠지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개인 농장의 집단화가 낳은 참상

‘미스터 존스’는 스탈린의 수탈로 인한  대기금의 참상을 고발한다. [(주)제이브로 제공]

‘미스터 존스’는 스탈린의 수탈로 인한 대기금의 참상을 고발한다. [(주)제이브로 제공]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추스르기에도 정신이없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스탈린의 꼼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서방세계의 모스크바 주재 언론인들은 스탈린에게 매수돼 소련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전할 따름이었다. 친소(親蘇) 언론인인 뉴욕타임스 모스크바지국장 월터 듀란티는 스탈린 찬양 기사로 퓰리처상 수상자(1932)가 될 정도였다(수상 박탈에 대한 움직임이 일기도 했으나 듀란티는 여전히 퓰리처상 수상자다). 당시 서방 기자들은 모스크바를 벗어날 수 없었고, 당국의 철저한 감시·감독하에 제한된 취재를 해야 했다. 영화에서 존스(제임스 노턴 분)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우크라이나 설원에 도착한다. 

기차에서 내린 존스는 끝없이 펼쳐지는 우크라이나 대기근 현장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시라도 급히 참상을 세상에 알려야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번번이 기사는 삭제된다. 그렇다고 진실은 묻히지 않았다. 1933년 3월 29일 미국과 영국 신문에 ‘홀로도모르’가 보도되자 미국과 유럽사회는 경악했다. 듀란티를 비롯한 친소 언론인들은 ‘신출내기 기자의 객기’ ‘과장 기사’라며 존스를 공격했다. 국제적인 비난의 화살을 맞았지만 존스는 멈추지 않았다. 존스는 경제 데이터를 근거로 대기근의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한 기사를 같은 해 4월 13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내보냈다. 

존스에 따르면 스탈린은 우크라이나의 개인 농장을 강제적으로 집단화했다. 개인 농장 지주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오지로 추방하다 보니 정작 전문적으로 농사지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국이 가축까지 빼앗으려고 하자 농민들은 ‘빼앗기느니 차라리 잡아먹자’며 농사지을 가축도 도축해 버렸다. 농사지을 사람도 가축도 부족하니 수확량 부족은 불 보듯 뻔했다. 

스탈린은 산업화 시설 건설 비용을 충당하려 우크라이나 농작물 수출을 무자비하게 감행했다. 그 와중에 1930년 대풍년 당시 산출량을 기준으로 수탈량을 정하다 보니 집집마다 농작물이 남아나지 않았다. 거리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넘쳐났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농작물로 살아가던 러시아 남부와 중앙아시아에까지 대기근이 확산했다. 카자흐스탄은 인구의 40%가 아사(餓死)하는 참혹한 상황에 이르렀다.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으로 무고한 고려인들이 대거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맨손으로 땅을 개간해야 했다. 존스는 이러한 소련의 집단화 정책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친 것이다. 

소련이 입국을 금지하자 존스는 1934년 말 동북아시아로 눈길을 돌렸다. 일본을 거쳐 중국 베이징에 당도한 그는 여러 인물을 인터뷰하며 동북아 정세를 관찰했다. 일본의 만주 침략 야욕을 파헤치고 싶었던 것일까. 존스는 만주로 발길을 옮겼지만 외몽골 지역에서 납치됐고, 3주 뒤 3발의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납치범들은 베일에 가려졌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소련으로 향한다. 


‘미스터 존스’ 스틸컷. [(주)제이브로 제공]

‘미스터 존스’ 스틸컷. [(주)제이브로 제공]

영화는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이 존스에게 영향을 받은 것처럼 묘사한다. 조지 오웰은 1945년 러시아혁명의 몽상과 스탈린의 야멸찬 독재를 돼지에 풍자하는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하면서 소련의 야욕에 경종을 울렸지만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다. 존스와 오웰을 연결한 것은 ‘백전노장’ 아그네츠카 홀란드(73) 감독이 스탈린의 독재국가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출신의 홀란드 감독은 소련이 자행한 억압을 겪었고 1968년 체코 유학 시절 ‘프라하의 봄’을 현장에서 직접 목도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절대 권력을 고발하며 그가 후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포용과 이해를 권하는 울림이 아니었을까.

경쾌하게 나누는 편견과 차별 이야기 ‘더 프롬’

‘더 프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 프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라이언 머피(56)는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작가이자 감독, 제작자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라이언 머피는 2018년 넷플릭스와 5년간 콘텐츠 독점계약을 맺었다. 2년 전 그의 넷플릭스행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이는 선견지명이 됐다. 

‘더 프롬’에는 이름도 쟁쟁한 메릴 스트리프, 니콜 키드먼, 제임스 코든이 한자리에 모였다. 뮤지컬영화다 보니 연기뿐 아니라 노래와 안무도 최고여야 한다. 이들 모두 이미 여러 뮤지컬영화에 출연한 연기파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뮤지컬영화지만 화려하거나 거대한 세트는 없다. ‘더 프롬’은 다른 뮤지컬영화 ‘라라랜드’나 ‘맘마미아’보다 훨씬 원작의 뮤지컬 무대 상황에 집중한다. 브로드웨이 극장을 가지 못하는 관객은 영화가 주는 리듬과 선율에 흐뭇해한다. 


‘더 프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더 프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인 디디(메릴 스트리프 분)와 베리(제임스 코든 분)는 실의에 빠졌다. 한때는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며 손대는 작품마다 히트를 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젠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새 작품을 만들 때마다 흥행도 비평도 바닥을 친다. 

재기를 노리던 디디와 베리는 한 소녀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인디애나주의 여고생 에마(조 엘런 펄먼 분)가 ‘커밍아웃’을 하며 동성 애인과 졸업 파티(Prom·무도회)를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 것. 동성연애를 허용하지 않는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 급기야 졸업 파티 자체를 없애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허영심 많은 배우 엔지(니콜 키드먼 분)와 소심한 트렌트(앤드루 라넬스 분)가 함께 학교로 향한다. 이들 4인방은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브로드웨이 배우라는 자신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해결하고 작품 홍보도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들은 소녀가 졸업 파티에 동성 연인과 참가할 수 있도록 설득해 학교 측의 졸업 파티 재개를 약속받는다. 그러나 곧 더 큰 난관에 부딪힌다. 학교 친구들의 ‘왕따 작전’에 에마는 더욱 코너로 몰리고, 설상가상 에마의 동성 연인도 파티 참여를 꺼린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에마는 유튜브를 통해 담담하게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브로드웨이에서 날아온 4인방의 열창에 담긴 격려에 에마는 ‘나답게’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4명의 배우는 불손하고 얄팍한 의도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각자 에마의 성장을 위해 성심을 다한다. 가슴속 깊이 꽁꽁 숨겨둔 자신들의 상처도 치유한다. 

뻔한 스토리의 뮤지컬이라는 이유로 관객의 호불호가 나뉠 수 있지만, 이 뮤지컬영화는 우리 모두 두려움이나 콤플렉스가 가득한 약자라는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 

결국 머피 감독은 상호부조의 다양한 세상을 유쾌하게 선사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도사린 예술의 허상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은 비열한 사회라고 세상을 욕하지 않는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1년 2월호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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