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윤핵관? 박근혜 ‘십상시’ 기억하라

[봉달호 편의점 칼럼]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2-03-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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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인 없었다면 지금의 尹도 없어

    • 이준석 결과적으로 옳았다

    • ‘윤핵관’ 가까이하면 박근혜처럼 실패한다

    • 非지지자 끌어안아야 ‘성공한 정부’ 가능

    3월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사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 하고 있다. [뉴스1]

    3월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사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 하고 있다. [뉴스1]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당선증을 청년보좌역에게서 전달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당선증을 청년보좌역에게서 전달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수레바퀴가 없어도 훌륭한 사회는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 없는 사회는 없었다.”-어슐러 K. 르 귄(1929~2018)

    태초에 ‘스토리’가 있었다. 약 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니까 2020년 4월 총선으로 말이다. 그 무렵 누군가 “다음 대통령선거에는 정권교체를 이룰 것”이라 예언한다면 ‘몽상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희망이 지나치다”며 비웃음도 받았을 것이다. 당시 보수정당은 언감생심 정권교체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다음 대선에 내세울 후보조차 변변치 않았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후보로) 백종원은 어때요?”라는 씁쓸한 유머가 등장하고, 민주당은 ‘20년 장기 집권’을 공언했을까.

    5년 전으로 가보자.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자신들이 창출한 대통령 권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방치한 ‘보수’에 대한 탄핵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수는 자숙하지 않고 당명(黨名)만 바꿔 고루한 후보를 내민 끝에 문재인 정부를 낳았다.

    5년 만에 엄청난 반전이 벌어졌다. 보수정당 대통령이 탄생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증을 받은 3월 10일은 공교롭게도 5년 전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날이다. 스토리 없는 사회는 없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의 ‘중도 개혁’, 보수를 재건하다

    ‘반전의 시작’이 첫 번째 챕터다. 이는 21대 총선 이후 상황부터 출발한다. 선거에 대패하고 보수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넘어갔다. 선거에 지고 정당이 위기에 처하면 비대위라는 꼼수로 상황을 모면하는 건 여야 막론 한국 정치의 고질병 중 하나다. 숱한 비대위가 생겨났지만 성공한 비대위는 드물다.



    유이(唯二)하게 성공한 케이스를 찾자면 2011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대위,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정도. 이 두 비대위의 공통점은 ‘김종인’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2011년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그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며 화제의 인물이 됐고, 2016년 민주당 비대위에선 대표를 맡았다. 2011년 비대위 성공을 기반으로 박근혜는 대통령에 등극했으며 2016년 비대위 성공을 기반으로 민주당은 제1당이 됐다.

    보수는 재건(再建)을 이뤄줄 해결사로 그를 영입했다. 와서 뭘 했나. ‘국민의힘’을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이니 미래통합당이니 하는 낡은 이름부터 버렸다. 중도 포지션을 확실히 했다. 투쟁하는 야당이 되라는 극성 보수층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국회 상임위원장 야당 몫 전체 보이콧’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술을 구사했다. 국정 실패의 모든 책임을 여당에 돌리겠다는 것.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 “김종인은 민주당이 보낸 첩자”라는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서진(西進) 정책을 폈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찾아가 무릎 꿇었다. 10개월 남짓 비대위원장 재임 기간에 알려진 것만 예닐곱 차례 호남을 찾았다. 보수정당 지도자로서는 유례없이 빈번한 호남 방문. 이에 대해서도 “호남에서 몇 표나 나온다고 거기를 그렇게 오가냐”는 극성 보수층의 비난이 이어졌다.

    지난해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성범죄 때문에 열린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보수는 압승을 거뒀다. 부동산 문제 등으로 보수의 낙승이 예상됐다지만 쉽기만 한 선거란 없다. 보수정당으로선 여러 난관을 뚫고 기반을 다진 선거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제3지대에 양보하지 않고 국민의힘 후보를 단일 후보로 만든 건 ‘신의 한 수’였다. ‘유일 야당’ 그리고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의힘의 입지를 단단히 구축했다. 만약 그때 재보궐선거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안철수 대표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보수정당으로서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시나리오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다면 20대 대선은 처음부터 양자 대결이 돼 쉬웠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현실 정치의 상호작용을 모르는 어설픈 상상에 불과하다. 만약 그랬다면 김종인표 중도 개혁은 파산을 선고받고, 반대파의 대공세가 이어졌을 것이다. 보수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쪼개져 2017년 대선 구도가 다시 재현됐으리라. 정치는 생물이다. 이것 떼어 저기에 갖다 붙이면 들어맞는 레고 블록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는 보수정당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탄핵 이후 선거에 연전연패하며 모래알이 돼버린 당 조직을 재가동하고 승리의 감각을 되찾았다. ‘대선을 위한 몸풀기’로서 소중한 경험이 됐다. 다른 곳도 아닌 수도권, 특히 서울 민심을 반(反)정부 깃발 아래 뒀다.

    내부 분열 초래한 ‘윤핵관’

    이러한 노력 끝에 ‘정당의 토대’가 생겼다. 덕분에 윤석열 당선인이 들어올 공간이 만들어졌다. 보수정당이 흔히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수구꼴통’ 정당으로 남아 있었다면 윤 당선인이 과연 입당했을까? 그런 정당으로 오늘의 승리를 일굴 수 있었을까?

    보수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이번 챕터는 ‘개혁’. 중심인물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다. 그의 정치 성향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의회 경력이 전혀 없는 30대 당대표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로 선출됐다는 사실은 보수 개혁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가늠케 한다.

    이 대표가 윤 당선인을 제3지대에 남겨놓지 않고 국민의힘으로 서둘러 끌어들인 전략은 과연 옳을까? 반(反)페미니즘으로 젠더 이슈를 앞세운 전략도 옳을까? 논란이 분분하다. 세상 많은 일과 마찬가지로 정치는 결과론적으로 해석되곤 한다. 비록 과정은 아슬아슬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석의 전략은 대개 옳았다. 정치를 게임으로 여기며 갬블러처럼 승부를 즐기는 태도는 이준석의 장점이자 커다란 단점이다. 모든 장점의 이면에는 단점이 함께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어설픈 승부수를 연발하다 자기 책략에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이준석의 방식이 극적으로 통했다.

    이번엔 시점을 지난해 11월로 옮겨보자. 당시 화두는 ‘윤핵관’이었다. 이른바 ‘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를 일컫는 이 용어의 유래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1월 5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취재진에게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

    1월 5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취재진에게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

    그즈음 정치권의 가장 큰 화제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모셔오는’ 문제였다. 윤 당선인이 그를 수차례 찾아가 선대위원장 직책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여론은 스토리 1막의 중심인물 김 전 위원장을 ‘당연직 선대위원장’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요구 사항’을 들고나왔다. 언론은 김 전 위원장이 전권(全權)을 요구한다고 ‘또’ 곡해했지만 당시 김종인이 지적한 문제는 하나였다. ‘선대위 규모가 너무 크고 방만하다’는 것. 선대위를 경량화하고 실무형으로 재편하라고 주문했다. (실제 그 요구는 올해 1월 달성됐고, 그와 함께 김종인도 정리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그즈음 어느 매체에 김 전 위원장과 이준석 대표를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기사가 잇따라 등장한다. 매번 익명으로 “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식의 출처가 등장했다.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이 저급한 술수를 부리는 듯한 의혹이 짙었다. 당사자인 김 전 위원장은 퍽 의연했지만 이 대표는 발끈했다. ‘윤핵관’이라는 표현은 그때부터 등장했다. 이 대표의 좌충우돌도 거기서 비롯했다.

    ‘윤핵관’은 잊힐 만하면 나타났다. 등장하는 시기를 살펴보면 절묘하다. 공통점이 있다. 이 대표와 김 전 위원장, 윤 당선인이 결합하려 하거나 불화하면 늘 중간에서 훼방을 놓거나 갈등을 증폭하려 든다. 사감(私感)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김 전 위원장, 이 대표와 깊은 감정적 앙금이 있는 사람이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尹을 위해서? 모든 ‘문고리’가 원래 그런 법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여겨진다. [뉴스1]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여겨진다. [뉴스1]

    윤석열 정부 성공 여부는 ‘윤핵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핵관’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논란이 많다. 중요한 건 ‘누구냐’가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관건이다. 그간 ‘윤핵관’의 행보를 보면 감정적이고, 공격적이며, 얕은 술수를 즐기고, 윤 당선인에게 왜곡된 정보를 주입해 그를 독점하려 든다. 물론 나름대로 ‘윤 당선인의 성공을 위한 거야’라고 자부심을 가질 테지만 세상 모든 ‘문고리’가 원래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십상시’를 보라.

    역사는 돌고 도는 부메랑이다. 측근에만 의지해 내외부 사정에는 까막눈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이 ‘검사 윤석열’이었다면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대통령 윤석열’이다. 벌써 위태롭다. 정치에 입문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위험의 징조가 여럿 보인다. 윤 당선인에게 이어지는 소통의 통로가 숱하게 왜곡·차단되고 있는데 본인은 눈치조차 못 챈다. 오히려 호기롭게 “윤핵관이 뭐 어때서?”라고 두둔한다. 검사로서 옆에 있는 동료는 함께 녹봉을 받던 ‘동지’였을지언정 정치인으로서 그들은 ‘문고리 권력’일 따름이다.

    아직 정권이 출범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악담한다고 탓하지 마시라. 대체로 당선 직후엔 덕담을 건네기 마련이지만 ‘소중한’ 정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다. 성공을 바라기에 앞서 하는 비판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격려와 찬사가 부족해 처참히 무너졌던가.

    다시 시간을 되돌려 생각해 보자. 5년 전에 감히 ‘정권교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었던가? 아니 2년 전, 1년 전만 해도 그랬던가? 윤석열이 ‘별의 순간’을 잡은 것이 아니라 보수가 ‘별의 순간’을 잡은 것이다. 보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건대, 기적과도 같은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보수는 앞으로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흔히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는데, 이번 경우는 ‘기회가 곧 위기’다. 바짝 긴장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자기비판적이어야 한다.

    기회가 곧 위기

    집권에 성공하자 벌써 경거망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이른바 “문재인 정권 적폐를 쓸어버리자”는 식의 과격한 발언이다.

    돌아보면 문재인 정부 5년은 참혹했다.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와 기준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 여론이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선거 구도에서 보수가 얻은 결과는 고작 0.7% 차이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결코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승리고, 승리라고 말해서도 안 되는 승리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대선 당일 저녁 풍경을 보자. 박빙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보수 지지자가 많았다. “어떻게 이재명을 (혹은 민주당을) 지지할 수가 있지?”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것이 보수의 현주소다. 자신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대상의 반대편에, 자신들이 지독히 싫어하는 대상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다. 존재 자체를 믿지 않고,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절반의 민심을 잃었다. 윤석열 정부도 똑같다면 문재인 정부처럼 될 것이다.

    나라가 동강 났다. 경제적 양극화만큼이나 정치적 양극화도 심각하다. 선거 결과를 보라. 이토록 절묘한 5:5가 있었던가. 윤 당선인은 헌정사 대통령 가운데 가장 근소한 득표율 차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몸가짐이 달라야 한다. 상황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상대 후보에게 도덕적·정책적 흠결이 많았음에도 끝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 절반의 마음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그들을 정성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윤 당선인을 보면 걱정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의회 경험이 없는 0선 대통령이다.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고, 검찰에서 물러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이다. 오랜 직업적 경험은 습관으로 남기 마련이다. 검사는 누군가를 조사해 처벌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한 ‘정의감’이 국민이 윤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마땅히 달라야 한다. 선거 중반 윤 당선인이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원칙에 따라 한다는 뜻이었다 하더라도) 국민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데에 준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지금까지완 달라야

    3월 10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3월 10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것도 정치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선거 막판에 접어들수록 “승부사 기질이 있다” “대중 연설도 잘한다”라며 윤 당선인 지지자는 열광했지만 환호에 취하면 안 된다. 대통령에겐 쓸모없는 자질이다. 언제까지 승부나 행운에 의지해 국정을 이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이란 ‘조율’에 있다. 극단적으로 국민이 갈라진 작금의 상황에선 더 그렇다. ‘정치 왕초보’인 윤 당선인이 헌정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야당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여당이나마 평온히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그런 대통령이 행정부는 잘 움직일 수 있을까. 당선되자마자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이건 또 무슨 엉뚱한 말인가. 첩첩산중이다.

    이른바 ‘윤석열의 책사’들은 허튼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새 정부 출범 뒤에 곧바로 지방선거가, 2년 뒤엔 총선이 있으니 야당이 순순히 국정에 협조하리라 기대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국을 대결 구도로 만들어 2년 뒤 총선에서 야당을 심판하면 된다고 말하는 자칭 ‘제갈공명’도 있다. 그사이 국민의 삶은 어떻게 되든 말든 ‘정치만 이기면 된다’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태도다. 국민은 윤 당선인을 ‘싸우라’고 뽑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선 다를 수 있지만 윤 당선인이 젠더나 이념 이슈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도 심히 걱정된다. 누누이 느끼지만 정치·사회적 이견(異見)을 가진 상대를 여론으로 압도하거나 눌러앉히는 방법으론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여러 정권을 거치며 수차례 선거를 치렀으면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윤 당선인 주위에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많아 보여서 심란하다.

    경제 운용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경제 분야와 관련한 윤 당선인의 발언을 보면 퍽 시장주의적 관점을 취하는데, 사상가의 소신으론 적절할지 몰라도 국가를 균형 있게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로선 부적절하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로 발생한 서민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요구된다. ‘재정건전성’이 숭고한, 애국적인 가치인 양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윤 당선인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재정을 막 풀자는 말이 아니라 ‘잘’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난관이다. 앞날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문재인 정부라면 지긋지긋한 국민 절반이 ‘대통령 윤석열’을 만들었다. 선거 포스터 문구 그대로 ‘국민이 키운 대통령’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대통령 중심제’라는 제도의 모순 안에 갇혔다. 다시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한 ‘윤핵관’이 권력구조 개편 문제엔 해결 의지가 전혀 없음도 자명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선거 막판에 말뿐이라도 ‘정치교체’를 외쳤지만 윤 당선인은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것이 곧 정치교체라는, 586 운동권의 사고방식을 되풀이했다. 정치는 돌고 돌아 제자리를 맴돈다.

    건전한 사회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같은 잣대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을 때 이뤄지는 것 아닐까. 비판을 받아들이며 조화롭게 정책을 펼쳐나갈 때 ‘성공한 정부’가 태어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어떤 정부든 ‘성공한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임기를 시작했지만 실패해 처량히 물러났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시 ‘과잉(Nadmiar)’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새로운 별이 발견됐다 / 그렇다고 하늘이 더 밝아졌다거나 /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족했던 뭔가’를 채우는 일이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과제이고 성패의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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