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보답받지 못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넥센 염경엽 감독)

야구감독으로 산다는 것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dhp1225@naver.com

    입력2014-11-20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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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직은 마약이자 섹스… 좀체 끊을 수 없어”
    • 정치권 추천으로 사령탑 맡은 前 롯데 감독
    • “내연녀가 법인카드로 여성용품 사기도”
    • 前 KIA 감독, 구단 VIP와 폭탄주 후 재신임
    “보답받지 못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넥센 염경엽 감독)

    염경엽(가운데) 넥센 감독, 양상문(왼쪽) LG 감독은 ‘지장 (智將)’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살이 더 빠졌어. 이제 60㎏도 안 될 것 같아.”

    11월 8일 목동구장 감독실에서 만난 염경엽 넥센 감독은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기자의 덕담에 이렇게 답했다. 염 감독은 그것도 모자라 양손으로 허리띠를 만지고선 “앞으로 체중이 몇㎏까지 줄지 모르겠다”며 “포스트시즌 들어 제대로 잠을 잔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털어놨다.

    역설적이게도 그 즈음 염 감독은 팬들 사이에서 ‘염갈량’이라 불렸다. 만년 하위팀 넥센 사령탑을 맡고서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야구계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은 “요즘 젊은 사령탑 가운데 염경엽이 제일 나은 것 같다”며 “선수단 운영, 작전, 경기 진행 등 뭐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했다. 덧붙여 “넥센 성적이 그렇게 좋은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겠어. 염 감독처럼 행복한 감독은 류중일(삼성)밖에 없지 않아?”하고 농을 던졌다.

    공 300개 하나라도 놓쳐선 안돼



    그렇다면 어째서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 진출 사령탑인데도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일까. 염 감독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나도 코치일 땐 팀 성적만 좋으면 감독보다 행복한 자린 없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정작 감독이 되고 보니 팀 성적이 좋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이 자리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넥센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놨지만, 스트레스는 멈출 줄 몰랐다. 그의 일과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시리즈 기간에 넥센은 모 호텔에서 합숙했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땐 집에서 출·퇴근했다. ‘같은 서울 연고지 팀 두산과의 일전인데 굳이 합숙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염 감독의 생각과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선수단의 요청을 수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두산에 2승3패로 패하며 넥센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고, 이번 포스트 시즌엔 1년 전 교훈을 토대로 홈경기라도 선수단의 일체감을 높이고자 합숙을 선택했다.

    포스트 시즌 기간에 염 감독이 잠에서 깨는 시각은 새벽 6시. 정규 시즌 때도 비슷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놓고 노트북으로 전날 뉴스를 점검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그리고 7시가 되면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전력 구상에 들어간다.

    염 감독은 데이터를 중시하는 감독이라 챙기는 자료가 많다. 넥센 전력분석팀과 담당 코치들은 그런 감독 성향을 고려해 많은 자료를 준비한다. 2시간가량 데이터를 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 오전 10시가 훌쩍 넘는다.

    이때부터 그날 타순과 투수 로테이션, 수비 포메이션 등을 짠다. 눈으론 오더지를 보지만, 귀론 일찌감치 켜둔 TV 메이저리그 중계에 집중한다. 염 감독은 아침마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는데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라도 해야 선진 야구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만큼이나 간단하게 점심을 마친 후 코치들과 모여 그날 경기를 준비한다. 자유로운 소통과 의견 개진을 중시하는 염 감독은 담당 코치들의 이야기를 모두 취합하고서 머릿속으로 이를 정리한다. 코치들과 헤어지고 호텔방으로 돌아온 염 감독은 구단 버스가 구장으로 출발하는 오후 2시까지 다시 장고(長考)에 들어간다.

    염 감독은 “감독직은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에 누울 때까지 무수히 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며 “솔직히 누가 나를 대신해 판단과 결정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구장에 도착하면 압박감은 가중된다. 말조심은 필수다. 기자들이 기다리는 까닭이다. 그나마 염 감독은 야구인 가운데 극소수인 프런트 경험자이기에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별하는 편이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재미난 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염 감독의 한쪽 눈은 그라운드를 응시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보통 한 경기에 양 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은 총 300개 남짓. 감독은 300개의 공을 일일이 쳐다보며 작전을 세워야 한다. 만약 하나라도 놓치면 낭패를 본다. 가뜩이나 올 시즌처럼 석연치 않은 판정을 비디오로 돌려보는 ‘합의 판정 시대’엔 감독의 집중력이 더 요구된다. 깜박하고 공 하나를 놓쳤을 때 아웃이 세이프로, 세이프가 아웃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중 타자와 주자에게 작전을 내는 것과 동시에 대타자, 대수비 요원을 체크하는 것도 감독의 임무다. 여기다 선발투수 강판 시기를 저울질하고, 구원투수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도 감독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경기가 끝났다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에 1대 3으로 패한 염 감독은 TV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들이 모인 별도의 인터뷰룸에 들어가 10분가량 기자회견에 응했다. 이 짧은 시간에도 염 감독은 선수들의 사기를 고려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켜야 한다.

    밤 11시가 돼 호텔에 도착한 염 감독은 다시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4차전을 준비한다. 새벽 2시에 침대에 눕지만, 번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염 감독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4차전을 시뮬레이션 한다. ‘선발투수는 몇 회까지 끌고 가야 할지, 좌투수 상대 타선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염 감독은 꿈속에서도 또 다른 경기를 치르느라 바쁘기만 하다.

    대기업 CEO 맞먹는 대우

    프로야구 감독. 수많은 야구인 가운데 오직 10명만 앉는 자리다. NC 김경문 감독이 “감독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자리”라고 말한 것도 과언은 아니다. 원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실력과 운, 그리고 인맥이 동원되지 않으면 앉기 힘든 자리다. 그래서일까. 프로야구 감독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과 동시에 온갖 질시와 위험에 노출된 자리이기도 하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는 감독이지만, 모든 야구인은 프로야구 감독이 되기 위해 투쟁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부. 2012년 10월 넥센 사령탑에 취임한 염 감독은 당시 3년간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총 8억 원에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 염 감독의 코치 시절 연봉은 7000만~8000만 원이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올 초 NC와 재계약한 김경문 감독은 3년 총액 17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4억 원)의 엄청난 몸값을 자랑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한화 수장에 오른 김성근 감독의 몸값엔 못미쳤다. 김 감독은 한화 유니폼을 입는 조건으로 계약금 5억 원에 연봉 5억 원 등 3년간 총액 20억 원을 받기로 했다. 웬만한 FA(자유계약선수)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고액이다.

    한 야구인은 “한국에서 일흔이 넘은 남자가 2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나. 대기업 CEO나 프로야구 감독밖엔 없다”며 “모든 야구인이 감독직에 목숨을 거는 것도 야구인으로서 이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약금과 연봉이 전부가 아니다. 각종 보너스와 메리트, 판공비만 합쳐도 족히 연봉을 웃돈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한국시리즈 우승 시 보통 2억~3억 원의 보너스가 감독 몫으로 돌아간다”며 “정규 시즌 월 단위 성과에 따른 메리트를 지급할 때도 감독 몫이 가장 크다”고 귀띔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했을 때 김응용 감독은 5억 원 이상의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장은 “기본 연봉, 보너스, 메리트 말고도 감독님께 ‘판공비로 쓰시라’고 구단 법인카드를 내드린다”며 “모 팀 감독은 법인카드로 한 달에 1000만 원 넘게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관예우도 확실

    야구계에선 법인카드를 엉뚱하게 쓴 두 감독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 유명한 K씨는 법인카드를 아내에게 줘 생활비로 썼다. K씨가 속했던 모 구단 관계자는 “법인카드 명세서에 가구, 가전제품 심지어는 콩나물, 시금치 구매까지 적혀 있어 깜짝 놀랐다”며 “정작 판공비와 관련한 내용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귀뜸했다.

    전 감독 B씨는 더했다. 한때 야구계엔 ‘B씨가 내연녀에게 구단 법인카드를 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야구인은 “B 전 감독의 내연녀가 구단 법인카드를 편의점, 마트에서 수시로 쓴 건 야구계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카드 명세서에 여성 생활용품 구매 내역이 나와 구단 관계자들이 혀를 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보통 구단들은 감독에게 제네시스급 이상의 대형 세단을 제공한다. 고령이거나 운전이 서툰 감독에겐 기사까지 보내준다. 집도 제공한다. 홈구장 근처에 35평 이상의 전세 아파트를 구해주는 게 기본이다. 특급 대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항공기 탑승 시 최하 비즈니스석 이상을 제공하고, 숙소는 이유 불문 스위트룸 이상을 잡아준다.

    명예는 부를 능가한다. 프로야구 감독이 되면 일단 사회 저명인사가 된다. 인맥도 딸려온다. 전·현직 감독들의 수첩엔 기업 CEO, 정치인, 법조인, 연예인 등 수많은 유명인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한 감독은 “현역 선수일 때나 코치 땐 몰랐는데 감독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먼저 연락이 온다”며 “30년 동안 쌓은 인맥보다 감독하면서 3년 동안 맺은 인맥이 더 넓다”고 털어놨다.

    대중의 관심도 한 몸에 받는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 이름은 몰라도 감독 이름은 기억하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팬덤도 형성된다.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달리 감독 팬클럽과 후원회가 따로 있다.

    전관예우 역시 확실하다.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KBO 경기위원이 되는 게 기본 코스다. 경기위원은 이른바 ‘경기 감독관’으로 불리는데 그날 경기의 심판진을 평가하고, 경기 중 벌어진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이 원하면 야구해설가로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 선수 출신 야구해설가는 첫해에 7000만 원 정도를 받지만, 감독 출신 해설가는 그보다 2000만~3000만 원을 더 받는다. 현재 야구해설가 가운데 연봉 랭킹 1, 2위는 허구연 MBC SPORTS+,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이다. 두 사람은 모두 감독 출신으로 이들의 연봉은 계약금을 제외하고 1억3000만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병’ 앓는 이 많아

    “감독직은 마약이자 섹스다.”

    올 초 만난 전직 감독 A씨는 감독직을 마약에 비유했다. ‘감독이나 마약이나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체 끊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감독직을 섹스에 비유한 건 왜일까.

    A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하거나 내가 낸 작전이 통했을 때, 그리고 팀이 극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의 쾌감이 사정할 때의 기분만큼이나 짜릿하기 때문”이라며 “감독 노릇 못 해본 이들은 아마 그 기분을 모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직 감독 C씨는 이른바 ‘감독병 환자’로 불리는 이다. C씨는 현직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감독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감독 자리만 났다 하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자기를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주변에서 ‘노욕(老慾)’이라 손가락질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사석에서 “‘딱’ 한 번 더 감독을 해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다시 감독을 맡으면 어느 팀이라도 우승시킬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감독이 되지 못했다. 그의 야구관이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데다 지나친 로비가 되레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김응용 전 한화 감독도 한때 ‘노욕’소리를 들었다. 2012년 겨울, 김 감독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한화 감독으로 복귀하자 몇몇 야구인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할 분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70이 넘은 나이에 감독을 맡느냐”고 볼멘소릴 냈다. 사실 김 감독은 노욕보단 명예회복욕이 더 강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복귀한 데는 김성근 감독의 역할이 컸다. 사정은 이렇다.

    삼성 사장에서 물러나고 야인으로 지내던 2011년, 김 감독은 한 시골학교 야구부 창단식에 참석했다가 자신을 몰라보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변에서 “김 감독님, 김 감독님” 하자 한 학부모는 김 감독에게 “혹시 김성근 감독님이냐”고 물었는데, 이때 받은 김 감독의 충격은 대단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감독인 자신을 몰라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김성근은 알고 자기는 모른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다.

    “영원히 야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김 감독은 이때 현장 복귀를 결심했고, 결국 1년 만에 뜻을 이뤘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김 감독이 이끈 한화는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고, 김 감독의 지도력도 ‘한물간 리더십’이란 혹평을 들어야 했다. 재밌는 건 김응용 감독의 현장 복귀 단서를 제공했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이 됐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감독 맛을 잊지 못하는 야구인들은 감독 공석이 생기기만을 기다린다. 그렇다면 과연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감독’은 어떤 이들이 맡는 것일까.

    “보답받지 못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넥센 염경엽 감독)

    11월 11일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류중일(왼쪽) 삼성 감독.



    감독 되는 법

    구단들이 감독 선임 시 가장 중시하는 건 경력과 이름값이다. 2012년 10구단 kt는 창단 사령탑으로 여러 야구인을 검토했다. 몇몇 야구인의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모(母)그룹에선 “우승 경력 혹은 이름값 있는 중량감 넘치는 야구인을 감독으로 선임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구단 수뇌부는 고심 끝에 2009년 KIA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조범현 전 감독을 천거했고, 모그룹은 지체 없이 조 전 감독의 사령탑 선임을 승인했다.

    수도권 모 팀 단장은 “신생팀이거나 약팀일수록 경력이 화려한 ‘검증된 감독’을 선호한다”며 “신선함에선 초보 감독보다 떨어지지만, 모그룹과 팬들은 이름값 있는 감독이 팀을 맡으면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 믿기에 초보 감독을 선임했을 때보다 주변 반응이 훨씬 좋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모그룹(구단주)의 의지다. 롯데가 대표적이다. 롯데는 전통적으로 구단주 입김이 강한 팀이다.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 외국인 수장이 됐던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현 회장)의 작품이었다. 신 당시 부회장은 같은 롯데그룹 산하의 자매구단인 지바롯데 마린스가 2006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외국인 감독의 장점에 주목했다. 당시 마린스 감독은 메이저리그 사령탑 출신의 바비 밸런타인이었다.

    신 부회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2007년 롯데 수장에 오른 로이스터 전 감독은 만년 하위팀 롯데를 4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며 부산의 영웅이 됐다.

    D 전 감독 역시 모그룹의 의지가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롯데 구단 수뇌부로 일했던 한 인사는 “정치권에서 모그룹을 상대로 D 감독을 강력하게 추천한 것으로 안다. 그전까지 D 감독은 감독 후보가 아니었다”며 “정치권의 추천을 받은 이후 모그룹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K대 야구부 사령탑이던 D 감독이 급부상했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전 감독은 신동인 구단주 대행이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 사퇴하긴 했으나, 선동열 전 KIA 감독도 구단주의 지원을 받으며 재기를 노렸던 이다. 올 시즌 KIA가 3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며 선 전 감독의 재계약은 요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선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했다. 한 야구계 인사는 “9월께 KIA VIP와 선 감독이 사석에서 폭탄주를 마셨다. 이 자리에서 선 감독의 대학 후배인 VIP가 선 감독에게 ‘명예회복하셔야지요’하며 재신임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안다”며 “팬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구단주가 ‘OK’ 하면 그 뜻을 거역할 수 없는 게 구단 생리”라고 전했다.

    세 번째는 육성형이다. 두산 김태형, SK 김용희 감독이 대표적이다. 올 시즌 두산은 시즌 중반부터 송일수 감독 교체를 고려했다. 한국어가 서툴고, 지도자 경험이 일천한 송 감독을 계속 둬선 안 된다는 위기론이 팽배했다. 결국 두산은 새 감독 후보를 물색했고, 오래지 않아 김태형 SK 배터리 코치를 선임했다.

    두산 관계자는 “김 감독은 2011년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선임될 때 유력한 사령탑 후보였다. 그러나 당시엔 감독이 되기엔 너무 젊다는 지적이 있어 차기 후보로 남았다”며 “올 시즌 송일수 감독이 팀을 맡을 때 이미 다음 감독은 김태형이란 정서가 있었다”고 말했다.

    SK 김용희 감독은 롯데, 삼성 감독을 지낸 이다. 초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SK에서 2군 감독, 육성총괄 담당을 역임하며 1군 감독 재수업을 받았다. 애초 SK는 올 시즌 전 김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히려 했으나, “이만수 감독의 계약기간을 보장해주라”는 모그룹의 지시를 받고 뜻을 1년 미뤄야 했다.

    마지막은 ‘팬심’이다. 올 시즌 가장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김성근 한화 감독 선임이 그렇다. 한화 구단은 원래 김응용 감독 후임으로 한용덕 단장보좌역을 감독 후보로 밀었다. 그러나 모그룹에서 결재가 나지 않았다. 다른 감독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팬심이었다.

    한화 팬들은 정규 시즌 종료와 함께 “지금 한화를 재건할 지도자는 김성근 전 SK 감독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인터넷상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오프라인에서도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에 자극받은 한화 모그룹은 다른 감독 후보들을 배제하고 구단에 “김성근 감독과 접촉하라”고 지시했다.

    한화 관계자는 “구단 내에 김성근 감독을 어려워한 이가 많았다. 김성근 카드를 최대한 피하고자 장고를 거듭했으나, 모그룹의 의지가 강해 결국 그 카드를 들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보답받지 못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넥센 염경엽 감독)

    선동렬 전 기아 감독은 재신임받았으나 팬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고마, 야구 똑바로 하소”

    넥센 염경엽 감독은 요즘 어딜 가나 대접을 받는다. 팀 성적이 좋다보니 택시를 타도 그를 알아보는 기사들은 요금을 받지 않는다. “감독님 힘내십시오.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라는 격려의 목소리는 덤이다.

    하지만 염 감독처럼 운 좋은 사령탑은 많지 않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야구인 가운데 성격 좋고 쾌활하기로 소문난 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한때 대인기피증이 생길 뻔했다. 롯데 감독이 되고부터였다.

    양 전 감독은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롯데는 양승호 때문에 안 됩니다. 근마 짤라야지 그냥 두면 안 됩니더’ 하면서 내 욕을 엄청나게 했다. 처음엔 난 줄 모르고 실컷 욕을 하다가 나중에 요금 계산할 때 내가 누군지 확인하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라. 속으로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택시비를 집어던지면서 ‘고마, 야구 똑바로 하소’ 하고 그냥 가는 게 아닌가” 하며 껄껄 웃었다.

    식당에서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경험했다. 롯데 성적이 좋으면 그날 밥값은 죄다 공짜지만, 조금만 부진하면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로부터 “감독님 이게 뭐하는 긴교. 야구 좀 단디 못합니꺼” 하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양 전 감독은 “부산은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도시답게 지역민 전체가 야구광이다. 돌아보면 40년 야구인생 중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곳도 부산, 가장 숨죽여 살았던 곳도 부산”이라고 롯데 시절을 회상했다.

    구단도 마찬가지다. 감독을 평가하는 기준은 팀 성적이다. 팀 성적이 좋은 감독은 재계약 1순위지만, 성적이 좋지 못하면 숙청 대상 1호다.

    염 감독이 받는 스트레스도 성적에서 출발한다. 염 감독은 “사람들은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올 시즌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니 감독님 이제 쉬엄쉬엄 하십시오’라고 하지만, 세상 어느 감독이 그 순간에 쉬엄쉬엄 팀을 지휘할 수 있겠냐”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쟁취하지 못하면 꼴찌 팀 감독이나 준우승 감독이나 역사엔 그저 ‘우승하지 못한 감독’으로만 남을 뿐”이라고 말했다.

    11월 11일 잠실구장에서 다시 만난 염 감독은 “오늘 승리를 거두면 내일 7차전은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거 같다”고 밝혔다. 이날까지 한국시리즈 전적 2승3패를 기록 중이던 넥센은 6차전 승리로 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넥센의 반전을 허용할 삼성이 아니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우승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은 공기와 같은 것”이라며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 4년 연속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동시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화장실서 서럽게 운 염경엽

    행운의 여신은 삼성 쪽에 미소를 지었다. 삼성은 난적 넥센을 11대 1로 꺾고 대망의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경기가 끝나고 류 감독은 선수들과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염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우승 축하연을 벌이는 삼성 선수들을 지켜봤다.

    염 감독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다. 손에 잡은 물고기가 빠져나갈 때 기분이 딱 지금 같을 것”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염 감독은 잠시 사라졌다. 넥센 프런트 직원들이 염 감독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한 코치는 “감독님께서 지금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며 “혹시 선수들이 볼까봐 억눌렸던 감정을 화장실에서 쏟아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정규 시즌 내내 혼자였던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나서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염 감독은 “그것이 감독의 운명이지 않겠냐”고 운을 떼고서 “준우승에 그친 게 서러워서 운 게 아니라 여기까지 달려와준 선수들과 구단 그리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것”이라며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으며 ‘내년엔 반드시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염 감독을 잘 아는 야구인이라면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라며 “염 감독처럼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을 산 이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염 감독은 46세의 젊은 사령탑이지만,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가며 경험한 야구인이다.

    “보답받지 못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넥센 염경엽 감독)

    ‘헹가레 감독’이 되는 것은 프로야구인의 로망이다.



    학창 시절엔 천국의 나날이었다. 그도 그럴 게 염 감독은 광주일고-고려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누구보다 주목받는 내야수였다. 1991년 태평양에 입단할 때 스포츠신문에서 염 감독을 ‘제2의 류중일’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 감독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프로는 지옥 그 자체였다. 2000년 현대에서 현역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내야 백업으로 뛰었을 뿐이다. 수비는 좋았으나 타격이 문제였다. 통산 타율이 1할9푼5리.

    염 감독의 재능이 빛난 건 2001년부터, 구단 프런트와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살면서부터였다. 그는 현대 시절 당시로선 흔치 않은 야구인 출신 운영팀장으로 일했다. “야구인은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문서 작성도 할 줄 모른다”는 소릴 듣던 때라 염 감독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날밤을 새며 ‘한글’과 ‘MS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독학했다. 염 감독과 함께 현대 운영팀에서 일한 L씨의 회상.

    “하루는 단장님 오전 보고가 있었다. 염 팀장이 보고를 끝내고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 단장님이 책상 위의 문서를 보신 뒤 내게 ‘보고서 작성하느라 고생 많았네’ 했다. 하지만 그 문서는 내가 작성한 게 아니었다. 단장님께 ‘그거 염 팀장이 만든 겁니다’ 하자 깜짝 놀랐다. 각종 도표와 그래프가 상당히 많은 문서였다. 내가 만들어도 최소 5, 6시간이 걸릴 보고서였다.”

    놀라운 건 전날 새벽 3시까지 염 감독이 코칭스태프 회식에 참가해 현장의 목소릴 청취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한숨도 자지 않고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염 감독은 현대 수비코치로 변신했을 때도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현대 사령탑이던 김재박 KBO(한국야구위원회) 경기위원은 “다른 코치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자주 책을 들여다보던 이가 바로 염 코치”라며 “이름값만 따지자면 다른 코치보다 뒤지지만, 노력과 열정만은 다른 코치들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넥센 주루코치를 맡은 이후 ‘느림보 군단’이던 팀을 단숨에 ‘기동력 군단’으로 바꿔놓았다. 2011년 팀 도루 99개로 이 부문 꼴찌였던 넥센은 염 감독이 주루를 책임진 이후 2012년 179개로 리그 1위에 올랐다.

    깊은 계곡 위 줄타기

    2012년 시즌 종료 직후. 넥센 이장석 대표는 팀 내 코치들을 대상으로 메이저리그식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통해 새 감독을 선정하겠다는 의도였다. 애초 이 대표는 염 감독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시진 감독이 염 감독을 주루코치로 추천했을 때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년 동안 같은 팀에서 염 감독을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감독 후보 인터뷰에서도 염 감독이 제시하는 비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대표는 고민 끝에 염 감독을 제3대 넥센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야구계는 “지명도가 떨어지는 염경엽을 왜 감독으로 선임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염 감독처럼 공부하는 지도자라면 우리 팀을 강팀으로 만들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며 “염 감독이 팀을 잘 이끌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약속을 지켰다. 초보 감독 염경엽은 만년 하위팀 넥센을 지난해 정규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까지 올렸고, 올 시즌엔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염 감독은 기자에게 “며칠 푹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염 감독은 아내, 딸과 함께 미국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왔다. 이번엔 어디일지 궁금했다. 염 감독은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며 “그저 푹 쉬고 싶다는 생각밖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넥센 프런트는 염 감독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미 염 감독은 여행 때 들고 갈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구단 측에 요청한 터다. 염 감독을 보좌하는 한 구단 직원은 “감독님은 여행지에서도 야구 생각만 할 분”이라며 “성적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선 우리 감독님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한민국에서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건 깊은 계곡 위에서 펼치는 줄타기와 같다. 멈춰 서서 주저앉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감독도 같다. 이름값에 얽매이거나 좋았던 시절만 기억해선 명장이 될 수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그 변화에 발맞춰 나가야만 승장이 되고, 패장의 그늘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10개 구단은 벌써 내년 시즌을 위해 전진을 거듭한다.

    염 감독은 감독실 짐을 정리하며 기자에게 말했다. “고통의 대가는 경험”이라고, “보답받지 못한 노력이라면 그건 아직 노력이라 부를 수도 없다”고. 1년 뒤, 염 감독의 경험과 노력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실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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