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전기는 혈액, 우리는 의사 ‘피’ 잘 돌게 해 재해 막죠”

‘BORN’ 경영 이끄는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사장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11-19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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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는 직원 ‘지휘’보다 ‘지원’하는 자리
    • 세계 최초 무(無)정전 검사기술 개발
    • 소비자 중심으로 전기안전법 바꿔야
    • 안전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
    “전기는 혈액, 우리는 의사 ‘피’ 잘 돌게 해 재해 막죠”
    1974년 창립해 올해로 40년을 맞은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는 전기로 인한 재해를 예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전기설비의 안전 확인을 위한 법정검사·점검, 전기안전에 관한 조사·연구·기술 개발, 홍보 및 교육, 전기사고의 원인·경위 조사 등 전기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업무가 사업 영역이다. 전국 60개 사업소에서 2700여 명의 임직원이 전기안전을 위해 땀방울을 흘린다. 부설기관으로 전기안전연구원, 전기안전기술교육원 등이 있다.

    사장 공모를 거쳐 올해 2월부터 전기안전공사를 이끌어온 이상권(59) 사장은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등을 지낸 법조인 출신으로 18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인천계양을)을 지냈다. ‘2010년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의정활동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검사, 국회의원, CEO를 모두 경험해 보니 어느 게 가장 힘드냐”고 묻자 “정치가 가장 쉽다”며 웃었다.

    ‘긍정적 스트레스’ 즐겨

    “아무래도 검사로 일할 때가 스트레스는 가장 컸습니다. 과거 한 언론에서 직업군별 평균수명을 보도했는데 법조인, 그중에서도 검사가 제일 짧더군요.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유·무죄를 판별하고 구형량을 정하는 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거든요. 한 사람의 인생과 직결되는 문제니까요. 반면 제일 오래 사는 직업군으로 정치인이 꼽혔습니다(웃음). 말만 많이 하지, 정작 자신이 직접 집행할 일은 거의 없으니 스트레스가 작을 수밖에요. CEO로 일하면서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국민에게 이익이 되니까 스트레스를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아서인지 전보다 더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 전기안전공사가 하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전기를 우리 인체의 혈액에 비유하면 한국전력(한전)은 우리 몸에 혈액(전기)을 내보내는 심장이고, 우리는 그 혈액이 신체 각 기관에 안전하게 돌도록 주시하면서 각종 질환을 예방, 치료하는 의사라 할 수 있습니다.”

    ▼ 전기안전공사 사장이란 자리가 솔직히 과거 이력과는 크게 인연이 없어 보이는데요.

    “18대 국회 때 활동한 상임위가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였습니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기업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하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마침 이곳 사장을 공모하기에 용기를 내서 도전했습니다.”

    원칙, 기본, 신뢰

    ▼ 취임해서 직접 일해보니 어떻습니까.

    “그동안 일선 사업 현장을 찾아다니며 직원들 애로사항을 많이 들으려 노력했습니다. 중동 두바이와 베트남 하노이 해외사업소도 둘러봤고요. 국익을 위해 땀 흘리는 직원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할 일은 직원들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고객과 직원이 있는 현장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소통과 신뢰의 열린 경영’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검사에다 정치인 출신이라 직원들과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울본부에서 만난 직원들은 오히려 “소통이 잘 되는 CEO”라고 입을 모았다.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직원들이 뭘 원하는지를 먼저 알고 먼저 제안을 해서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고 전한다.

    ▼ 특별히 강조하는 경영 원칙이 있습니까.

    “검사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칙, 기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공사의 존립 목적은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가장 먼저 그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매진하자고 늘 강조합니다. 그래서 경영비전으로 ‘본(BORN)’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어요. 기본(Basic) 임무에 충실하고, 고객에게 열린(Open) 자세로 일하며, 책임(Responsibility)을 다하는 기업으로 혁신(New)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국민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하는 직원의 안전도 중요한데요.

    “감전사고를 당하는 사람의 36%가 전기직 종사자입니다. 비율이 가장 높아요. 우리 직원조차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감전 사고를 당한다면 어떻게 국민이 우리를 믿고 안전을 위탁하겠습니까. 그래서 직원들에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부상을 당하면 징계부터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물론 직원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려 노력합니다.”

    ▼ 우리나라 전기안전 사고 현황은 어떤가요.

    “화재는 여러 원인으로 일어나는데, 이 가운데 전기로 인한 화재가 2010년 9442건에서 2013년 8889건으로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화재 중에서 전기화재 점유율은 여전히 20%대로, 선진국의 10~15%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제 임기 안에 15%대로 끌어내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기화재의 발생 빈도를 낮추는 최선의 방안은 전기로 인한 화재의 발생 요인을 근원부터 철저히 예방하는 것이다.

    ▼ 아무래도 전기화재 위험이 높은 곳은 쪽방촌 등 저소득계층의 낡은 주택이 아닐까요.

    “우리 공사에서는 3년마다 일반주택을 대상으로 정기점검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한, 전기설비가 취약한 낡은 주택의 경우 안전하게 수리해주는 ‘그린타운, 그린홈’ 사업을 전개합니다. 전기설비를 새로 하면서 장판을 깔고 도배까지 새로 해주는 복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합니다. 현재 쪽방촌, 산간벽지마을을 대상으로 지원하는데, 이게 마무리되면 노후한 아동복지센터를 중점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한 2012년부터 도서 오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전기안전 보안관 제도’를 시행합니다. 현지에 상주하는 전기공사업체나 전기기술업자와 협약을 체결해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입니다. 지난 10월 말까지 3200여 가구가 혜택을 받았습니다.”

    ▼ ‘전기안전 119 서비스’란 제도가 있던데요.

    “전기를 사용하다 고장이 나거나 불편사항이 발생했을 때 전화(국번 없이 1588-7500) 한 통이면 무료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24시간 긴급출동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히 소방본부의 119안전신고센터와 연계해 119로 신고해도 전기 관련 문제면 자동으로 ‘전기안전 119’로 연결해줍니다. 올 상반기까지 총 48만여 가구에 응급조치를 실시했습니다. 최근엔 ‘전기안전 119 앱(App)’을 개발, 보급하면서 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전기고장 신고부터 각종 응급조치 정보까지 신속하고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은 다문화가정 한국어교육과 탈북자 대안학교 설립 지원,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등 우리 사회 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2년 연속 포브스 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한 이유다.

    홈스마트 분전반 시스템

    ▼ 전기안전검사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적극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반도체·석유화학·철강산업 등과 같은 국가 주요 산업시설은 단 0.1초라도 전기를 멈추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 검사를 해야 하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개발에 매달린 끝에 2011년 7월 세계 최초로 무정전검사(POI·Power On Inspection)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전기를 멈추지 않고 운전 중인 상태에서 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앞으로 본격 적용되면 연간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기존의 전기안전관리 기능에 IT를 접목해 전기가 나간 후 위험요소가 제거되면 사람 손이 필요 없이 자동으로 복구되는 스마트홈 분전반 시스템도 자체 개발했습니다. 주요 문화재 시설과 재래시장 등에 시범 운영을 하면서 실용화를 목전에 뒀습니다.”

    “전기는 혈액, 우리는 의사 ‘피’ 잘 돌게 해 재해 막죠”

    이상권 사장이 쪽방촌의 낡은 전기시설을 교체하는 그린타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전기안전검사 해외 수출

    ▼ 전기안전검사 기술을 해외에 수출도 하더군요.

    “40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로 기존 업무인 법정검사 외에 대형 건물이나 시설 등에 대해 유료로 검사·관리 서비스를 합니다. 해외 건설공사에도 참여하고요. 국내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과 외국 정부, 공공기관까지 우리의 기술을 인정해 관리를 맡깁니다. 기술을 수출하는 거죠. 현재 32개국 건설 현장과 산업시설에 직원을 파견해 기술지원·교육 등을 실시합니다.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와 베트남 하노이에 해외사무소도 뒀습니다.”

    전기안전공사의 연 매출은 2570억 원대다. 전기요금에 함께 부과되는 전력기반기금으로 들어오는 수익은 1000억 원이 조금 넘고, 나머지 1500억 원 이상이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통해 창출한 매출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다른 공기업에 본보기가 될 만한 부분이다. 특히 해외 기술수출은 부가가치가 높다. 전기안전공사는 지난해 17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상당부분이 해외 기술수출로 얻은 수익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스마트그리드사업 같은 지능형전력망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탤 계획입니다.”

    ▼ 전기안전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구석구석 전기안전검사를 해야 전기재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각지대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전의 송전선로와 배전선로 대부분이 ‘검사 예외’로 돼 있습니다. 한전이 스스로 관리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 거기서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막대한 경제적 피해는 물론 국민적 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제도적으로 법정 검사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전기사업법은 공급자 중심의 법이었습니다. 이젠 소비자 중심의 전기안전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반 가정집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화재가 옥내 배선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은 검사를 나가도 집주인이 사생활을 침해받기 싫다며 문을 안 열어줘 배전함(일명 두꺼비집)까지밖에 검사할 수 없습니다. 물론 거기서도 옥내 배선에 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지만 옥내 배선을 꼼꼼히 점검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화재 위험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기안전점검에 적극 협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전북 경제 발전 위한 투자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지난 6월 전북 완주군 이서면 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했다. ‘새·울·림’이란 이름의 신사옥은 소통의 매개수단인 북과, 미래의 상징인 UFO를 형상화한 독창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사장은 “이제 전북 기업이 됐으니 전북 경제 발전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9월, 전북도와 ‘지역연계사업 MOU’를 체결했습니다. 신입직원 공채 시 지역인재 15% 채용, 도내 농·수·특산물 및 지역중소기업·장애인 생산물 우선 구매 등을 약속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결과, 전북지역 인재가 많이 지원해 목표를 훨씬 상회했습니다. 내년에 새로 운영하는 콜센터도 전북 본사에 설치해 상담요원 20여 명을 지역민으로 충원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도 전기안전공사는 전북을 ‘전기안전 R&D 산업 중심’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역 산·학·연이 함께하는 ‘실증단지 조성’을 검토 중이다. 이것이 이뤄지면 연 5000여 개의 고급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상권 사장은 다시 한 번 전기안전을 강조했다.

    “전기는 우리 삶에서 한시라도 없어선 안 될 필수 에너지원이지만 전기안전에 대한 국민인식은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안전은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젖은 손으로 콘센트를 만지는 것도,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몸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죠. 머리가 아니라 우리 몸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 훈련해서 체득하는 것만이 최고의 재난 예방대책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 때부터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안전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본이고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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