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향후 3~4년이 농식품 수출 골든타임”

40년 농정 전문가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4-11-19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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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업 사장 중 이례적 연임
    • 농수산식품 수출 100억 달러 고지 눈앞에
    • 새 둥지 나주…피부에 와 닿는 도움 줄 것
    “향후 3~4년이 농식품 수출 골든타임”
    김재수(57)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을 만난 것은 10월 28일 오후였는데, 이날 오전 그는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연임 통보를 받았다. 공기업 사장이 임기를 다 채우고 연임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장 자리가 논공행상에 쓰이는 경우가 많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서둘러 비워줘야 할 뿐 아니라, 임기 중에도 각종 마찰로 해임되거나 정치권으로 나가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연임 축하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농림부에 있을 때 장관이 미주알고주알 챙기면 싫더라고요. 좀 낭창거리는 맛이 있어야 좋은데…. 우리 직원들이 참견 많이 하는 사장을 더 보게 돼서 싫어할까봐 걱정이죠, 하하.”

    2011년 10월 농림부 1차관을 끝으로 30여 년간의 농업 분야 공직생활을 마치고 aT 사장에 부임했을 때, 그 역시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그는 눈에 띄는 실적으로 농정(農政) 전문가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엔저에도 2010년 59억 달러이던 농식품 수출액을 2013년 79억 달러로 끌어올렸고, 직매장 확충과 사이버거래소 육성 등을 통해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상당 부분 개선했다. 또한 ‘K-Food’를 홍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각종 박람회를 열었고, 수급관리시스템을 정비해 주요 채소류의 가격변동률이 2010~2012년 19%에서 2013년 13%로 개선됐다. 때마침 한류 열풍이 불어 K-Foo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과거엔 농산물 수매·비축·방출이 주요 업무였지만 요즘은 수출이나 식품업체 지원, 유통구조 개선 등 새로운 업무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인원은 줄었죠. 제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이었을 때 100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650여 명입니다. 업무 로드가 많이 걸리긴 하지만 새로 개척하는 일이 많아 성취감은 높습니다.”

    사이버 거래 2조 원



    김재수 사장은 21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유통정책과, 국제협력과 등 농림부의 여러 부처를 경험했다. 프랑스에 본부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미국 대사관에서도 파견 근무를 했고 농업연수원장,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농촌진흥청장 등을 역임했다. 40년 가까이 농정 최전선을 지켜온 그에게 향후 10년간 우리 농수산식품 분야 핵심 키워드를 3개 꼽아달라고 청했다. 그는 △수출 농업 확대 △농수산물 사이버 거래 활성화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꼽았다.

    ▼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됩니다.

    “유통비 절감을 위해 aT는 2009년 B2B 형태의 농산물사이버거래소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자는 거죠. 2009년 52억 원이던 거래액이 지난해 1조6000억 원, 올해는 2조 원으로 크게 성장했어요. 정가 매매, 수의 매매를 하려면 안정적인 생산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기상 변화도 심하고 수요를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확대해가야죠.”

    aT가 유통비를 절감해 음식점, 소매유통 등을 하는 전국 56만 소상공인의 고충을 덜어주려 최근 도입한 것이 포스몰(POS-Mall)이다. 인터넷이 깔린 골목식당이 적다는 점에 착안해 아예 신용카드 결제용 POS 단말기에 농산물 직거래 몰을 만들었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포스몰에서는 고추, 마늘, 양파, 무, 배추 다섯 가지를 바로 주문해 배송받을 수 있다.

    “포스몰을 이용하면 유통 단계가 기존 5~6단계에서 2~3단계로 줄어들어 유통비용이 약 10% 절감됩니다. 온라인 거래라 탈세 여지가 원천 봉쇄되는 효과도 있어 원치 않는 쪽도 있지만, 2020년 거래규모 5000억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추진합니다.”

    ▼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농업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농촌공동화는 우리 농촌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이런 위기를 해결할 중요 수단이 농업의 6차 산업화예요. 지역특산물과 마을 경관, 전통문화, 지역 축제, 음식, 관광 등 농촌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한데 결합하면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존 산업분류상의 1·2·3차 산업 외에 4차 산업이 통신·교육·의료 등의 지식정보산업, 5차 산업이 오락·패션·레저 등 문화산업을 가리킨다면 김 사장이 말하는 6차 산업은 이들을 모두 버무린 융복합산업을 의미하는 듯하다.

    “중국 등에 업혀야”

    재임 기간에 농수산식품 수출에 매진했던 CEO답게 ‘수출 농업’ 대목에 이르자 이야기가 길어졌다. 김 사장은 “향후 3~4년이 농수산식품 수출의 골든타임”이라며 “이제 농수산식품을 주력 산업으로 키울 타이밍이 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코리안 푸드 페스티벌’에 참석했는데.

    “미국에 갈 때마다 한식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음을 느낍니다. 이번에 갔을 때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밤늦게 TV를 틀었어요. ABC방송에서 불고기, 잡채를 만들어 막걸리로 건배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더라고요. 미국 내 한식 인지도는 2009년 5%에서 2013년 55%로 크게 올랐습니다. 전 세계에 한류 바람이 불고, 일본 원전 사태 이후 동남아 국가들이 일본 식품 수입을 줄이는 추세입니다. 드문 기회가 왔어요. 지금 점프해야 해요.”

    ▼ 한중 FTA로 우리 농가가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이 많습니다.

    “오히려 거대 시장이 열리는 호재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의 값싼 재료를 들여와서 고급화해 파는 전략도 가능합니다. 스위스 인삼회사 ‘진사나(Ginsana)’라고 있어요. 스위스에선 인삼이 나질 않는데, 이 회사는 인삼을 수입한 뒤 가공해서 연간 35억 달러(약 3조8000억 원) 이상을 수출한다고 합니다.”

    그의 집무실 책상엔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이 쓴 ‘한국의 신국부론 중국에 있다’와 조용성 아주경제신문 베이징특파원의 ‘중국의 미래 10년’이 놓였다. 그는 “어찌 됐건 연간 7~8%씩 성장하는 중국의 등에 잘 업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 의성에 매달 300t의 당류를 생산해 학교 급식에 공급하는 회사가 있어요. 중국 바이어가 독점 계약할 테니 매달 3000t을 생산해달라더군요. 중국에 수요가 있는 품목을 파악해 우리가 잘 만들어주면 한 번에 퀀텀 점프 할 수 있는 거지요.”

    현재 중국은 일본 다음으로 한국 농수산식품을 많이 사가는 나라다. 지난해 국가별 수출액이 일본 21억200만 달러, 중국 13억1800만 달러, 미국 7억4000만 달러 순이었다. 하지만 성장세로 볼 때 단연 주목할 시장은 중국이다. 그런 점에서 10월 말 aT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1688.com과 온라인 마케팅 협력사업을 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 온라인 시장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해 온라인 시장규모가 1조8500억 위안(약 315조 원)으로 최근 5년 동안 15배 이상 성장했다. 1688.com은 중국 내 온라인 B2B마켓으로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해준다. 앞으로 aT는 1688.com에 25개 기업 800여 제품을 소개해 한국 식품의 이미지를 높이고,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유통채널 구축에 나선다.

    “중국 오프라인 시장 진출에는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워낙 땅이 넓다보니 물류비도 많이 들고요. 한국 식품을 알리고자 각종 박람회, 설명회 등에 참여하지만, 이건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중국 시장에 한국 제품을 알리는 게 급선무인데, 이런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이 중국 내 온라인 쇼핑을 주도하는 알리바바그룹이에요. 1688.com을 통해 한국의 라면, 유자차, 음료 등을 공급해 홍보 마케팅 효과 역시 거두고자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한국식품 소비구조를 만든다면 대(對)중국 수출 규모가 100억 달러, 500억 달러로 급상승할 수 있다고 봐요.”

    한국 농식품 수출은 1988년 이후 20년 동안 30억 달러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 38억 달러를 달성한 뒤 작년에는 79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올해 목표액은 수산을 포함해 91억 달러. 100억 달러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는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수출액이 수직 상승했다”며 “농식품 수출도 같은 코스를 밟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3~4년이 농식품 수출 골든타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해 10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2014 코리안 푸드 페스티벌’에서 한국 음식을 권하는 김재수 aT 사장.



    “한탕주의식 접근 아쉬워”

    ▼ 양적으로는 그렇고, 농식품 수출의 질적 측면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10년 전과 비교하자면 수출국 다변화나 품목 다변화 측면에서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1억 달러 이상 수출 국가가 2003년 6개국에서 2013년 14개국으로 증가했고, 1억 달러 이상 수출 품목도 2003년 4개에서 2013년 12개 품목으로 늘었어요. 매우 고무적이죠. 고부가가치 수출 측면에서는 과거 과일, 채소, 화훼, 참치 등 1차 농수산물 위주에서 최근 조제분유, 음료, 조미김 등 가공식품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고요.”

    1억 달러 이상 수출 품목으로 최근 편입된 것들은 커피조제품, 김, 음료, 라면, 설탕, 인삼, 맥주, 오징어, 비스킷, 소주 등이다. 김 사장은 “조만간 1억 달러 돌파를 앞둔 품목도 여럿”이라고 했다.

    “조금만 더 선전한다면 파프리카, 막걸리 등이 곧 1억 달러를 돌파할 겁니다. 다만 잘 팔린다 싶으면 엉터리 저가 원재료를 쓰는 일부 업체가 문제예요. 이러면 소비자 입맛이 금방 멀어져서 외면받게 되거든요. 중국 상인들이 늘 지적하는 게 이런 부분이에요. 한국 상인은 돈 벌면 ‘인 마이 포켓’ 하려 한다고요. 최소 7대 3으로 중국 상인에게 마진을 가져가게 해야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오리온 초코파이, 농심 신라면 등이 매우 인기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의외로 중국에서 선전하는 중소 식품업체도 여럿이다. 국내 점유율이 미약한 ‘연세우유’가 중국 시장에서는 한국 신선우유 점유율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중소 유자차 생산업체 ‘담터’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수출한다. 김 사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중국 시장에 적합한 품목을 발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나주배 수출 앞장

    ▼ 수출 주력, 고부가가치화 등 환경이 급변하는 농식품 분야에 청년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일자리는 없을까요.

    “정말 많습니다. 밭두렁에서 땀 흘리고 돼지 치는 일은 요즘 제3국에서 오는 인력이 많이들 합니다. 이제 가공, 유통, 저장, 수출, 신상품 개발 등 여러 단계에서 기술과 아이디어, 상상력이 필요해요.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대기업에만 줄 서지 말고 이쪽에 와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농식품 인재 육성을 위해 aT는 최근 대한민국 농식품 미래기획단 얍(YAFF : Young Agri-Food Fellowship)을 발족했다. 9월 말 현재 전국 120개 대학 1409명과 28개국 63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농식품 기업 탐방, aT 행사 운영요원, 캠페인, 아이디어 공모전 등에 참여하고 있다. 얍은 단발성 단기 운영을 지양하고 대학 재학 기간 내내 장기적으로 활동할 것을 권장한다. 김 사장은 “얍을 통해 젊은 인재들이 각자 전공을 농식품 분야와 어떻게 접목해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9월 aT 본사 직원 320여 명은 광주전남 혁신도시 나주로 이전을 완료했다. 이곳에는 aT 이외에도 한국전력,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9개 기관이 입주를 완료했지만 아직 병원, 경찰서, 소방서 등 기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 국회 일정 등 서울 업무가 없을 때는 홀로 광주 사택에 머물며 나주 본사로 출근한다는 김 사장은 “와이셔츠를 다림질할 때면 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상화 이행계획에 따라 노조와 합의를 통해 각종 복지혜택 등을 줄였습니다. 여기에 나주로 이전까지 했으니 직원들 사기가 떨어졌을 법한데요.

    “퇴직금을 포함한 여러 개선과제에 대해 직원들이 많이 양보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주로 내려가서는 생수 사러 아주 멀리까지 나갔다 와야 하고…. 기반시설이 하루빨리 갖춰지면 좋겠어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직원도 많아 각종 스포츠 동아리, 남도음식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검토 중입니다.”

    ▼ 지역과의 상생 방안이 있나요.

    “나주시민이 aT 이전에 대한 기대가 크더라고요. ‘aT 입주를 환영합니다’라고 플래카드 붙여놓은 식당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전력이 왔다고 전기요금 깎아주진 않지만, aT는 나주배 수출 촉진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요. 호남산 고추, 마늘, 양파 등을 많이 수매해 피부에 닿는 도움을 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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