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9·11 테러 아수라장에서 노래 부르며 질서 유지

모건스탠리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입력2014-11-26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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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테러  아수라장에서 노래 부르며  질서 유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모건스탠리 본사.

    21세기가 시작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준 사건이다. 9·11 이후 미국인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고 무엇보다 재난안전시스템이 철저하게 보강됐다.

    9·11 테러의 교훈을 되새길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회사가 바로 미국 최대의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다. 당시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에 본사를 둔 모건스탠리는 2500여 명의 임직원이 그 건물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직원은 단 10명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는 9·11의 영웅으로 아직까지도 칭송받는 릭 레스콜라(Rick Rescorla)라는 위대한 인물 덕분이다.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난 레스콜라는 1963년 미군에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줄곧 미군에 복무하다 퇴역한 후 1985년부터 모건스탠리의 안전요원으로 근무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레스콜라가 테러 발생 전부터 테러의 가능성을 여러 번 예측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8년 팬암 비행기 폭발사고를 보고 세계무역센터도 테러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뉴욕 뉴저지 항만관리청에 더 철저한 안전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그의 제안은 비용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3년에는 세계무역센터 지하에서 실제로 무슬림 테러리스트에 의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모건스탠리는 당시 직원들을 모두 구하는 데 4일이나 걸리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안전사고와 재난 대비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보안 강화를 주장해왔던 레스콜라는 더욱 신임을 얻게 된다. 그는 사건 이후에도 줄곧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사를 안전한 뉴저지로 이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1993년 테러를 경험하면서 그는 당국의 재난 대응 플랜이 무용하다고 판단, 자체적인 재난 대응체계를 마련했다. 잠재적인 위험을 분석하고 다각적인 재난 대비 플랜을 마련했으며 직원들이 안전 훈련을 자주 받도록 했다.

    물론 그의 훈련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모건스탠리의 몇몇 고위 간부는 훈련이 업무를 방해하고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릭 레스콜라는 강경했다. 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터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최대한 비상 상황과 근접하게 훈련을 실시했다. 직원들은 복도에서 합류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계단으로 내려가도록 했다. 또한 함께 이동할 팀을 지정해주고 각 팀의 리더를 선정한 다음, 리더들은 별도의 훈련을 추가로 받도록 했다.

    모건스탠리는 하루에 몇 백만 달러의 금융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지만 레스콜라는 대피 훈련에 예외를 적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모건스탠리를 방문하는 외부인도 기본적인 안전 브리핑을 받아야 했다. 그에게는 돈보다 생명이 항상 우선이었다.

    9·11 테러  아수라장에서 노래 부르며  질서 유지

    2001년 9월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한 비행기가 타워1로 돌진했다. 실제 비상 상황이 발생한 순간, 타워2에 있던 모건스탠리 직원들은 반대편 빌딩의 사무실 사람들이 유리창을 깨고 화염을 피하기 위해 창밖으로 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조금 후 당국은 타워2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레스콜라는 이미 플랜에 따라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워키토키와 확성기를 집어 들고 각 층을 돌아다니며 안전요원들과 각 팀의 리더들에게 당장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직원들은 모두 평소 숙지한 대피 통로를 따라 비상시의 매뉴얼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7분 후, 9시 3분에 또 다른 비행기가 타워2를 들이받았다. 전기는 나가고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레스콜라는 직원들이 공포에 얼어버리지 않게 확성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레스콜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때 전우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른 노래이기도 했다.

    오전 9시 45분 모건스탠리 사무실의 대피가 거의 마무리됐다. 하지만 밖으로 거의 다 나와서 레스콜라는 다시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 안전요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직 밖으로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시 59분, 타워2가 무너져 내렸다.

    레스콜라를 포함한 4명의 안전요원이 희생됐으나 2687명의 모건스탠리 직원은 살아남았다. 이날 주식 중개 강좌를 들으려 모건스탠리를 방문한 방문객 250명도 살아남았다. 강의를 듣기 전 강의실에서 가장 가까운 비상계단이 어딘지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다음 날인 9월 12일 본사를 제외한 모든 지점에서 업무를 재개했다. 평소 긴급 대책 플랜, 비즈니스 상시 운영체계, 위기 커뮤니케이션, 재무 위험 분산과 보험, 조기경보 시스템 같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의 뛰어난 위기관리 시스템과 한 영웅의 이야기는 수만 명의 직원을 책임진 오늘날의 모든 기업에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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