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직접 대면 삼가는 이유
의전비서관실은 크게 해외 담당, 국내 외부 담당, 국내 본관 담당으로 업무를 나눈다. 해외 담당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국내 외부 담당은 청와대 밖 행사와 청와대 내 영빈관 행사를 담당한다. 본관 담당은 청와대 본관 내부 행사를 챙긴다. 국내 외부 행사를 담당하는 의전도 예전 대통령 때보다 편해진 면이 있다.
박 대통령은 돌발 상황을 잘 만들지 않는다. 의전과 경호는 대통령의 일정이 정해지면 적어도 열흘 전부터는 현장에 나가 대통령 단상의 위치와 높이, 행사 순서, 귀빈 자리 배치 등을 다 챙긴다.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대통령 행사는 분 단위로 사전에 준비된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끔 청와대를 지나다 관람객을 만나면 차에서 내려 깜짝 인사를 하기도 했다. 경호하는 처지에선 상당히 긴장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돌발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
경호 역시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이 많지 않은 편인 데다 대중과 직접 접촉하는 민생탐방이 적어 역대 대통령과 비교하면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새벽에 깜짝 순시를 자주 나갔다. 전 전 대통령은 새벽 3시쯤 경호실장에게 전화해 “시장에 갈테니 준비하라”고 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두 시간 뒤에 전격적으로 노량진시장이나 가락시장과 같은 현장에 나가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 근접 경호원은 밤에 잠을 청하기 전에 다음 날 입고 나갈 옷을 차례대로 챙겨놓았다고 한다. 새벽에 연락이 오면 즉시 일어나 준비해놓은 순서대로 옷을 입고 출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만나는 일정을 많이 잡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이 외부 행사를 자주 갖게 되면 경호 문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 이희호 여사와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올림픽대로를 드라이브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때는 한강 드라이브를 자제했다. 대통령이 움직이면 경호 차량도 붙어야 하고 신호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교통체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명절처럼 서울 시내 교통이 원활할 때 앞뒤로 경호차량 한 대씩만 붙인 채 올림픽대로를 한 바퀴 돌고 왔다고 한다.
참모 애태우는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맛집 찾아가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냉면, 국밥 등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했는데 여의도 63빌딩 앞에 있는 냉면집을 특히 좋아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직접 그 냉면집을 찾았고, 너무 먹고 싶을 때는 그 집 주방장을 청와대로 부르기도 했다. 본인이 이동하게 되면 경호 때문에 시민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어 생각해낸 고육지책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매주 두 차례 테니스를 쳤는데, 그때 청와대 밖으로 나가 설렁탕을 먹고 오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나치게 많은 경호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외향적인 이 전 대통령 부부가 대통령 재임 때 즐기지 못했던 냉면 등 맛집을 퇴임 후 자주 찾다보니 더 많은 경호를 받게 됐다고 귀띔했다.
박 대통령도 가끔 깜짝 일정을 만든다. 지난 8월 여의도 CGV를 방문해 영화 ‘명량’을 관람한 것이나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에 참석해 시구를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경호나 의전팀으로서는 깜짝 일정이 잡히면 짧은 시간 안에 대통령의 동선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오히려 편한 점도 있다고 한다.
한 전직 대통령 경호원은 “예고된 행사가 역설적으로 경호를 하기 더 어렵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8·15 경축식 같은 행사는 누구나 그 행사에 대통령이 오는 것을 알고 있다. 예고된 행사의 경우 경호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할 이들이 사전에 준비할 시간도 길어진다. 오히려 깜짝 행사는 위험 인물들이 그 행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모시는 의전과 경호팀에도 어려운 점은 있다. 박 대통령은 일정을 상당히 촉박한 시점에 결정하는 편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기획수석실에서 일정 회의를 거쳐 올라온 대통령 일정을 제1부속실을 통해 보고받는다. 최종 일정은 박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다. 그런데 행사 날짜가 임박할 때까지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아 참모들의 애를 태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 대통령이 지방 일정을 사흘 전에 결정해 참모들이 애를 먹은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행사의 취지가 무엇인지, 그 행사에 참석할 경우 섭섭해할 사람들은 없을지, 행사 주최자가 본인의 참석을 악용할 소지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진다. 심지어 분·초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대선 때도 일정을 일찌감치 확정해주지 않아 참모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다른 대선 후보들의 경우 소소한 일정은 선거 전략을 짜는 핵심 참모들이 정하고 후보는 그 결정에 따르는 게 보통.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본인의 일정을 일일이 결정했다. 참모들이 준비한 일정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로 미루거나 본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정을 직접 끼워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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