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손흥민·BTS를 수능시험으로 평가할 수 있나”

‘고독한 혁신가’ 유진선 대경대 이사장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3-05-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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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성화 교육 30년…성 쌓는 자 망하고, 길 여는 자 흥한다

    • “엑설런트(Excellent)보다 디퍼런트(Different)하라”

    • 강의실 없애고, 학과 기업 만들고, 한류캠퍼스 열고…

    • 가장 큰 걸림돌은 고정관념, 역발상의 차별화!

    • 日 대학 이사장들 앞에서 ‘대학 혁신’ 주제 강연

    • ‘인간은 영생하는구나’ 거울에 비친 先親

    유진선 이사장은 ‘다름의 가치’를 강조한 ‘Difference is the value’를 설립 정신으로 꼽는다. [홍중식 기자]

    유진선 이사장은 ‘다름의 가치’를 강조한 ‘Difference is the value’를 설립 정신으로 꼽는다. [홍중식 기자]

    경북 경산시 단북리 초입 2차선 도로에서 바라본 도천산(到天山· 261.3m)은 나지막한 병풍 같다. 도로 양쪽으로 즐비한 복숭아나무를 따라 50여m 오르니 대경대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도천산 일대는 신라 원효대사의 고향이다. 출세가 보장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전국을 돌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초들의 상처를 어루만진 큰 스님의 정기가 서려 있다. 1600여 년 전 원효대사가 이타행(利他行)의 삶을 시작한 곳에는 이제 새 둥지처럼 대경대가 그 품을 파고들었다.

    1993년 개교한 대경대는 우리나라 교육사(史)에 새로운 장을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성화 교육이 전무하던 시절, 대경대는 ‘혁신적인 특성화 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무모한 도전’이라며 말렸지만 전문가와 스타 교수를 초빙해 학생들의 전문성을 키웠고, 동물원과 양조장, 레스토랑과 뷰티살롱, 런웨이장 등 산업 현장과 똑같은 실습 환경을 갖추면서 혁신을 이어갔다. 2018년에는 수도권으로 진출해 ‘한류캠퍼스’(경기 남양주시)도 문을 열었다.

    30년을 우직하게 걷다 보니 대경대는 이제 국내외 대학들의 ‘벤치마킹 단골 대학’이 됐고, 경북의 2-3년제 대학 중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현재는 3개 학부 26개 학과 7개 전공에서 4700여 명의 재학생이 도천산 자락에서 저마다의 소질을 키우고 있다. 5월 9일 오후 화사한 봄볕이 그득한 교정에서 다시 ‘30년’을 준비하는 설립자 유진선(63) 이사장을 만났다.

    “누구나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어야”

    대학을 둘러보니 테마파크를 관광하는 기분이 든다. 학교 레스토랑(42번가)에서 식사를 하고 동물원과 양조장(대경양조), 뷰티살롱(아세바) 등 교내 여러 곳을 둘러봤다.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다(웃음). 강의실을 없애고 학과에 맞는 기업 환경을 갖추는 것, 입학하는 순간 취업이 되는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고정관념을 깨는 역발상으로 차별화를 이뤄내는 것, 그 결과물을 보신 거다. 나는 전문대를 나와도 누구나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차별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인가. 서울 강남의 자동차 판매점을 연상케 하는 자동차딜러과 실습장이나 선상 크루즈 카지노장, 인천공항에 와 있는 듯한 출입국 심사장도 퍽 인상적이다.

    “1990년대 중반 우리 대학 광고 문구는 ‘전문가가 만들면, 다릅니다’였다. 기업 현장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실무형 인재’를 키우려면 최고 전문가들과 산학일체형 ‘CO-OP(CO-Operative)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기자가) 식사를 한 곳은 호텔조리계열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42번가’ 레스토랑이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요리와 경영을 함께 배운다.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호텔에 취업하면 보통은 3주간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대경대 학생들은 거기서 매일 실습하다 보니 3일 만에 적응을 끝낸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대경대는 호텔과 피트니스센터, 골프장 등 현장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캠퍼스 환경 조성에 성공했다. 대학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는 대형마트에서 팔리고 있고, 레스토랑에는 외부 손님들의 예약이 잇따른다. 지난 4월 교육부의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사업(HiVe) 학교로 선정되면서 전문대를 대상으로 한 3대 정부 재정지원 사업(HiVe, 혁신지원사업, LINC3.0)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캠퍼스가 곧 기업 현장이 되다 보니 실무를 배우려는 학생이 몰려왔다. 지원자 중 서울·경기권 지원자 비율이 40% 이상이 됐고, 유명 연예인들의 진학도 잇따랐다.

    기업을 만들어 학생들이 직접 체험(Experience)하고 실력을 향상(Upgrade)하는 특화된 ‘대경 교육체계(Exp-Up Station)’는 우리나라 특성화 교육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조리·서비스 관련 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운영하는 ‘42번가 레스토랑’(42ND Street Restaurant). [홍중식 기자]

    조리·서비스 관련 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운영하는 ‘42번가 레스토랑’(42ND Street Restaurant). [홍중식 기자]

    런웨이에서 실습하는 모델과 학생들. [홍중식 기자]

    런웨이에서 실습하는 모델과 학생들. [홍중식 기자]

    대경대 학교기업 ‘대경양조’가 생산한 막걸리와 맥주. [홍중식 기자]

    대경대 학교기업 ‘대경양조’가 생산한 막걸리와 맥주. [홍중식 기자]

    ‘딴따라 교수’ 임명한다고 말렸지만…

    전통과 관행을 중시하는 교육계에서 혁신적인 특성화 교육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개척의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은 고정관념이었다.”

    고정관념?

    “학교 설립 초기에 작정하고 세계 유명 직업학교를 찾아 나섰다. 정원이 30~50명인 이탈리아 와인학교와 스위스의 호텔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면서 도제식 교육과 학교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의 한 학교 교실 벽은 흰색이 아닌 분홍색이었고, 샴쌍둥이 분리수술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래플스 병원은 병원이 아니라 카페처럼 보였다. 대만의 관광전문대에 갔을 때 그곳 학장은 ‘대만 학생들은 의대 대신 관광전문대에 온다’고 하더라.”

    왜 그런가.

    “학장은 ‘1년 과정을 마치면 100% 취업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철저하게 실무 교육을 배워 빨리 취업하려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한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이러한 세계 명문 학교를 보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삼 깨달았다. 호텔 요리사가 되려면 호텔 주방으로, 동물사육사가 되려면 동물원으로 가서 일을 배워야 하는데 기업들이 안 받아주니 대학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대학은 산업 현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입학=취업’인 대학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대경대 학과명도 철저히 ‘실무형’이다. 자동차딜러과, 관광크루즈승무원전공, 세계주류양조과, 제과제빵카페과, 동물사육복지과, K-POP과 등등.

    현장 전문가를 키우는 교수들의 임용 문제도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 배우 유동근, 가수 소찬휘, 디자이너 이상봉 등 당대 최고 전문가를 직접 모셨다. 당시에는 ‘딴따라 교수를 임명한다’고 말렸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전문가는 전문가가 키워야 한다. 파격적인 교수 임용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니 수도권 대학들도 이듬해 슬그머니 스타 교수들을 영입하더라(웃음). 물론 교수들 마인드도 바꿔야 했다.”

    마인드는 왜….

    “고급 호텔 주방장 출신을 교수로 임용했더니 ‘이제 교수로 임용됐으니 찬물에 손 담그기 싫다’고 실습을 거부하더라(웃음). 고정관념과 마인드를 바꾸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엑설런트(Excellent)하기보다는 디퍼런트(Different)하라’는 교훈도 이색적이다. 학교 곳곳에 ‘다름의 가치’를 강조한 ‘Difference is the value’라는 문구도 눈에 띄던데.

    “다름, 즉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거다. 1993년 개교할 때만 해도 학생들은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기가 죽어 있었다. 학생들이 시험 점수를 못 받은 거지 개인의 가치가 낮은 건 아니다. 그래서 ‘1등은 필요 없다. ‘디퍼런트하라!’고 격려했다. 이후 학생들도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다름의 가치를 인지하고 차츰 바뀌어갔다. 자긍심을 심어주는 격려가 주효한 거다. 이는 교육의 위대함이다.”

    ‘잘린’ 시간강사가 대학 설립자 된 이유

    30대 초반에 대학을 설립한 것도 흥미롭다.

    “1990년에 한국 독립운동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을 꿈꿨다. 막 결혼하고 시간강사를 할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비슷한 시기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시간강사도 잘렸다(웃음). 그때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사무실에서 우연히 전문대 설립 인가 서류를 보고 ‘그래. 대학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간절히 원하니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나더라(웃음). 한 고향 선배는 자신의 건물 한 층을 통째로 내줘 대학설립추진위원회를 꾸릴 수 있었고, 친구 아버지를 설득해 대학 부지도 계약할 수 있었다. 1992년 서른두 살 때 교육부에 대학 설립 신청서를 내밀었다.”

    전직 시간강사가 단박에 대학 설립자가 됐다.

    “나를 본 교육부 담당 공무원은 대뜸 ‘아버지 심부름 왔어요?’라고 하더라(웃음). 잘 만나주지도 않던 공무원을 매일 찾아가 대학 설립 목표와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부가 지척인 중식당에서 혹시나 올지 모를 담당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대기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30년간 지켜본 한국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는 인공지능(AI), 메타버스 시대에 사는데 공교육은 아직 대량생산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예전에 외웠던 ‘국민교육헌장’(대한민국 교육 지표를 담아 1968년 12월 5일 반포한 헌장)에는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딱 맞는 말이다. (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나 BTS(방탄소년단)를 수능 시험으로 평가할 수 있나. 저마다의 소질을 살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획일화된 ‘교육의 틀’을 깨고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집중 실습이 필요하면 10주 수업 후 2주 휴식하는 ‘텀(term)제’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앙은 규제를 풀고 제도 운영은 현장에 맡겨야 한다.”

    엘리트 체육인과 시니어들의 삶의 질

    다시 30년 계획을 세울 때가 됐는데.

    “그렇다. 전공을 단순화·집약화해서 강하지만 작은 규모의 세계적인 직업교육 대학으로 키워야 할 때다. 크게 보면 엘리트 체육인을 양성하고, 시니어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거다. 그리고 우리가 잘하는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강화해야 한다. 회사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거 같은데(웃음).”

    ‘영업비밀’을 들어보니 아직 할 일이 많은 거 같다.

    “몽골 유목민의 정신을 잘 표방한 말 중에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여는 자 흥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개척의 길은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고, 우리가 함께 열어야 할 길이다. 일본을 배우려던 내가 일본의 대학 이사장들 앞에서 강연할 때도 ‘길을 열어야 흥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 설립 초기 일본의 전문학교를 벤치마킹하러 다니던 유 이사장은 15년 뒤 50여 명의 일본 전문학교 이사장들 앞에서 ‘대학 혁신’을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30대 초반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첫 월급 받아 빨간 내복을 사드리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아버지를 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선친이었다. 그때 느낀 게 ‘아, 인간은 영생하는구나’였다. 살면서 윗대에서 물려받은 것들은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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