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호

前정부-現정부-국회 ‘환장의 컬래버’가 전세 사기 사태 낳았다 [+영상]

[부동산 인사이드]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5-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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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전세 시장 문제 종합판 전세 사기

    • 보증금 10%만 떨어져도 집주인 中 85% 자산 처분해야

    • 임대차 3법+미흡 대처+법안 미처리가 초래한 難局

    • “임차인에게 보증금 돌려줄 방안 마련돼야”

    [+영상] 빌라왕에 이어 아파트왕 등장?



    4월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총 6가지의 피해자 요건을 내걸었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상을 까다롭게 제한했다. 일각에서 정부가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정해 정작 구제될 이가 적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사인(私人) 간 거래인 전세 계약에서 발생한 문제를 정부가 떠안을 수 없다는 태도다.

    이는 최근 한국 전세 시장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전세 사기라는 조직적 범죄 사건뿐 아니라 깡통전세·역전세로 인한 집주인들의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뒤엉켜 있다. 정부는 조직적·계획적 전세 사기 범죄 피해에 대해서만 국가가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6가지 요건에 ‘수사 개시 등 전세 사기 의도가 있는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항목을 넣은 것이 방증이다. 집값 하락으로 발생한 보증금 미반환 사례는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

    4월 25일 서울 강서구 전세피해자지원센터에서 열린 임차인 재산보호와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4월 25일 서울 강서구 전세피해자지원센터에서 열린 임차인 재산보호와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임대차 3법 vs 전세 보증 대출

    전세 사기는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건축왕 사건’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벌어진 ‘빌라왕 사건’이 대표적 예다. 임대인이 처음부터 전세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임차인을 속인 사례다. 임대인이 세입자를 모집하는 브로커, 중개업소나 감정평가사 등과 사전에 공모해 세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들은 지난해부터 알려지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올해 들어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또 부산과 광주, 경기 동탄·구리 등 전국에서 전세 사기 사건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국회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하고 전세 사기 범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적용하겠다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전세 사기 사건은 향후 전세 시장에서 벌어질 혼란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전셋값 하락으로 인한 집주인들의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별법 발의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피해자는 국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근본적 원인=전셋값 하락

    5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심사하기 위해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5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심사하기 위해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서는 전세 사기 특별법을 마련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임대차 3법’이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을 촉발하며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장려한 전세 보증 대출과 현 정부의 뒤늦은 대처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최근 전세 시장 혼란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근본적 원인은 지난 정부 시절 부동산시장 활황기에 과하게 오른 전셋값이 지난해부터 급락한 데 있다. 전세 제도 특성상 전셋값이 단기간에 크게 떨어지면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가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주택시장이 안정적일 때엔 새 세입자를 구하면 되지만 침체기엔 저렴한 매물에만 수요자가 쏠린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부족한 집주인들은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곳곳에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지난해 말 집값이 급락하면서 전조증상이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통해 점검한 결과 전세보증금이 10% 하락하면 집주인의 85.1%는 금융자산을 처분해야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2%는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대출까지 받아야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고, 3.7%는 금융자산 처분과 추가 대출로도 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집계된 전체 전세임대가구는 118만7000가구가량이다. 단순 계산하면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은 4만4000가구에 달하고, 대출을 받아야 돌려줄 수 있는 집주인은 13만3000가구에 달한다.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전세계약 갱신을 하면서 감액 계약을 하거나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가 올해 1분기 전국의 국토교통부 전월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전월세 갱신 계약 가운데 종전보다 감액한 계약 비율은 25%까지 치솟았다. 이는 국토부가 갱신 계약 데이터를 공개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최고치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찾기 위해 살던 집을 경매에 넘기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4월 수도권 경매 진행 물건 중 임차인이 직접 경매 신청을 한 경우는 총 230건으로 3월 139건에 비해 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하반기부터 전셋값이 크게 올랐고, 이에 갭투자도 급증한 바 있다. 올 하반기부터 계약 만기가 도래한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대체 누가 전셋값을 올렸나

    정치권에서는 전셋값 급등 원인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당은 지난 정부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임대차 3법’을 꼬집는다. 임대차 3법이란 애초 2년이던 임대차 기간을 ‘2+2년’으로 연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를 말한다.

    이 법은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됐지만 결과는 기대와 다르게 나타났다. 4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이 보증 금액을 미리 올려 불렀다. 또 기존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늘어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이 심화됐다. 전셋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대차법 도입 전까지 38개월간(2017년 5월~2020년 7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5% 올랐다. 임대차법 도입 후엔 19개월 만에 27.3%가 올랐다.

    여기에 전세대출이 기름을 부었다. 전세대출에는 ‘서민 주거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별다른 규제가 없었다. 보증금의 최대 90%까지 대출이 가능한 데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소득 요건이 없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서도 자유로웠다.

    통상 전셋값이 폭등하면 월세를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금리 시대에는 차라리 대출을 받는 게 유리했다. 이에 따라 서민과 청년층은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대출로 몰려들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규모(잔액 기준)는 2016년 52조 원에서 2019년 102조 원, 2021년 180조 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야당 주장대로 전세대출을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세대출 규모가 지난 정부에서 급증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셋값이 오르자 갭투자가 성행한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갭투자란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주택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인 전세가율이 오르면서 적은 자본으로도 집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시장 활황이 지속되자 무분별한 갭투자가 성행했다.
    국토교통부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갭투자 현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 가운데 집값의 70% 이상을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한 건수는 2021년 7만3347건으로 2020년(2만6319건)에 비해 178% 급증했다.

    전세 사기도 갭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빌라나 오피스텔을 수백 채 사들이는 방식을 썼다.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 갭투자가 유독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셋값이 상승한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주택자금 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시군구 기준으로 전국에서 갭투자가 가장 많았던 곳은 서울 강서구(5910건)다.

    읍면동 단위로 보면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강서구 화곡동(4373건)이 전국에서 갭투자가 가장 많았다. 건축왕 사건이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은 1646건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전세 제도 개편 필요”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임대인연합회 회원들이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차 3법 때문에 집을 팔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며 임대차 3법 폐지를 촉구했다. [뉴스1]

    4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임대인연합회 회원들이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차 3법 때문에 집을 팔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며 임대차 3법 폐지를 촉구했다. [뉴스1]

    물론 현 정부도 최근의 사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전세 사기 사태가 수면으로 드러난 건 지난해부터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전세 사기 피해 방지 대책’을 시작으로 올해 3월까지 총 4차례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긴급 거처 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피해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수도 적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주거 수준과도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2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 주거 지원 주택 238가구를 마련했지만 4월 17일 기준 입주 가구는 8가구(3.36%)에 불과했다.

    피해자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갈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저리 대출 역시 이용 실적이 저조했다. 정부는 연 1% 수준의 저리 대출에 예산 1660억 원을 편성했지만 이 가운데 9억 원을 집행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임차인 대항력 유지를 위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해야 하는 상황 등을 간과한 대책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쟁을 벌이느라 관련 법안 처리를 미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자 정부와 국회가 부랴부랴 종합 대책 마련에 나선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문제 외에도 깡통전세·역전세로 인한 피해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택시장 침체로 전셋값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 전세 사기 사건이 주목받으면서 수요가 위축돼 전셋값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집주인들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환급 대출을 확대하거나 DSR 규제 등을 일부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전셋값이 하락할 때마다 벌어지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전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선순위 권리가 없는 주택 등에 대해서는 감정평가사의 평가를 받아 매매 금액의 50~60%로 전세금을 제한하거나 반전세 등을 선택하도록 하는 전세상한제 등 리스크를 줄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 계약에 직접 관여하는 공인중개사들의 확인 설명 의무 항목을 세세하게 규정하는 등 책임을 강화하거나 전세가율이 높을 경우 위험성을 명확하게 적시하게 하는 등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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