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전략통 “이준석 신당 만들 힘 있어”
“난 우파라는 단어 별로 안 좋아한다”
김종인이 냉철히 본 이준석의 능력주의
멘토 김종인 ‘美 유학’ 조언 거절 배경
배울 사람은 있으나 롤 모델은 없다
“尹, 확고한 이데올로기 없다” 말한 이유
“보수 단어 버릴 용기 고민하고 있다”
[+영상] 윤석열과 ‘나’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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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당에 대해 솔직히 회의적이에요. 현재 국내 정치인 중에서 자기 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딱 세 명이거든요.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입니다. 신당을 만들어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한 사람은 이들 세 명뿐이에요. 그 자체가 무기죠.”
말을 꺼낸 사람은 이준석의 지지자가 아니다. 딱히 이준석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보수 쪽에 발을 걸친 적조차 없는 사람이다. 실은 민주당 당원이다. 정치권의 숨은 전략통으로 꼽힌다. 그는 “내년 총선은 강력한 양당 구도로 치러질 것”이라면서도 이준석이 신당을 만들 경우 파열음이 나리라고 봤다. 이준석이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은 낮게 봤지만 말이다.
4월 9일 경남 진주시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제가 자만하겠다는 게 아니라…”
참고할 지표는 있다. 지난해 9월 17~19일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실시한 조사 결과다. 이준석과 국민의힘이 ‘윤리위원회 징계’를 둘러싸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던 시기다. 조사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재징계를 받아 출당해 신당을 창당하면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지지한다’는 35.9%, ‘지지하지 않겠다’는 56.0%로 나타났다.구체적으로는 ‘적극 지지한다’가 17.3%, ‘지지할 수 있다’가 18.6%였다. 한길리서치는 “이번 여론조사는 신당 창당 찬반을 묻는 게 아니라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 창당 시 확보할 수 있는 정당 지지율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전 대표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을 때 확보할 수 있는 정당 지지율의 최대치는 17.3%라고도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준석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을 지원했다.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14.98%, 최고위원에 도전한 김용태·허은아 후보는 각각 10.87%와 9.90%를 얻었다. 청년 최고위원에 출마한 이기인 후보는 18.71%를 득표했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나온 17.3%와 격차가 크지 않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를 포함해 그의 창당 가능성을 가정한 조사는 여러 차례 실시됐다.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에너지가 생긴다. 지금으로선 ‘이준석 신당’의 출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당 카드’의 존재만으로 그에게 협상력이 부여된다. 본인도 스스로의 위상을 알고 있다. 아니, 외려 강한 자의식이 느껴질 만큼 잘 안다. “천아용인의 전당대회 득표는 기대치보다 낮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가 꺼낸 답변이다. 4월 9일의 대화다.
“제가 전당대회에 나갔으면 그보다 (득표율이) 많이 나왔겠죠. 누가 누구를 밀어서 한 달 전까지 무명이거나 정치적 지명도가 낮았던 사람이 (득표율) 15~18%까지 올라가는 건 상당한 힘입니다. 김기현 대표가 누굴 밀어서 15~18%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거든요. 당협위원회 등 공조직이 전부 김 대표 밀게 했는데 52%밖에 안 나왔다? 이게 약한 거죠.”
그에게 “여권 주류 쪽에서 이 전 대표와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을 갈라치기하려는 모양새가 있지 않나”라고 물었을 때는 아래와 같은 답을 들었다. 분명 질문의 요지는 ‘이준석-천하람 갈라치기’였는데, 답변을 곰곰이 듣다 보면 결국 본인을 주체로 둔 시각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열심히 해보라 하죠. 그게 되겠나. 매번 (정치권에) 젊은 사람이 등장했을 때 저를 상수로 놓고 얘기해요. 민주당에서 누구를 영입해도 첫 번째 인터뷰 보면 늘 ‘이준석의 대항마가 나왔다’예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인 경우가 되게 많아요. 제가 자만하겠다는 게 아니라, (대항마를) 하면 좋은 거죠. 그런데 그게 되냐는 거죠. 정권에 줄 대 충성해서 올라가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봤자 장예찬 최고위원보다 잘할 수 있겠습니까. 그 길이 아니라면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길로 가야 되는데, 그 길을 택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천 위원장과) 없는 살림에 싸울 일이 없어요.”
유승민과 김종인
흔히 이준석을 개혁보수라고 한다. 원조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준석의 부친과 유 전 의원은 고교와 대학 동기다. 이준석과 유승민은 대개 한 묶음으로 인식된다. 당사자 생각이 어떻건 현실이 그렇다. 정작 이준석은 개혁보수에 부정적이다. 합리적 보수라는 단어는 쓰지만 개혁보수를 내걸진 않는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한 달여 뒤(2020년 5월 8일)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국민의힘 당권을 쥐는 시점(2021년 6월 11일)보다 1년여 앞선 시기다. 취재 노트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제가 유승민 의원한테 개혁보수라는 단어를 폐기하자고 했거든요. 유 의원은 그간 투자한 게 많으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 어려워요. ‘새 정치’보다 어렵죠. 저는 우파라는 단어도 별로 안 좋아해요. ‘자유우파’ 이러면서 뭐 대단한 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단어 외치는 분들이 가장 전체주의적이고 수구적이에요. 인권·민주·진보가 자기네 훈장처럼 얘기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대신 이준석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경쟁이다. 이날 그는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사회 진보를 이끌어온 핵심 단어는 경쟁”이라고 했다. 이어 “그간 경쟁 앞에 ‘치열한’이나 ‘무의미한’이라는 단어를 붙여 경쟁은 나쁜 것이라 인식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도리어 더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런데 보수가 이를 뽑아내질 못한다”고 했다. 구체적 방안 중 하나로 “국·공립대는 100% 정시 ‘줄 세우기’로 뽑자”고 제안했다. 없는 집 자식이어도 공부 잘해서 수능만 잘 보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전형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고로 훗날 ‘당수 이준석’의 브랜드가 된 능력주의는 오랜 숙성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가 ‘토론 배틀’로 당 대변인을 뽑고 ‘공직후보자 자격시험’ 도입을 공언한 것도 생뚱맞지 않다. 정치는 논리의 쟁투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서적인 자기장 안에 있다. 혹자는 “‘조국 사태’ 이후 국민이 인식한 건 ‘차라리 줄이라도 세우면 공정하겠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부작용을 우려하나 누군가는 통쾌함을 느낀다. 통쾌한 사람이 열 중 셋만 되도 정치인에게는 ‘남는 장사’다. 민주당은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강화한다며 이준석을 비판했다. 논쟁이 될법한 문제 제기지만 메시지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민주당이 ‘조국 사태’의 직간접적 이해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이준석이 사숙(私淑)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생각은 어떨까. 김종인을 만나 ‘이준석식(式) 능력주의’에 관한 생각을 물은 적이 있다. 2021년 7월 7일, 그러니까 이준석이 당권을 쥐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이날 김종인과 나눈 문답이다.
당 대변인을 공개경쟁으로 뽑았는데,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줬으면 효과를 낸 것 아닙니까.
“대변인을 ‘토론 배틀’로 뽑고 국민의 시선을 끌어당겨 당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수긍할 수밖에 없지.”
이 대표의 책 제목이 ‘공정한 경쟁’입니다. 공정이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대표가 하버드대를 다닐 당시 미국 경제학의 추세는 완전히 신자유주의 경제에 빠져 있을 때라고. 그런 분위기에서 봤기 때문에 이 대표의 최근 발언을 보면 시장에 맡기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능력주의를 말하는데, 능력주의만 따라가면 자본주의 사회가 안정되지 않아요. 이 대표가 아직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정당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김 전 위원장께서 생각하는 공정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대로 살게 내버려두는 게 사실은 공정한 거요. 그러나 그렇게 살면 사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요. 태어날 적에 능력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잖아요. 능력대로 평가받는 게 시장경제 아니오? 그러면 능력 있는 놈만 남고 능력 없는 사람은 다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회라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만으로 구성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노인, 어린이, 병자, 실업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생존이 불가능할 것 아니에요? 조화를 맡는 것이 정치라고. 능력대로 내버려두자고 하면 정치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이 대표는 경쟁하면서 대표까지 올랐고, 토론 배틀 같은 경쟁으로 대변인을 뽑으면 가장 효과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공정한 것과 효과적인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고. 정당에서는 아무리 공정하다 해도 효과가 나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준석에게는 롤 모델이나 멘토가 있을까. 그의 저서(‘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 추천사를 써준 김종인인가. 지금이야 각자의 길을 가지만 한때 행보를 같이했던 유승민인가. 그가 ‘정치 조직화의 최고수’라 평한 김무성인가. 그도 아니라면 그의 표현대로 ‘일반적 해법을 거부하고 올곧게 행동한’ 노무현인가. 2020년 5월 8일 만남에서 이준석에게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나” 물었을 때 들은 답변이다.
2021년 9월 17일 당시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당대표를 면담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변명
“제 정치적 재능을 발견해 준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에요. 상당히 고맙죠. 좋은 기회에 좋은 직위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거니까요. 그 뒤 정치적 기술을 가르쳐주고 (제가) 보고 배우게 해준 분은 김종인 전 장관이에요. 그분이 가진 정책에 대한 통찰력이나,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에서 많이 배웠어요. 저랑 철학을 많이 공유하는 건 유승민 의원이에요. 어떻게 보면 각자 이질적이고 서로 좋아하지도 않는 세 사람이죠. (다만) 저는 그분들을 롤 모델로 삼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들의 장점을 흡수해 제 정치관으로 삼는 게 목적이죠.”그렇다. 이준석에게는 롤 모델이 없다. 당연히 멘토도 없다. 누군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생각도 없다. 똑같은 질문을 그간 수많은 정치인에게 던졌는데, “가르침은 얻었으나 롤 모델로 삼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은 이준석이 유일하다. ‘나 잘났소’ 하는 사람만 모인 여의도에서도 자존감에 관한 한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의 조언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지난 대선 이후 김종인은 이준석을 만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라”고 조언했다. 학부에서는 공학을 전공했으니 시야를 넓히기 위해 사회과학으로 대학원을 다니라는 취지였다. 김종인은 독일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에 관해 이준석에게 묻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독일에 유학 갈 때는 해외에서 유통되는 내용을 공부하려면 해외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지금은 해외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해외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유학도 다녀왔고요. 해외의 학술 연구를 찾아서 스스로 체화하는 게 중요한데 그건 한국에서 할 수 있어요.”
보통 이준석을 두고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자라고 평한다. 한데 그는 실용주의라는 단어를 애용하지 않는다. 사회현상이나 정치 현안은 이데올로기에 터를 잡고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세간의 고정관념과 달리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갖추려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본 ‘윤석열 대통령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4월 9일 그에게서 들은 말이다. 윤 대통령을 변호해 주는 듯한 말이지만 곱씹다 보면 평가가 매우 박하다.
“저는 (윤 대통령이) 말이나 글로 표현할 만큼 확고한 이데올로기가 있는 이데올로그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요. 거기서 (당대표로서) 제가 나름대로 변명을 붙여보고자 했던 말이 그런 것이거든요. ‘저분이 보수의 이념에 가까운 자유주의 이념을 가져가려 하고 있으나,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 등을 하면서 나이 쉰이 됐을 때부터 보수 쪽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머리와 이력과 지향점이 따로 노는 상황에 있다’고요. 이건 윤 대통령을 위한 변명이죠. 그런데 그건 대통령 되기 전까지의 아쉬운 점이고, 대통령이 됐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정해야 되는 건데….”
지난해 1월 1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운데)와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 이준석 대표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더현대 서울’과 보수정당
최근 이준석이 재밌게 읽은 책은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 사람들이 몰려드는 ‘페르소나 공간’의 비밀’이란다. 2022년 출간된 책이다.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를 비롯해 4명의 전문가가 공저한 책이다. 루이비통 등 3대 명품이라 불리는 매장이 없는 채로 개장했으나 출점 첫해 6637억 원의 매출을 올린 ‘더현대 서울’의 성공 비결을 다뤘다. 트렌드 분석서이자 경영 전략서로 분류된다. 여권 주류와의 불화로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는 그의 처지에서 보면 다소 뜻밖의 선택이다. 그와 나눈 문답이다.다른 책도 아니고 마케팅 책을 말하니 의외인데요.
“‘더현대 서울’은 지하철역(여의도)에서도 가깝지 않고, 백화점이라기엔 좀 특이하게 생긴 건물인데도 20·30이 갈 수 있는 곳이 됐단 말이죠. 먼저 ‘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뺄 결심, 또 여의도를 빼고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일 결심이 컸거든요. 책을 읽어보면 정당에 치환해서도 생각할 점이 많아요. 보수정당이 앞으로 보수라는 단어를 버릴 용기가 있을까. 그리고 우파라는 단어를 버릴 용기가 있을까. 이것이 첫 번째 과제가 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보수가 아닌 걸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극진보를 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보수정당) 지지층 중에 보면 ‘나는 우파요’ 이러면서 동네에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보수라는 틀을 스스로 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보고 있어요. 형식적으로는 ‘보수요’ ‘우파요’ 이러지만 정책이나 정당 운영 방식에 있어 그걸 탈피한 지 오래거든요. 이름 하나 남은 고택 같은 느낌이거든요. 문 열고 들어가면 에어컨 빵빵한 현대식인데, 문패만 계속 보수를 달아놓고 있는 게 맞느냐에 대해 고민해 봐야죠.”
복지 정책에서는 진보정당보다 더 전향적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요.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으로 좁혀질 수 있겠는지에 대한 문제거든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보수정당이 보수를 주창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한 점과 같은 맥락입니까.
“그것이 김종인 전 위원장의 2012년 ‘보수 삭제’ 논란이죠.(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이던 김 전 위원장이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하자고 문제 제기한 대목을 가리킨다.)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항상 놀라는 게 뭐냐면, 그 어른은 저보다 10년 앞서갔던 거예요. 정당의 선거 트렌드는 10년 주기 정도로 변합니다. 1992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의 선거 방식은 철저한 호남 고립이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으로 넘어가면서 뉴라이트 선진화 담론이 있었죠.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는 복지와 중도화 담론이 (보수로) 들어온 거죠. 그런데 탄핵으로 중도화 노선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다 김종인-이준석 계열의 중도화 노선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선거 전략으로 다시 빛을 봤거든요. 아이러니한 게 뭐냐면 맥이 끊겼던 뉴라이트 선진화 담론이 다시 대한민국을 쓸고 있는 겁니다. 선진화 담론이 MB 때 평가가 좋았나요? 그때 보인 얼굴들이 나이만 15년 더 들어 (윤석열 정부에서) 비슷한 담론을 펴고 있는데, 큰 틀에서는 걱정입니다.”
드러내놓고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지금 그는 윤석열 정부의 이너서클을 공박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신이 다수 포진했다는 평을 듣는 참이다. ‘이명박 정부 시즌2’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이와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구상을 내놓는 ‘좌클릭’ 전략을 통해 과반 지지로 당선됐다. 즉 이준석은 보수 혁신의 시금석으로 ‘좌클릭’ 혹은 ‘중도화’를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보수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조사가 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021년 1월부터 이듬해 대선 직전까지 발표된 지지율 조사 600여 개 전수를 분석해 잠재적인 변곡점을 찾는 분석(Change Point Analysis)을 실시했다.(관련기사: 동아일보 2022년 8월 9일자 ‘[동아광장] 윤석열 대통령의 최대리스크’) 그 결과 ‘대선후보 윤석열’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떨어진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국민의힘에 입당했을 때였다. 무소속 윤석열이 야권 단일화 대신 국민의힘 입당을 택하면서 지지율이 최고점 대비 6∼7%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보수라는 울타리에 들어가자 중도성향 유권자가 대거 이탈한 탓이다. 여권 주류가 국정 운영 스타일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TK 교두보론
‘이준석의 생환’은 내년 총선 정국을 달굴 뜨거운 감자다. 딸려오는 질문은 두 가지다. ①이준석이 서울 노원병에서 출마할 수 있나. ②이준석이 TK(대구·경북)에 출마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권 주류는 이준석에게 공천장을 줄지부터 고민할 것이다. 이준석 본인도 노원병 출마를 상수(常數)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이준석을 공천에서 배제했을 경우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이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이렇게 되면 이준석은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 스스로가 “그 길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준석과 교유해 온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의 말이다.“이준석 전 대표를 만났는데, 제1원칙이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당선되는 것이라고 해요. 말뜻을 생각해 보니 노원병을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더라고요. 저는 이 전 대표에게 대구에 출마하라고 권했어요. 다만 변수가 많아요. 선거법 개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 전 대표의 (국민의힘) 공천 여부 등 고려할 사항이 많죠. 대구 지역 모든 곳에서 유리한 것도 아니어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준석이 대구에 출마하면 시나브로 ‘이준석 계파의 TK 교두보론’이 확산할 수 있다. 여권 주류 처지에서는 한쪽으로는 민주당, 다른 한쪽으로는 이준석과 상대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에 놓인다. 그리하여 이준석의 싸움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