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대밭 접경에서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금강 물줄기는 서해를 지나 연평도까지 닿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회오리의 한가운데에서 만들어지고 개봉된 작품이었다. 영화가 세상의 흐름을 먼저 읽어낸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을 통해 입증됐다. 이 영화 이후 한국 영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급물살을 탄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이 이어진다. 바야흐로 코리안 뉴 시네마의 물결이 밀어닥친 것이다.
충남 서천의 갈대밭은 15년의 세월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일단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탔다. 예전에는 오직 갈대밭만이 있어 갈대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는 소리들이 뚜렷이 들려왔다. 금강 하구의 둑을 사이로 시야에서 가려져 둑 위로 올라왔을 때 마침내 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때의 전경은 저절로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는 자연 그대로였다.
유와 무, 이중의 위선
그러나 지금은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다.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 공사가 펼쳐졌다. 갈대밭으로 이어지는 신성리 마을의 큰길들에는 아주 널찍한 아스팔트가 깔렸다. 이제 곧 주차장도 크게 확장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현지 여인들의 행상이 주를 이루지만, 곧 현대식 점포의 특산품 판매점도 경쟁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갈대밭 곳곳에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길이 나 있다. 그 중간에는 모여서 쉴 수 있도록 나무 데크로 바닥을 깔아놓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이제 옷을 버리거나 신발을 별로 더럽히지 않더라도 갈대밭 안을 ‘탐사’할 수 있다. 그건 좋으면서도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예전처럼 저 무성한 갈대밭을 그냥 바라보게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이제 너무 인공적으로 변해버렸다. 문명의 이기는 없으면 불편하지만 있으면 약간은 볼썽사나워진다. 그 이중의 위선은 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갈대 체험장 입구 전망대 앞에 세워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입간판은 조금 심하다는 느낌을 준다. 송강호와 이영애, 이병헌의 영화 속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 유치함의 극치여서 한편으로는 키치(kitch)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박찬욱 감독이나 배우들이 이걸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욱은 영화 촬영 이후 이곳을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서천 갈대밭은 내비게이션으로 정확히 ‘충청남도 서천군 신성리 한산면 12-5’를 찍고 가면 된다. 그럼에도 정식 명칭은 ‘신성리 갈대 체험장’이다. 소재지가 한산면이니만큼 갈대밭만큼 한산 모시가 유명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실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대개 그곳을 들르면 의례적으로 사게 되는 것이 유명한 전통주인 한산 소곡주다.
갈대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먹을거리가 없다. 아직은 먹을 데가 없다는 얘긴데, 이제 곧 그것이 만들어질 것 같아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다.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단호박 등을 파는 행상 할머니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사람들? 엄청 오지. 주말에는 여기 말도 못혀.”
모두 자동차를 갖고 사는 요즘, 서울 사람들은 충남 서천 정도는 ‘마실 나가는 수준’으로 들락거릴 것이다. 주말, 특히 요즘처럼 만추(晩秋)로 가는 길목에서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이곳을 찾아올 공산이 크다. 갈대밭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찾으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