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버리기 전 AI 네프론으로 수거
수퍼빈이 모은 플라스틱 가격, 재활용 업체 2배
플라스틱, 캔 아니라도 모든 폐기물 분류 가능
인공지능이 폐기물 종합 관리하는 시대 임박
김정빈 수퍼빈 대표가 1월 8일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수퍼빈이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최근 이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중에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 제품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중 PVC(폴리염화비닐), OTHER 등의 소재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폐비닐은 수거해도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비닐이 입혀진 종이나 오염된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어렵다. 비닐이나 오염물질은 재활용 원료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재활용이 되는 폐품은 일부 투명한 플라스틱과 유리병, 금속 정도다.
폐기물 처리업체 수퍼빈은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폐품 중 확실하게 재활용되는 것만 골라 모은다. 사람 대신 수퍼빈의 분리수거 인공지능(AI) 로봇 ‘네프론’이 분류를 맡았다. 폐기물 투입구에 쓰레기를 넣으면 네프론이 모양을 인식해 재활용이 가능한 폐품만 수거한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물질은 입구 밖으로 내뱉는다.
현재 네프론이 수집하는 제품은 투명한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이다. 네프론으로 모은 폐품은 수퍼빈이 직접 수거·세척 후 재활용 원료로 가공해 판매한다. 수퍼빈은 재활용 원료와 네프론을 판매해 2020년 한 해에만 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기업가치는 1000억 원에 달한다. 수퍼빈은 네프론에 탑재한 AI를 발달시켜 인간이 배출하는 모든 쓰레기를 관리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1월 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 수퍼빈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네프론이 보였다. 네모반듯한 상자 상단 왼쪽으로 화면이 보였다. 네프론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배출’ 버튼이 있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사람 머리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김정빈(48) 수퍼빈 대표가 500ml 투명한 페트병을 기자에게 건넸다.
화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구멍에 페트병을 넣었다. 구멍 바닥에 있는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며 페트병을 빨아들였다. 네프론에 내장된 인공지능이 페트병이 재활용 가능한 제품인지 판단했다. 오염이 심하거나 병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 있으면 페트병이라도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는다. 대신 페트병이 깨끗하다면 완전히 구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도 재활용 합격점을 받는다.
버리기 전에 재활용하는 구조 만든다
수퍼빈이 개발한 인공지능 분리수거 로봇 ‘네프론’. [수퍼빈 제공]
-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있나?
“빈 병을 모아 재사용하는 것처럼 플라스틱도 버리지 않고 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 지금의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 체계는 선형 구조다. 제조사가 물건을 만들고 소비자가 이를 사용한 뒤 버린다. 버려진 물건의 일부는 재활용이 되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소비자가 다 쓴 물건을 폐기하기 전에 수거해 제조사가 원하는 수준의 원료로 가공한다면 플라스틱도 병처럼 순환하는 체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 현금성 포인트를 활용했다. 소비자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준다면 적어도 페트병은 깔끔히 씻어 네프론에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플라스틱이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를 순환하게 하려면 제조사가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또 하나의 이유가 제조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제조사는 소비자가 선택할 만한 제품을 만든다. 페트병에 색을 넣거나 화려한 라벨을 붙이는 것도 소비자의 눈을 끌기 위해서다. 네프론이 널리 쓰이게 된다면 소비자들은 환급을 받을 수 있는 투명한 페트병을 주로 쓰게 될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제조사는 굳이 화려한 페트병을 만들 필요가 없다.”
재활용 원료도 상품성으로 경쟁해야
수퍼빈이 생산하는 플라스틱 펠릿과 재활용업체가 만드는 플라스틱 펠릿(아래). [수퍼빈 제공]
- 폐기 처분된 플라스틱과 네프론으로 모은 플라스틱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스틱은 폐기 처분되는 순간 오염이 시작된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 배출한다고 해도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재활용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다른 폐기물과 섞이며 오랜 시간 방치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세척 후 이를 잘게 부숴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펠릿’이라 한다. 폐기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펠릿은 잿빛을 띤다. 아무리 세척을 잘 해도 이물질이 완벽히 지워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네프론으로 모은 플라스틱 펠릿은 투명하다.”
- 깨끗한 플라스틱 조각이 더 비싸게 팔리나?
“오염된 플라스틱 조각은 ㎏당 600~800원 선에 거래된다. 네프론으로 모은 플라스틱 조각은 ㎏당 1500원이다. 깔끔한 플라스틱이 재활용률도 높다. 현재 재활용 처리시설에 1t의 페트병을 넣으면 보통 600~700㎏의 펠릿이 나온다. 네프론으로 모은 페트병 1t을 가공하면 900㎏가량의 펠릿을 추출할 수 있다.”
- 순도 때문에 가격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순도도 순도지만 확실한 수요처가 있어서다. 수퍼빈이 페트병으로 만드는 펠릿은 페트병 제조사인 롯데케미컬에 판매한다. 롯데케미컬이 높은 순도의 페트 펠릿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문의를 먼저 해왔고 그 요청에 맞춰 생산한 제품이다. 재활용 업체의 펠릿으로는 다시 페트병을 만들기 어렵다. 네프론이 모은 플라스틱은 분해 후 녹여 그대로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재활용 원료를 생산하니 비교적 높은 가격을 받게 됐다.”
- 재활용업체가 생산하는 펠렛은 왜 시장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한국의 재활용 산업은 정부 보조금 덕분에 성립한다. 대부분이 재활용 원료를 팔아 돈을 번다기보다는 재활용 실적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처리하는 양이 많아야 하니 품질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재활용 못해 버려지는 자원 최소화가 목표
- 네프론은 지금 페트병과 알루미늄만 수집하고 있다. 기술적 한계 때문인가?“아니다. 지금도 어떤 폐품이든 분리해서 수집할 수 있다. 네프론은 이미지 기반의 AI를 사용한다. 카메라를 통해 폐품을 보고 이 폐품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 분류하는 방식이다. 폐품 중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을 골라내려면 다른 폐품의 이미지도 모두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폐품의 이미지를 계속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성능을 높이고 있다.”
- 추후 다른 폐품 수집에 나설 계획이 있나?
“제조사가 찾는 폐품이 있다면 수집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GS칼텍스와 협업해 PP(폴리프로필렌) 수집 계획을 짜고 있다. 제조업 외에도 다양한 유통업체와도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식품 유통에 쓰이는 포장용기를 소비자에게서 수거해 재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 굳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인공지능이 폐기물을 자동 분류하는 일도 가능할 것 같다.
“가능하지만 당장 상용화하기는 어렵다. 모든 쓰레기를 자동 분류한 뒤 이를 재활용할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 지역을 맡아 직접 재활용 방법과 기준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수퍼빈은 2020년 10월 부산 강서구의 부산에코델타 스마트시티 스마트빌리지에 ‘스마트쓰레기통’ 구축 사업자로 선정됐다. 수퍼빈은 이 사업을 수주해 스마트빌리지 입주 가구를 대상으로 재활용품을 포함한 자원관리 순환체계를 구축한다.
김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부터 재활용 쓰레기까지 마을 내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인공지능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차츰 범위를 넓혀 도시의 폐기물 관리까지 AI로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 사람이 하던 쓰레기 분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재활용 폐기물 집하장에 가본 적이 있나? 사람이 근무할 환경이 아니다. 폐기물을 컨베이어벨트에 흩뿌려 놓고, 사람이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 폐기물 중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골라낸다. 쓰레기가 모여 있으니 악취는 물론이거니와 간혹 눈으로 보는 일이 괴로운 폐기물도 만나게 된다. 임시직이라 급여도 낮다. 재활용 폐기물 집하장에서 폐기물 선별하는 것보다 폐품을 주워 네프론에 넣는 편이 돈을 더 번다.”
- 수퍼빈이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폐기물 처리 구조는 어떤 형태인가.
“인간이 배출하는 모든 폐품을 재활용, 혹은 재사용할 수 있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재활용된다고 생각했던 폐품은 물론이고, 지금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제품까지 용처를 찾고 AI를 통해 분류 및 활용한다면 버려지는 자원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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