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대법관 8명 임명 제청…진보 무게추 이동
이흥구 판사, ‘국보법 사범 1호 대법관’ 눈앞
헌재 재판관 9명 중 과반이 특정 단체 출신
‘文 민정수석’ 시절 김선수·이석태 비서관이 대법관·재판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25일 청와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이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임명 제청을 받아들이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 인준 표결을 통과하면 이 판사는 ‘국보법 사범 1호 대법관’이 된다. 이 판사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에서 활동하며 서울 구로공단 노조 파업을 지원했고, ‘독재 타도’ 구호를 적은 머리띠와 각목 등을 준비한 혐의로 구속됐다. 1심에서는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가 1987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공교로운 것은 그에게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내린 판사가 권순일 대법관이었던 것.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판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유죄판결을 내린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되는 데다 국보법 사범이 대법관에 오르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다만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에 특정 성향의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 법치(法治)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 중립을 의심받을 수 있어 우려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주류 교체 신호탄
그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주류 세력이 대거 교체됐다. 2017년 9월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의 대법원장 임명이 신호탄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 중 안철상·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김상환·노태악 대법관 등 7명을 제청했는데, 최근 이흥구 판사를 포함하면 김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은 8명이 된다. 곧 대법원을 떠나는 권순일 재판관을 비롯해 박상옥·이기택·김재형·조재연·박정화 대법관 등 6명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임기는 6년이다.김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사 중 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모두 법원 내 진보 성향 학술단체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박정화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후신(後身)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했다. 변호사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은 2013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진당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인물로,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립 멤버로 참여해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 대법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이흥구 판사가 대법관에 임명되면 진보 성향 단체 출신 인사는 6명으로 늘어난다. 중도 성향의 대법관을 한 명만 설득하면 13명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수 의견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물론 김 대법원장이 제청한 노태악 대법관이 지난 7월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에서 김 대법원장 판결과 달리 이 지사에게 유죄 의견을 낸 만큼 ‘제청과 판결은 별개’라는 지적도 있다.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헌재)도 주류 세력 교체가 진행됐다. 대법관과 달리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고 국회 동의가 필요 없어 본회의 표결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헌재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는데, 이 중 6명이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 지명·추천으로 임명됐다.
3권 분립 위반, 행정수도 이전 카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전경. [동아DB]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재판관과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을 포함하면 재판관 과반인 5명이 진보 성향의 법원·변호사 단체 출신이다. 9명 재판관 중에서 진보 성향 재판관이 절반을 넘는다.
재판관은 아니지만 헌재의 인사와 예산 등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에도 우리법연구회·민변 출신인 박종문 변호사가 취임해 헌재의 이념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반면, 수십 년간 헌재를 구성한 검찰 출신 재판관은 명맥이 끊겼고,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법관 출신인 점은 사회의 다양성을 외면한 헌재 구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임명에 있어 입법·행정·사법부 상호간 견제·균형을 유지해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는다는 취지의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석태 헌재 재판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4년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했는데, 당시 직속상관인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 김선수 대법관 역시 2005~2007년 문 대통령이 두 번째 민정수석 시절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일했다. 사법의 핵심 두 축인 대법원과 헌재에 대통령과 과거 함께 일한 ‘부하 비서관’ 출신이 임명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인 만큼 ‘사법부 코드화’ 논란이 일었다.
물론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명의 신임 대법관 후보 중 한 명을 선정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지만, 청와대와 교감하에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최근 여권이 16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도 이러한 헌재 구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이전 문제는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과 개헌이나 국민투표, 헌재 판례 변경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만약 수도 이전에 대해 헌재의 판단을 다시 받으려면 국회에서 수도 이전 법률을 제정하고 위헌소송이 제기되면 헌재가 이를 다시 심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권 대법관 후임이 누가 될지를 두고 법조계의 관심이 컸다. 오래전부터 대법관 구성이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 판사)이라는 비판을 받은 만큼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여성이나 검찰 출신이 제청될 거라는 얘기도 있었고, 김 대법원장 취임 후 특정 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대법관이 됐으니 조직 안정성을 위해 정통 법관을 제청할 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9월 임기 반환점을 도는 김 대법원장의 ‘상징적 인사’가 이흥구 부장판사라는 소식을 듣고는 ‘법관의 코드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판사는 온화한 성격에 실력을 갖춘 판사이지만, 최근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에 특정 단체 출신의 인선이 계속돼 ‘타이밍’상 부적절했다. 국민들은 과거에는 보수 성향의 ‘서오남’ 때문에 대법관 획일화를 우려했다면, 이제는 진보 성향 특정 단체 출신 인사로 획일화를 우려하게 됐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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