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윤 기자]
“국민장(葬)이 열리면 조문하자 했는데…”
- 광화문광장에 백 장군 분향소를 설치한 이유는 뭔가.“백 장군께서 위독하다는 보도를 보고 이분이 어떤 분인지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왜 구국의 영웅으로 불리는지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이분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했다. 백 장군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국민장(葬)이 열리면 조문하자’고 했는데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장(葬)으로 한다더라. 반면 비슷한 시기에 서울광장에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가 마련됐다. 성추행 의혹 속에 숨진 채 발견된 시장은 국민들이 편하게 조문하도록 하고, 나라를 지킨 영웅은 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하라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갔다. 우리처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병원 위치도 잘 모른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광화문광장이어서 그곳에 천막을 설치한 거다. 사실 어른들이 ‘그러지 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분향소를 설치한다니 정말 많은 분이 동참해 주셨다.”
- 박 전 시장과 백 장군의 장례가 형평에 맞지 않았다고 보나.
“박 전 시장 사인(死因)이 시장 집무실에서 업무 중 순직이었다면 서울특별시장(葬)이 옳다고 본다. 군인도 휴가 중 사고를 당하면 보상을 못 받지 않나. 박 전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게다가 백 장군 분향소는 시민 10만여 명이 이용했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사전에 서울시 허가를 받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변상금을 내라고 한다. 금액도 과거 다른 단체의 변상금과 비교해 훨씬 많아 씁쓸하다. 우리는 정치적 주장이나 모금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분향소만 운영했을 뿐인데….”
꼰대와 천둥벌거숭이의 만남
고 백선엽 예비역대장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7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뉴시스]
“사실 분향소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이번 일을 치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구국동지회 같은 보수단체 어른들은 기가 세다고 인식했는데 며칠 함께 일해 보니 그런 이미지가 사라졌다. ‘꼰대’라고 불리는 어른들과 그들이 볼 때 ‘천둥벌거숭이’인 청년들이 함께 조문하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백 장군이 돌아가시면서 2030, 6070 세대를 이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전국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어른들이 교대로 분향소를 지켰다.”
- 분향소 설치·운영비용이 꽤 들었겠다.
“(전대협) 의장으로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여러 단체에서 많이 도와줬다. ‘젊은이들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부족한 비용을 대주셨다.”
- 어쨌든 서울시는 변상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변상금 관련 통보는 언제 받았나.
“7월 20일경 육군사관학교총구국동지회 측에 서울시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들었다. 백선엽 장군 시민 분향소가 불법 시설물이니 점용 시간(11~14일)과 면적 등을 반영해 변상금을 물리겠다는 전화였다. 고교생 및 대학생 단체, 각 군(軍) 예비역 단체 등 100여 개 사회단체가 시민 분향소 설치에 함께 참여했는데, 구국동지회 측이 상조회사와 실무 업무를 진행해 그쪽으로 연락한 거 같다. 성추문 의혹을 받는 전 서울시장은 시(市)가 나서 시민 분향소를 차리는데 ‘구국의 영웅’ 분향소는 국민이 설치하고 10만 명 이상이 찾았는데도 변상하라니 씁쓸했다. 서울시가 변상금을 물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 등 국내외에서 성원이 답지했다.”
- 어떤 성원인가.
“많은 국민이 우리의 분향소 설치를 응원하고 ‘나라가 할 일을 청년들이 했다’고 격려해 주셨다. 미국에 거주하는 90대 어르신은 분향소를 설치해 줘 너무 감사하다며 후원 계좌를 알려달라는 e메일을 주셨고, 국내 중견기업의 이사는 변상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전화했다. 그런데 전화를 주는 분들 대부분은 자신의 회사나 이름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정부를 비판하다 보니 회사나 이름이 공개되는 게 부담스러운 것 같다. 이런 분이 굉장히 많다는 건 우리의 행동이 옳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김수현 전대협 의장 “백선엽 분향소 변상금 ‘대신 내주겠다’ 성원 답지” 7월 24일 신동아 보도 참고).”
- 그렇다면 국민 성금으로 변상금을 낼 건가.
“변상금 관련 전화가 왔지 아직 고지서가 오지 않았다. 후원금 문제는 현재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변상금을 내주겠다는 분들에게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지만 사실 마음만 받는 게 우리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강력하게’ 후원 의사를 표하면 정기후원을 해달라고 한다. 비록 우리는 배고프지만, 이런 분들의 성원은 큰 힘이 된다. 변상금은 다른 단체와 조금씩 나눠 내거나 국민들께서 보내준 소액 후원금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 전대협은 2018년 전국 대학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등을 풍자한 ‘문재인 왕 시리즈’ 대자보를 붙이면서 이름을 알렸다. 5월에는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K씨가 벌금 50만 원(건조물침입죄)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자보를 붙여 실형을 받은 K씨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해 취직한 신입사원이다. 개인적으로 진짜 미안한 마음이다. 누구나 드나드는 대학에 대학생이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고 건조물침입죄로 처벌받은 거다. 내가 대표로 있다 보니 전국의 경찰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한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된다’고 하기에 ‘김정은을 욕하는 게 왜 국보법 위반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누군가 신고했으니 조사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K씨는 누군가 신고한 것도 아니고 단국대 측이 처벌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기소해 범죄자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면서 범죄자를 만든 게 아닌가.”
- 이번 판결로 청년들의 활동이 위축될 거 같다.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평범한 대학생이 경찰 전화를 받으면 한 달간 잠을 못 잔다. 그만큼 마음이 여리다. 이런 걸 노린 건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청년이 ‘약자’였나”
[박해윤 기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던 어른들이 이제 청년에게 정부 지원금을 받으라고 하고 약자라고 표현한다. 청년들이 언제부터 약자가 됐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지원금을 받기보다 ‘알바’를 하거나 취직을 하고 싶다. 그런데 알바를 하려고 해도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리가 대거 사라졌다. 정부 정책 실패로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뛰니 청년들의 자취방 월세도 오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청년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약자로 만들어 나라에 기대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병 주고 약 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2030 청년들의 문제를 고민해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 어떤 프로그램인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에게 속아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2030들과 토론하고,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범시민 프로그램이다. 또한 취업과 부동산 문제와 함께 2030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근본적인 문제 등 생활밀착형 문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 연애와 결혼 등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5포 세대 문제는 심각한 사회현상 같다.
“2030 남녀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 계층이동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운 사회가 됐고, 직장이 불안정하거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남성은 연애·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집 장만이 어렵고, 자녀 사교육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서민계층 2030세대는 잘생긴 외모 등 다른 특장점이 없는 이상 연애나 결혼 시장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터놓고 소통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문제를 풀어갈 생각이다. 물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세력이나 잘못된 정책은 과감히 비판하면서 2030들의 생활밀착형 어젠다를 꾸준히 제기하겠다.”
- 전대협의 지향점은 뭔가.
“우리는 정의와 상식을 지향한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길을 가는 데 반대한다. 회원이나 친구들과 토론할 때도 (일제 강제동원과 위안부 역사를 부인해 논란이 된) ‘반일종족주의’와 이를 비판한 ‘신친일파’라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한다. 상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대자보나 요구 사항, 토론회를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정의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잘못된 일을 하면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꼬집었다. 정부가 ‘마이 웨이’를 계속한다면 유머는 빼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을 빼앗길 수는 없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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