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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나’의 길…어찌 여유롭지 않으리

늦가을 창덕궁 순례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내’가 찾은 ‘나’의 길…어찌 여유롭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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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경복궁 일대를 살펴보는데, 문화해설사를 따라다니는 관광객과 동선이 겹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소형 스피커를 이용해 설명하는 그 해설사의 즉석 강의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런데, 이렇게 참담할 수가. 그의 팩트는 부정확했고 해석은 엉터리였다. 대원군과 근정전 중창에 관한 이야기는, 차라리 내가 마이크를 빼앗아 대신 들려주고 싶었다. 왕조 문화에 대한 쉼 없는 찬사, 구한말의 고종과 대원군과 명성왕후에 대한 조잡한 사극 수준의 인물평, 참여자를 통제하기 위해 던지는 너저분한 농담들.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어딘가를 살펴보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더없이 훌륭한 해설을 들으면서 창덕궁 일원을 걷는 중이다. 오랫동안 문화 해설을 전업으로 해온 박광일 씨를 나는 졸졸 따라간다. 우리 일행도, 심지어 동반한 아이들도, 박광일 씨의 반경 10m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절정이 지났다지만 그래도 주말의 고궁 단풍을 보러온 수많은 사람과 중국인 관광객으로 자칫 어수선해지기 쉬웠지만, 세 시간 가까이 박광일 씨의 여유 있는 안내가 나를 포함한 참가자의 고궁 공부를 확실하게 다져주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이른바 ‘엄혹했던 시절’ 마땅히 뜨거워야 했던 학문을 닦으며 답사를 다녔기에 조선 왕조에 대한 그의 견해는 확실히 중심이 잡혀 있었다. 왕조 문화의 겉모습을 호들갑스럽게 나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덕궁에 대한 정확한 사실, 조선 왕실 문화와 일상에 대한 풍부한 에피소드, 임진왜란 이후 망국에 이르는 조선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그 어떤 질문에도 자상한 응답이 가능한 폭넓은 지식을 그는 가졌다. 게다가 푸근한 외모에 적절한 농담까지. 이런 고궁에 오면, 누구라도 하는 농담이 있다.

자부심 가진 사람의 여유

“아,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 좋네.”



왕 흉내라도 한번 내보는 것이다. 그러면, 박광일 씨는 웃으며 농을 건넨다.

“예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숫자는 다르지만 ‘경국대전’을 참조하면 140명 이상은 늘 상주했죠.”

“…예?”

“내시 숫자가 그렇다는….”

“아, 난 또.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어도를 걸으니 옛날 생각이….”

“아하! 그러면 가마꾼? 왜냐하면 임금께서는 늘 가마를 타고 어도를 지나가셨으니.”

박광일 씨는 어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여행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결국은 여행도 공부가 돼버렸다. 여행을 가면 책도 읽고 현장에 있는 선생님 말씀도 들어야 한다. 학교 현장체험학습도 여러 번 가다보니 운이 나쁘면 장소가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친구들과 갈 때는 장난이라도 좀 치련만 부모와 함께 가면 영락없이 감시를 받아야 한다. (…) 대학교 때 답사 준비에 한창 빠져 열심히 공부할 때 어느 절에 가서 선배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참 좋잖아. 너도 느껴봐’였다. 한 수 가르침을 기대한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답사 고수의 대답이다.”

다시 보니, 예전의 그의 얼굴은 알 수 없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어느덧 고수의 반열에 오른 듯 여유 있어 보였다. 우리 일행이 너무도 진지하게 경청하자, 참가비도 내지 않은 사람이 대여섯 명이나 줄줄이 따라다녔는데, 그는 그 사람들의 궁금증까지도 찬찬히 답해줬다. 더불어 우리 일행도 고궁에 드리워지는 햇살을 받아 온순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덕궁의 역사와 기품과 의미에 대해서는, 몇 줄 더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아는 바가 적지만, 11월 8일 토요일 오전, 나는 자기 일에 자부심과 능력을 가진 사람의 여유를 보았고 또 그런 사람과 함께 걷는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김수근의 ‘공간’에서 김창일의 갤러리로

친절한 선생, 박광일 씨와의 창덕궁 산책은 오전으로 끝이 났다. 오후에는, 꽤 오랫동안 ‘비원’이라고 불러온, 창덕궁 후원을 찾기로 했는데, 그 권역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문화재청에 소속된 해설사의 인솔을 따라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박광일 씨와 아쉽게 헤어진 후, 저마다의 취향대로 점심을 먹고, 다시 돈화문 앞에 모이기로 했고, 그래서 나는 바로 옆의 ‘공간’으로 걸어갔다. 언제고 한번은 찾아야지 했으나 늘 차를 몰고 율곡로를 지나가기 바빠서 힐끗 훔쳐볼 따름이었는데, 한 시간 남짓 소요하기에 너무도 적절하여, 나는 북촌의 그 맛있다는 칼국수를 들이마시다시피 하고는 공간으로 걸어갔다.

공간은, 한국의 건축적 모더니티, 그 직수입과 변주와 창조의 굴곡진 드라마를 자기 이름으로 써온 김수근의 건축 세계를 집약해 보여주는 곳이자 그의 수많은 걸작과 문제작을 배태한 곳이다.

공간이, 창덕궁 바로 옆에 있고, 또 공간 옆에 한국 경제의 상징인 대기업 현대의 거대한 건물이 개발주의의 상징처럼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이 건물, 공간이 그러하듯이, 김수근의 건축은 자칫 박제가 될 뻔했던 전통과 개발 일변도로 직진해온 성장주의 사이에 버티고 있다. 초기작인 국립부여박물관의 왜색 논쟁이 말해주다시피, 김수근이 생각한 신생 독립국의 건축 방향은 박제화한 전통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조형성 안에 담기는 오랜 정신적 가치의 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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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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