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국보 반가사유상, 굽어진 손·발가락 비밀

[명작의 비밀]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2-04-0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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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묘하게 꺾어진 반가사유상 손, 발가락

    • 양손 바뀐 김홍도 ‘씨름’ 속 관객

    • 예술적 영감과 종교적 상징의 새로운 표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놓인 2개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왼쪽이 6세기 후반, 오른쪽은 7세기 전반 만들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놓인 2개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왼쪽이 6세기 후반, 오른쪽은 7세기 전반 만들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지난해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사유의 방’이 문을 열었다. 여기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옛 국보 78호)이고, 다른 하나는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옛 국보 83호). 여기서 ‘1962’는 국보로 지정된 해를 의미한다. 문화재청은 2021년 11월 국보 보물 등 지정문화재의 지정번호를 폐지했다. 단순한 지정번호를 서열화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 번호를 폐지한 것이다.

    국보 제1호 숭례문,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아니라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명칭이 똑같은 것이 있다. 이런 경우엔 번호 폐지로 인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의 하나로 명칭 뒤에 국보 지정 연도를 부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두 불상의 경우엔 지정 연도도 동일해 그 연도 뒤에 일련번호를 부여해 구분하고 있다.

    ‘사유의 방’에선 반가사유상의 발가락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아주 특이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발가락 모양이 아니라 발가락이 긴장된 상태로 위쪽으로 툭 튀어 올라와 있다. 그래서인지 두 반가사유상의 발가락을 비교해 보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일본 국보인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과 비교해 보는 사람도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1)이나 고류지 반가사유상의 엄지발가락은 위쪽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보통의 경우처럼 엄지발가락이 발바닥과 일자로 연결되어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에 주목한 이들은 대개 “깨달음이 발가락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극적인 깨달음의 순간, 그 통찰과 희열이 신체에 물리적 영향을 주어 발가락 동작의 변화로 나타났을 것이란 얘기다.

    굽은 발가락은 ‘깨달음의 표현’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을 만났다. 행사를 마치고 사유의 방을 함께 관람했다. 두 반가사유상이 국적에 대해 잠깐 얘기를 나눈 뒤 유 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저 83호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보세요. 잔뜩 긴장해 발가락이 툭 튀어나와 있지요. 저 발가락을 두고 깨달음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우리 집사람이 미술 작업을 하던 중 아주 중요한 순간, 긴장하는 순간,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아, 그전엔 몰랐는데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두고 흔히 ‘깨달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궁금증이 남는다.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깨달음이어야 발가락이 긴장하는 걸까. 저 굽은 발가락은 정말로 깨달음이 신체적으로 구체화된 것일까. 7세기 불교 장인의 경험인가 직관인가. 깨달음이 발가락 표현으로 구체화된 것이라면, 뇌와 발가락의 연관성이 있어야 할 텐데…….

    이 문제를 구체적이거나 본격적으로 다룬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간략한 언급은 있지만 좀 긴 언술은 없는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유 관장의 말은 무척이나 구체적인 정황을 담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무언가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저 엄지발가락은 세속적으로 보면 사실적이지 않다. 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저렇게 될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엄지발가락이 저렇게 튀어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일상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비사실적이지만 종교적으로는 합리적 표현일 것이다.

    작가들만 알던 발가락의 비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이 치켜세워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이 치켜세워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깨달음의 표현’이라는 설명은 종교적이며 직관적이고 그렇기에 다소 막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유 관장의 설명은 무언가 강력한 열쇠로 느껴졌다. 유 관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 이 발가락과 관련해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유 관장이 누구던가. 30대 검사 시절, 기와와 문화재에 빠져 기와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충주 고구려비(국보)를 발견하기도 했다. 2002년엔 그때까지 정성 들여 수집한 기와 컬렉션 1800여 점을 흔쾌히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 후에도 계속 기와를 수집해 2008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세웠다. 유 관장은 이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기와 전문가다.

    부인은 섬유패션 전문가인 금기숙 전 홍익대 교수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유금와당박물관의 ‘유금(柳琴)’은 유창종, 금기숙 부부의 성(姓)에서 따온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전통과 예술에 대한 안목이 대단하다. 그런 유 관장이 부인의 미술 작업 과정에서 발가락의 변화를 발견했다니 놀랍고 흥미로운 포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계기로 발가락과 관련 글이 더 없는지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최근 인터넷 경제신문 ‘데일리임팩트’에 실린 이성낙 가천대 총장의 칼럼 ‘반가사유상, 그 엄지발가락’을 읽게 되었다. 이 전 총장은 피부과 전문의이자 미술사 연구자이다. 그의 박사 논문은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皮膚 病變) 연구’(2014)다.

    이 전 총장의 칼럼에는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가 쓴 책 ‘부처님의 밥맛’(2018)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한 시절 야구중계 캐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지나친 음주로 인해 갑자기 쓰러졌고, 이후 불교에 빠져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규항 아나운서와 이 전 총장은 오랜 친구 사이라고 한다. 그럼 먼저 ‘부처님의 밥맛’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중추신경계까지 파고든 발가락의 비밀

    “왼쪽 무릎 위에 올라간 오른발의 엄지발가락은 발등 쪽으로 완전히 뒤로 젖혀져 있다. 몸 전체의 이완된 분위기와 달리 이 발가락만큼은 대조적으로 긴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 역사학자인 안병욱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78호는 곰 발바닥처럼 평발인데 83호는 엄지발가락을 살짝 비튼 가벼운 움직임이 있다. 얼굴에 손을 대고 명상하다가 법열에 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발가락은 살짝 움직이고 손가락은 뺨에서 막 떨어지는 순간을 나타냈다.” … 김원룡 교수가 반가사유상에 대해 한 말이다. ”불가사의한 웃음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입과 눈이 그대로 두면 무한히 커질 것 같고…… 영원한 적막을 깨뜨리는 것 같으면서 그것을 더 강조하고 있는 벌어진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동작과 묘사는 한마디로 신묘(神妙)……”

    이 전 총장은 자신의 칼럼에 이규항 아나운서의 책 내용을 언급한 뒤 다음과 같이 썼다.

    앞서 안병욱 교수가 지적했듯이 “법열에 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발가락은 살짝 움직이고 손가락은 뺨에서 막 떨어지는 순간을 나타냈다”라는 내용을 의학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깨달음이 혹시 ‘뇌(腦)의 움직임’과 입가의 미소와 발가락 사이의 어떤 신경생물학적 반응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중환자가 사망한 상태, 즉 뇌사(腦死) 상태인지를 감별하는 첫 검사는 바로 ‘바빈스키 반사(Babinski reflex)’입니다. 압설자(押舌子·tongue depressor)로 환자의 발바닥에 자극을 가한 후 얼굴에 나타나는 반응에 따라 일차 감별을 하는 것입니다. ‘뇌와 발바닥 사이’의 그러한 생물학적 연결성을 알고 있기에 친구가 지적한 반가사유상의 ‘굽어진 엄지발가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필자는 우리 반가사유상에 나타난 ‘굽어진 발가락’이 깨침의 순간 중추신경계에 나타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PET-CT 또는 PET-MRI와 같은 최첨단 영상 검사 기법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 관장의 애기와 이 전 총장의 글. 이쯤 되니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직각으로 굽은 손가락, 일종의 종교적 표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의 새끼손가락이 직각으로 굽혀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의 새끼손가락이 직각으로 굽혀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깨달음의 표현’이라는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견해(또는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극적인 깨달음의 순간, 그 결정적 순간에 발가락이 잔뜩 긴장하는 동작을 취하게 된다. 물론 너무 단순한 깨달음, 극적이지 않은 깨달음이라면 발가락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종교적 차원에서 봤을 때, 지극히 세속적인 깨달음이라면 그것 또한 발가락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깨달음이 발가락을 긴장시키는 현상은 발가락 동작이 뇌와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물론 종교적 깨달음의 현상을 의학적으로 모두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대목에서 두 고수(유 관장, 이 전 총장)의 언급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암시적이다.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을 다시 관찰해 본다. 그냥 지렛대 올라가듯이 반듯하게 올라간 것이 아니라 직각으로 굽은 채 돌출되었다. 계단처럼 직각으로 꺾여 돌출된 모양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참으로 흉내 내기 어려운 발가락 동작이다. 세속적으로 보면, 지극히 비일상적이다.

    엄지발가락을 염두에 두고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손가락을 다시 들여다본다. 손가락의 형태도 이례적이다. 뺨에 살짝 댄 오른손을 보면 새끼손가락이 직각으로 굽어 있다. 새끼손가락 세 마디 가운데 첫째 둘째 마디는 일직선으로 펴져 있고 둘째와 셋째 마디 사이가 직각으로 굽어 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손가락을 이렇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엄지발가락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새끼손가락도 일상적이지 않다. 손가락에도 종교적 깨달음의 순간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옆에 있는 국보 반가사유상(1962-1)의 손가락을 보자. 이 반가사유상은 새끼손가락과 약지가 타원형처럼 굽어 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각지지 않고 곡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손가락은 여느 사람도 쉽게 동작을 재현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손가락은 실제로 동작하기 어렵다. 이 또한 치열하고 극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손가락 자세가 아닐까.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국보 반가사유상(1962-1)이나 일본 고류지 반가사유상은 일상에서 동작이 가능한 자세인데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오른발 엄지발가락과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일상에서 취하기 어려운 동작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좌우 손이 바뀌었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 왼쪽 아래 구경꾼의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문화재청]

    단원 김홍도의 ‘씨름’. 왼쪽 아래 구경꾼의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문화재청]

    손과 발……. 여기서 갑자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1806?)의 풍속화 ‘씨름’이 떠오른다. 이 그림을 보면 화면 오른쪽 아래에 구경꾼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명의 두 손이 좌우가 바뀌었다. 어찌 된 일일까. 여기서 김홍도의 ‘씨름’에 대한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의 글을 보자.

    씨름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철 이른 부채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막 힘든 모내기가 끝난 단오절인가 보다. 씨름꾼은 샅바를 상대편 허벅지에 휘감아 팔뚝에만 걸었다. 이건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지방에서만 하던 바씨름이다. 흥미진진한 씨름판, 구경꾼들은 한복판 씨름꾼을 에워싸고 빙 둘러앉았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이겼다. 뒷사람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른손까지 점점 빠져나가 바나나처럼 길어 보이니 곧 나자빠질 게 틀림없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니 상대는 순간 그 쪽으로 낚아챈다. 이크, 오른편 아래 두 구경꾼이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 순간 상체는 뒤로 밀리고 오른팔은 뒤땅을 짚었다. 판 났다! (오주석,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흠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화룡점정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글이다, 그림 속 장면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오주석의 글을 음미하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깜짝 놀라 좌우 두 손이 바뀌었다’는 표현에 집중하겠다. 이렇게 표현한 걸 보면 오주석이라는 사람은 참 넉살도 좋다. 이 넉살은 물론 오주석의 집요한 관찰과 탐구의 결과이지만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통찰이 숨어 있다. 김홍도는 왜 두 손을 바꿔놓았을까. 김홍도가 그릴 줄 몰라서였을까. 오주석은 생전에 “그렇지 않다. 조선 최고의 화가가 좌우 손을 뒤바꿔 그릴 까닭이 없다. 그건 김홍도의 낭만과 익살의 발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봐도 그렇다. 이에 관해 무슨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오주석의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국보 반가사유상(1962-2)의 엄지발가락, 손가락을 보니 생각이 좀 더 재미있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유 관장의 설명이 많은 통찰을 제공해 준다.

    다시 ‘씨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씨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판세는 이제 결정적인 순간으로 접어들었다. 오주석의 설명에 따르면 이 씨름은 시작된 지 오래됐고 그것도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림 위 오른쪽에서 턱을 괴고 누워 있는 구경꾼이 이를 암시한다. 저 구경꾼이 턱을 괴고 누워 불량한 태도로 씨름을 구경할 정도로 이 씨름은 오랫동안 느슨하게 전개된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지루할 것 같은 씨름판이었는데 갑자기 기술이 걸렸고, 순식간에 승패의 갈림길로 돌입했다. 그렇다 보니 구경꾼들은 깜짝 놀랐고, 너무 놀라다 보니 좌우 손이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순간은 이 씨름에서 가장 결정적인 찰나다. 그렇다면 그 순간은 이 그림에서도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김홍도는 이 같은 순간을 그림의 포인트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그 결정적 순간을 구경꾼의 몸동작 특히 ‘손의 뒤바뀜’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김홍도의 예술적 영감이자 예술적 깨달음이다. 다시 말하면, 두 손의 뒤바뀜은 김홍도의 예술적 깨달음의 상징적 낭만적 표현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의 저 엄지발가락 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발가락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손가락도 범상치 않다. 반가사유상의 엄지발가락과 새끼손가락은 종교적 상징이다. ‘씨름’ 속 구경꾼 두 손은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표현이다. 하나는 종교적 깨침이고 하나는 예술적 낭만적 깨침이라고 할까. 이런 점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결정적 순간을 종교적·예술적 낭만적으로 포착했고, 그것이 끝내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었다는 사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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