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고 유명해질 수 있다” 유혹
99만 원 교육비 내고 회원 데려오면 80만 원 지급
회원 2명 이상 데려와야 가입비 건지고 수익 발생
재화 아닌 금전만 거래…허울만 방문판매
큰돈 받은 것처럼 카톡 대화 조작하기도
“자료 확보해 공정위·경찰 신고해야”
온라인 부업을 빌미로 유사 다단계업체를 교묘히 홍보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주 이용하는 젊은 층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5월 대학생 A(21)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온라인 마케팅업체 판매원으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 한 통을 받았다. 화장품을 홍보해 주는 대가로 월 150만 원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체험단 활동으로 팔로어(follower·친구)가 늘어나 유명세를 얻을 수 있다고도 했다. A씨는 수익 창출은 물론 유명 인플루언서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뷰티 체험단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판매원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만여 명 수준. 그의 계정에는 외제차와 명품 가방, 고급 호텔에서 찍은 바캉스 ‘인증샷’이 주기적으로 게시됐다.
막상 A씨가 화상회의로 미팅에 응하자 마케팅업체 판매원은 이전과 다른 얘기를 꺼냈다. A씨에게 제품 설명은 하지 않고 회원 가입을 계속 권유한 것. 이 판매원이 밝힌 수익 구조는 A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제품 홍보 게시물을 올리고 사람들이 해당 게시물을 클릭해 접속하면 돈을 받는 형식이었다. 다른 사람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면 좀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한다. 판매원은 별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도 영구적으로 체험단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 이러한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99만 원의 교육비를 내고 체험단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판매원은 A씨에게 “99만 원의 교육비를 낸 뒤 또 다른 누군가를 유료 회원으로 가입시키면 80만 원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 2명만 가입시켜도 가입비 이상으로 돈을 버는 셈”이라고 말하며 송금을 유도했다. 이어진 A씨의 경험담이다.
“돈 벌고 유명해질 수 있다” 유혹
“판매원의 설명이 석연치 않아 미팅을 마치고 유튜브에서 회사명을 검색해 보니 불법 다단계업체로 의심된다는 내용의 영상이 여러 개 뜨더군요. 인스타그램에 불법 다단계업체로 추정되는 게시물이 많아 주의하고 있었음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해 올지는 몰랐어요. 하마터면 꼼수에 말려들 뻔했어요.”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용환경이 불안정해지자 온라인 부업으로 부수입을 올리려는 2030세대가 부쩍 많아졌다. 온라인 부업은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한 노동의 대가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부업을 말한다. SNS나 유튜브, 블로그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2030세대에게는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일거리다. 문제는 상당수의 업체들이 온라인 부업에 대한 2030세대의 관심과 호기심을 이용해 다단계와 유사한 영업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 “온라인 부업을 하려면 먼저 돈을 지불하라”거나 “다른 회원을 유치하면 좀 더 많은 수익을 얻게 해주겠다”는 방식은 다단계업계에서 주로 쓰는 영업 수법이기 때문이다.
99만 원 내고 회원 2명 데려와야 수익 생겨
인스타그램에는 체험단, 협찬, 리보 홍보 등 각종 온라인 부업 게시물이 넘쳐난다.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나 업체가 홍보하는 것처럼 ‘체험단 활동’으로 돈 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 마케팅업체 대부분은 온라인 부업에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다. 이들 중 상당수 업체는 부업을 시작하려면 먼저 회원 가입을 하라고 요구한다. 이후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를 1000명 이상으로 늘리게 하는데, 팔로어 늘리는 법은 99만 원의 교육비를 지불한 회원에게만 알려준다.
그렇다면 업체들이 돈 받고 알려주는 팔로어 늘리는 ‘비법’은 무엇일까. 업체마다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을 보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면 1시간 이내로 답글 달기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게시물 꾸준히 업로드하기 △게시물에 ‘을지로’ ‘익선동’ ‘망원동’ 같은 핫플레이스 태그하기 △오랫동안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팔로 계정은 언팔로(unfollow·친구 끊기)하기 등이다.
이들 업체는 일정 수준의 팔로어를 확보하면 그때부터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한다. 회원 인스타그램에 제품 홍보물을 올리고 게시물을 본 사람이 링크를 따라 구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일정한 포인트가 회원의 계정으로 주어지는 구조다. 누적된 포인트는 그대로 현금 전환이 가능한 일종의 가상화폐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하루에 많은 포인트를 쌓기가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가령 매일 1000명이 제품 홍보물 링크를 누르면 한 회원당 3점의 포인트를 지급하는데, 이런 구조라면 아무리 열심히 제품 홍보물을 올려도 한 회원이 가져가는 돈은 하루 3000원 선이다.
이들 중 일부 업체는 교육비를 내고도 수익이 시원치 않은 회원에게 다단계판매 방식과 유사하게 다른 유료 회원 가입자를 유치해 올 것을 권하기도 한다. 새 가입자가 기존 가입자를 추천인으로 등록하면 그에 따라 수익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일례로 B가 업체에 99만 원을 지불하고 회원 가입한 뒤 B를 추천인으로 등록한 C가 99만 원을 냈을 때 B는 80만 원을 가져간다. 결국 상당수 업체가 강조하는 ‘월 150만 원 이상 수익’은 유료 회원을 모집해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회원으로 가입시켜야 하는 구조다.
허울만 방문판매, 재화 말고 금전만 거래
이들 업체는 이러한 영업 방식이 다단계판매업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다단계판매업은 B가 C를 데려오고 C가 D를 데려왔을 때 D가 낸 돈이 B와 C 모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현행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5호는 “판매업자에 속한 판매원이 특정인을 해당 판매원의 하위 판매원으로 가입하도록 권유하는 모집 방식을 사용하고, 그 판매원의 가입이 3단계 이상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판매 조직을 통해 재화 등을 판매하는 것”을 다단계판매로 정의하고 있다. 체험단 활동 등을 내건 온라인 부업은 C가 낸 돈이 C를 끌어들인 B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에 방문판매업에 해당한다. 방문판매업은 판매원의 가입이 2단계 이하로 이뤄지고 후원수당 성격의 돈을 지급하지 않아 현행법이 정의한 다단계판매업에 해당하지 않는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영업 방식이 회원이 교육비를 지불한 대가로 재화(제품)를 지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방문판매법 제24조에 따르면 “재화 등의 거래 없이 금전거래를 하거나 재화 등의 거래를 가장해 사실상 금전거래만 하는 행위는 할 수 없게” 돼 있다. 또한 하위 판매원 모집 자체를 두고 경제적 이익을 지급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결국 온라인 마케팅업체 상당수가 제품 체험단 또는 제품 협찬이란 수익 구조를 만들어놓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나가고 있는 셈.
공정거래위원회 특수거래과장을 지낸 김홍석 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온라인 마케팅업체들이 방문판매업으로 신고해 놓고 불법으로 다단계식 영업을 하거나 유사수신 행위를 하는지 여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교육비를 낸 회원이 다른 사람을 유료 가입시켰을 때 신규 회원의 돈으로 기존 회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것은 유사수신 행위(금융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를 상대로 금전을 조달하는 것)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큰돈 받은 것처럼 카톡 대화 조작하기도
이들 업체가 “온라인 부업으로 수익을 쉽게 올릴 수 있다”는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도 문제다. 현행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 제8항은 “판매원 모집이라는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취업·부업 알선, 설명회, 교육회 등 거짓 명목을 내세워 사람을 유인하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홍석 교수는 “요즘에는 제품에 접근하게끔 유인하는 마케팅 방식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의 경우는 방문판매법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온라인 부업 홍보 과정에서 “한 달에 얼마 이상의 수익을 쉽게 올릴 수 있다”고 과장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다단계업체 여러 곳을 수사한 수사관 B씨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조작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마치 큰돈이 입금된 것처럼 꾸미는 등 유료 회원 모집을 위해 거짓 정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업체가 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최근 유행하는 신종 유사 다단계업체는 기존 행태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동안 다단계업체는 주로 판매원들의 인맥을 동원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세를 확장해 왔다. 대학생들을 반강제로 합숙시키고 이들의 인맥을 동원해 제품 판매를 강요한 불법 다단계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이런 업체들이 판매원 모집에 SNS나 유튜브, 블로그를 적극 활용한다. 경찰 단속이 강화된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집합 활동이 금지되면서 전통적인 지인 영업 방식을 고수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수사관 B씨는 “2030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화가 몸에 배 온라인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편이다. 또 인플루언서의 화려한 삶을 선망하고, 온라인 부업으로 재테크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불법 다단계업체 유인책에 쉽게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부연설명은 이렇다.
“한때는 쇼핑몰 창업이나 영수증 인증 등을 통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임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불법 다단계업체로 의심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제품 체험단 또는 상품 협찬을 빌미로 유인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유인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니 특히 2030세대는 고수익이란 문구에 속아선 안 된다.”
“자료 확보해 공정위·경찰에 신고해야”
올해 직접판매공제조합에는 “온라인 부업으로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마케팅업체의 말을 믿어도 되느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직접판매공제조합은 다단계업체나 후원방문판매업체가 야기한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설립됐다. 접수된 피해 신고 사례는 공정위 등에 이첩된다. 한경희 직접판매공제조합 소비자권익보호센터장은 “온라인 마케팅업체가 고수익이 보장되는 온라인 부업이라며 유인하는 마케팅업체의 행태는 불법성이 의심되므로 유료 회원 가입에 응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고수익 부업을 미끼로 유료 회원 가입을 강요하는 판매원이나 업체를 만나면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해 공정위 또는 경찰청, 직접판매공제조합에 신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유사수신업 #체험단부업 #다단계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