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1300억 검사시스템 입찰 적십자사·한국애보트 피소된 까닭

  • 김승재 언론인 phantomalone@naver.com

    입력2020-08-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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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란① 애보트 평가용 장비, 입찰 공고 이전 미리 설치

    • 논란② 애보트, 무허가 시약으로 규격평가 통과

    • 논란③ 적십자사, 애보트 검사 오류 나왔는데도 ‘재검 기회’ 검토

    • 논란④ 수상한 애보트 규격평가 결과보고서

    강원 원주시 대한적십자사 본사.
[위키피디아]

    강원 원주시 대한적십자사 본사. [위키피디아]

    13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들어갈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과정에서 무허가 의료기기가 버젓이 규격평가를 통과하는 등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미국의 유명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Abott)’의 한국지사가 ‘무허가 의료기기’로 면역검사시스템 입찰에 참여했다가 소송을 당했다. 적십자사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한국애보트를 선정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형사 고발됐다.

    美 애보트·獨 지멘스 장비 14년째 가동 중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헌혈 혈액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4가지 항목의 면역검사를 한다. B형간염과 C형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 인체T림프영양성바이러스(HTLV) 검사가 그것이다. 현재 이 네 가지 검사를 하는 장비는 미국 애보트의 프리즘(PRISM)과 독일 지멘스(Siemens)의 비프리(BEFREE)로 이원화돼 있다. 두 장비는 2007년부터 14년째 가동되고 있다. 현재 애보트 프리즘 16대, 지멘스 비프리 13대 등 총 29대가 중앙(서울)과 중부(대전), 남부(부산) 등 전국 3개 혈액검사센터에 설치돼 있다. 

    면역검사를 장기간 진행하면서 장비 이원화와 노후에 따른 비효율성 문제가 대두됐다. 이에 적십자사는 2015년 하반기 ‘혈액검사체계 개선 TF’를 가동해 이듬해인 2016년 1월 면역검사장비 일원화 추진사업 계획을 확정했다. 4가지 면역검사 장비 도입 11년 차인 2017년부터 새로운 면역검사시스템을 적용하고자 2016년 9월 국가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통해 경쟁 입찰을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단순히 면역검사 장비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4가지 면역검사에 사용되는 시약 등 시스템 일체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일원화했다. 

    5년간 사업 예산은 총 832억 원으로 책정됐다. 면역검사 장비 구매비용 72억 원, 5년간 면역검사 시약 구매비용 760억 원을 더한 금액이다. 그런데 장비는 통상 10년 이상 사용하기에 시약 가격 5년치를 추가로 더해 계산하면 실제로는 1600억 원 정도 국가 예산이 들어갈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2017년 5년간 사업 예산이 총 832억 원에서 677억 원으로 줄어 10년간 1300억 원을 좀 넘는 수준이 됐다.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공고는 2016년 하반기부터 2019년까지 총 11차례 있었는데 모두 유찰됐다. 올해도 업체 선정이 어려워 보인다.

    논란① 애보트 평가용 장비, 입찰 공고 이전 미리 설치

    첫 입찰 공고는 2016년 9월 1일 이뤄졌다. 그해에만 11월까지 입찰과 재입찰 공고가 총 4차례 있었다. 4차례 입찰에 기존 장비업체인 지멘스와 ㈜한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만 단독 응찰했다. 경쟁 입찰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모두 유찰됐다. 그래서 적십자사는 2016년 11월 25일 수의시담(隨意示談)을 공고했다. 수의시담은 경쟁 또는 입찰에 따르지 않고 상대방을 임의로 골라 계약을 체결하는 수의계약 방식이다. 수의시담에는 한국애보트도 참여해 지멘스 컨소시엄과 경쟁했다. 



    그런데 2016년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첫 입찰 공고가 나오지도 않은 시점인 5월 23일 한국애보트의 평가용 면역검사 장비, ‘애보트 프리즘넥스트’(PRISMnEXT·한국애보트 측은 현재 면역검사에 사용 중인 ‘애보트 프리즘’을 개선한 제품이라고 설명한다)가 적십자사 중앙혈액검사센터에 설치됐다. 면역검사 장비에 대한 성능평가는 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 1차 서류평가를 통과한 업체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정상인데, 입찰 공고도 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용 장비를 들여온 것이다. 기중기까지 동원해 대형 장비가 설치되자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애보트 장비가 이미 선택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2016년 4월 25일 면역검사평가(성능평가) 관련 업무회의에서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의 이송과 설치에 최소 2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애초 7월 초 검사평가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아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정에 맞춰 평가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애보트 측에 협조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애보트 장비가 5월 23일 설치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경쟁업체들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우선 “장비 이송과 설치하는 데 2주면 충분한데 어떻게 2개월 이상 걸릴 수 있느냐”고 주장한다. 또 그동안 다른 업체들의 경우 “새로운 장비여서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요청해도 적십자사 측에서는 매번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적십자사 측이 애보트의 장비 성능평가를 한 시점은 2016년 12월로, 이는 “7월 초에 있을 평가검사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그로부터 2개월 전에 장비를 들여놓았다”는 해명을 무색게 한다. 11월까지 4차례 입찰이 유찰되면서 애보트 장비에 대한 실제 성능 검사는 장비 입고일로부터 무려 6개월여 뒤에 이뤄진 것. 이는 훗날 보건복지부의 특별감사에서 중대한 문제로 지적됐다.

    논란② 애보트, 무허가 시약으로 규격평가 통과

    애보트 프리즘(위)과 프리즘넥스트 장비.

    애보트 프리즘(위)과 프리즘넥스트 장비.

    2016년 11월 25일 수의시담 공고 이후 적십자사는 규격평가를 위해 지멘스 컨소시엄과 한국애보트, 두 업체로부터 의료기기 품목허가증 등 관련 서류를 제출받았다. 한국애보트가 제출한 서류에는 애보트 프리즘넥스트의 검사용 시약 4종 관련 자료도 포함됐다. 그런데 당시 이 전용 시약 4종은 기존 장비인 애보트 프리즘의 전용 시약으로만 허가받았고, 프리즘넥스트로는 허가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애보트는 4종 시약이 프리즘넥스트로도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며 허위서류를 제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십자사는 1차 서류평가에서 한국애보트와 지멘스 컨소시엄 양사에 모두 합격 점수를 줬다. 그리고 2016년 12월 2일부터 23일까지 2개 업체를 상대로 성능평가를 했다. 성능평가에서는 한국애보트만 통과했다. 즉 입찰 공고가 나기도 전에 면역검사 장비가 미리 입고되고, 해당 장비로는 전용 시약 허가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애보트가 1차 서류평가와 성능평가를 모두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성능평가 기간인 12월 13일 감사원에 심사청구서가 접수됐다. 적십자사가 한국애보트를 선정하려고 특혜를 준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만 해도 무허가 시약 의혹은 제기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 건을 보건복지부로 이첩했고, 보건복지부는 2017년 2월 6일부터 5일간 적십자사를 특별감사했다. 한 달여 뒤인 3월 23일 보건복지부는 그 결과를 적십자사에 통보했다.

    보건복지부의 적십자사 특감…기관·혈액관리본부장 경고

    LG화학이 제출한 민원 문서.

    LG화학이 제출한 민원 문서.

    보건복지부는 우선 적십자사 총재 결재로 추진해야 마땅한 사업을 혈액관리본부장 전결로 처리한 것에 대해 기관경고와 함께 혈액관리본부장 개인에 대해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다. 또 수의시담 성능평가에 앞서 한국애보트의 평가용 검사장비를 미리 입고한 사실을 지적하며 이는 부적절했다고 기관경고 조치했다. 이와 함께 혈액관리본부 홀로 일을 처리하지 말고 유관 부서와 업무 협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 사업을 추진하라며 주의와 개선 지시를 내렸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 참여 없이 혈액관리본부 내부 직원만으로 TF나 실무위원회를 운영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향후 위원회에 외부전문가를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특별감사 결과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혈액관리본부 안에서만 폐쇄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까지 있었으니 사업을 외부에 공개하고 투명하게 진행하라는 경고였다. 

    2017년에도 업체 선정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해 10월 보건복지부 산하 혈액관리위원회는 “서둘러 면역검사시스템 자동화와 일원화를 재추진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그해 적십자사는 면역검사시스템 사업비가 너무 높게 책정된 사실을 확인하고 총 832억 원(면역검사 장비 구매비용 72억 원+시약 구매비 760억 원)이던 사업비를 677억 원으로 줄였다. 애초 5년간 면역검사 시약 구매비로 760억 원을 책정했던 것을 현실에 맞게 대폭 삭감해 605억 원으로 낮췄다. 이 때문에 초창기 사업비가 150억 원 넘게 부풀려져 있었다는 비난이 나왔다. 

    적십자사는 2018년에도 입찰 공고를 냈지만 여러 차례 유찰됐다. 그해 7월쯤 한국애보트와 단독으로 수의시담을 실시했지만, 가격 문제로 또 결렬됐다. 2019년 들어서도 여러 차례 입찰이 유찰되자 적십자사는 5월 16일부터 24일까지 LG화학과 한독, 한국애보트 등 3개 업체에 수의시담을 실시한다고 통보했다. 3개사를 상대로 한 서류평가에서 6월 3일 한국애보트만 통과했다. 

    무허가 시약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 바로 그때였다. 2019년 6월 적십자사 내부자가 “한국애보트가 무허가 시약으로 입찰에 참여했다”며 사무총장에게 공익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공익신고서에는 “적십자사가 무허가 시약으로 응찰한 사실을 알면서도 한국애보트를 선정하려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LG화학과 ㈜한독 등 경쟁업체들도 적십자사에 유사한 내용의 민원을 접수했다. “한국애보트가 입찰에 참여한 4종의 전용 시약이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에 적합하도록 허가받은 제품인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논란③ 적십자사, 애보트 검사 오류 나왔는데도 ‘재검 기회’ 검토

    이런 상황에서 적십자사는 예정대로 7월 15일부터 20일까지 한국애보트를 대상으로 시약 성능평가를 했다. 그런데 이 평가에서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는 인체T림프영양성바이러스(HTLV)의 양성 검체를 음성으로 잘못 판단했다. 동일 검체에 대해 기존 장비인 애보트 프리즘은 두 달 전인 5월 양성 판정을 내렸다. 같은 검체에 대한 결과가 불일치로 나오자 한국애보트는 재검사를 요청했고, 적십자사는 최종 결과를 내리는 걸 보류한 채 재검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다른 업체들이 들고일어났다. 지금까지 면역검사시스템 입찰에서 이런 식으로 불일치 결과가 나왔을 때 적십자사가 재검사 요청을 받아들인 사례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한 적이 있던 한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1회 검사로 모든 것이 평가됐으며 재검사를 요구해도 절대로 해주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관행이었고, 적십자사의 대답이었다. 유독 한국애보트만 배려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보류 결정을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상호 비교 장비가 없는 단독 검사에서의 음성 판정이기 때문에 검체의 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류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적십자, ‘애보트 무허가 의료기기 입찰’ 확인한 이후 식약처에 조사 의뢰

    대한적십자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조사의뢰서.

    대한적십자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조사의뢰서.

    공익신고와 업계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적십자사가 자체 조사한 결과, 결국 애보트가 제출한 전용시약은 프리즘넥스트 장비용으로는 허가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적십자사는 스스로 애보트가 무허가 시약으로 응찰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에 맞는 조치를 내리는 대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다시 한번 조사를 의뢰했다. 

    적십자사는 조사의뢰서에서 한국애보트가 2016년과 2018년, 2019년 3차례 응찰하면서 모두 무허가 의료기기로 입찰에 참여했다며 이로 인한 적십자사의 피해를 적시했다. 입찰 자격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검사를 하며 예산과 소중한 헌혈자 검체를 낭비했다는 호소였다. 3차례 검사에서 특이도 평가에 헌혈자 검체 5000건, 민감도 평가에 헌혈자 검체 200건이 각각 소요됐고, 검체 검사를 위한 국내외 패널 구입비로 1억 원이 들어갔다고 적시했다. 검사를 위해 동원된 직원 인건비 등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의뢰서에서 적십자사는 “한국애보트가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 무허가 시약 입찰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9년 입찰 건에 대해서는 “규정 위반이 아닐 수 있는 근거를 식약처로부터 받아냈다고 주장한다”며 식약처에 이에 대한 해석도 요구했다. 2019년 입찰 건에 대해 한국애보트 측은 식약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무허가 의료기기 입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적십자사의 조사 의뢰에 대해 식약처는 지난해 11월 28일 3가지 사항이 담긴 회신을 보냈다. 우선 “2016년과 2018년 입찰 당시 식약처 허가 사항과 상이한 제품으로 응찰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향후 응찰 제품의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한국애보트 측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둘째, 의료기기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단순 입찰 행위만으로는 의료기기법상 행정처분 대상에 해당하기 어렵다”며 “입찰 시 허위기재 등에 대해서는 의료기기법이 아닌 별도 법률에 의해 검토돼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셋째, “적십자사의 의료기기 입찰 과정에서 응찰 제품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 사전에 검토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한 고위 간부는 필자에게 적십자사의 일련의 조치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적십자사가 스스로 마땅히 걸렀어야 할 것을 제대로 거르지 못해 놓고 나중에 골치 아픈 상황이 되니까 최종 결정의 책임을 식약처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3번째 회신에 적십자사에 대한 불만이 우회적으로 표현됐다.

    한국애보트 ‘부정당업체’ 지정…입찰에서 손뗀 적십자

    적십자사가 한국애보트에 보낸 제재 처분 통지서.

    적십자사가 한국애보트에 보낸 제재 처분 통지서.

    지난해 11월 식약처 회신 이후 적십자사는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건에 대해 올해 2월에야 뒤늦게 일단의 조치를 내렸다. 우선 한국애보트에 대해서는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부정당업체’로 제재하는 처분을 내렸다. 제재 처분 통지서에는 처분 사유에 대해 “입찰에 관한 서류를 부정하게 행사한 자 및 허위 서류를 제출한 자”라고 적시하고 “입찰 참가자격을 6개월 제한한다”고 못 박았다. 이에 한국애보트는 6월 초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7월 15일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 판결에 대해 적십자사는 이의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지난해 7월 성능평가를 위해 중앙혈액검사센터에 다시 들여놓았던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를 올 4월 28일 철거했다. 아울러 면역검사시스템 입찰을 조달청 위탁계약 방식으로 변경했다. 결국 적십자사는 한국애보트에 대한 특혜 의혹까지 불거지게 하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무허가 의료기기를 통과시켜 예산을 낭비하고, 사업 결정 과정에서도 빠지게 됐다. 

    면역검사시스템이 현재까지 4년 가깝게 선정되지 못하면서 장비 에러 발생도 빈발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면역검사시스템이 예정대로 2017년 도입됐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6월까지 3년 6개월간 두 장비에서 발생한 에러는 총 1251건으로 집계됐다. 애보트 프리즘 장비가 776건으로 475건의 지멘스 비프리 장비보다 에러 발생 건수가 1.6배 이상 많았다. 이러한 장비 에러는 면역검사 결과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혈액 공급을 적시에 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가운데 지멘스 비프리 장비의 수리 서비스를 담당하는 ㈜한독 측은 내년부터는 장비 수리와 관련해 적십자사 측과 해오던 연간 단가 계약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심각한 장비 노후로 인해 고장이 잦아 수리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부터는 에러 발생 때마다 개별적으로 비용을 책정해 수리할 계획이어서 장비 수리비용이 크게 오를 전망이다. 새로운 장비 가동은 입찰 공고 이후 빨라야 8개월 이후에나 가능하다. 입찰 공고 이후 업체 선정까지 최소 2개월 정도 걸리고, 업체 선정 이후 장비를 설치하고 정상 가동하기까지는 6개월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8월 초순 현재까지 입찰 공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장비 노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한국애보트·적십자사 피소

    한편 적십자사 전·현직 노조위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5월 21일 한국애보트와 적십자사의 전·현직 관계자 6명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했다. 한국애보트의 경우 해당 업무 담당 임직원 2명이 사기(미수)와 입찰 방해 혐의로, 적십자사는 입찰과 심사와 관련된 혈액관리본부 전·현직 직원 4명이 업무상 배임(미수) 혐의로 고발됐다. 적십자사의 피고발인 4명 가운데 3명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1명은 임상병리사다. 

    노조 측이 고발한 이후 적십자사도 소송에 착수했다. 5월 26일 서울중앙지검에 한국애보트를 의료기기법 위반죄와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소했다. 조만간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그런데 적십자사는 한국애보트에 대해서는 제소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적십자사는 지난해 6월 내부 공익신고가 제기된 것에 대한 조사 결과를 올해 2월 내놨다. 적십자사는 한국애보트를 6개월간 부정당업자로 제재하기로 하면서도, 내부 직원에 대해서는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관련 서류 검토 관련자에 대해서만 업무 소홀에 따른 주의 조치를 내렸다. ‘주의’는 적십자사 내부 규정에서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아무도 징계받은 이가 없는 셈이다. 

    무허가 의료기기 입찰을 둘러싼 특혜 의혹과 관련해 필자는 애보트 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방대하고 다양한 질문을 했지만 애보트 본사 측은 다음과 같이 짧게 해명했다. 

    “애보트는 적십자사가 선정한 공급업체 가운데 하나다. 프리즘을 포함한 프리즘넥스트 장비 시스템은 지난 수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혈액 사업에 사용돼 왔다. 프리즘 및 프리즘넥스트 장비 시스템과 진단 시약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등록돼 있다” 

    애보트 본사는 프리즘넥스트 장비가 4가지 전용 시약으로 허가받은 것으로 허위 서류를 제출한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프리즘 제품군의 등록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관련 당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논란④ 수상한 애보트 규격평가 결과보고서

    2016년 대한적십자사가 작성한 ‘면역검사시스템 규격평가 결과보고서’.

    2016년 대한적십자사가 작성한 ‘면역검사시스템 규격평가 결과보고서’.

    한국애보트의 무허가 시약 입찰 의혹과 관련해 적십자사 측은 “처음에는 무허가 시약인 줄 전혀 몰랐다가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입찰 대상이었던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와 시약이 적십자사로부터 처음 심사 평가를 받은 2016년 12월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한국애보트가 제출한 4가지 시약은 식약처로부터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장비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지 않았고, 기존 장비인 애보트 프리즘으로만 허가를 받았다. 

    이와 관련 필자는 2016년 12월 23일 적십자사가 작성한 ‘면역검사시스템 규격평가 결과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2016년 12월 수의시담에서 1차 서류 평가와 2차 성능 평가를 거친 애보트 프리즘넥스트 시스템에 대한 적십자사의 최종 평가 결과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규격평가 대상으로 기재된 장비 명칭은 실제 평가 대상 장비인 ‘프리즘넥스트’와 기존 장비인 ‘애보트 프리즘’이 혼용돼 사용되고 있다. 서류 전체가 컴퓨터로 작성된 보고서 부분의 장비 명칭은 기존 장비인 ‘애보트 프리즘’으로 돼 있다. 그런데 손글씨(手記)가 일부 들어간 서류에는 실제 장비인 ‘프리즘넥스트’로 기재됐다. 이 서류에는 심사위원 이름과 장비 명칭, 평가 결과가 손글씨로 쓰여 있다. 특히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심사위원장인 적십자사 고위 간부가 직접 손으로 ‘프리즘넥스트’로 쓰고 모든 평가 항목에 대해 ‘적격’ 판정을 내렸다. 

    2016년 당시 심사 과정을 잘 아는 적십자사 내부 직원은 “혈액관리본부 담당자들은 프리즘넥스트 장비가 시약 허가를 받지 않은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애보트 장비를 챙겨줬다. 그래서 적십자사 내부에서는 이미 일찌감치 한국애보트가 선정되는가 보다 하는 의심이 나오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대해 적십자사와 한국애보트는 “심사 과정에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고 부인한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서울수서경찰서가 병합 수사한다. 1300억 원 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에 대해 당국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밝혀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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