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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샤댐 붕괴하면 중국공산당 영도력도 붕괴

중국이 쌓은 바벨탑, 싼샤댐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싼샤댐 붕괴하면 중국공산당 영도력도 붕괴

  • ● 중국 기록적 대홍수… 싼샤댐 붕괴說
    ● 붕괴 가능성 낮으나 댐 기능 잃은 지 오래
    ● 國父 쑨원부터 시작된 백년대계
    ● 비리·부실 공사로 쌓아 올린 大役事
    ● 댐 제방에서 균열 1만 군데 발견
중국 후베이성 싼샤댐 수문에서 7월 25일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물줄기가 방류되고 있다. [신화=뉴시스]

중국 후베이성 싼샤댐 수문에서 7월 25일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물줄기가 방류되고 있다. [신화=뉴시스]

‘재경냉안(財經冷眼)’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익명의 분석가가 내놓은 ‘싼샤댐 붕괴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싼샤(三峽)댐 붕괴!” 

2020년 8월 어느 날 외신들이 상하이(上海)발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이 소식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발전량 기준 세계 최대 댐이 붕괴한 것이다. 

붕괴 당일, 태풍과 폭우로 저수량은 댐 설계수위 185m를 넘어섰다. 싼샤댐 유지 관리를 맡은 중국 국유기업 창장싼샤집단(長江三峽集團)은 1초당 3만8000t의 물을 방류하며 수위 조절에 나섰지만, 1초당 유입량은 두 배 수준인 7만t에 달했다. 총 길이 2355m 콘크리트 구조 댐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저수된 393억m³의 물이 1초당 2370만㎥씩 쏟아졌다. 

홍수는 중·하류를 향해 질주했다. 물은 30분 후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에 닿았다. 인구 410만 명의 이 도시는 5시간 만에 시속 70㎞, 높이 20m의 물에 잠겼다. 시속 60㎞로 느려진 홍수는 15~20m 수위를 유지하며 창강(長江) 중류 산악지대와 평원을 지나 부채꼴로 퍼지며 강 유역을 뒤덮었다. 물결이 분산되면서 수위는 8~10m로 낮아졌고, 유속도 시속 25㎞로 떨어졌다. 그러다 지류(支流), 호수의 홍수가 더해져 시속 35㎞로 다시 빨라져 인구 580만 명의 후베이성 징저우(荊州)시를 수몰시켰다. 



홍수는 멈추지 않고 인구 1100만 명의 후베이성 성도(省都) 우한(武漢)시로 직행했다. 댐 붕괴 10시간 만에 우한시 면적 30%가 물에 잠겼다. 우한을 지난 홍수는 좁은 수로를 타고 속도를 높여 1500㎞ 떨어진 인구 840만 명의 장쑤(江蘇)성 성도 난징(南京)시를 집어삼킨 후에야 힘을 잃었다. 댐 붕괴 24시간 만이었다. 중국 정부는 싼샤댐 붕괴로 1억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中당국 “향후 100년간 싼샤댐 붕괴될 일은 없다”

‘재경냉안(財經冷眼)’은 7월 23일 컴퓨터 그래픽스로 제작한 시뮬레이션 영상을 트위터 계정에 게시했다. 제작자, 입수 경로가 불분명한 이 영상은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공개 하루 만에 조회수 20만 건을 기록했다.

유튜브 등에서는 이 영상을 기반으로 한 유사 영상물이 퍼졌다. 중국 누리꾼들은 3D 입체영상으로 정교하게 구현된 지형, 유속, 도시별 도달 시간, 피해 정도 등의 구체성을 이유로 들면서 “중국 정부 기관이 제작한 시뮬레이션이다. 일반인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지적했다. 파장이 커지자 중국 당국은 해당 링크와 영상을 삭제했다. 그러면서 “향후 100년간 싼샤댐이 붕괴될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석 달째 중국 중남부 지방을 강타하고 있는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 싼샤댐의 안전성 문제가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7월 말~8월 초 댐 수위는 한계 수위 175m에 불과 10m 아래인 165m 언저리를 기록하고 있다. 홍수 통제수위 145m를 넘어선 지는 오래다. 댐 붕괴를 막기 위해 방류량을 최대치로 유지하고 있지만, 잇따르는 폭우로 유입량을 감당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댐 붕괴설’도 확산일로다. 하류 해안지대에 자리한 원자력발전소까지 파손돼 복구 불능의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돈다. 


소양강댐 13.5배 규모 담수량

싼샤댐은 흔히 양쯔강이라고 하는 창강에 건설됐다. [중국 바이두]

싼샤댐은 흔히 양쯔강이라고 하는 창강에 건설됐다. [중국 바이두]

싼샤댐은 흔히 ‘양쯔(揚子)강’으로 불리는 창(長)강 유역에 자리한다. 싼샤(三峽·삼협)는 쓰촨(四川)성과 후베이성에 걸쳐 있다. 총 길이 204㎞에 달하는 취탕샤(瞿塘峽·구당협), 우샤(巫峽·무협), 시링샤(西陵峽·서릉협) 3개 협곡(峽谷)이다. 댐 최대 저수량 393억m³는 한국 소양강댐 저수량 29억m³의 13.5배 규모다. 한반도 전역에 흐르는 담수량의 2배, 일본 전역 담수량과 맞먹을 정도다. 총 공기(工期) 15년, 총 예산 1조8000억 위안(32조 원)이 소요된 대역사(大役事)다. ‘만리장성 건설 이후 중국 최대 토목공사’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전무후무한 대공사인 만큼 건설 당시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1992년 4월 3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제7회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5차 회의가 개최됐다. 주요 국가 사업 표결 중 가장 중요한 안건 투표가 진행됐다. 싼샤댐 건설 여부였다. 오후 3시, 완리(萬里)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했다. 참가자 2608명 중 찬성 1767명, 반대 177명, 기권 664명으로 ‘싼샤댐 건설 결의안’이 통과됐다. 회의장 내 취재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반대·기권표가 33%에 달해서다.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여겨온 전인대 전통이 깨진 것이다. 1949년 신(新)중국 성립 이후 전례 없는 일이다. 

싼샤댐 건설은 명실상부한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다. 건설을 처음 구상한 이는 국부(國父) 쑨원(孫文)이다. 창강에서 10년 주기로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피해 해결책을 고민하던 쑨원은 1894년 청(淸)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에게 보낸 서신에서 창강 중·상류 댐 건설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후 쑨원은 1919년 출간한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1925년 쑨원 사후 국민정부(國民政府) 당·정·군 최고지도자가 된 장제스(蔣介石)도 1932년 싼샤댐 건설 검토 지시를 내렸다. 한 해 전인 1931년 창강 범람으로 사상자 15만 명, 이재민 2850만 명이 발생했다. 

1944년 후버(Hoover)댐 등을 설계한 미국 연방 개간국 엔지니어 존 루시안 새비지(John Lucian Savage)가 창강 일대 조사 후 건설계획안을 국민정부에 건의했다. 1945년 시작된 공사는 1946년 재개된 국공내전으로 1947년 중단됐다.

비리·부실 공사로 쌓아 올린 바벨탑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마오쩌둥(毛澤東) 등 중국 지도부는 싼샤댐 건설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대약진운동(1958~1962),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건설 사업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80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현재 싼샤댐 자리인 싼더우핑(三斗坪) 일대를 순방했다. 이후 싼샤댐 건설 계획은 속도를 냈다. 1989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싼더우핑을 방문했다. 이듬해 7월 국무원 산하 기구로 싼샤댐심사위원회(三峽工程審査委員會)가 만들어졌다. 

싼샤댐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리펑(李鵬)이었다. 리펑은 창강 상류 쓰촨성 청두(成都) 태생으로 옛 소련 모스크바동력대에서 수리공정학을 전공했다. 1987년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자 싼샤댐 건설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1988년 국무원 총리에 오른 후에도 싼샤댐에 대한 집념을 멈추지 않았다. 

리펑은 1994년 12월 14일 싼샤댐 착공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오랜 꿈을 현실화했다. 쑨원의 언급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만이었다. 

공사는 △1단계(1994~1997) 기초공사 △2단계(1997~2003) 댐 축조, 갑문·수로 건설, 저수 △3단계(2003~2006) 발전기 건설, 수몰민 이주를 거쳐 2006년 5월 20일 완공식이 개최됐다. ‘21세기 최대 토목 공정’으로 꼽히는 싼샤댐 완공식에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 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전원 불참했다. 싼샤공정건설위원회 주임을 겸하던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도 참석하지 않았다. 서구 매체들은 “중국 지도부가 총체적 부실 덩어리인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건설 때부터 비리와 부실공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 중심에는 건설 총괄 책임자 리펑 일가와 측근들이 자리했다. 2016년부터 국무원 교통운수부장을 맡고 있는 리펑의 장남 리샤오펑(李小鵬)을 비롯해 ‘전력여왕’이란 별칭을 가진 장녀 리샤오린(李小琳) 전 중국전력국제공사 회장, 차남 리샤오융(李小勇) 등 리펑 일가가 비리의 몸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댐 건설 및 사후 유지 관리에서 핵심 역할을 한 차오광징(曹廣晶) 창장싼샤집단 이사장, 궈유밍(郭有明) 후베이성 부성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처벌받았다.

댐 제방에서 균열 1만 군데 발견

7월 1일 중국 충칭시에 홍수가 나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누렇게 흐르고 있다(왼쪽). 7월 10일 중국 후베이성 황메이현에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구조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인명을 구조해 이동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7월 1일 중국 충칭시에 홍수가 나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누렇게 흐르고 있다(왼쪽). 7월 10일 중국 후베이성 황메이현에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구조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인명을 구조해 이동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2014년까지 중국 정부가 싼샤댐과 관련해 적발·공표한 각종 불법행위는 80건, 사법처리된 인원은 113명에 달한다. 규정 위반으로 적발된 자금도 34억4500만 위안(5900억 원)에 달한다. 싼샤댐은 2008년 시험 저수를 시작할 때부터 강벽(强癖) 붕괴, 토사 유출, 지반 변형이 발생했다. 댐 제방에서는 1만 군데의 균열이 발견됐다. 전형적인 부실 공사의 결과다. 

싼샤댐 건설에 강경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대표 인물은 황완리(黃萬里) 전 칭화대(淸華大) 교수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를 졸업한 당대 중국 최고 수리(水利)학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황허(黃河)댐 건설에 반대해 22년 간 강제노역을 한 경력도 있다. 

황완리는 싼샤댐 건설이 야기할 재난에 대해 △창강 하류 제방 붕괴 △항운(航運)에 지장 △대량 수몰민 발생 △퇴적물 대량 침전 △수질 악화 △수력 발전량 부족 △기후 이상 △지진 발생 △흡혈충(吸血蟲) 발생 △창강 유역 생태계 악화 △창강 상류 수재 발생 △댐 붕괴 등 ‘12가지 예언’을 남겼다. 그중 마지막 ‘댐 붕괴’ 외에는 모두 실현됐다. 2009년 작고한 그는 임종 직전에도 “싼샤댐은 어떻게 해도 운영될 수 없다”면서 “파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황완리의 예언은 싼샤댐 저수량이 위험 수위에 도달할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며 공포심을 키운다. 

실제로 싼샤댐이 붕괴할까. 다수 전문가는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만수(滿水)위까지는 여유가 있다 △콘크리트 구조의 댐에 충격을 가할 수준의 상류 홍수 발생 가능성은 낮다 △상류의 제방 폭파 등으로 물 유입량을 줄여 압력을 줄이고 있다는 게 근거다. 중국 정부는 올여름 댐 저수량을 줄이려고 상류의 제방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방류량을 최대치로 늘리고 있다. 

싼샤댐 붕괴 가능성이 낮은 다른 이유는 중국공산당이 붕괴를 막고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는 점이다. ‘싼샤댐 붕괴=중국공산당 영도력 붕괴’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싼샤댐 사수에 나설 것이다. ‘붕괴설’은 괴담으로 치부해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싼샤댐은 홍수 조절이라는 댐 본연의 기능을 잃었다. 인간은 대자연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중국의 바벨탑’이 된 싼샤댐과 이를 쌓았으며 지키려는 중국공산당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신동아 2020년 9월호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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