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중고거래 플랫폼 활용한 청소년 대상 범죄 주의보

또래 물색해 직거래 유도한 뒤 갈취·폭행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2-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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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악용한 범죄 기승

    • “한동네 사니까 지금 만나자” 구매자인 척 접근

    • “착용샷 찍어달라”며 신체사진 받아내 협박에 활용

    • 신고 꺼리는 10대 특성 이용해 대담한 범죄행각

    • “미성년자는 중고물품 직거래 시 보호자와 동행해야”

    [GettyImages]

    [GettyImages]

    10대 청소년 A군은 지난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아이폰8 판매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린 뒤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물건이 마음에 든다. 한동네에 사니 지금 바로 만나 거래하자”는 내용이었다. 구매 희망자는 A군 집에서 멀지 않은 서울 동대문구 한 길가를 약속 장소로 제안했다. 현장에 가니 A군 또래로 보이는 청소년이 오토바이를 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A군에게 “전화기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말하며 물건을 건네받은 뒤 외투 주머니에 넣고는 그대로 도주했다.

    “한동네 사니까 지금 만나자” 구매자인 척 접근

    최근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10대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GettyImages]

    최근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10대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GettyImages]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10대 청소년 B군은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아웃도어 의류 판매 글을 올렸다가 피해를 보았다. “나와 친구가 돈을 모아 그 옷을 사려고 한다. 한동네에 살고 있으니 지금 나와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간 장소에는 역시 또래로 보이는 청소년 두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한명인 C군이 B군에게 “옷을 내게 주고 내 친구 D와 같이 현금자동입출금기에 가서 돈을 받으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옷을 건넨 뒤 D군과 함께 현금자동입출금기에 간 B군은 그곳에서 D군에게 “지금 내 계좌에 5만 원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B군이 판매 글에 적어놓은 해당 옷 가격은 15만 원이었다. 그런데 D군은 B군에게 “C가 내 계좌로 10만 원을 입금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어겼다. 나도 C에게 속은 것”이라며 “지금은 5만 원밖에 못 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C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전화기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최근 지역 기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0대를 상대로 한 또래 범죄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곽혜숙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과거 청소년 대상 사이버 범죄의 주 무대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요즘엔 당근마켓·번개장터 같은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또한 범행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직접적 이유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청소년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1~6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앱 이용자의 84% 이상이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1980년생부터 2004년생까지 출생자)였다. 그중 약 15%가 10대이며, 10대 이용자 비율은 계속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이 범죄 공간으로 악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웃끼리 직거래하자’며 피해자를 유인하기 쉬워서다. 당근마켓은 이용자 위치를 파악해 반경 6㎞ 이내(서울은 반경 4㎞) 사람끼리 중고물품을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번개장터 또한 구매자 위치를 중심으로 2~10km 안에 있는 사람과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우리동네’ 서비스를 운영한다.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우리동네에 물건을 올리면 판매자의 위치 정보가 시·군·구는 물론 동(洞) 단위까지 표기된다. 10대 범죄자들은 이 기능을 활용해 자기가 잘 아는 지역에 등록된 중고물품 가운데 10대가 올린 것으로 보이는 것을 골라낸다. 이후 메시지나 채팅을 통해 “한동네에 살고 있으니 지금 만나 거래하자”라며 불러내 중고품이나 현금을 갈취한다. 



    문제는 10대 상당수가 이런 피해를 당해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10대의 경우 부모 몰래 중고거래한 사실을 들켜 혼날까봐, 또는 자기 주소지를 아는 가해자에게 2차 피해를 당할까 봐 등 여러 이유로 신고를 꺼린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관련 범죄가 점점 기승을 부린다는 지적이 있다. 


    신고 꺼리는 10대 특성 이용해 대담한 범죄행각

    중고거래 플랫폼은 성희롱, 협박 등 성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GettyImages]

    중고거래 플랫폼은 성희롱, 협박 등 성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GettyImages]

    최근에는 가해자가 직접 판매글을 올려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10대 E군과 F군은 지난해 한 업자로부터 미등록 오토바이를 구매한 뒤 당근마켓에 판매 글을 올렸다. 10대 G군이 구매 의사를 밝히자 E군은 “사는 곳을 알려주면 내가 오토바이를 갖고 가겠다”고 제안해 그의 주소를 파악했다. G군은 자기 아파트 단지에서 E군에게 80만 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산 뒤 주차장에 세워뒀다. 이후 E군과 한패인 F군은 해당 아파트 단지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해당 오토바이를 찾아내 번호판을 훔쳤다. 며칠 뒤 E군이 G군에게 “오토바이 잘 타고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내자 G군은 “번호판이 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E군은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경찰 단속에 걸린다. 차라리 나한테 다시 팔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헐값만 주고 오토바이를 돌려받았다. 이 사건은 이대로 끝나는 듯했으나, E군과 F군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를 당한 또 다른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하면서 G군 피해 사실까지 드러났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10대 H군은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스마트폰을 판매하려다 또래에게 폭행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말, H군이 스마트폰을 직거래하러 나간 현장에는 또래로 보이는 청소년 3명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H군에게 “스마트폰 가격을 7만 원 깎아달라”고 요구했고, H군이 거절하자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했다. 급기야 일행 중 한 명이 H군에게 “나와 싸워서 이기면 돈을 더 주겠다”며 주먹질까지 했다. 그들의 공갈과 폭행에 겁을 먹은 H군은 당초 10만 원에 팔려 했던 스마트폰을 3만 원만 받은 채 넘겼다. 가해자들은 H군에게 “상호 합의하에 거래가 성사됐으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이상한 얘기 하고 다니면 네가 몰래 중고 거래한 사실을 집과 학교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사건은 H군이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성범죄 무대로 악용하는 이들도 있다. 수법은 이렇다. 먼저 10대 여성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중고 의류 판매 글을 검색한다. 이후 자기도 여성인 것처럼 가장해 채팅 메시지를 보낸다. “내 남자친구가 노출 있는 옷을 좋아한다. 가슴 부분이 어느 정도 파였는지 궁금하니 직접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 같은 식이다. 사진을 받고 나면 “가슴이 크다” “몸매가 좋다” 등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며 성희롱하거나, 해당 사진을 유출하겠다고 협박하며 자기 요구를 들어주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이때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희롱성 발언이 담긴 채팅 화면을 갈무리해 신고하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가해자가 다른 사람 개인정보로 회원 가입을 한 경우 등엔 신상정보 확인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피해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게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당부했다. 

    지역 기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발생한 범죄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추가 피해가 이어질 수 있는 점도 문제다.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중고거래 범행 대상을 물색한 가해자는 보통 피해자에게 ‘지금 거래하고 싶으니 연락처와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 각종 개인정보부터 확보한다”며 “피해자의 얼굴, 주소, 연락처 등을 모두 알고 있는 가해자가 2차 범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업자가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해 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태를 지켜보기만 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10대를 포함한 이용자에게 거래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를 시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고발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이용한 2차 범행 우려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온라인 정보를 자기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같은 플랫폼은 중고거래를 목적으로 만든 곳이다. 이용자 대부분은 이 목적에 맞게 플랫폼을 이용한다. 가입자 가운데 다른 의도를 가진 이를 구분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특히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판단 능력이 완성되지 않은 10대의 경우 더욱 그렇다. 곽혜숙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은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상대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 10대에게 이 사실을 숙지시키고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할 때 ‘거래과정에서 상대에게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상대를 겁박하며 거래를 강요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윤호 변호사는 “중고거래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구매자든 판매자든 의심스러운 거래에 응하지 않는 것”이라며 “중고거래에 앞서 경찰청에서 제공하는 ‘사이버캅’ 앱을 통해 판매자 관련 사기 신고 접수 이력이 없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노 변호사는 또 “10대는 직거래 시 보호자와 동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만에 하나 범죄 피해를 당할 경우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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