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코로나19 팬데믹, ‘바이오 선진국’ 도약 계기 삼아야

  • 정기석 前 질병관리본부장

    입력2022-04-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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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역 지휘체계 구성, 전문성 최우선으로

    • 불나면 소방청, 전쟁 나면 국방부, 감염병엔 질병청

    • 동네 병의원도 코로나 검사 및 진단, 치료토록

    • 자료 축적과 분석으로 과학적 방역정책 수립

    •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국가적 역량 쏟아야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서울역 임시선별검사소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서울역 임시선별검사소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차기 정부가 시작하는 5월 10일쯤에는 지금 우리가 겪는 오미크론 대유행이 어느 정도 정리돼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오미크론의 정점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분별하게 방역을 풀고 있어 그때까지 국민의 생명이 하나라고 헛되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방역정책은 언제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오미크론 이후의 코로나19 유행은 풍토병으로 전환돼 제2의 독감 수준으로 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새로운 변이의 출현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통용되는 백신이 오미크론에는 효과가 많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이고, 새로운 백신이 나온다면 과연 몇 차례나 접종해야 할지도 걱정이다.

    현 정부는 백신 늑장 도입, 근거 없는 거리두기 단계, 추가 접종 지연, 위드 코로나 정책 실패, 방역패스 무분별 적용, 기약 없는 소상공인 영업시간 제한, 사인 간 집합 인원 제한 등 실로 많은 비과학적 정책상의 오점을 남겼다. 물론 그간 고생한 공무원들에게는 아낌없는 감사를 보내지만 방역 컨트롤타워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헌신한 만큼의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차기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정책을 세우고 전문가에 의한 가장 과학적이고 통계에 기반한 방역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감염병 막는 것은 질병청에 맡겨야

    차기 정부는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역 지휘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질병청장의 모습이 각종 방역 정책 현장에서 보이 지 않은지 꽤 오래됐다. 질병청장을 보좌하는 정부 내 최고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묻힌 지 오래다. 코로나19 방역정책은 전문성 하나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졌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겪어보니 전문성에 기반하지 않은 판단은 방향성을 잃기 십상이었다. 불이 나면 소방청이, 전쟁이 나면 국방부가 나서듯 감염병을 막는 것은 질병청에 맡기는 것이 옳다.

    정부 내 부처 간 협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정하면 된다. 실무적인 모든 것은 질병청장과 각 부처 차관 또는 담당 실장들에게 맡기면 된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중요한 정무적 판단 외에는 가급적 개입을 안 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팬데믹을 최대한 빨리 종식시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는 장기간의 거리두기에 지친 국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완화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간 강도의 거리두기를 지나치게 오래 끌어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가족 간 만남을 과도하게 억압했으며, 무엇보다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차기 정부는 감염병유행이 안정화되면 즉시 적극적인 완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 물론 위험수위에 다다르면 과감히 봉쇄 전략을 펴되 고강도 전략을 굵고 짧게 해야 한다. 아울러 그런 상황이 오면 반드시 보상 정책을 같이 수립해서 충분한 보상을 담보로 해야 한다.



    보상 정책이 거리두기 단계와 동시에 마련된다면 불필요한 거리두기 연장의 폐해는 줄어들 것이다. 완화 정책은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인 인구를 대상으로 실외시설, 환기가 우수한 시설부터 적극적으로 시행하면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감염과 전파는 잘 조직된 의료체계가 뒷받침하면 된다. 대신 고위험군은 철저히 보호해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로 중증 이행을 예방하고, 고위험시설 내 수용자, 근무자들은 정기적인 관리로 집단 발생을 예방해야 한다. 특정 시설에 집단 감염이 발생하더라고 집단 격리 대신 환자와 접촉자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거점시설 지정 등 보다 과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재택치료 시스템은 잘못된 것

    셋째로는 코로나 진료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 풍토병 수준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하려면 풍토병인 독감 환자들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는지 살펴서 그대로 하면 된다. 독감은 증상이 있을 때 누구나 의사를 만날 수 있고, 신속 검사를 통해 즉시 진단이 가능하고, 유행 시에는 검사 없이도 즉시 특효약 투여가 가능하기에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도 검사와 진단, 치료를 동네 병의원과 대형 병원이 모두 참여해서 진료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100만 명이 넘는 확진자를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은 관리도 안될뿐더러,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해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진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국 226개 시군구를 중심으로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해당 지자체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진료체계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구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런 체계를 만드는 데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아프면 의사를 만나고, 진찰하고 검사하고 치료받는 가장 일상적 의료를 구현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풍토병의 진료이고 일상으로의 복귀이다.

    넷째, 코로나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본 국민에게 국가는 적절한 위로와 보상을 해야 한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 대한 영업 피해 보상, 백신접종으로 건강상 피해를 본 분들과 그 가족들, 무리한 방역정책으로 정신적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 관련 피해신고센터, 전문 클리닉 등을 개설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또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코로나19 관련 입증 책임도 국가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다섯째, 빅데이터를 이용한 과학적 방역이 필요하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다수의 선진국이 다양한 자료를 생산하고 분석해 보고하고 활용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도 많은 자료를 생산했지만, 중요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2년이 넘는 기간 정부는 1억 건 이상의 검사, 역학조사, 백신접종, 항체검사, 돌파감염, 치료 성적 등 정책 수립과 개선에 필수적인 자료의 수집과 생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역학조사를 수기로 하는 것, 검사 결과, 병실 상황 등의 취합을 자동화하지 않은 것 등 자료 취합에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을 소모했다. 항체 형성 여부는 백신접종 효과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 자료인데도 제한된 연령과 직업군에서만 시행해 전 연령층과 고위험군에 대한 자료를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추가 접종 계획을 제때 세울 수 없어 돌파감염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차기 정부는 ICT강국의 자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해 더욱 과학적인 방역정책을 계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여섯째, 다음 팬데믹을 대비해 국가 차원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우리는 이번에 백신과 치료제를 모두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생명과학 분야는 향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중요한 산업이고 집중 육성 분야다.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국가 R&D 투자 방향과 방식을 재점검하고, 국가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등 국가기관의 활성화, 생명과학 분야 강국을 향한 시설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확보 등 제2의 먹거리를 위한 정책을 최대한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보건부 신설은 전문성 부여로 그 동력을 배가할 수 있다. 현재 의과학 분야에 몰려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연구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준다면 우리도 바이오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다음 팬데믹에는 우리가 만든 백신과 치료제가 인류를 구하는 긍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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