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평화 구걸해 전쟁 막을 수 없다”

[백승주 칼럼]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깨운 교훈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2-03-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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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질서 재편 가져올 우크라이나 사태

    • 美와 멀어진 南, 中·러와 가까워진 北

    • 文 외교정책은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

    • 철저히 ‘전쟁’ 준비해야 ‘평화’ 얻을 수 있어

    • 자강 바탕한 동맹전력 극대화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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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신동아’ 1월호에 ‘우크라이나, 제3차 세계대전 발화(發火) 지점 되나’, 3월호에 ‘美, 우크라이나에서 물러서면 ‘종이호랑이’ 된다’ 제하 글을 기고했다. 두 가지 주제를 다루며 우크라이나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랐다.

    불행하게도 우크라이나는 제3차 세계대전 직전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2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에 대해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해 제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는 것,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2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파멸적인 핵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외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말하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인정한 것은 작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이 더 큰 전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 5일 직접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서방권의 제재를 ‘선전포고’로 규정, 강력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제제재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제재 대상국 숫자를 고려한다면 유럽은 이미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상황이다.

    유엔은 3월 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제 11차 긴급특별총회를 열고,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채택했다. 이날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 단 5개국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표결 직전 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다른 나라를 향한 고압적이고 독단적 태도에 심취한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과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와 가까운 이란·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35개국은 이날 기권했다.



    ‘AU’ 국제질서의 변화

    3월 6일 미국 백악관 밖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3월 6일 미국 백악관 밖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정치에 큰 지각변동을 만들고 있다. 지각변동은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축적돼 지표를 급격하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육지를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바다를 만들기도 한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9·11테러 등은 국제사회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만들었다. 9·11 테러 직후 일부 정치학자들은 AT, BT(After 9·11 Terror, Before 9·11 Terror)라는 용어를 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역시 침략 이후 시기(AU·After Rssia’s invasion of Ukrane)와 침략이전 시기(BU·Before Rssia’s invasion of Ukrane)로 국제정치 역사의 기준점이 되리라 예상한다.

    유엔의 표결 내용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국제정치에서 주목할 점은 세 가지다. 첫째,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매우 고립될 것이다. 유엔회원국 중 141개국이 침략에 반대표를 던졌다. 아울러 구소련의 일부였던 동유럽의 조지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 신청했다. 핀란드,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검토하는 등 러시아는 이미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둘째,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이 확인됐다.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리아 4개국이다. 4개국 모두 전체주의 독재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 중국·인도 등 35개국은 기권을 선언했다. 이유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미국 중심의 단극적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 진영으로 볼 수 있다.

    표결 내용만으로는 AU가 BU와 비교해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국가와 미국의 관계에서 미국의 권위가 약화되고, 유럽 국가의 각자도생 안보정책이 강화되는 변화가 눈에 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주정부 청사 지역(왼쪽).  예방외교 실패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P 뉴시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주정부 청사 지역(왼쪽). 예방외교 실패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P 뉴시스]

    첫째,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침략을 예방하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의 실패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정부 및 국민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둘째,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유럽 국가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결정은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자국 안전을 위한 각자도생의 결단에 가깝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국가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미래도 밝지 않다. 유럽 국가의 반(反)러시아 정서는 푸틴 정권 유지에도 부담이다. 2020년 헌법 개정으로 종신까지 집권 가능한 푸틴은 국내 정치에서 상당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1990년대 초 경제 사정 악화로 소련이 해체된 역사적 실수를 러시아는 반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지속할 경우 러시아 경제는 붕괴될 것이다. 이미 러시아의 신용등급은 ‘정크’ 수준에 이르렀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소, 완화되더라도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발(發) 신(新)냉전 질서의 후폭풍은 이제 한반도에 불어닥치고 있다. 한국엔 매우 고약한 바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남북한은 인식과 대응에서 극명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新냉전 질서

    한국 정부는 미국 주도 러시아 제재에 선제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바이든 정부는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면제조치 대상국에 우리나라를 포함하지 않았다. FDPR(Foreign Direct Product)이란 제3국에서 만들어진 미국산 기술, 소프트웨어 활용 제품도 미국산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면제조치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기업은 수출을 위해 상품마다 개별적인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3월 1일 EU, 일본, 호주, 영국 등 27개국을 FDPR 면제조치 대상국으로 지정했는데, 한국을 제외했다.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의 1급 동맹이 맞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나마 후속 노력으로 3월 4일 FDPR에 포함됐지만 외교적 트라우마는 길게 남을 것이다. 미국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관계 손상의 민낯을 드러냈다.

    북한은 러시아 제재 결의안에 반대했다. 북한이 푸틴을 지지함으로써 북·러 관계가 강화됐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북·중·러 협력관계가 재확인됐고, 북·중 동맹도 강화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gettyimage]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gettyimage]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의 주요 안보 현안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에 고통받는 것을 지켜본 북한은 핵무기 보유에 더 집착할 것이다. 1995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러시아에 이전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수 없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를 더욱 엄격하게 집행할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을 옹호하고 미사일 발사를 지속한 북한에 대해 추가 제재가 적극 검토되리라 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도 당분간 한 발짝도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종전 선언은 더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종전 선언 논의는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錦衣夜行)’였다. 이는 외교력의 낭비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이 허사였음을 입증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조약을 휴지조각 취급하는 것을 보며 종전 선언 논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1997년 5월 31일 양국 간 우호 조약을 맺은 바 있다. 이 조약엔 양국의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넷째,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의존이 심화될 것이다. 북한체제 수립엔 1945년 8월 9일 북측 지역에 진주한 러시아군의 군사력을 뒷배로 작용했다. 레베노프를 필두로 소련 정치장교가 펼친 정치공작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북한 지역에 러시아가 김일성 체제를 수립한 과정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루칸스크, 도네츠크에 새로운 친러 체제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국경을 사이에 둔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압박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복원하고 중국으로부턴 경제적으로 도움 받는 대외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단호한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했다. [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단호한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했다. [AP 뉴시스]

    필화즉전(必和卽戰), 필전즉화(必戰卽和) 명심해야

    차기 정부가 바람직한 외교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선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 등 서방은 예방외교를 펼쳤지만 실패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우호조약은 의미가 없었다.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유엔의 기능은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력화됐다.

    푸틴도 어려운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정치공작과 군사력을 결합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줄 알았겠지만 상호의존적 국제질서가 초래하는 경제전쟁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새 정부는 이러한 진단에 근거해 다섯 가지 방향의 안보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첫째,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최상의 전략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침략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쟁은 평화를 구걸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확신을 줘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평화를 얻을 수도, 지킬 수도 있다. 자강(自强)을 바탕으로 동맹전력을 극대화해 북한과 초(超)격차 군사 태세를 확립하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이 동맹의 의무를 다하는 ‘동맹 작동 메커니즘’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필요할 때 작동하려면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미국 주류사회와 한국 주류사회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 한국이 FDPR 적용예외국가에서 배제된 것은 안보적으로 아찔한 상황이다. 한동안 불신의 상처가 깊을 것이다.

    셋째,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강화했다. 불행하지만 현실이다. 평화적 해결 노력을 지속해야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에 대해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핵무기의 전술적 사용이 임박한 상황에 대비해 선제공격을 하는 데 필요한 킬체인(전략표적 타격) 전력 확보, 핵무기를 요격할 수 있는 한국형 요격 능력 확충, 방호 능력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넷째,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 속에도 북한이 침략전쟁을 도발한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전쟁 수행 계획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낭비 외교인 종전 선언 추진 외교를 중단해야 한다.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떠올려본다. 국제정치에선 ‘필화즉전(必和卽戰), 필전즉화(必戰卽和)’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평화를 구걸하면 반드시 전쟁을 맞게 되고,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전쟁에 대비하면 반드시 평화를 향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국가 1절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젊은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 짓고 있도다.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가사처럼 우크라이나 상황이 빨리 종식되길 바란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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