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포켓몬빵이 뒤흔들어 깨운 ‘미각 간질이는’ 판타지 맛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04-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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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버터로 고소함을 더한 호두과자. [김민경 제공]

    앙버터로 고소함을 더한 호두과자. [김민경 제공]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로 자주 오르내리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포켓몬빵’이다. 안 그래도 20~30대 사이에서 '내돈내산‘ 추억의 빵 수집 열풍이 분다고는 들었는데 그 바람이 초·중학생들에게도 번져 갔나보다. 그 덕분에 40~60대 엄마들이 그 빵을 구하고 싶어 다시금 들썩인다. 엄마에게는 없는 것도 만들어서 내어주고 싶은 그런 사랑이라면 아이들에게 그 빵은 무슨 의미일까. 맛도, 모양도, 포장도, 가격도 특별할 것이 없는 빵이 선사하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른이 된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재생되는 자극,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판타지의 맛일까.

    한 번만 먹을 순 없는 앙버터

    ‘앙버터’라는 게 있다. 차가운 버터를 두툼하게 조각내 달콤하게 삶고 조린 팥소와 조합한 것을 말한다. 이를 소금빵, 프레첼, 크로아상, 브리오슈 등 다양한 빵 사이에 끼워 만드는 ‘앙버터 샌드’가 있다. 실온에 두면 살짝 녹으면서 크림처럼 부드러워지는 버터의 구수한 풍미와 달콤하고 진득할 정도로 조밀한 팥소가 이루는 맛의 균형은 어느 빵에 끼워도 그 맛이 도드라진다.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만 먹어보고 그치기에는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다. 다행히 유행한 지 오래라 새로울 것이 없고, 구하기도 어렵지 않은 빵이다. 그런데 ‘앙버터’가 호두과자와 만났다. 동글동글 앙증맞은 호두과자가 입을 쫙 벌리고 앙버터를 꽉 물고 있는 모양새다. 귀여움과 기발함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아는 맛의 조합이라 더 궁금해진다.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이 빵은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호두과자에 버터를 곁들인 맛인데, 그동안 큼직해서 불편했던 앙버터의 덩치를 줄여 좋다. 두툼한 버터가 부담스러워 앙버터를 멀리했던 이들도 한 번 도전해볼 만큼 반갑다.

    잣샌드. [김민경 제공]

    잣샌드. [김민경 제공]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 가평휴게소에도 미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명물이 생겼다. 대형 빵집 프렌차이즈에서 개발한 ‘잣과자’이다. 산뜻한 우유크림과 솔티트캐러멜, 잣을 버터가 듬뿍 들어간 과자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귀여운 과자 표면에는 잣방울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실은 이 잣과자 전에 제주의 ‘우도땅콩과자’가 먼저다. 우도 형상이 그려진 과자는 제주공항 명물 자리에 금세 올랐다. 두 과자 모두 맛은 평범하고 무난하다. 기름지고 고소한 과자와 크림, 짭조름하고 달콤한 캐러멜 사이에서 땅콩과 잣은 생각만큼 빛을 발하지 못한다. 제주공항과 가평휴게소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한정된 수량만 구매할 수 있다는 악조건이 오히려 궁금함, 기대감 등을 자극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작고 소중한 ‘미식’ 아이템

    제 맛을 내기 어려울수록 제 맛이 나는 걸 찾아 먹고 싶어진다. 그중에 ‘까눌레’가 포함된다. 까눌레는 프랑스 보르도 태생의 단과자다. 와인 필터링에 달걀흰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는 달걀노른자를 가지고 만들기 시작한 과자가 까눌레다. 주루룩 흐르는 묽은 반죽을 홈이 파진 모양의 틀에 부어 굽는다. 굽게 전에 틀에 천연 밀랍을 넣어 코팅하는 것 역시 까눌레가 갖춰야하는 특별함 중 하나다. 흑설탕 색의 겉은 단단하고, 속은 노랗고 촉촉하며 진한 향이 나는 까눌레는 ‘작고 소중한’ 미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정성과 기술, 시간이 어린 과자이니만큼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까눌레가 과자의 옷을 벗고 아이스크림이 되어 나타났다. 앙증맞은 까눌레 모양의 초콜릿 안에 풍미가 진한 이탈리아 젤라토를 꽉 채워 넣었다. 작고 소중하고 차가운 까눌레다. 윤기와 색감이 아름다워 마치 보석을 접시에 올려놓은 듯 기분이 좋아지는 디저트다. 젤라토의 맛이 기름지거나 무겁지 않으면서 풍미는 무척이나 진하다. 구워 만드는 까눌레의 집중력과 닮아 있음이 신기할 뿐이다. 프랑스의 틀에 이탈리아 맛을 채운 한국식 아이디어에 어쩐지 마음도 뿌듯해진다.

    토마토 고추장. [김민경 제공]

    토마토 고추장. [김민경 제공]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한국에서 천천히 알려지고 있는 재미난 고추장이 있다. 찰진 느낌과 입자, 새빨간 색과 향은 영락없이 고추장인데 주인공은 토마토다. 그렇다고 고추장에서 토마토의 맛이 물씬 나지는 않는다. 그저 메줏가루의 구수한 풍미와 매콤함이 살아 있을 뿐이다. 비밀은 토마토 발효청에 있다. 수 년 동안 발효를 거친 토마토 청은 싱그럽고 풋풋한 맛은 가시지만 농익은 과일의 풍미가 깃들며 진득한 점도까지 생긴다. 이를 메줏가루, 고춧가루와 섞어 고추장을 만든다. 토마토 청이 단맛과 풍미를 충분히 제공하기에 발효 시 단맛을 내기 위해 넣었던 찹쌀가루 같은 전분 재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맛과 질감이 한결 깔끔하고 산뜻해졌다. 간혹 고추장에서 나던 텁텁함을 찾아볼 수 없다. 단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넣었던 소금의 양도 줄이고, 전분을 넣지 않으니 나트륨과 탄수화물 함량이 쭉 내려갔다. 먹으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고추장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미식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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