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벚꽃 길 달려 강가에서 먹는 계절의 맛 ‘벚굴’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04-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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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벚굴의 맛이 절정을 이룬다. [뉴시스]

    섬진강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벚굴의 맛이 절정을 이룬다. [뉴시스]

    지난주 온 동네 벚나무마다 꽃이 달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굵고, 커지는 나무들 덕에 하늘을 뒤덮는 꽃의 양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아무 노력 없이 시간의 흐름이 주는 아름다움을 거저 누리기만 하는 때가 봄인 것 같다. 며칠 호사를 즐기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봄비가 내리고, 이내 온 땅이 벚꽃으로 뒤덮였다. 전국 어디에나 꽃이 피고 지어 우리 마음도 활짝 열리는 이맘때면 차고 맑은 물속에도 오동통 해사한 꽃이 팝콘처럼 터진다.

    섬진강변 벚꽃길 판타지

    돌에 붙어 자라는 굴은 흰꽃 같다는 의미에서 석화로 불린다. [gettyimage]

    돌에 붙어 자라는 굴은 흰꽃 같다는 의미에서 석화로 불린다. [gettyimage]

    석화(石花)는 말 그대로 ‘돌에 핀 꽃’인데 우리는 이 단어를 들으면 단단한 껍데기 안에 든 굴부터 떠올린다. 돌에 붙어 자라는 굴 껍데기의 희끗희끗한 부분이 어두컴컴한 바다 속에서 보면 마치 바위에 핀 흰 꽃처럼 보인다고 해 굴에 석화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석화는 대체로 ‘자연산’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껍데기가 있는 채로 유통되는 굴은 모두 석화로 불린다. 요즘엔 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굴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양식이 활발해져 싱싱한 굴을 싸게, 많이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자연에서 자라며 깃든 섬세한 풍미와 감칠맛이 흐려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맘때가 되면 자연산 굴을 먹기 위해 강으로 간다.

    강에서 나는 강굴은 벚굴로도 불린다. [뉴스1]

    강에서 나는 강굴은 벚굴로도 불린다. [뉴스1]

    강에서 자라는 ‘강굴’은 ‘토굴’로도 불리며, 벚꽃 필 때가 맛좋은 시기라 ‘벚굴’, 속살이 야무지지 않아 ‘벙굴’로도 불린다. 강의 끝자락 즉, 바다와 가까워지는 곳에 주로 서식하는데 섬진강 벚굴이 유명하다. 강도 강이지만 섬진강변의 벚꽃길 덕에 ‘벚굴’의 판타지는 몇 배나 더 강렬해진다. 벚굴은 1월 말, 2월 초부터 채취하기 시작해 4월에 절정을 이루며, 5월에 끝난다. 5월은 산란기이고 수온도 차츰 높아져 벚굴을 먹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벚굴은 양식 재배가 되지 않아 사람이 강 속으로 뛰어들어 일일이 건져 올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다행히 바다 굴보다 평균 3~5배, 많이는 10배까지 큼지막해 속살의 양이 푸짐하다.

    웬만하면 내 손바닥을 가리고도 남는 크기의 벚굴은 그만큼 큼직한 살을 품고 있다. 속살은 은색과 흰색이 감돌면서 뽀얗고, 탱탱하지만 아주 부드럽다. 날 것으로 먹으면 비린 맛은 나지 않되 간간함은 있어 전혀 싱겁지 않다. 바다 굴을 못 먹는 이들도 호로록 먹어치울 만큼 풍미가 순하다. 마늘과 고추, 레몬즙, 초장, 소금, 고추냉이 간장, 씨 겨자 등 바다 굴을 먹을 때처럼 입맛에 맞는 양념을 곁들이면 된다. 다만 갯내 없고, 맛이 연하니 벚굴 자체의 감미로운 향을 굳이 가리지 말고 즐겨보길 권하고 싶다.

    벚굴의 무한변신

    벗굴로 만든 전. [gettyimage]

    벗굴로 만든 전. [gettyimage]

    날 것으로 먹는 동안 몇 개는 찌고, 몇 개는 굽는다. 찌면 부드러움과 향이 좋아지고, 구우면 탱탱함과 단맛이 오른다. 국을 끓여도 되는데 바다 굴이 내는 단 감칠맛보다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국보다는 작게 썰어 죽을 끓이면 더 맛나고, 건더기가 많아 씹어 먹는 입도 즐겁다. 튀김이나 전으로 지져도 잘 어울리지만 물기가 워낙 많아 손질을 꼼꼼히 해야 한다. 튀김옷이나 부침개 반죽을 묻혀도 주르륵 미끄러지기 일쑤이니 굴 살에 전분이나 밀가루 등을 꼼꼼히 묻혀 잠시 두어 가루가 착 감기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에 튀김옷도 입히고, 달걀물도 묻혀 조리하는 게 좋다.



    수년 전만 해도 벚굴은 봄날을 맞춰, 강가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진미였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택배로 받아 편히 맛볼 수 있다. 택배로 배달되는 굴은 해감을 거치고, 껍데기 세척을 1~2차례 해 보낸다. 그럼에도 껍데기에 이물질이나 강가의 작은 생명들이 붙어 있을 수 있으니 꼼꼼히 살피며 손질하면 좋다. 껍데기가 꽤나 날카로운 편이라 목장갑을 착용하고 만져야 안전하다. 껍데기 사이에 칼끝을 살살 넣어 열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힘과 공이 많이 들고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한다. 껍데기만 열면 먹는 준비의 반은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찌거나 구울 때는 특별히 간이나 양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벚굴을 받아먹는 편리함이 좋기도 하지만 벚꽃 길을 한참 달려, 봄바람을 맞으며, 벗과 함께 강가에서 먹는 맛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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