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 생각하며 평생 나눔 실천
인천사랑회 13년간 이끈 선행 전도사
고향보다 내가 사는 지역이 먼저
조상범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모금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공정한 배분”이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돈이 많다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나눔을 잘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힘들게 고생해서 살 만해진 사람, 남의 도움으로 위기를 딛고 일어난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잘 도와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일찌감치 100도를 넘은 것도 그런 분들의 선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덕분이에요.”
주변 사람들의 얘기는 다르다. 조 회장이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발품을 팔아 거둔 성과라는 것이다. 조 회장의 회유와 설득이 통하는 건 지역사회를 위해 수십 년 동안 나눔 활동에 앞장서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 회장은 인천지역 건설회사인 인성개발㈜ 회장이면서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와 인천사랑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인천사랑회는 그가 2010년 기업인들과 뜻을 모아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해마다 다문화가정 장학사업, 불우이웃돕기, 경로잔치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친다. 2011년부터 회장을 맡은 법무부 법사랑위원 인천지역연합회는 수해 복구 지원금과 코로나19 국민성금, 청소년 장학금 등을 지역사회에 꾸준히 기부해왔다.
조 회장은 인천모금회와도 인연이 깊다. 친형이자 민선 초대~3대 옹진군수를 지낸 조건호 씨가 7대, 8대 인천모금회장을 역임했다. 2015년 형의 나눔 전파에 동참하고자 인천아너소사이어티 57호로 이름을 올렸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일상처럼 실천해온 덕분일까. 인천모금회 집무실에서 만난 조 회장은 비타민 주사를 맞은 듯 낯빛이 맑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뿌듯함 안긴 ‘최우수 지회상’
인천모금회장에 취임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최우수 지회상’을 받은 일이다. 아너소사이어티에서 각 지회의 모금 실적과 공정한 배분, 직원의 친절도를 종합 평가해 수여하는 상이다. 인천모금회의 지난해 목표는 236억 원이었다. 인천시민이 3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큰 액수다. 그런데도 20억 원을 초과한 256억 원을 모금했다. 목표 대비 108.3%를 달성했다. 시민이 한마음으로 이룬 치적이다. 모금에 참여한 사람 중 30%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배분도 공정했다고 자부한다. 사회학과 교수 등 전문가로 배분분과위원회를 구성해 가장 힘들고 도움이 절실한 취약계층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도록 배분했다. 도움이 절실한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발굴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오래전부터 나눔 활동에 앞장서 왔다. 나눔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백령도, 대청도 같은 섬에서 공사를 많이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내 고향이 영종도 옆에 있는 인천 옹진군 시도여서 그런지 섬마을 주민의 고충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졌다.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인천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꿈을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어디가 아파도 보건소가 미비해 제대로 치료받기가 어려웠다. 주민들을 돕고 싶어 공사를 하고 이익이 나면 섬마을 주민을 위해 썼다. 병원장을 하는 선후배에게 요청해 이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또 결혼식장을 예약하기 힘든 청년들에게 장소를 마련해주고 주례도 78회를 했다. 출소자는 물론이고 재소자 결혼식 주례도 30회를 넘게 했다.”
다들 고마워하겠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결혼 3개월 만에 신부가 찾아와 내 주례사대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가정이 파탄 났다며 원망을 퍼부었다. 그렇게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나눔에 열심인 사람은 하나같이 ‘베푸는 즐거움이 받는 즐거움보다 더 크다’고 말하더라.
“동의한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나눔에 적극적이다. 고생해서 부를 축적했거나 주위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이 받은 것처럼 남에게 베풀려고 한다.”
조 회장은 평생 나눔을 실천해왔다. 사업이 힘든 시기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처지가 딱한 이웃을 생각하며 작은 액수라도 기부했다.
나눔이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나.
“솔직히 나눔을 한다고 해서 즐겁지는 않다. 인천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170호까지 있는데 그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형편이 어려운 가족이나 친구, 지인에게 원망을 듣는 경우가 많더라. 남은 잘 도와주면서 왜 자기는 도와주지 않느냐고 말이다. ‘정치인이 꿈이냐, 왜 그런 퍼포먼스를 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듣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에 개의치 않고 금액의 고하를 떠나 나눔을 계속 실천하는 분이 적지 않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인천에 사업체를 두고 몇 조를 벌었어도 인천아너소사이어티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기업인도 있다.”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나눠
조상범 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천사랑회 회원들과 모임을 하고 있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철학이나 의견을 개진하면 우리 모금회의 순수한 성격이 변질되거나 퇴색할 수 있다. 그래서 직원들의 의사를 항상 존중하고 법규에 맞는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모금회는 중위소득 100% 이내에 있는 분에게만 나눔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철저히 따른다. 누가 회장이 되든 법칙을 지키는 것이 모금회의 신뢰성을 높이고 가장 공정하게 배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중위소득 100% 이내에 해당하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혜택을 못 받는 사람도 찾아내 도움을 준다. 우리 모금회 규정상 나눔이 불가하면 다른 복지기관에 연결해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인천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조 회장의 인천 사랑은 각별하다. 수십 년 전부터 “인천에 사는 사람은 인천에 대한 지역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가 2010년 인천사랑회를 조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천사랑회는 민간 차원에서 인천의 소외계층을 경제적으로 돕는다. 지역 내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이 주민을 구하다 다치거나 순직하면 동상을 세워주고 유족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대청도 해전에서 2010년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일으켰을 때도 인천사랑회가 선봉에 섰다. 조 회장의 부연설명은 이렇다.
“그때 인천사랑회가 주축이 돼 33억4000만 원을 모금했어요. 그 돈으로 연평도 주민들을 도왔어요. 500가구가 인천에 있는 사우나에서 40일간 지냈거든요. 각 가구에 500만 원을 지원했죠.”
인천사랑회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하지 못하는 틈새에서 지역민을 돕고 지역민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노고와 선행을 다양한 방식으로 치하한다. 인천사랑회 회원들은 조 회장이 이끄는 인천모금회의 모금 활동도 돕는다. 조 회장은 “고향이 어디든 간에 인천 발전에 지향을 두고 지역 사랑을 실천하고자 설립된 민간단체다 보니 활동 자체가 굉장히 순수하다”며 “인천사랑회는 60명 회원이 다 회장이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회장을 맡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모금회장보다 인천사랑회장이라는 직함이 더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인천모금회장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힘든 시기에 시민들과 마음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을 전달했을 때다. 코로나19 확산이 아주 심각할 때 환자로 인해 격리된 채 생활하는 가족의 건강이 염려돼 직원들과 함께 삼계탕을 갖다줬다. 방호복도 없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문 앞에서 벨을 울리고 삼계탕을 두고 왔다. 아무도 찾지 않고 멀리할 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식사를 배달한 것이다. 하루 60곳을 간 날도 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로 힘들었지만 무척 보람 있었다.”
아쉬운 점은 뭔가.
“인천은 타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힌다. 산업화 이후 각 지역에서 인천으로 왔다. 그러다 보니 인천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도 인천보다 고향을 돕는 것을 우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점이 아쉽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을 좋아한다. 바다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의미로, 포용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출신이 어디가 됐든 인천에 살면 첫 번째는 인천이 돼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 자랐고 선친의 묘가 있는 고향을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도 지금 내가 정주하고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 지역에 관심과 애착을 갖는 일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나눔 창구 일원화했으면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뭔가.“인천에 사회복지단체가 참 많다. 그래서 기부하고 싶어도 어디에 할지 망설인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인천모금회가 아니어도 어디에든 기부하라고 말한다. 어떤 단체를 통해서든 어려운 이웃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테니 말이다. 가능하다면 기부금을 받는 창구를 일원화하고 싶다. 우리 모금회로 합치든, 다른 단체로 합치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점은 보다 많은 사람이 나눔 활동에 동참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아닌가. 모금 활동에 대한 제약도 지금보다 완화되면 좋겠다. 지금은 제약이 너무 많아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임기가 1년 남았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
“주어진 규정 안에서 나눔 체계를 좀 더 면밀하게 다지려 한다. 배분분과위원회가 엄정한 심사를 거쳐 모금액을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하는데도 불만이 나온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모금회에서 지역 내 시설을 대상으로 1년에 약 60대의 차량을 지원한다. 예산이 한정돼 있어 지원 대상에서 밀리는 시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설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어서 우선순위를 준 것이냐는 식으로 오해한다. 이런 오해를 불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퇴임 전 꼭 만들고 싶다. 도움이 필요한 시설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피해의식보다 내년에는 배분 대상이 되겠구나 하는 긍정 마인드를 가졌으면 한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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