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신화 ‘반지의 제왕’,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되다

[북유럽 신화의 재발견⑧] 반지의 저주는 ‘민물꼬치고기’ 안드바리의 눈물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입력2020-08-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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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에 나오는 저주의 반지, 영화·오페라 단골 소재

    • 로키 돌멩이에 즉사한 수달, 아들 시체 보고 반격한 아버지

    • 인질로 잡힌 오딘…로키가 황금 찾아 나선 사연

    • 황금 강탈당한 안드바리 “반지 갖는 자, 파멸할 것”

    [New Line Productions 제공]

    [New Line Productions 제공]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그가 28년간 작곡한 필생의 역작이다. 이 걸작에는 알베리히라는 난쟁이가 등장한다. 그는 우연히 라인강의 요정 세 명이 신들의 왕 보탄의 명령을 받아 라인강 깊은 곳에서 지키고 있던 막대한 황금을 탈취한다. 이 황금 일부로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 절대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황금 반지를 만든 다음, 그것을 이용해 난쟁이족 니벨룽(Nibelung)의 지배자가 돼 폭정을 일삼는다. 그는 또한 자신의 동생이자 노련한 대장장이인 미메에게 머리에 쓰면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고, 모습도 보이지 않게 해주는 마법 투구를 만들게 해 장차 세계를 지배할 꿈에 부풀어 있다.

    난쟁이 알베리히의 황금

    프라이아, Arthur Rackham, 1910.

    프라이아, Arthur Rackham, 1910.

    그즈음 아스가르드에 사는 신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 거인 형제 파솔트와 파프너에게 아스가르드 성벽 보수를 맡긴 적이 있었다. 신들은 그때 장난꾸러기의 화신 로게의 주장을 받아들여 거인 형제와 하나의 약속을 했다. 자신들이 제시한 기한 내에 성벽 보수를 끝내면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를 그들에게 주겠다는 것. 당초 로게는 거인 형제가 절대 기한 내에 성벽 보수를 끝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거인 형제가 기한 내에 그 일을 마무리하자 프라이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가 거인 형제와 함께 사라지자, 그녀가 매일 아침 공급해 주던 청춘의 사과를 먹지 못한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점점 늙고 쇠약해졌다. 이에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보탄은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 로게를 불러 당장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로게가 찾아오자 거인 형제는 프라이아를 데려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프라이아를 덮어 그녀의 모습이 털끝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황금을 가져오면 그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로게는 아스가르드로 돌아와서 신들에게 거인 형제와의 협상 결과를 전했다. 그리고 이 문제도 자신이 조만간 말끔히 해결할 테니 걱정 말라며 곧바로 길을 나섰다. 바로 그 순간 약삭빠른 로게가 도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한 신들의 왕 보탄이 그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그런데 로게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답한 것은 철석같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난쟁이 알베리히가 갖고 있다는 엄청난 황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거인 형제의 조건을 듣는 순간 알베리히의 황금을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로게가 찾아오자 난쟁이 알베리히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로게는 그에게 여러 가지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이게 한 다음 물개박수를 치면서 그의 허영심을 부추겼다. 이어 알베리히가 아주 작은 두꺼비로 변신하자마자 보탄과 함께 그를 포박한 다음 숨겨놓은 황금을 전부 내놓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알베리히는 하는 수 없이 부하들을 시켜 비밀 창고에 보관된 황금을 모두 가져오게 했다. 알베리히는 마치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황금을 내놓는 척했다. 하지만 왼손 약지 손가락에 낀 반지만은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써 감췄다. 



    보탄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가 알베리히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반지를 빼라고 소리치자, 그는 제발 그것만은 봐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보탄은 매몰차게 그의 손을 잡고 억지로 반지를 빼서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분노한 알베리히가 “앞으로 그 반지를 갖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때부터 이 반지에는 죽음의 기운이 깊게 서리게 됐다.

    오딘, 로키, 회니르의 여행

    하지만 보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로게와 함께 바로 궁전으로 돌아가 거인 형제에게 프라이아를 황금으로 뒤덮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그녀를 되찾았다. 물론 이때 보탄은 그 황금 반지만은 거인 형제에게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황금으로 프라이아를 보이지 않게 하려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만든 오페라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만 다를 뿐 이야기의 출발과 서사는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신들의 왕 오딘은 보탄으로, 장난꾸러기의 화신 로키는 로게로, 청춘의 여신 이둔은 프라이아로 불린다. 

    그렇다면 난쟁이 알베리히는 북유럽 신화에서는 뭐라고 불렸을까. 또한 프라이아를 황금으로 보이지 않게 뒤덮어 그녀를 찾은 북유럽 신화의 모델은 누구일까. 알베리히가 만든 저주의 황금 반지의 원형은 무엇일까. 그 의문은 바로 오딘, 로키, 회니르가 함께 한 미드가르드 여행에서 모두 밝혀진다. 

    어느 해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겨우내 폭설과 강추위 때문에 미드가르드를 한 번도 둘러보지 못한 오딘은 어느 날 로키를 대동하고 아스가르드를 나섰다. 그들이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타고 미드가르드에 들어서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회니르가 보였다. 회니르는 원래 아스 신족이었는데 신들을 교환할 때 미미르와 함께 반 신족에게로 갔던 신이다. 아마 그도 날씨가 풀리니 바나헤임에서 세상 구경을 나온 듯했다. 그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일행이 됐다. 그들이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사이 큰 강을 만나 거슬러 올라갔더니 낙차가 큰 곳에 멋진 폭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곳에 앉아 아스가르드에서 싸 온 점심을 먹으며 한참 동안 대형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넋을 놓고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로키가 아래쪽 강가를 가리키며 “저곳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 잘 살펴보라”고 속삭였다. 과연 거기에는 수달 한 마리가 조금 전 강물에서 잡은 연어를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로키는 얼른 땅바닥에서 적당한 돌 하나를 주워 그 수달을 향해 잽싸게 날렸다. 정수리에 돌을 맞은 수달은 연어를 미처 맛보지도 못한 채 즉사하고 말았다. 로키가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서 양손에 각각 수달과 연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오딘과 회니르도 저녁에 그것들을 요리해 먹을 생각으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들은 이후에도 강가를 따라 경치 좋은 곳에서 쉬면서 천천히 상류로 올라갔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그들은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한 농가를 발견했다. 그 집은 바로 농부이자 마법사이기도 한 흐레이드마르의 집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테르, 파프니르, 레긴 삼형제, 그리고 링헤이드와 로픈헤이드라는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흐레이드마르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오딘이 정체를 밝히지 않고 저녁 식사로 같이 먹을 것을 내놓을 테니 하룻밤 묵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흐레이드마르는 원래 손님들을 홀대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겨울의 끝자락에 먹을 것이 워낙 귀한 터라 그들을 흔쾌히 집으로 받아들였다. 로키는 자리에 앉자마자 얼른 보따리에서 아까 잡은 수달과 연어를 꺼내 놓으며 자기가 점심때 저 아래 폭포 근처에서 돌 하나를 던져 잡은 거라고 호들갑을 떨며 얼른 요리해서 먹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흐레이드마르는 수달을 흘깃 쳐다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들은 흐레이드마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온갖 추측을 하면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 시체를 본 흐레이드마르의 반격

    2005년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단이 한국 무대에 올린 ‘니벨룽의 반지’ 공연 장면. [월드아트오페라 제공]

    2005년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단이 한국 무대에 올린 ‘니벨룽의 반지’ 공연 장면. [월드아트오페라 제공]

    흐레이드마르는 손님들 방에서 나오자마자 두 아들 파프니르와 레긴을 불러 그들의 형 오테르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제가 깜짝 놀라며 “범인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턱으로 가끔 손님들이 묵는 방을 가리켰다. 형제들은 그 방으로 쳐들어가 금방이라도 결딴을 낼 태세였다. 흐레이드마르가 그들을 제지하면서 무턱대고 공격할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 기습해야 한다고 충고하며 살인자들의 특이 사항을 자세히 말했다. 하나는 애꾸눈에다가 창을 갖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음흉하게 생겼지만 싸움은 못할 것 같고, 마지막 사람은 막상 싸움이 일어나면 도망갈 ‘범생이’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포박할 끈 등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살인자들의 방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가서는 갑자기 방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 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흐레이드마르가 마법을 걸어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했고, 계획한 대로 그의 두 아들이 달려들어 단숨에 그들을 포박해 버렸다. 졸지에 두 손 두 발이 묶인 채 포로 신세가 된 세 신 중 가장 침착한 오딘이 그들에게 “이게 무슨 행패냐”고 소리치자 흐레이드마르가 “살인자들 주제에 말이 많다”고 맞받았다. 영문을 모르던 신들은 그들이 강가에서 잡은 수달이 흐레이드마르의 큰아들 오테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테르는 낮에는 수달로 변신해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아버지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들이자 형이었다는 것이다. 

    오딘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알아챘다. 그리고 흐레이드마르에게 만약 수달이 사람인 줄 알았다면 어떻게 자신들이 그를 죽여 태연하게 내놓겠느냐며 배상금은 원하는 대로 충분히 지불할 테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딘의 항변이 충분히 일리 있다고 생각한 흐레이드마르는 그에게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 오테르의 시신에 황금 무덤을 만들어주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두 딸을 불러 아직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달을 건네주면서 가죽이 상하지 않게 통째로 벗겨내고 사체는 강가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준 다음 그 가죽은 잘 씻어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딸들이 돌아오자 그는 오딘에게 가죽을 건네주면서 그 안에 황금을 가득 채운 다음 다시 가죽이 전혀 보이지 않게 바깥도 황금으로 덮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물에 잡힌 ‘민물꼬치고기’의 운명

    민물꼬치고기로 변한 안드바리를 잡는 로키. [위키피디아]

    민물꼬치고기로 변한 안드바리를 잡는 로키. [위키피디아]

    오딘은 잘 알겠다며 옆에 있던 로키에게 귀엣말로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그였으니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로키는 흐레이드마르에게 자신이 황금을 가져오겠으니 두 사람만 인질로 삼고 자신은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흐레이드마르가 시킨 대로 하자 로키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재빨리 그 방을 빠져나와 칠흑 같은 밤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황금을 가져오는 일이 두 신에게는 화급을 다투는 일이었지만, 로키는 그리 서두르지는 않기로 했다. 그는 자유의 몸인데 오딘과 회니르가 묶여 있다는 사실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우선 흘레세이섬으로 가서 바다의 신 에기르의 아내 란을 만나 긴요하게 쓸 데가 있으니 그녀의 그물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약간 저어하는 란에게 로키가 그 그물에 오딘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하자 그녀는 얼른 그물을 내주었다. 

    로키가 그 그물을 들고 도착한 곳은 난쟁이들의 영토 스바르트알프헤임이었다. 그곳은 자신이 강가에서 수달로 오해하고 죽인 오테르의 아버지 흐레이드마르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또한 미드가르드에서 시작된 그 강은 스바르트알프헤임을 거쳐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로키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터벅터벅 걸어서 찾아간 곳은 바로 그 강에 있던 난쟁이 안드바리의 거처인 폭포였다. 로키는 언젠가 스바르트알프헤임을 여행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안드바리를 알게 돼 친분을 쌓았다. 안드바리는 그 당시 로키와 며칠 지내면서 서로 허물없는 사이가 되자 그에게 자신이 엄청난 황금을 갖고 있다고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기억력 좋은 로키가 바로 그 일을 떠올린 것이다. 

    안드바리는 그 당시 황금은 자신만 아는 근처 동굴에 숨겨둔 채 자신은 민물꼬치고기로 변신해 그 강에 있는 폭포 밑 물웅덩이에서 산다면서 그곳으로 데려가 변신술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로키는 기억을 더듬어 그곳으로 찾아가 폭포 밑 물웅덩이에 란에게서 빌려 온 그물을 던지고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러자 과연 그물 안에 다른 고기들과 함께 커다란 민물꼬치고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녀석은 한참을 입만 뻐끔거리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더니 결국 숨을 쉬기 위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로키는 얼른 안드바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숨통을 죄면서 보물이 있는 동굴로 안내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안드바리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로키를 자신의 보물창고인 동굴로 안내했다. 로키가 안드바리의 안내를 받아 그의 동굴로 들어섰을 때 그의 눈에 띈 것은 모루와 풀무 등 대장간 시설이었다. 로키가 그에게 예전에 말한 황금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작업대 위를 가리켰다. 로키가 그곳을 바라보니 상당한 양의 황금이 쌓여 있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오테르의 무덤을 만들어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로키는 안드바리의 멱살을 더 세게 틀어쥐면서 황금이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쳤다. 그제야 안드바리는 비명을 지르며 작업대 위에 있는 벽의 스위치를 가리켰다. 로키가 얼른 그 스위치를 누르자 옆 모루 뒤에서 비밀의 문이 열리고 조그만 공간이 나타났다. 

    로키가 그곳으로 가 보니 과연 그곳에는 황금이 엄청나게 쌓인 채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로키는 안드바리를 시켜 그 황금을 모두 자루에 담도록 했다. 그런데 안드바리는 그것들을 자루에 쓸어 담으면서 로키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맨 위에 있던 황금 반지 하나를 재빨리 왼쪽 약지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로키가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로키는 안드바리가 낑낑대며 황금 자루를 끌고 와서 그에게 건네주자 로키의 왼손 약지를 가리키며 그 반지는 왜 자루에 넣지 않았는지 나무랐다. 안드바리가 원래 오래전부터 끼고 있던 것이라고 발뺌을 하자 로키는 아까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며 얼른 손에서 빼서 자루에 넣으라고 다그쳤다.

    “황금 반지를 갖는 자, 반드시 파멸할 것”

    영화 ‘반지의 제왕’ 주인공 일라이저 우드(프로도 분). [New Line Productions 제공]

    영화 ‘반지의 제왕’ 주인공 일라이저 우드(프로도 분). [New Line Productions 제공]

    그러자 안드바리는 갑자기 로키 앞에 무릎을 꿇더니 손을 비비며 “제발 그것 하나만은 남겨달라”고 애원했다. 로키가 그 부탁을 들어줄 리 없었다. 그는 오테르의 무덤을 만들려면 황금을 가능한 한 충분히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안드바리는 무릎을 꿇은 채 여전히 손을 비비며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로키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강제로 약지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자루에 넣은 다음, 작업대로 가서 손수 그 위에 있던 황금도 모두 자루에 쓸어 담았다. 그러고는 자루를 어깨에 메고 동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절망한 안드바리가 로키의 뒤에 대고 “만약 앞으로 그 황금 반지를 갖게 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로키는 안드바리의 저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게 실현되든 그렇지 않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키가 엄청난 황금 자루를 메고 나타나자 오딘과 회니르는 왜 이렇게 늦었느냐며 그를 타박했다. 그가 황금을 찾아 헤매느라 그랬다고 얼버무리며 그들에게 안드바리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황금 반지를 보여주자 오딘이 자기가 갖겠다며 그것을 낚아채서 약지 손가락에 끼웠다. 로키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흐레이드마르가 두 아들과 함께 그들의 방으로 찾아왔다. 흐레이드마르는 로키가 가져온 커다란 황금 자루를 보고 우선 아들들을 시켜 오딘과 회니르를 포박에서 풀어주도록 했다. 이어 로키에게 구해 온 황금으로 죽은 오테르의 무덤을 만들어보라고 요구했다.

    풀려난 오딘 일행, 그러나 반지는…

    로키는 흐레이드마르로부터 오테르의 가죽을 넘겨받아 주둥이를 통해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황금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둥이 부분까지 황금이 모두 차자 이번에는 그것을 반듯이 세워놓고 그 주변에 황금을 쌓아 가죽이 전혀 보이지 않게 했다. 로키는 황금 무덤을 다 마무리했다고 생각하고 흐레이드마르에게 빈틈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그는 아주 꼼꼼하게 황금 무덤을 살펴보다가 맨 위쪽에서 콧수염 하나가 틈새를 뚫고 삐져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로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약속대로 그 틈새를 황금으로 메워놓지 않는다면 계약은 파기된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로키는 흐레이드마르의 불만을 듣자마자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 오딘의 약지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오딘은 하는 수 없이 아까 자기 몫으로 챙겨두었던 황금 반지를 빼서 로키에게 던져 주었다. 로키가 황금 반지로 틈새를 메우자 흐레이드마르는 그제야 만족하며 그들에게 이제 가도 좋다며 오딘에게 압수해 두었던 창 궁니르도 돌려주었다. 오딘이 일행을 데리고 막 흐레이드마르의 집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로키는 아까 안드바리가 했던 저주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몸을 돌려 흐레이드마르 삼부자에게 그 황금의 주인이었던 난쟁이 안드바리의 저주를 그대로 전했다. 만약 앞으로 그 황금 반지를 갖게 되는 자는 반드시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바그너의 걸작과 저 유명한 영화 ‘반지의 제왕’의 출발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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