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개편안, ‘괘씸죄’에 발목
공정위, 온라인 플랫폼 규제 방안 내놔
DH와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 가능성 솔솔
쿠팡이츠, 띵동 등 영향력 확산 추세
빅데이터 조사 결과, 배민 긍정 언급 39.6%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독일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가 지난해 12월 13일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 DH가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지분 87%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간 배달의민족은 일종의 ‘민족 마케팅’을 펴왔다. DH에 매각된 소식이 알려진 이후 온라인에서는 ‘게르만민족’이라는 비아냥이 돌았다.
배달앱 서비스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올해 들어 겪은 사건들이다. 말 그대로 험난한 여정이다. 배달앱 서비스처럼 새로운 시장이 급속도로 커질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가 제재에 나서거나 규제 방안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배민처럼 업계 1위 사업자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시간에 부정적인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간 잘나가던 배민의 발걸음이 갑작스레 주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작게는 배민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크게는 국내 배달앱 시장의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다.
‘고급광고’ 유도…수수료율 5.8%
4월 6일 서울 마포구 배민라이더스 중부지사에 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있다. [뉴스1]
그간 배민이 운영한 수수료(광고료) 방식은 두 가지였다. 주문 건당 6.8%의 수수료를 받는 ‘정률제(오픈리스트)’와 월 8만8000원을 내는 ‘정액제(울트라콜)’다. 정률제가 ‘고급광고’, 정액제가 ‘일반광고’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에 따라 고급광고인 정률제에 가입한 업체는 매장 목록 상단에 오르게 되고, 정액제의 경우 그 아래 배치된다.
그런데 정액제에는 무제한으로 가입할 수 있어 많게는 200개 이상 등록해놓은 업체들이 있었다. 그러면 매장 리스트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금이 많은 업체는 점점 유리해지고 영세 소상공인들은 갈수록 불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고자 업체들을 아예 ‘정률제’로 유도한다는 게 우아한형제들의 계획이었다. 대신 주문 건당 수수료율은 5.8%로 1%포인트 낮췄다. 배민에 따르면 새 수수료 체계를 적용하면 입점 업주의 52.8%가 배민에 내야 하는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우아한형제들 측의 설명대로 부작용을 줄이면서 입점 업체의 절반, 특히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쁠 게 없는 개편으로 보인다. 물론 나머지 절반의 업체들이 불만이 있겠지만, 어쨌든 명분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아한형제들은 엄청난 비판 여론에 시달린 끝에 열흘 만에 계획을 백지화했다. 업계에서는 배민이 일종의 ‘괘씸죄’에 걸렸다고 입을 모았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유통 채널과 비교하면 배민이 제시한 5.8%의 수수료 수준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라면서 “새 수수료 체계가 실제 어떤 효과를 낼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여론이 너무 안 좋은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우선 시기가 좋지 않았다. 우아한형제들이 새 수수료 체계를 발표한 4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때였다. 이런 시기에 굳이 일부 점주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방안을 내놨어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다른 의혹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은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된 바 있다. DH는 국내에서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국내 1위인 배민과 2, 3위인 ‘요기요’, ‘배달통’이 사실상 같은 회사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세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99%에 달한다. 결국 시장을 ‘독점’하고 나니 코로나19 시국에도 마음대로 수수료 체계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여론 악화와 정치권의 ‘저격’
여론은 이미 악화해 있었다. 소비자들은 우아한형제들이 DH에 인수되자 그동안 ‘우리 민족’의 기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용해 왔는데, 이제는 ‘게르만 민족’이 된 거냐며 반감을 드러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배달앱 이용 경험이 있는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업체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86.4%를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수수료 개편으로 기름을 부은 셈이다.부정적인 여론이 빠르게 확산하자 정치인들이 이를 등에 업고 배민을 저격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악화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배민을 향해 “독과점의 횡포”라고 비판하면서 ‘공공 배달앱’을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역시 중소 배달앱 업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2% 이하의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를 발표했다.
물론 지자체가 만든 공공 배달앱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과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배민 입장에서는 정치인들의 이런 움직임이 반가울 리는 없다.
정부도 분주하게 대응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우아한형제들과 DH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시장 독과점 우려가 있는 경우 공정위의 승인이 필요하다. 두 기업 합병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공정위의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6월 초 배달앱 업체 요기요가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요기요는 지난 2013년부터 2016년 말까지 음식점들에 대해 최저가 보장제를 일방적으로 시행했다. 음식점으로 직접 전화해 주문하거나 다른 배달 앱을 통해 주문할 경우 요기요보다 싸게 판매하는 것을 모두 금지한 것이다. 지침을 어긴 배달 음식점에 대해서는 판매 가격 변경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억6800만 원을 부과했다. 배달앱이 가입업체에 대한 경영 간섭으로 제재를 받은 건 처음이다.
공정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민에 대한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우아한형제들이 소비자와 맺는 이용약관을 심사해 네 가지 불공정 약관을 시정토록 했다. 대표적으로 그간 배민은 약관상 소비자나 음식점이 게시한 정보의 신뢰도와 상품의 품질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책임을 지도록 했다.
공정위 측은 “이번 제재와 기업결합 심사는 별개”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에서는 개별 사건보다는 시장지배력 여부와 공동행위(담합) 가능성이 중점 심사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두 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지속할 경우 공정위가 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내부에서 배달앱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높아지는 분위기다”라면서 “‘갑질’ 이미지가 씌워진 기업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하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위의 칼날
아울러 공정위는 지난 6월 말 배민이나 쿠팡, 네이버 등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우선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 업체 간의 거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했다. 입점업체에 대한 수수료율 책정, 판촉 활동비용 배분 등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정부 개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다.또 내년 6월까지 ‘플랫폼 분야 단독행위 심사지침’도 만든다. 시장을 선점한 독과점 플랫폼이 신규 플랫폼 진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막으려는 조치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의 M&A(인수·합병)를 심사할 때는 수수료 인상, 정보 독점 등 경쟁 제한 효과와 효율성 증대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아한형제들과 DH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민과 요기요의 시장 독점에 대한 여론이 워낙 안 좋은 데다가 공정위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만큼 심사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배민의 수수료 개편 논란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결합(합병)과 관련한 독과점 여부를 심사받는 도중 수수료 체계를 크게,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해당 업체(배달의민족)의 시장지배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심사 기간에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다.
이런 와중에 국내 배달앱 시장에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업체는 쿠팡이다. 쿠팡은 자사 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의 서비스 범위를 기존 강남 3구에서 서울 전체로 키우면서 영업 확장에 시동을 걸고 있다. 쿠팡이츠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쿠팡의 ‘본업’인 이커머스 서비스와 연계해 시너지를 낼 경우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띵동’이라는 배달업체도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띵동은 지난 2012년 심부름 대행 서비스로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이다. 배민이 수수료 체계 개편에 나섰다가 자영업자 반발로 백지화하는 등 논란에 휘말리자 ‘거래 수수료 2%’를 내세우며 배달앱 시장에 뛰어들면서 주목받았다.
시장에서는 이미 조만간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빅데이터 분석 업체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 3월 9일부터 4월 7일까지 30일간 유튜브와 블로그, 페이스북 등 12개 채널을 대상으로 소비자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 배달의민족(69%)과 요기요(24%), 배달통(3.5%)의 정보량이 97%에 달했다. 이는 실제 시장점유율과 유사한 수치다.
하지만 소비자 호감도 조사에서는 쿠팡이츠에 대한 긍정적 언급이 52.1%로 가장 높았다. 쿠팡이츠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비율은 9.95%에 불과했다. 배민의 경우 긍정적인 언급이 39.6%에 그쳤고, 부정적인 언급은 17.7%로 높은 편이었다.
“배민·요기요에 부담될 것”
경쟁자들이 몸집을 키우면 외려 우아한형제들과 DH 간 합병 승인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는 과거 공정위의 합병 승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공정위는 G마켓과 옥션의 합병을 승인하면서 두 업체의 점유율이 줄고 있다는 점을 승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앞서 2009년 이베이(옥션)가 G마켓을 인수할 당시 양사의 총 시장점유율은 86%였지만 2010년에는 72%로 줄어드는 등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경쟁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만큼 두 업체가 합병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국내 배달 앱 시장이 한창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만큼 향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간 선두를 지켜온 배민은 합병과 규제 등 여러 변수에 직면해 있다. 배달앱 시장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부정적인 여론이 지속할 경우 배민이나 요기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또 후발주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데다 지자체가 공공배달앱 개발을 추진하는 등 시장이 요동치는 만큼 더욱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