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NGO 반면교사 위해 전문가 자문 공개
성폭력상담소는 178개 ‘대표 지급처명’ 모두 공란으로
상담소 “서식 오인으로 인한 오류, 곧 정정하겠다”
민우회‧여성의전화, 억 단위 지출을 한 항목에 퉁 쳐
민우회 “수혜자 불특정 다수일 때 지출사유만 간단히 기재하게 돼 있어”
전문가 “기부문화 활성화위한 제도 취지 무색해져”
전문가 “NGO 탓만은 못해…홈택스 양식 실효성 고민해야”
2019년 4월 3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관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381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정의기억연대 대표). [사진 정의기억연대 제공]
공익법인 전문 회계사에게 묻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9년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 대표지급처명이 모두 공란이다. [국세청]
‘신동아’는 NGO 결산 서류를 분석한 뒤 공익법인 감사 전문인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공인회계사와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공인회계사)에게 자문(諮問)했다. 자문 내용은 추후 다른 NGO가 회계를 작성할 때 반면교사로 참고할 대목이 많아 비교적 상세히 전한다. 또 각 NGO의 반론 및 해명도 충실히 소개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공익법인은 국세청 홈택스에 결산서류를 의무 공시해야 한다. 공익법인이 상속세·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결산 내용을 검토해 오류를 발견하면 7월부터 1개월 여간 재공시하도록 한다. 그전에 공익법인 스스로 문제점을 인지하면 언제든지 수정공시를 할 수 있다.
미묘하게 다른 두 가지 명세서는 구분해 봐야 한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지출 명세서)는 공익법인의 한 해 기부금 수입과 지출을 나타낸다. 지출액(현금·물품 포함)을 어느 곳에 무슨 목적으로 사용했고 그 혜택을 몇 명이 누렸는지 밝혀야 한다. 정의연과 관련한 보도에 주로 거론되는 회계 논란은 대체로 부실하게 작성된 지출 명세서에 기인한다.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활용실적 명세서)는 지정기부금단체가 기부금을 공제받기 위해 법인세법에 따라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하는 양식이다. 기획재정부는 공익성이 높은 비영리법인 중 주무관청의 추천을 받은 곳을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한다. 지정기부금 단체에 기부하는 법인이나 개인은 법인세상 세제 혜택을 누린다. 법인은 법인소득의 10%까지 비용 처리할 수 있다. 개인은 소득의 30% 선에서 기부금 15%를 공제받는다. 활용실적 명세서 역시 기부금 수입·지출액을 나타내나, 지출 명세서와 달리 수혜인원 대신 지급건수를 기재한다.
한편 공익법인의 공시가 부실하거나 수정공시 명령을 어기면 법인 총자산의 0.5%를 가산세로 물게 된다. 이와 별개로 국세청은 출연 받은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기준에 못 미친 공익법인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178개 ‘대표 지급처명’ 모두 공란
한국성폭력상담소(상담소)는 1991년 개소했다. 1999년 국내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전화 상담과 보호시설을 제공한다.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활용실적 명세서에 따르면 상담소의 기부금 수입은 2016년 3억681만 원, 2017년 3억782만 원, 2018년 3억3293만 원, 2019년 4억3141만 원 등이었다. 상담소는 지난해 3억8327만 원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문제는 상담소가 지출했다고 기재한 178개 항목의 ‘대표 지급처명’이 모두 공란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급여·사회보험·퇴직금 등 돈을 쓴 목적과 액수는 기재했지만 정작 지급 대상이 누락됐다. 지난해 기부금 활용실적을 20개 항목으로 정리한 내역에도 대표 지급처명은 빠졌다.
법인세법 시행규칙(별지 제63호의7서식)에 따르면, 활용실적 명세서에 쓰는 대표 지급처명에는 ‘지출월별, 지급목적별로 구분된 지급처 중 가장 큰 대표 지급처’를 적도록 돼있다.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에는 공란으로 둘 수 있다’고 예외를 허용하고 있으나, 상담소는 한해 기부금 지출 내역을 모두 기재하지 않았다. 배원기 교수는 “대표 지급처명을 공란을 둔 것은 작성 지침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출 명세서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상담소는 총 3억8327만 원을 지출했지만 지출 명세서엔 지급처로 ‘이미경/(사)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만 적었다. 지출목적은 ‘목적사업용’이라고만 썼다. 앞서 언급한 정의연의 ‘옥토버훼스트’ 논란과 닮은꼴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의연은 기부금 3300만여 원을, 상담소는 기부금 4억여 원을 한 항목에 기재했다는 정도다.
최호윤 회계사는 “단일 내역으로 지나치게 ‘퉁’ 쳐버린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지출 명세서의 지출목적을 무성의하게 작성했다. 활용 명세서의 지급목적 항목은 임의로 적을 수 있지만, 지출 명세서의 경우 기재할 수 있는 내역이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별지 제31호서식)은 기부금 지출목적을 ‘수혜자 및 단체’(장학·학술·사회복지·문화·기타)와 ‘자산 취득’(금융자산·부동산·미술품·기타), ‘각종 경비 지출’(인건비·임대료·기타)로 구분한다. 최 회계사는 “상담소의 특성상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이므로 지출 사유를 간략히 적어도 각종 경비 지출의 인건비나 임대료, 기타 정도로는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상담소 측은 “서식 오인으로 인한 오류다. 빠른 시일 내 국세청에 오류 정정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기부금은 목적사업을 위해 지출되었으며 목적사업의 상세내용은 정관에 적시돼 있다. 상담소 회계는 매년 결산자료와 예산안을 이사회 점검 이후 총회에 부의하여 정회원 의결 후 집행하고, 상세내용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처럼 ‘퉁’ 치고 가는 식이어서야”
한국여성민우회가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9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 (대표)지급처 ‘일상의 실천외’에 ‘여성인권 향상과 성 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10억3045만 원(수혜인원은 5만567명)을 지급했다고 기재했다. [국세청]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지출 명세서에 따르면 민우회의 기부금 수입은 2016년 6억7914만 원, 2017년 9억5869만 원, 2018년 9억8467만 원, 2019년 10억2875만 원 등이었다. 지난해 10억3045만 원을 지출했지만 활용실적 명세서상 월별 지급목적을 ‘목적사업수행비’ 하나로 통일해 적었다. 연도별 지출 내역에는 지급목적을 ‘여성인권 향상과 성 평등 실현’만 기재했다.
이와 관련해 최호윤 회계사는 “관행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과거처럼 ‘퉁’ 치고 가는 식이면 공익법인 회계를 투명하게 해 기부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제도 취지가 무색해진다. ‘인원과 시간이 부족해 대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NGO가 기부자들에게 혼날 때나 할 변명이다. 대외적으로 실수를 정당화할 순 없다.”
이에 대해 민우회 측은 “목적사업 수행비용을 주어진 서식(법인세법 시행규칙 별지 제63호의 7서식)의 지출월별 기준에 맞추어 작성한 것이다. 목적사업수행비의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공익법인회계기준에 따라 사업수행비용(인력비용, 시설비용, 기타비용 등으로 다시 구분됨)과 일반관리비 등으로 구분 작성된 국세청 공시서류인 운영성과표(별지 제1호 서식)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우회가 지출 명세서에 쓴 대표 지급처는 ‘일상의 실천 외’ 뿐이었다. 여기에 한해 지출액을 모두 사용했다고 썼다. 지출목적은 ‘여성인권 향상과 성 평등 실현’이라고만 적었다. 수혜인원은 5만567명이라고 기재했다. 사용액이 100만원이 넘은 경우 개별 수혜자와 수혜단체를 구분해 별도 작성해야 한다는 국세청 가이드라인을 어긴 셈이다. 배원기 교수는 “국세청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기부금품 이용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우회 측은 “활동 및 재정보고가 담긴 소식지 ‘함께 가는 여성’의 제작업체 ‘일상의 실천’을 대표 업체로 기술하면서 ‘일상의 실천 외’를 기재했다. ‘일상의 실천 외’가 한 업체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 (그) 외’의 서술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민우회 측은 수혜자·단체에 대한 기재 방식을 어겼다는 지적을 두고는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다.
“‘지출목적’은 수혜자(단체)에게 지출하는 것 외에도 자산 취득, 각종 경비 지출이 가능하며 이러한 지출목적 중에서 수혜자(단체)에게 연간 100만 원 이상 지출한 경우에만 개별 수혜자(단체)별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100만 원 이상의 모든 자산 취득 및 경비 지출까지 기재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또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인 경우 인적사항 대신 지출사유를 간략히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민우회는 수혜자(단체)들에게 배분 사업을 주로 하는 재단법인 또는 전문모금기관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목적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단체다. 수혜자를 정의한다면 불특정 다수의 여성으로 봐야 한다. 기부금품은 대부분 여성인권향상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적사업 수행을 위한 경비에 지출되고 있다. 동 양식의 작성방법에 따라 충실히 기재했다.”
더불어 민우회 측은 “다만 동 경비를 다시 인건비, 임대료, 기타로 구분하지 않아 국세청이 공시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 시정을 요구하면 법에 따라 즉시 시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세부사업 일일이 나열할 수 없어…”
한국여성의전화가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9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지출액 7억902만 원의 수혜자가 16만8689명에 달한다고 기재했으나 각 사업별 수혜자가 몇 명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국세청]
여성의전화는 지난해 7억902만 원의 기부금을 지출했다. 하지만 민우회와 마찬가지로 지출 명세서에는 대표 지급처가 한 곳(주식회사 현대에이치씨엔)만 적혀 있다. 지출 목적도 ‘여성폭력인시(식의 오기)개선, 회원, 조직강화사업’이라고만 기재했다.
여성의전화는 활용실적 명세서에도 연별·월별 기부금 지출 목적을 ‘조직강화, 회원, 여성폭력인식개선사업’으로 동일하게 작성했다. ‘운영성과표’란 별도 문건에서 인력비용·시설비용·기타비용 등 항목에 따른 지출 금액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양식엔 대표 지급처에 대한 정보가 없다. 공시만 보면 기부금을 어느 곳에,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여성의전화 측은 “지출금액이 가장 많은 여성폭력인식개선을 위한 공익광고 송출 지급처 ㈜현대에이치씨엔을 (대표) 지급처 명으로 기재했다. ‘지급목적’에 대한 구체적 제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많은 세부사업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어 여성폭력인식개선사업, 회원사업, 조직강화사업으로 대분류해 기재했다”고 밝혔다.
여성의전화는 지출명세서에서 한해 지출액 7억902만 원의 수혜자가 16만8689명에 달한다고 기재했으나 각 사업의 수혜자가 몇 명인지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단순 계산하면 수혜자 1명당 약 4200원을 받은 꼴이다. 배원기 교수는 “명확한 표기로 보긴 어렵다. 이런 기재 방식은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과 마찬가지로 NGO의 성의가 부족한 문제”라며 “공시 내용을 본 이해관계자가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부작용이 우려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성의전화 측은 “시민단체 활동의 수혜 인원을 정확히 계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성의전화는 매년 연간보고서를 통해 본회 활동에 대한 성과를 구체적이고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위에 언급된 수혜인원은 연간보고서에 언급된 정량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기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근본적으로 국세청 홈택스 전산 프로그램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다. 관련 법령 개정으로 기부금을 모집하는 비영리민간단체에 적용되는 정부의 회계공시전산프로그램이 비영리민간단체의 회계전산 프로그램과 일치하도록 하는 등 제도개선 노력을 통하여 해결돼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NGO 탓만 할 순 없어”
NGO 회계가 이처럼 부실 난맥상을 드러내는 원인은 무엇일까. NGO를 관리·감독하는 당국이 여러 곳인 점이 첫 번째 문제로 꼽힌다. NGO 성격에 따라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환경부 등 제각각이다. 회계 공시 양식은 기획재정부가, 실제 공시는 국세청이 담당한다. 최호윤 회계사는 “부처 간 업무조정으로 NGO 회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최 회계사는 “국세청 홈텍스의 회계자료 양식이 기부문화 활성화란 본래 취지에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현행 제도는 NGO에겐 번거롭고 기부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못한다. 각 양식의 어휘·개념에 대한 규정이 명확치 않아 NGO 실무자가 혼란을 겪는다. 공시 자료의 오류를 두둔할 순 없지만, NGO 탓만 할 순 없다. 개별 단체의 잘못된 공시 내용에 대한 지적 뿐 아니라 투명한 기부문화 발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